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66
외전 16. 엔딩 – 김유정(3)
“하. 너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냐?”
재현은 동정이라는 단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김유정이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한 채 잘게 떨기 시작했다.
재현이 화난 것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분노가 자신을 향한 적 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재현은 화내고 있다. 자신에게.
문득 의문이 인다.
‘대체 왜?’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을까…….
김유정은 반성하면서도 겁먹은 가젤처럼 다리를 떨며 위를 올려다봤다, 시선을 피했다가 언뜻 마주쳤다가를 반복한다.
재현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조금 긴 정적이 이어졌다.
재현은 하아, 하며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이야기를 꺼냈다.
“미안. 내가 화내면 안 됐는데. 근데 너도 잘못한 거 있는 거 알지?”
“응? 어… 그렇겠지…… 근데 그게 뭔지 몰라서 설명을 해주면 좋겠는데
김유정의 말에 재현이 픽 웃으며 그녀의 머리칼을 마구 형클었다.
애써 빗물로도 젖지 않아 세팅한 그대로였는데, 아쉽게도 재현의 손아귀에는 버티지 못했다.
사자 갈기처럼 형클어진 머리칼에 재현의 미소가 입가에 저도 모르게 번진다.
‘…원가 이상해 전이랑 다른 느낌이야.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김유정은 의문에 고개를 가웃할 수밖에 없었다. 본래라면 진작에 화를 냈어야 하는 상황. 하나 이상하게도 오늘은 화가 나지 않았다.
그저… 재현이 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하는 그런 의문만이 일 뿐이었다.
“확실하게 말할게.”
재현은 흐읍, 하고 숨을 들이켠 뒤 이었다.
“나는 널 동정해서 너랑 만나려고 한 것도 아니고, 단지 같이 지낸 시간이 길어서 그런 선택을 한 것도 아니야. 너 아냐? 나 친구 없이 왕따당할 때. 내 옆에 너 하나밖에 없었던 거.”
초등학교 저학년의 일이었다.
아직 재현이 외모 빨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시절.
어린아이들은 재현이 자신과 섞이지 않자 다들 소곤거렸다.
-재는 왜 맨날 혼자 다니지?
-밥도 혼자 먹더라.
-얼굴이랑 몸에 멍도 엄청 있던데?
-엄마가 그런 애랑 친하게 지내지 말랬는데…….
아무도 재현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이 나이 때의 자아 형성이 가장 중요함에도, 가정 폭력을 당했던 재현은 누구와도 쉽게 섞이지 못했다.
그런 때 다가와 준 것은 오직 한 사람.
김유정뿐이었다.
-어휴. 너 혼자 이렇게 있으니까. 애들이 놀리잖아.
-너도 성격을 보여줘야 애들이 안 건드리지!
-앞으로 나랑 같이 점심 먹어.
매 순간 김유정은 자신을 배려해주었다.
그것이 설령 친구로서 베풀 수 있는 선의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재현은 점차 자신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 마음을 열 수밖에 없었다.
낯 가리는 어두운 소년에서, 조금은 밝아지게 된 계기.
그것은 결국 김유정이라는 아이가 자신에게 준 축복 같은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또한, 다시 그가 회귀 전 어두워졌을 때 역시 마찬가지다.
김유정과 어머니인 이선화를 잃었을 무렵부터이니 그는 망가졌고, 그런 재현에게 그녀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느냐는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너 항상 나 챙겨줬잖아.”
“그건 친구니까, 그랬던 건데…….”
재현이 김유정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다 시작하는 거래. 사람들이.”
그가 피식 웃으며 이었다.
“친구니까 쟁겨주고, 어쩌다 보니 누굴 통해 알게 되어서, 또 학점이라도 채우려고 대학 봉사라도 다니다가…… 그렇게 다 이어지고 사귀는 거라더라. 그 이야기를 듣는데 문득 그 생각이 들더라고.”
그가 김유정의 손을 다시 잡으며 잇는다.
“우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냐?”
“민재현…?”
“나 너 좋아해.”
재현의 급작스러운 직구에 김유정의 동공이 가늘어졌다.
자신이 듣고 있는 이야기가 마치 믿기지 않는다는 뜻한 표정.
하지만 재현은 덤덤히 이을 뿐이었다.
“아 진짜. 김유정. 징그러워서 하기 싫었는데, 차라리 뱉고 나니까 월씬 낫네. 요즘 네 생각밖에 안 났는데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너 모르지? 내가 데이트코스 짜고…… 잘 먹지도 못하는 마라탕 집에서 깨작거리고 했던 게 다 왜인지 정말 모르겠냐?”
“…….”
김유정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조금씩 제 마음의 쳐두었던 근심과 울타리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의 가슴 속 일종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방패이기도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인, 재현이라는 파도가 때로 너무 깊숙이. 발치까지 휩쓸려와 자신을 어지럽히지 않게 쳐 둔 방어막.
바람이 불어도, 수심이 깊어져도 넘치지 않게끔 세워둔 일종의 목책…….
하지만 그것은 순식간에 훅 들어온 재현의 한 마디에 완전히 부서져버렸다.
“…이거 반칙이야.”
김유정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재현을 보았다.
제 손에 느껴지는 온기가, 자신을 향한 재현의 따뜻한 시선이.
‘…정말 다 내 거구나. 그것들이.’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눈물을 홈치는 김유정의 눈앞에 불쑥 다가온 재현이 가볍게 그녀의 턱선을 들어올렸다.
이어진 동작은 매끄러운 입맞춤. 짧지만 그것 이상 사랑의 증명은 필요 없었다. 어버버하는 김유정의 표정도 잠시, 키스가 길어질수록 그녀는 점점 더 몰입했다.
솨아아아.
쏟아지는 빗소리가 이제는 완연히 이들의 사이를 바꿔놓고 있었다.
소꿉친구에서 연인으로.
그것은 이들 사이에서 자칫 돌이킬 수 없는 될 수 있었으나, 두 사람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두 사람에게는 그저 지금 행복한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끝끝내, 재현과 김유정은 서로의 체온을 나누고 입술이 맞닿는 느껴지는 지금의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게 되었고. 마침내는 그게 사랑이란 감정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픽 실감하고 마는 것이다.
“하아…….”
재현은 잠시 입술을 떼어낸 뒤, 김유정에게 시선이 머물러 있다가. 어딘가 약간 다급한 표정이 되었다.
“음… 그러니까…… 좀 쉬었다 갈래? 저쯤에서?”
재현이 가리킨 곳으로 김유정의 시선이 이동했다.
어? 하는 작은 목소리가 잇새로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가리킨 장소가 친구 사이에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
“…….”
숙박 시설.
재현이 가리킨 곳은 인근의 호텔이다.
시설이 좋기로 유명한 곳.
공원과 붙어 있어 사람들이 자주 이용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기도 하다. 재현이 어색한 뜻 목을 다듬으며, 다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 아니, 호텔이 시설이 좋다더라고 되게 평도 좋고… 너 좋아하는 음식도 많다고…….”
“…….”
김유정의 얼굴이 달아오른 채 아무 말이 이어지지 않는다.
재현은 계속해 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 순간, 재현은 비를 피하고자 자신에게 두르고 있던 마력을 거두었다. 졸지에 급작스럽게 온몸이 젖어 세팅한 머리까지 푹 젖어 평소와 달리 유순해진 내린 머리가 된 재현.
멋쩍은 듯 그가 눈치를 살피며 이었다.
“나 지금 홀딱 젖었는데 혹시 쉬고 갈래?”
“……빤히 보이긴.”
“너 내 내린 머리 좋아하잖아.”
재현은 김유정 가까이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했고, 김유정은 하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맞아. 좋아해. 근데 내린 머리만 좋아하는 건 아니다?”
김유정이 먼저 앞서가며 그렇게 말했다. 재현이 그녀의 뒤를 쫓으며 같이 가자고 외쳤으나, 그녀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조금씩 자신의 깊어져 버린 감정을 나누었고.
마침내는 가장 중대한 결정을 내릴 시기에 도달하고 말았다.
꼭 이들이 만난 지 두 달째 되던 날이었다.
* * *
“결혼할까? 우리.”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함께 식사를 하고, 시간을 보내던 와중.
문득 재현이 건네온 말이다.
김유정이 당황한 뜻 눈을 부릅뜨며 재현의 두 눈을 보았다.
아무래도 거짓은 아닌 것 같은데.
대체 왜 갑작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김유정이 걱정하는 뜻한 표정을 짓자, 재현이 조금 진지해진 어투로 말했다.
“오랜 친구 사이에서 연인이 되면, 자짓 헤어지기라도 하면 다시 예전처럼 못 돌아간다더라. 근데 나는 뭐라고 해야 하지…… 되게 당연한 말이지만.”
“말이지만?”
“너랑 멀어지는 건 싫어서. 그러니까…….”
재현이 머뭇거렸으나, 이내 진지해진 어투로 김유정의 어깨를 잡았다.
그는 여느 때보다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진심을 담아 느리게 입을 뗐다.
“이기적일지도 모르는데. 그냥, 딱 한 번만 나 믿어 줄래?”
청혼.
수많은 사람을 웃고, 울게 한 말이었다.
더욱이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온 사람. 이제는 연인이 된 둘에게는 더욱이 꺼내기 어려운 말이었고, 그것은 재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피하지 않았다.
조금 두려울지라도, 자신의 마음과 마주했기 때문에.
그랬기 때문에 그는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와 결혼해 달라고.
죽을 때까지 함께 호흡하며, 같은 시간을 살아가 달라고.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김유정에게도 확실히 달았다. 그녀가 실처럼 뚝 떨어지는 제 눈물을 모른 체하며 떨리는 목소리의 재현을 향해 훅 다가가 볼에 입을 맞췄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응.”
김유정의 즉답. 재현이 놀랐다는 둣 고개를 내려 그녀를
보았다.
하나, 그녀는 짓궂은. 그에 더해 한없이 태연한 표정이다.
마치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는 듯.
김유정이 장난기 어린 얼굴로 이었다.
“나는 화도 좀 나네… 어차피 사귀기로 했으면 우리 사이에 끝까지 가야지. 너 내 성격 알면서.”
재현이 고개를 숙이고 픽 실소를 터뜨렸다.
“……뭐 그건 그러네.”
“그리고 그거 아냐?”
“뭔데.”
그의 물음에 김유정이 씩 웃으며 답한다.
“나 이제 너 누구 못 줄 것 같아.”
“나도 마찬가지거든. 내가 왜 주냐?”
재현과 김유정은 그렇게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또 실없이 웃으며 걷다가. 그런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어쩌면 의미 없는 시간을 함께 보냈다.
음식점을 나오자, 이미 늦은 밤. 걷기에는 그리 좋지 않은 때였지만.
두 사람은 알았다.
이것이 정말 자신들이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던 그 시간이라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 악을 썼으며, 버터낸 끝에 얻어낸 값진 결과라는 것을.
재현은 어느새 자신의 곁에 꼭 붙은 김유정을 보며 웃었다.
이제 정말 이야기의 마지막, 종장에 다다라 자신의 이야기는 끝이 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모든 것의 시작이 있다면, 또 모든 것엔 끝이 있으니까.
시작을 함께한 사람과 나란히 걸을 수 있다는 것.
재현은 오롯이 그 기쁨을 누리며 쥔 김유정의 손에 힘을 더했다. 그런 뒤 가만히 과거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니까, 이 녀석이 죽을 뻔했던 나를 왜 구해줬더라?
……그것도 두 번이나.
재현은 금세 답을 깨달을 수 있었다.
“너 나 좋아한 지 진짜 오래됐구나?”
김유정이 흠짓 놀란 듯 어깨를 잠시 떨다가. 이내 앞서 총총 뛰어갔다. 그녀는 이제는 꽤 어울리는 라인 스커트를 입고 재현을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당연한 거 아니야?”
재현은 그 말에서 어쩐지, 익숙한 향취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당장 달려가 김유정을 끌어안자, 여느 때와 같은 풋풋한.
하지만 과거부터 함께 지내왔던 두 사람의 기나긴 시간이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다투기도 했고, 함께 싸우기도 했다.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지만 이제 그런 것은 어찌 되든 좋았다.
그것이 무엇이든, 함께 지나온 나날들이라면 그냥 다 좋았다.
전부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