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5
제5화
02.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 (1)
유리 온실 안, 둥실 떠오른 시계 앞에 선 파티원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게이트를 바라보았다.
째깍, 째깍, 초침 소리에 맞춰 심장이 뛰었다.
“어떡해요. 어떡해요, 언니?”
“저 멍청이가……!”
눈앞에 뜬 시스템 창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오늘은 뭘 해도 풀리지 않는 날인가 보다.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들이 요 며칠간 쏟아졌다지만 필드에서까지 이럴 줄이야.
눈앞에서 세계탑으로 연결되는 게이트가 일렁이고 있었다.
***
난장판이던 시작과 달리, 우리는 순조롭게 필드를 누볐다.
타입이 다른 근접 딜러 둘, 탱커 하나, 원거리 딜러 하나. 모두 제 역할을 톡톡히 해 줬다. 덕분에 파티는 큰 위기 없이 필드 중앙의 온실에 자리한 필드 보스를 물리칠 수 있었다.
특히 화염 속성의 스킬을 가진 차태양의 활약이 눈부셨다. 처음이라곤 믿기지 않는 솜씨였다.
성급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양성소 출신답게 조성현도 제몫을 다했고, 서영운도 귀찮은 티를 잔뜩 낸 것치고는 성실하게 일행들을 지켰다.
‘클리어까지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니 말 다 했지.’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나와 서영운이 필드 보스인 꽃봉오리 마수가 떨어뜨린 아이템과 부산물을 정리하는 사이, 아이들 앞에 거대한 시계가 떠올랐다.
차태양이 말리기도 전에 조성현이 홀린 듯 시계에 손을 뻗었다.
“조성현! 야!”
“김 서방아, 여기! 여기로 좀 와 봐! 큰일이야!”
차태양과 도깨비의 외침에 뒤를 돌아보았지만, 조성현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다음이었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세계탑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렸다.
“윤가호 헌터, 이건…….”
“예, 맞습니다. 간섭입니다.”
정식 명칭, 코스믹 게이트.
필드와 세계탑이 발생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케이스가 적어 원인 분석이 어려울 정도로 드문 일이건만 하필이면 우리 앞에 나타나다니. 운이 없어도 지독하게 없었다.
“빨리 증원 요청을 해야…….”
공략팀 경험이 있음에도 갈피를 잡지 못한 서영운이 게이트 앞을 서성였다. 하필이면 연결된 곳이 악명 높은 제19계층인 탓이다.
“걸려도 꼭 이런 게…….”
들어갈 것이라면 서둘러야 한다.
내 기억이 맞다면, 19층은 정해진 시간 동안 위험 요소들을 피해 생존해야 하는 웨이브형 계층이다.
개중에서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언데드형 마수가 출몰하는 곳.
A급 딜러라지만, 조성현 혼자 어떻게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 인원으로 공략할 수 있을까?’
클리어 당시 공략팀도 애를 먹었다고 들었는데. 증원을 기다리는 편이 현명할지도 모른다.
서영운과 차태양이 파티장인 나의 결정을 기다렸다.
“저곳에서 조성현 생도가 혼자 살아남을 확률은 매우 희박합니다. 가야 해요.”
“간섭 직후에는 일시적으로 난도가 상승합니다. 가능합니까?”
“19층을 공략했던 ‘활빈’의 인터뷰 영상을 본 적 있습니다. 몇 군데 안전 구역이 있다더군요. 그걸 활용하면 증원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이러나저러나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요. 덧붙인 말에 서영운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이러는 시간에도 조성현의 생존 확률은 시시각각 낮아지고 있었다. 어서 가야 한다.
불안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차태양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첫 현장인데 많이 놀랐죠? 위험하니 차태양 헌터는 이곳에서 기다리세요. 곧 증원팀이 올 겁니다. 그러니 걱정은 마시고요.”
빤히 나를 올려다본 차태양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저도 갈래요. 언니도 갈 거잖아요. 왜 저한테만 빠지라고 하세요? 저 잘할 수 있어요.”
말문이 막혔다.
푸른 불꽃을 주먹에 휘감은 채 종횡무진 전장을 휩쓸던 차태양이다. 뒤에서 그를 엄호하기만 한 나로서는 차태양을 말리기 어려웠다.
서영운까지 나서서 설득했지만 차태양은 완고했다.
차태양이 장갑을 낀 주먹을 붕붕 휘두르며 선언했다.
“위험하다면서요. 제가 언니 지켜드릴게요. 얼른 가요!”
“……알겠습니다. 대신 절대로 단독 행동을 해선 안 됩니다. 저를 보호하겠다고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도 안 돼요.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의 안전을 최우선시하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맞아! 태양아, 김 서방 말 꼭꼭 새겨들어! 위험한 일 하면 절대 안 돼. 약속!”
“약속할게요.”
“후, 그럼 가죠.”
어린애를 데리고 들어가는 게 내키지 않았지만, 솔직히 함께 가 준다고 해서 한숨 놓았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 하는 시점 아닌가.
‘사실 진짜 문제는 차태양이 아니라 나지.’
어쩌다 보니 리더를 맡게 되었지만 실상 여기서 가장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나였다.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지.
습관처럼 비관적인 생각을 했다 마음을 다잡았다.
이럴 시간이 없다. 왼손에 든 활을 꽉 쥐며 게이트로 향했다.
[제19계층, ‘네크로맨서의 저택’ 에 입장합니다.– 현재 입장 인원 : 4
※ 필드 ‘마법사의 정원(C)과의 연결로 난도가 상승합니다.] [메인퀘스트, ‘사자(死者)와 춤을(B+)’이 시작됩니다.
– 클리어 조건 : 생존
– 잔여 시간 : 01:53:19]
“선배님!”
“행동 강령을 잊어버리지 않을 만큼의 정신은 있었나 보군요.”
세계탑에 입장하자마자 조성현이 달려들었다. 많이 놀랐는지 까무잡잡한 피부가 창백해 보일 지경이었다.
패닉 상태가 되어 멋대로 돌아다녔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조성현의 무사함을 확인한 우리는 두 팀으로 찢어져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소 낡은 감이 있었지만 방금까지 우리가 있던 그 온실이었다.
깨진 유리며 휘어진 문, 말라비틀어진 식물,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는 경첩. 그리고 필드에서와 달리 선명하게 보이는 오래된 저택이 스산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기 기분 나빠. 삿된 것들의 기운이 가득해.”
“윽, 이렇게 고약한 냄새는 처음 맡아 봐요.”
고약한 냄새? 아무 냄새도 나지 않는데.
뭔가 내가 감지하지 못하는 걸 느꼈는지 차태양이 넌더리를 쳤다.
[3분 뒤, 몬스터웨이브가 시작됩니다!]“다들 서둘러 본인의 상태와 소모품을 확인하세요.”
“윤가호 헌터, 가장 가까운 안전 구역이 어딥니까?”
“저택 쪽으로 가야 합니다. 이 근처에는 안전 구역이 없어요.”
온실을 나서며 메모라이징 리스트를 확인했다.
내 주스킬이라 할 수 있는 ‘속성 부여’. 나를 황야에 들어올 수 있게 해 준 효자 스킬이었으나, 이런 상황이면 나를 곤란하게 하곤 했다. 미리 시간을 들여 준비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남았지?’
운이 좋았다. 필드에서 파티원들이 날뛰어 준 덕분에 시전 횟수가 제법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일행들에게 방해가 되진 않을 것이다.
“‘고양이 걸음’ 발동.”
[당신의 날렵한 몸놀림은 마치 한 마리 맹수 같네요!]시답잖은 문구와 함께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제한 시간이 줄어듦에 따라 흙바닥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넓은 부지 가득히 묻혀 있을 언데드를 생각하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다른 일행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저택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목적지는 저택과 온실 사이에 있는 미로 숲. 미로를 이루는 나무 사이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왔다.
“악! 이게 뭐야!”
무른 땅을 비집고 나온 손목을 보고 조성현이 비명을 질렀다. 혹시 겁을 먹지는 않았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차태양 쪽을 돌아보았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차태양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악수를 건네고 있었다.
“얘, 너는 좀 씻어야겠다. 냄새나. 그것도 엄청!”
“태양아, 그거 지지!”
“소리야, 얘는 친구 하면 안 되는 애야?”
“그건 혼도 백도 안 남은 껍데기야. 만지지 마. 부정 탄다!”
도깨비의 말에 차태양이 눈에 띄게 시무룩해졌다.
언데드들의 정수리가 보일 때쯤부터는 나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약품 냄새가 진동했다.
안전 구역은 미로 숲 중앙에 있다.
미로 숲에는 별문제 없이 도착했으나 이내 우리는 중앙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헤맸다.
“저기요, 이제 30초 남았는데. 이거 되겠어요?”
“시간 없는데 언니, 이 벽 그냥 넘어가면 안 돼요?”
“넘어가……?”
4m는 족히 넘어 보이는 이 벽을 넘는다고?
차태양의 말에 반문했다가 깨달았다. 아, 이 사람들은 시스템으로 인간의 규격을 뛰어넘었지.
아직 안전 구역까지는 제법 거리가 있었다. 나도 스킬을 사용하면 못 할 것은 없었으나, 시간 내 안전 구역에 도착할 수 있다 장담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도 먼저 보내야 하나…….’
내가 곤란해하는 것을 눈치챈 서영운이 내키지 않는단 표정으로 제안했다.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습니다. 윤가호 헌터는 제가 들고 뛰죠. 서두릅시다.”
대꾸할 틈도 없이 서영운이 나를 짐짝처럼 둘러멨다. 이윽고 서영운이 미로 벽 위로 겅중 뛰어올랐다.
서영운이 높이 뛰어올랐다 착지할 때마다 어깨에 눌린 배가 찌부러지는 것 같았다.
있지, 나도 저거 해 주면 안 돼? 차태양이 조성현에게 묻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다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나를 배려해 주고 있었는지 서영운에게 운반당한 뒤로부터 이동 속도가 급격히 빨라졌다.
몇 걸음 내디딘 것 같지도 않은데 어느새 안전 구역이 보였다. 작은 공터 한가운데, 직경 5m 정도 되는 구역이 하얗게 빛났다.
[몬스터웨이브까지 10초 남았습니다!] [안전 구역에 진입했습니다!]아슬아슬했다.
안전구역에 들어서자마자 서영운이 나를 패대기쳤다.
‘서인성이라는 별명이 왜 있는지 알 만하다니까.’
못마땅했지만 덕분에 제시간에 도착했으니, 원. 투덜거림도 잠시 무릎에 묻은 흙을 털며 동태를 살폈다.
[몬스터웨이브가 시작되었습니다!] [안전구역 지속시간 : 00:15:00]시스템 메시지와 함께 계층 전체에 짙은 안개가 깔리며, 죽은 육신이 소리 없이 땅을 비집고 나왔다. 우리 근처에서도 반쯤 문드러진 동물의 사체와 해골 병사 따위가 나타났다.
텅!
마수가 안전구역의 벽에 밀쳐져 나동그라졌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점점 많은 마수가 안전구역 쪽으로 몰려들었다. 생각보다 숫자가 많았다.
‘거기다 첫 안전 구역 지속시간이 15분이라니. 시작부터 너무하잖아!’
내가 이렇게 투덜거리는 것도 당연했다.
한 번 사용한 안전 구역은 봉인된다. 거기다 부조리한 세계탑답게 시간이 지날수록 안전 구역 지속 시간은 짧아지고, 몬스터웨이브는 그와 비례하여 더욱더 빠르게 찾아온다.
“윤가호 헌터.”
“네, 상황이 안 좋군요.”
시험 삼아 가장 가까이 있는 언데드 울프에게 화살을 쏘았다.
캥! 늑대는 뒤로 두어 발짝 물러났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이쪽으로 몸을 돌진 해왔다.
그 옆에 있는 마수들을 여럿 쏘아보았지만 반응은 비슷했다.
최소 C급의 언데드 군단.
서영운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안전 구역 경계선 쪽에 앉아 마수들을 구경하던 차태양도 불안한 눈빛으로 이쪽을 올려다보았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내가 아는 안전 구역은 총 다섯 개.
그 안에 증원이 오지 않으면 우리는 전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