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100
99화 다크 엘프들의 왕(2)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숨어 있던 다크 엘프들의 본거지가 드러났다.
재현은 침착하게 기척을 지운 채, 안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어둠이 가득한 공간. 코끝을 간질이는 독기에 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타락한 마나…… 다른 애들을 데리고 오지 않길 잘했어.’
역시 적의 본거지답게 안에서 새어 나오는 마력은 매우 끈적하고 흉흉했다.
일개 생도 수준으로는 결코 견뎌낼 수 없는 농도 짙은 마나. 만약 일행이 함께 왔다면 오히려 마나에 중독돼 방해되었을지 몰랐다.
재현은 헛숨을 들이키며 적의 시선을 피해 좀 더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약 5분 후.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재현은 재빨리 《그림자 갑옷》의 은신 스킬을 발동한 채 가까이 다가갔다.
“정찰대의 복귀는 아직인가? 그 녀석들 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그러게나 말이다. 교대 시간이 한참이 지났는데 나 원 참. 싹 다 물갈이 한번 해야겠군.”
‘……보초병인가? 저 정찰대라는 녀석들은 아까 내가 죽인 놈들일 테고.’
다행히 보초병은 재현이 숨어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재현은 기습할 기회를 노리는 한편, 그들의 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집중했다. 혹여나 쓸 만한 정보를 흘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마침내 재현이 적의 약 5미터 거리까지 이동했을 때. 그들의 말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그나저나. 그때 소환됐던 그 ‘외지인’들 말인데.”
“미드가르드의 하등 종족들을 말하는 건가? ……인간이라고 했던가?”
“그래! 그거. 하여튼 그 녀석들 참 맛이 좋았지. 또 어디서 안 떨어지려나?”
보초병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옆에 서 있던 다른 보초병이 팔짱을 끼며 말을 받았다.
“흥, 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네놈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 극상품은 자주 보기 어렵다. 이번에는 어째 운이 좋아 마력을 잔뜩 머금은 녀석들이 우르르 쏟아진 거지만…….”
두 다크 엘프들의 섬뜩한 이야기를 듣던 재현의 낯빛이 차갑게 굳었다.
그는 조금 전, 자신이 느꼈던 위화감의 이유를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처음 다크 엘프를 상대하기 직전.
재현은 《마력 감지》를 통해 생존자의 기감을 수신했다.
하지만 그때 감지된 것은 고작 여섯 명의 생체 신호. 본래 던전에 들어온 여덟에 비하면 두 사람이 모자랐다.
재현은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이미 두 명은 잡아 먹혔다.’
재현은 입술을 짓씹으며 수다를 떠는 다크 엘프들을 노려보았다.
‘남은 사람들도 점점 죽어가고 있어. 지체할 시간은 없다.’
재현은 곧바로 마력을 전개한 뒤, 초소를 향해 쏘아냈다.
―액티브 스킬 《플레임 애로우 Lv 3》을 발동합니다.
콰앙!
손끝으로부터 발화(發火)한 거센 화마의 화살 여덟 개가 초소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다크 엘프들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서야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소리쳤다.
“이, 이게 무슨!”
“부, 불이다!!”
마수의 입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재현은 뒤편에서 소리를 듣고 몰려온 나머지 다크 엘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모두 열을 갖추고 적을 섬멸하라!”
“다시 한번 말하겠다! 침입자가 나타났다. 모두 열을 갖추고 적을 섬멸하라!”
다크 엘프들은 마력을 끌어올리더니, 저마다 잘 다루는 무기를 마력을 통해 구체화했다.
가장 전열에 선 것은 창을 든 두 마리, 바로 뒤에 스태프를 든 네 마리. 맨 후열에는 쇠뇌와 석궁을 든 다크 엘프가 진형을 갖춘 채 달려오기 시작했다.
적은 기세를 끌어올리며 재현의 양옆으로 도열해 위압적인 마력을 흘렸다.
노골적으로 적을 겁주기 위해 쏟아내는 실효성이 전혀 없는 마력의 파랑.
하지만 재현은 전혀 겁먹지 않은 채 녀석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적진의 가운데에서 전투를 지휘하던 녀석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아마 초소를 이끄는 리더인 듯했다.
“스바르탈페임에서 다크 엘프를 공격하다니. 인간 주제에 배짱 있는 녀석이구나.”
“뭘, 배짱은 너희가 더 넘쳐나지.”
“무슨 뜻이지?”
“날 앞에 두고도 도망가지 않고 무기를 든 게 배짱 아니면 뭐겠어?”
“……오만하구나. 인간!”
말을 주고받던 리더의 미간이 좁혀졌다.
리더는 재현의 말을 비웃으며 오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죽여라.”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다크 엘프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 * *
“……재현이는 괜찮을까?”
서이나가 침울한 얼굴을 한 채 일행을 바라보며 물었다.
조금 전, 홀로 다크 엘프들의 군락으로 향한 재현이 걱정된 것이다.
김유정을 비롯한 일행 역시 재현이 걱정되는 마음은 같았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현실적으로 박성재를 제외하면 이곳에서 전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재현뿐이니까.
만약 재현이 이번 일에 실패한다면, 남은 일행이 살아 돌아갈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괜찮을 겁니다. 재현 군은 강하니까요.”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재현이잖아. 아무 일 없을 거야.”
박성재와 안호연이 말했지만, 서이나는 여전히 어두운 얼굴이었다.
김유정 역시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미 그녀는 모의 던전에서 재현이 죽은 줄 알고 한번 크게 놀랐던 적이 있다.
조금 전에는 재현이 완고하게 가겠다고 말해 말릴 수 없었지만…….
“괜찮을 거야. 아마도.”
김유정은 서이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애써 웃으며 말했다.
타인과의 교류가 서툰 서이나는 이런 상황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유정 역시 몸이 떨리는 것만은 참을 수 없었다.
“일단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성찬이랑 연주도 보호해야 하고.”
“……응.”
한편,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성재의 표정이 일순 딱딱하게 굳었다.
던전 내부로부터 쏟아져나온 짙은 마력이 일행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쉿.”
박성재는 검지를 입에 댔다.
대화를 나누던 이들의 목소리가 멎었다.
이내 들려오기 시작한 바람 소리.
‘불길한 마력이다. 아주 미세하지만…… 조금씩 이쪽으로 오고 있어.’
박성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적이 오고 있습니다! 모두 자리에!”
목소리를 들은 일행이 모두 전열을 갖추고 적의 동태를 살폈다.
하지만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되레 악화되고 있을 뿐이었다.
위험하다.
박성재는 이를 악물었다.
느껴지는 격이 다른 마력.
‘젠장! 조금 전 상대했던 녀석들과는 차원이 다른 상대다.’
동시에, 박성재의 입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모두 어서 피해야 합……!”
허나. 박성재의 말은 채 끝맺어지지 못했다.
서걱― 툭.
연이어 들려오는 두 번의 섬뜩한 소리.
일순, 일행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이들의 앞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매니저님!”
“어, 어떻게 이런……!”
김유정과 안호연이 망연히 중얼거렸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시선의 끝에는 그야말로 참사가 일어난 현장이 있었다.
피를 흘리며 앞으로 엎어진 박성재와 그 뒤로부터 느껴지는 붉은 안광.
이들은 보았다.
자신을 둘러싼 정예 다크 엘프 기사 여섯과. 깔끔하게 도려진 박성재의 왼팔을.
* * *
재현은 숨을 골랐다.
먼저 쏘아진 것은 스태프를 든 녀석들의 원거리 마법이었다.
쿠구구구……!
빙결 속성의 얼음 조각들과 아찔한 뇌격이 재현을 향해 날카롭게 쇄도했다.
모두 못해도 C급에 해당하는 중급 이상의 마법.
하지만.
―액티브 스킬 《절대 연산》이 적의 마법을 무효화합니다.
―액티브 스킬 《윈드 부스트》를 발동합니다.
재현에게는 전혀 의미 없는 공격이었다.
재현은 모든 공격을 다 파훼한 뒤, 곧바로 땅을 차 마법사들의 배후로 이동했다.
마법사가 가장 취약한 순간은 마법을 사용한 직후, 캐스팅을 시작할 때.
재현은 그러한 약점을 잘 알고 있었다.
촤르르르르!
검처럼 날카롭게 변모한 사슬이 적들의 심장을 꿰뚫기 시작했다.
스태프를 들고 있던 다크 엘프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 사멸(死滅)했다.
리더는 뒤늦게 그 모습을 보고서야 재현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깨달았다.
재현은 강했다.
몇 합을 채 겨루어 보지 않고서 깨달은 사실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리더는 비릿한 웃음을 머금었다.
아무리 재현이 강하다 하더라도 이곳은 다크 엘프들의 초소. 아직 병력은 한참 더 남아 있다.
이를 모두 쓰러뜨리는 것은 한낱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일 터.
“너는 이곳에서 결코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리더의 말과 함께 후방에서 지원 병력이 더 몰려들었다.
일종의 상비군으로, 경계 초소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주둔하는 이들이었다.
다크 엘프들은 최대한 재현과 거리를 벌리며 마법을 사용했다. 그들이 쥔 스태프가 빛을 발하며, 재현에게 옮겨 붙는다.
지이이이…….
독한 마력과 함께 연산식이 허공에 쓰이고, 빛을 발했다.
―다크 엘프가 액티브 스킬 《마나 체인》을 사용합니다.
―다크 엘프가 액티브 스킬 《마비의 주문》을 사용합니다.
―다크 엘프가 액티브 스킬 《중독의 주문》을 사용합니다.
연이어 들어오는 상태 이상 마법.
그러나 재현은 이미 저들이 저렇게 나올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크 엘프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CC기다.’
지능형 마수에게 흔히 보이는 패턴이다.
CC기를 걸어 적을 무력화한 뒤, 천천히 잡아먹는 것.
하지만 재현으로서는 전혀 당황할 이유가 없었다.
―패시브 스킬 《헬의 가호》가 상태 이상으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합니다.
《헬의 가호》.
첫 번째 시련에서 얻은 힘이 상태 이상을 몰아냈다.
재현은 피식 웃었다.
이 스킬이 있는 한, 자신은 절대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는다.
허나, 이를 알 턱이 없는 다크 엘프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마법에 저항했다고?!”
“그건 알 거 없고.”
재현은 전신에 마력을 흘려보내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크헉!”
어느새 도약해 리더의 목을 움켜쥐었다.
이미 다른 다크 엘프들은 겁에 질려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재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묻는 말에 대답해라.”
“감히…… 인간 주제에! 긍지 높은 다크 엘프에게 명령을…… 컥!”
재현은 손아귀에 힘을 주어 뼈를 비틀며 차갑게 일갈했다.
“긍지와 목숨을 바꾸겠다면 마음대로 해도 돼. 뭐, 수지타산이 안 맞긴 하지만.”
“큭…… 마, 말하겠다! 그러니까, 당장 놔 줘!”
“좋아. 그럼 다시 묻겠다.”
손에 힘을 풀자 리더는 땅에 떨어진 채 제 목을 부여잡았다.
재현이 발로 리더의 머리를 지르밟으며 물었다.
“몇 시간 전에 이곳에 떨어진 인간들이 있을 거다. 너희가 그들을 먹었나?”
“……그렇다.”
리더는 재현의 얼굴을 살피며 다급하게 덧붙였다.
“하, 하지만 모두 먹은 건 아니야! 아직 몇은 살아 있…….”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와, 왕의 처소에…….”
‘역시 그렇군.’
재현은 다크 엘프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살아남은 생도들은 그들의 장난감처럼 다뤄지고 있을 것이다.
중독이나 마비와 같은 상태 이상을 걸어 고통에 발버둥 치는 것을 구경하거나, 독기를 머금은 고기를 억지로 먹게 하는 등.
다크 엘프들은 회귀 전에도 잔혹하고 더러운 방식으로 인간을 죽여 왔다.
‘시간을 끌어선 안 돼.’
재현은 다시 마력을 끌어올려 발끝에 마력을 실었다.
정보는 충분히 얻었다.
이제 이 녀석의 효용 가치는 없다.
츠츠츠츳……!
마력이 부딪히는 파찰음.
리더는 흠칫 몸을 떨며 충격에 빠진 몰골로 소리쳤다.
“자, 잠깐! 분명 살려 주겠다고…….”
“그런 약속은 한 기억이 없는데.”
“그, 그런!”
재현이 입꼬리를 올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설마 살려 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재현은 리더를 밟은 다리에 마력을 불어 넣은 뒤, 그대로 터뜨렸다.
콰앙!
그 모습에 아연실색한 나머지 다크 엘프들이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재현은 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도륙할 생각이었다.
이지를 지닌 생명체를 살해한다는 것은, 언제나 복수의 위험을 떠안는다는 의미.
그러나 상관없었다.
재현은 다크 엘프들에게 공포를 알려 줄 생각이었다.
―액티브 스킬 《전격의 사슬》을 발동합니다.
재현이 다크 엘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곱게 죽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마라. 자업자득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