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164
163화 야외 합숙(6)
“하피라…… 아무래도 까다롭겠네.”
“엉. 내가 알기론 최소 B급 이상은 될 거야. 쉽지 않을걸.”
짐짓 고민하는 안호연의 어투에 김유정이 태연하게 대꾸했다.
재현은 팔짱을 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피라…….’
하피(Harpy).
여자의 머리와 맹금류의 몸을 한 B급 마수종. 웜과 마찬가지로 독극물을 뿜어내기에, 아직 아카데미의 생도인 동료들이 상대하기는 까다로운 적이었다.
무력뿐만 아닌, 유틸성을 겸비해야 싸우기 용이한 마수.
여러모로 초심자들에게는 버거운 상대다.
“더군다나 하피는 날아다니는 놈들이잖아. 일단 날개를 박살 내서 기동력부터 떨어뜨려야 하는데. 그것부터가 일 아냐?”
김유정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재현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날아다니는 마수들은 레이더 사이에서도 더럽기로 유명하지. 기동력도 뛰어난 데다 공격을 맞추는 것도 힘드니까.
물론 나한테는 그리 어려운 적이 아니지만…….’
재현의 경우야 문제없었다. 헬의 가호 덕분에 중독 상태 이상에도 걸리지 않고, 무력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하피보다 몇 수는 위.
B급 마수라면 수백이 몰려와도 홀로 처치할 수 있는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동료들은 다르다. 강해진 건 맞지만 하피는 꽤 위험한 몬스터니까.’
회귀한 자신과 달리 저들은 아직 열일곱의 아이들이다.
여기서 과도하게 몰아붙여 다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하피를 상대할 대책부터 체계적으로 짜고 움직이자.”
재현은 좀 더 면밀히 적을 분석해 상대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너무 걱정할 거 없어. 하피라면 나한테 상대할 방법이 있으니까. 애초에 어려운 상대도 아니고.”
내내 말이 없던 권소율이 갑작스레 끼어들었다.
재현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어려운 상대가 아니라고요?”
“그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하피는 무려 B급 마수.
어떻게 봐도 생도들이 상대하긴 어려운 적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재현은 완전히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을 쉽게 처치할 방법이 하나 있거든.”
“……쉽게 처치할 방법이라면…….”
서이나가 말끝을 흐렸다. 권소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간단해. 하피를 사냥할 덫을 만들어 녀석들을 유인하면 되니까.”
“덫?”
재현의 두 눈동자가 빛났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일행들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로 집중되었다.
허나, 이들은 알지 못했다.
권소율의 이야기를 듣던 이재상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덜덜 떨고 있다는 사실을.
* * *
큐레이터 길드의 사무실.
백지연 대표는 이마에 손을 얹은 채 한 시간째 고뇌에 잠겨 있었다.
얼마 전, 엎어진 민재현과의 계약 건 때문이었다.
“대체 왜지?”
백지연은 그렇게 운을 뗀 뒤, 분을 삭이며 이었다.
“무려 S급 아티팩트인 니드호그의 송곳니를 걸었어. 천문학적인 가치의 아이템을 고작해야 생도 하나에게 배팅했다고! 그것도 아무 조건 없이!”
한데, 어째서 그는 내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던 거지?
말은 않지만, 백지연은 그런 시선을 보내며 살벌하게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강연주가 급히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아무래도 연화 길드에서 손을 쓴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다음번에 경매에 나오는 S급 아이템을 넘겨주기로 했을 수도 있고요.”
그럴듯한 가설이었다.
허나, 이는 백지연의 의심을 모두 풀어주지 못했다.
‘어딘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계약 이야기를 나누던 그날만 해도 그래. 그 여유로운 태도…… 민재현은 내 제안을 처음부터 거절할 생각으로 대화를 나눈 거야.’
하지만 이유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날, 녀석은 내게 니드호그의 송곳니를 보여 달라고 했다. 그저 아이템의 실물을 보고 싶었던 것뿐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듯했다.
민재현의 움직임에는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터.
확신을 내린 백지연이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연주 너는 계속 민재현 감시해. 뭔가 석연찮아.”
“하지만 연화의 멤버인 그를 계속해서 감시하는 건, 자칫 길드 단위의 싸움으로 이야기가 번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조심하지 않으면…….”
“이유를 알아야겠어. 어떻게든.”
강연주는 그녀의 반응에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강연주는 꾸벅 인사를 건넨 뒤, 재빨리 사무실 밖으로 나섰다.
하, 깊은숨을 토해내며 백지연 대표의 사무실 문을 바라보았다.
‘지랄 맞은 성격 하고는.’
벌써 함께 일한 지 수년이 지났지만, 백지연의 저 다혈질적인 성격만큼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이번 일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까지는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고 있지만…….
모르겠다.
강연주는 고개를 저은 뒤, 텅 빈 복도를 걸으며 뺀질거리는 얼굴을 떠올렸다.
민재현. 이번 일의 원흉이었다.
‘대체 왜 민재현은 큐레이터의 제안을 거절한 걸까. 연화의 보복이 두려웠나?’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백지연의 말대로 파악하지 못한 정보가 얽혀 있음은 자명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다. 길드 마스터가 시키는 대로 녀석의 감시를 이어가는 수밖에.
“지랄 맞네.”
다시 한번 되뇌며 강연주는 답답한 가슴을 두드렸다.
월급쟁이의 삶이 얼마나 고된지, 유달리 심하게 느끼는 하루였다.
* * *
“하피를 사냥하는 최적의 방법은 야광 덫을 이용하는 방법이야. 때마침 이재상 얘가 제일 잘 만드는 게 야광 덫이거든. 하피가 여기 또 끔뻑 죽지.”
“재상이 형이 덫도 만들 줄 알았어요?”
이는 재현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원래 포션을 비롯한 갖은 제작 분야에 천재적인 건 알고 있었지만, 덫이라.
의외의 수확이었다.
권소율이 고개를 주억였다.
“그래. 그것도 엄청난 솜씨지. 나도 예전에 도움을 받았었거든.”
그러고 보면, 이재상과 권소율은 자주 함께 이벤트에 참여했었다.
입학 직후. 신입생 사냥 당시에도 같은 구성원으로서 이벤트를 치렀었고, 근래는 몇몇 재학생 대상 이벤트에서도 같은 팀을 이뤘다고 들었다.
서클 나인에 소속되고 나서는 거의 함께 붙어 다니기도 하고.
‘뭐, 그건 거의 일방적으로 소율 선배가 재상이 형을 괴롭히는 거지만.’
재현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좋은 이야기네요. 그럼 재상이 형 부탁…….”
“하하하, 하지만 더, 덫을 만드는 건 좀 내키지 않는데…….”
이재상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드물게도 재현의 부탁을 거절하려는 모습. 이재상은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권소율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왜 저러시지?’
재현이 그런 생각을 하는데.
별안간 이재상이 주먹을 꽉 쥐며 결심한 듯 덧붙였다.
“야, 야광 덫을 만들려면 내 귀여운 벌레들을 미끼로 사용해야 한단 말이야…….”
“…….”
“…….”
이재상의 말에 일행 전원이 침묵했다.
지금 대체 뭘 들은 거지?
“우와…… 그게 이유였어요?”
안호연조차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재현이 작게 입을 벌리며 이재상을 바라보았다. 그는 진심으로 슬픈 표정을 한 채, 자신의 벌레 통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처음 필드에 도착했을 때부터 어쩐지 바닥을 유심히 살핀다 싶더니, 어느새 수십 마리의 벌레가 채집통에 가득 들어 있었다.
필드의 마수들이 무서워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언제 저렇게 벌레들을 모은 걸까.
어쨌든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이재상의 애처로운 모습에도, 재현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동요할 이유가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문제가 하나도 없는 거잖아?’
이재상에게는 큰 문제일지 모르나, 적어도 재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팀원의 생환율이 조금이라도 올라간다면야, 리더로서 뭐든 해야 하는 입장이니까.
재현은 고민조차 않고 말했다.
“그럼 재상이 형이 야광 덫을 만드는 걸로 하죠. 그다음에 출발하겠습니다.”
재현의 제안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오직 이재상만이, 슬픈 눈으로 품 안의 벌레 통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혀, 형이 미안해 제임스, 카본…….”
“……그새 이름도 붙여 준 거예요?”
서이나가 물었다.
재현은 이재상의 좌절을 무시한 채 작전을 되새길 뿐이었다.
* * *
제임스와 카본의 희생(?) 덕분에 야광 덫 제작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야광 물질을 분비하는 벌레들을 짓이겨 가루로 만든 뒤, 먹지 못하는 질긴 웜 고기 위에 뿌리는 간단한 과정.
덕분에 제작 자체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물론 이재상의 표정은 좋지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그는 재현과 권소율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유약한 성정과 재현에 대한 부채의식. 그리고 권소율에 대한 두려움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덕분이다.
“이 정도면 준비는 충분하겠지?”
김유정의 물음이었다. 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하니까 걱정 마.”
터벅. 터벅.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이들의 발소리.
재현과 동료들은 현재 건물의 비상계단을 오르는 중이었다.
하피의 둥지는 옥상에 있다. 덫을 놓기 위해서는 위층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되기에, 재현과 동료들은 만반의 준비를 한 뒤 상층으로 향하고 있었다.
잠시 걷자, 금세 옥상 문 앞에 도착했다.
그때였다.
“잠깐.”
앞장서던 재현이 손을 들어 일행을 잠시 멈춰 세웠다.
치이익.
그는 인벤토리에서 소취 스프레이를 꺼내 동료의 몸에 뿌렸다.
물론 전투가 끝난 뒤 마수의 사체에 뿌리는 게 가장 좋긴 하지만, 지금처럼 몸에 뿌리는 것도 적게나마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재현은 문을 열기 전,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조심해야 해. 하피는 위험한 적이니까. 식탐이 엄청나게 강하기도 하고. 특히 더 안전을 기하지 않으면 안 돼.”
“……알았어.”
“걱정 마.”
서이나와 김유정이 대답해왔다. 안호연과 이재상도 고개를 끄덕였다.
재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럼.”
철컥!
말과 함께, 문이 열렸다.
이들의 눈에 하피의 둥지와 파괴된 건물의 잔해가 들어온다.
재현이 숨을 죽인 채 이재상에게 넘겨받은 덫을 설치했다. 동료들은 일단 근처 벤치 부근에서 몸을 숨기고 있기로 했다.
덫의 효과가 드러나기까지는 적어도 30분 이상이 소요될 것이다.
이재상은 전투에 큰 재능이 없고, 권소율의 경우는 능력이 있긴 하지만 다른 동료에 비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신입생 사냥 당시에도 그녀는 아직 신입생인 재현에게 패배했었으니까.
약 20분가량이 흐른 뒤.
“생각보다 빠른데.”
재현의 말과 함께, 서서히 내려앉는 무언가가 시선을 점멸한다.
꺄아아아아―!
몸집보다 거대한 날개가 땅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곧이어 드러난 검은 그림자. 하피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내려앉은 녀석은 둥지로 배달된(?) 먹이에 고개를 갸웃하며 당황한 듯했으나, 곧 신경 쓰지 않고 입 한가득 고기를 덥썩 물었다.
그때, 재현이 숨을 죽인 채 동료들에게 시선을 던졌다.
“지금이야.”
“이제야 몸 좀 풀겠네.”
김유정이 손목을 돌리며 말했다. 안호연과 서이나도 약간 들뜬 표정으로 답하며 재현을 지나쳐 앞으로 나섰다.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해 볼 기회니까.”
“……하지만 조심해야 해. 방심해서 좋을 건 없어.”
저마다 한 마디씩 덧붙이는 신입생 세 사람.
참고로, 이재상과 권소율. 재현은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
지금의 전투는 온전히 세 사람이 활약할 수 있는 판.
‘기대해 볼까.’
재현이 웃으며 팔짱을 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은 이번 전투에 끼어들지 않을 생각이었으니까.
오직 동료들만의 힘으로 B급 마수인 하피를 사냥하는 것.
조금 전, 재현은 일행에게 이를 제안했다.
얼마나 동료들이 성장했는지. 이후 혹여나 짐이 되지는 않을지.
그는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