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up a black panther and became a duchess RAW novel - chapter 76
정말 그랬다.
사실 에밀리나는 내정 관리를 조금 우습게 보고 있었다.
기껏해야 저택 관리에 그에 드는 비용을 처리하고 사용인의 인사를 결정하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으니까.
물론 그게 다이긴 했다.
그 기준이 너무 모호해서 그렇지.
특히나 금액적인 부분.
록벨은 업무를 인계하면서 제가 합리적이라고 판단된 금액이라면 얼마든지 책정해도 좋다고 하였다.
‘대체 그 합리적인 금액이 얼마인데?’
그게 궁금하여 물어보니 딱히 주인님이 제한을 두지 않았다며 원하는 만큼 쓰라고 말한다.
참으로 무책임한 말이었다.
막말로 자신이 흥청망청 쓰다가 파산하게 된다면 누구를 탓할 것이란 말인가.
‘당연히 날 탓하겠지.’
원망은 덤이겠고.
안 봐도 뻔한 결과였다.
덕분에 에밀리나는 그 기준을 잡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록벨이 기존에 처리하던 대로 예산과 내역을 맞추려고 했는데 또 다른 난관이 생겼다.
공작 부인의 존재로 품위 유지비가 생겼고, 저택을 단장하는 비용, 파티 비용, 사교를 위한 투자 등.
귀족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잡다한 비용들을 책정해야 했다.
‘진짜 귀족들도 피곤하게 산다. 왜 이렇게 쓸데없는 곳에 돈을 써 대는지.’
물론 투자 항목은 제외였다.
‘하기야,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겠네.’
지금까지 무심하게 넘겨서 그렇지, 자신 또한 그런 삶을 어느 정도 누리고 있었다.
어쨌거나 클라인 부부도 귀족이었으니까.
비록 가진 돈은 많이 없었지만, 파티는 물론 사교를 위한 품위 유지에 꽤 신경 쓰는 눈치였다.
다만 그 대상이 주로 자신이었다는 게 문제지.
에밀리나는 절대 원하지 않은 일이었다.
‘에휴, 이미 지나간 일 들춰서 뭐 해.’
어쨌든 에밀리나는 이런 일에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기에 기준을 잡기가 굉장히 애매하였다.
해서 쓰지는 않더라도 참고하고자 선대 공작 부인의 자료를 요청했는데, 돌아온 답변은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
전 주인마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 내정을 돌보기 힘드셨다고.
숙연해진 얼굴로 그리 말하니 에밀리나도 딱히 해 줄 말이 없었다.
그래서 원점으로 돌아가 이것을 어떻게 얼마나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었다.
록벨이 그런 에밀리나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처음은 원래 다 그런 법이지요. 차차 익숙해지실 겁니다.”
“그래요…… 지내다 보면 조금씩 감이 잡히겠죠. 그나저나 제가 부탁드린 일은 어떻게 됐나요?”
“아직 답신이 오지 않는 곳도 있지만, 가장 먼저 응하신 분이 계십니다.”
에밀리나가 대번에 반색했다.
“좋은 소식이로군요. 어떤 분인가요?”
“라젤라 백작 부인입니다. 중립적인 가문에, 올곧은 성품으로 숙녀들의 귀감이 되는 분이죠.”
록벨은 그 이상 말을 붙이진 않았지만 에밀리나는 그가 생각하는 바를 알았다.
굳이 다른 서신을 기다릴 필요 없이 가장 좋은 선택지는 그녀라는 것을.
마침 답신도 왔겠다 록벨은 라젤라 백작 부인을 택해 주길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그가 예절 교사 추천 리스트를 올릴 때 1순위로 지목한 게 라젤라 백작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중립적인 가문’과 ‘아직 자녀가 없다는 것’에 있었다.
애초에 디트리오 공작가에 우호적이거나 중립을 지키는 가문의 부인들이 대다수였지만.
문제는 자녀를 앞세워 혼사를 제안한 곳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거기에 평판과 인품을 고려해 인물을 추리고 나니 조건에 부합하는 가문이 몇 없었고.
또한 라젤라 백작 부인을 제외한 다른 가문의 부인들은 이상적이지 못한 조건에 한 가지씩 발을 걸치고 있으니 후 순위로 미룰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새로운 안주인을 아니꼽게 여겨 불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니 쓸데없는 마찰을 피하고자 위의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과 교류를 맺으려 했다.
해서 록벨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라젤라 백작 부인에게 긍정적인 답신이 왔을 때 안도하면서도 불안을 덜어 낼 수 있었다.
주인마님이 그녀를 택하게 된다면 최소한 부부간의 이간질로 고생할 일은 없을 것이므로.
에밀리나도 그것을 알기에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라젤라 백작 부인이라면 저도 안심하고 만날 수 있겠어요. 답장도 깔끔한 데다 별다른 속셈도 없는 것 같고요. 이렇게 된 거 기다리지 말고 바로 결정하도록 하죠. 이분으로 하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렇담 다른 분들께는 제가 따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틀 정도 시간을 두고 연락하세요. 곧바로 결정됐다고 하면 부인들이 불쾌하게 여길 수 있으니까요.”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이틀 후에 연락하도록 하지요.”
록벨이 흐뭇하게 웃으며 그리 답했다.
그리고 잠시 볼일을 보겠다며 집무실 밖으로 나가는데, 에밀리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책상 위에 놓인 서류로 눈길을 돌렸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예산 분배 업무가 남아 있었다.
에밀리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그것을 집어 들었다.
아무래도 답 없는 서류 작업과의 싸움을 이어 나가야 할 것 같았다.
* * *
에밀리나는 라젤라 백작 부인을 예법 교사로 들이고 난 이후부터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록벨은 백작 부인 외에도 기초학문과 교양을 쌓기 위한 교사 몇을 더 선임해 주었는데, 한 타임씩 교대로 그들에게 가르침을 받게 되느라 하루가 순식간에 증발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케이티에게 배운 기본 가락이 있어 어렵지 않게 수업을 따라간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기본기가 있어 무리 없이 따라간다는 것이지, 각 분야에서 날고 기는 교사들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재롱을 부리는 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배우려는 자세와 근성 있는 모습을 보이니 교사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나 기초학문에 있어선 그들의 놀라움을 자아내었다.
낮은 신분과 소문이 무성할 정도의 가난한 귀족 여성.
당연히 그들은 에밀리나가 배움도 짧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에밀리나는 그 고정 관념을 깨듯 깊은 학문적 소양을 보여 주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듯 의견까지 덧붙이며 교사들의 감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사실 에밀리나의 입장에선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게 기초학문이라고 해 보았자 전생에서 배운 중등 교육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니까.
어쨌든 에밀리나는 그렇게 자수, 춤, 다도, 예법 등을 배우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의도하진 않았지만, 교사들의 칭찬에 사용인들의 존경심도 오르게 되었다.
주인마님의 박학다식한 모습에 공작 부인으로서 믿음이 생겼다나 뭐라나.
마리가 전해 준 말로는 그러했으니 에밀리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사이 마담 에클레와 멀린이 공작저를 한차례 오갔다.
“이렇게 다시 뵙네요. 공작 부인께 인사 올립니다.”
“하하, 이거 좀 민망하네요. 마담 에클레를 여기서 다시 볼 줄이야…….”
“어머, 그런가요? 하지만 저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답니다. 공작님이 워낙 부인께 관심이 많았어야지요.”
“아…… 그런가요?”
에밀리나는 그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키르젠의 관심은 묘하게 가슴이 울렁였으니까.
뭐랄까…… 그동안 외면해 오던 낯선 감정이 고개를 드는 거 같았다.
“그럼요. 남성 고객님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 디자인을 고를 정도로 세심한 분은 몇 없으시거든요.”
“아하, 그렇군요.”
“어쨌든 앞으로 잘 부탁드릴게요. 공작님처럼 손이 큰 고객님은 저도 환영이라서요. 이제부턴 부인의 드레스를 제게 맡겨 주세요.”
마담 에클레는 그렇게 말하며 한껏 상기된 얼굴을 했다.
그녀가 공작저를 방문한 이유는 앞으로 에밀리나가 입을 드레스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마님의 드레스가 몇 벌 되지 않는다며 쌍둥이 하녀들이 한탄 아닌 한탄을 하였고, 에밀리나는 그 한탄에 못 이겨 록벨을 통해 의뢰를 넣은 것이었다.
물론 일반적인 드레스 숍을 생각하고 부탁한 의뢰였다.
그런데 방문한 것이 다름 아닌 마담 에클레이니 에밀리나는 솔직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전담 디자이너처럼 앞으로 모든 드레스를 맡겨 달라고 하는데, 에밀리나는 그녀의 몸값이 떠올라 자연스레 거절을 입에 담으려고 했다.
하지만 로나와 디나가 옆에서 무척 속상한 얼굴로 정말 그러실 거냐며 울상을 하고 있으니 에밀리나는 결국 그녀를 물리지 못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정확히는, 금액적인 부분을 신경 쓰는 에밀리나를 눈치채고 록벨이 걱정하지 말라며 거드는 탓에 한발 물러서게 되었다.
그래서 마담 에클레와 상의 끝에 일단 세 벌만 주문하는 것으로 합의를 본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돌려보냄과 동시에 멀린이 공작가에 방문하였다.
“안녕하세요, 부인. 서신을 받고 이리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이전에 왕실 무도회에 납품한…….”
상황이 달라졌고, 호칭이 바뀌어 사정이 궁금할 법한데도, 멀린은 이런저런 말을 붙이지 않고 곧장 동업자를 대하듯 초콜릿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냈다.
에밀리나로선 무척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는 멀린의 배려이지, 앞으로도 초콜릿 사업을 이어 가려면 약간이나마 제 상황을 전해야 했다.
남작가에 있을 때보다 운신이 자유롭지 않다든가, 신메뉴 개발에 있어 작업이 더딜 수 있는.
그런 여의치 못한 상황적 문제들 말이다.
판매를 위한 적극적인 납품을 도울 수 없으니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계약서를 수정했으면 싶었다.
물론 의가 상하지 않는 선에서 기존 조건을 잘 조율해 보는 방향으로 말이다.
멀린도 이에 대해 생각을 하고 온 모양인지 에밀리나가 말을 꺼냈을 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이 이렇게 되어 정말 미안해요. 저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결혼을 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아닙니다, 부인. 그게 어떻게 부인의 탓이겠어요. 그리고 이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부인이 직접 납품 준비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런 건 직원들에게 맡기면 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