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up a black panther and became a duchess RAW novel - chapter 25
“누나…….”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고른 숨소리만이 작게 들려올 뿐이다.
키르젠은 참담한 심정으로 에밀리나를 바라보았다.
굳은 얼굴로 하염없이 그녀를 지켜보았다.
단 5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녀를 눈에 담고 싶었다.
그리고 사과하고 싶었다.
“미안해.”
키르젠이 고개를 떨구며 나직이 뱉었다.
떨리는 손끝은 겨우 팔에 맞닿아 있었다.
안정된 맥박이 안도감을 주었지만 눈물이 차오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키르젠은 애써 감정을 억누르며 다시 한번 내뱉었다.
“미안.”
내가 힘이 부족해서.
나 때문에 이런 일을 겪게 만들어서.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키르젠은 남은 시간 동안 숨죽여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 * *
“끙.”
에밀리나는 안간힘을 쓰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몸이 부서질 것처럼 아파 앓는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어째 이 느낌 너무 익숙한데.’
괜스레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다행히 보이는 건 매우 익숙한 천장이었다.
그리고 왼손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에밀리나는 몸을 일으키며 그 주인을 확인했다.
“아버지?”
“쉿. 지금까지 널 간호하느라 많이 피곤했을 거야. 조금은 쉬게 해 주렴.”
“아, 네 알겠어요.”
케이티의 제지에 에밀리나가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이 조금 몽롱한 게 아무래도 아직 잠에 취해 있는 상태 같았다.
그런 에밀리나를 바라보며 케이티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러나 눈빛엔 걱정이 한가득 깃들어 있었다.
“몸은 좀 어떠니. 사정은 대충 들었다만 아무래도 걱정이 되어서.”
“그냥 그런 거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괜찮은 모양이구나. 그래도 반나절 가까이 정신을 차리지 못했어. 몸이 좀 무거울 거란다.”
“제가 반나절이나 누워 있었다고요?”
“그래.”
“걱정을 끼쳤네요, 죄송해요.”
“안다니 다행이구나. 다음부터는 꼭…… 아니. 아니다. 푹 쉬도록 해.”
케이티가 답지 않게 말끝을 흐리며 대화를 피했다.
에밀리나는 의아함이 들었지만 굳이 말을 붙이진 않았다.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으므로.
그게 자꾸만 신경 쓰여 대화를 이어 가기 어려웠다.
에밀리나는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곰곰이 생각하다 문득 키르의 부재를 깨달았다.
‘미친!’
그리고 자신이 납치당한 사실도.
멍한 정신 때문에 그제야 인지하고 말았다.
‘납치범들은 어떻게 됐지?’
나는 왜 집에 있는 거야?
게다가 키르는 어디에 있으며 케이티는 어째서 저리 침착한 모습인 건지.
수면 아래로 잠긴 기억들이 하나둘 떠오르며 지금의 상황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우선 키르부터 알아보자.’
왜인지 그 아이의 행방을 먼저 알아야 할 거 같은 예감이 들었으므로.
에밀리나는 맥트런을 깨우려는 케이티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어…… 어머니? 키르는 어디 있나요?”
흠칫. 케이티가 시선을 피했다.
그 반응에 에밀리나는 케이티가 무언가 숨기고 있음을 느꼈다.
에밀리나가 시선으로 재촉하자 케이티가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그 아이는 집으로 돌아갔어. 그러니 이제 신경 쓰지 말렴.”
“집이라니요? 키르는 고아라고 했어요. 돌아갈 집이 있을 리가…….”
“그래. 네가 전에 말해 주었잖니. 알고 있단다.”
“그럼 왜……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죠?”
사정을 대충 들었다고 했다. 대체 무슨 사정을 들은 것일까.
어머니는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에밀리나가 불안한 눈으로 케이티를 바라봤다.
사실 그대로 상황을 들었다 한들 설마하니 키르를 내쳤을 리는 없다.
클라인 부부는 그렇게 모진 사람들이 아니므로.
하지만 한편으론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관련된 일에는 극성인 태도를 보이는 부모님이니까.
에밀리나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지자 케이티가 한숨 쉬며 입을 열었다.
“그리 정색할 거 없단다. 그 애의 삼촌이란 자가 찾아왔었어.”
“삼촌이요?”
“그래. 지금까지 돌봐 줘서 고맙다며 인사하고 데리고 갔지.”
“…….”
에밀리나는 말문이 막혔다.
키르한테 삼촌이 있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다면 키르는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것일까?
‘아니. 협박당한 걸지도 몰라.’
안 좋은 일이 있었던 만큼 마음에 걸렸다.
“협박당했을 가능성은요?”
“내가 그런 것도 몰라볼 거 같니? 의심은 그만두렴. 널 찾아 주신 분이야.”
케이티가 피곤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빈민가 아이들이 장난으로 널 가두었다며. 그 말을 듣고 정말 기가 막히더구나. 그 아이도 널 찾으러 갔다가 당한 모양이고.”
아. 일이 그렇게 된 거였나. 에밀리나는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클라인 부부는 자신이 납치당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 침착할 수 없지.
에밀리나는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납치 사건 이후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낼 방법이 없으므로.
그 때문에 삼촌이란 자가 더욱 의심스러웠다.
그때 케이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백했다.
“사실 네게는 비밀로 해 달라 부탁받았단다. 조용히 떠나고 싶다 했어.”
“뭐라고요?”
“오롯이 그 애 결정이야. 누구의 강요도 없었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더구나.”
“정말로, 그렇게 말했단 말이에요?”
“그래. 나도 처음엔 믿지 못해 단둘이 이야기를 나눴거든.”
단둘이. 에밀리나가 허망한 기분으로 단어를 곱씹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키르는 정말 본인이 원해서 떠났단 소리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대체 왜?’
스스로 돌아간 건 그렇다 쳐도 왜 비밀로 해 달라 한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고작 자신이 있을 곳으로 돌아간 것뿐이라면 비밀에 부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케이티가 거짓말할 이유도 없으니 저 말은 진실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고…… 인사도 없이 떠나?’
함께한 시간이 길다고 할 순 없지만 무정하게 떠날 사이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키르는 편지조차 남기지 않고 홀연히 떠나 버렸다.
에밀리나는 그런 키르가 괘씸했다.
뻔히 제가 걱정할 걸 알면서. 미련이라곤 없이 떠나 버린 키르가 야속하기만 했다.
하지만 마냥 원망할 수도 없어 에밀리나가 울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한테 따로 남긴 말은 없었나요?”
나중에 보자든가 놀러 오겠다든가 하는, 다음을 기약하는 말 같은.
그런 말은 없었냐며 에밀리나가 음울히 중얼거렸다.
“아쉽게도. 네게 따로 전해 달라는 말은 없었어.”
케이티가 안쓰러운 얼굴로 에밀리나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았던 키르의 모습을 떠올렸다.
순한 인상을 주었던 어린 소년은 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그러나 케이티가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일은 없었다.
딸이 더는 심란해하지 않았으면 하니까.
그 순간 번뜩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케이티가 손뼉을 치며 입술을 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이런 말을 들었단다. 때가 되면 데리러 오겠다고 말이야.”
“데리러 온다고요……?”
“물론 혼잣말이었지. 내가 좀 귀가 좋잖니?”
“…….”
“그래도 꽤 진지해 보였어. 어쩌면 네게 한 말이 아니었을까?”
케이티가 그렇게 말하며 애써 분위기를 띄웠다.
에밀리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때가 되면 데리러 오겠다니. 무슨 삼류 소설에 나올 법한 대사도 아니고.
이걸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참으로 모호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