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176)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176화
러시아 원정 (2)
“꺄아악! 살려, 살려주세요!”
어디선가 들려오는 간절한 소리.
“제발! 살려주세요! 으흐흐흑!”
상황이 얼마나 절실한지, 여자가 내는 울음엔 분명한 공포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우선 뛰자!”
봉재영이 냅다 달리기 시작하며 외쳤다.
“뭐 해? 다들 따라와!”
우스스스…….
어둠이 깔린 숲은 여전히 싸늘하고 음산했다.
“예.”
“옙!”
그 뒤를 권소예와 임수진이 뒤따랐고.
스슷! 스스슷!
나와 기소율도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며 자신의 위치를 알려왔으니까.
“흑, 흐흑! 제 소리를 듣고 와주셨군요! 가, 감사합니다!”
어느 커다란 바위 구석에.
러시아 출신으로 보이는 성인 여성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을 닦는 손목은 너무도 가녀렸고.
몸 중간중간엔 자잘한 흉터와 상처로 가득해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봉재영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일행이…… 있었어요. 이곳에 흩뿌려진 이상한 안개를 뚫고 어찌어찌 헤매고 있던 와중에…… 하나둘 동료들이 사라지더니……. 흑흑.”
“그 상처는 다 뭡니까? 누군가가 공격한 겁니까?”
“……예. 이상한 괴물이었는데. 계속 공격하다가 여러분들께서 오는 소리를 듣고 도망쳤나 봐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흑.”
“그렇군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봉재영이 슬쩍 미소를 지었다.
“우선 저는 세계 랭킹 101위의 헌터, 봉재영입니다. 대한민국 출신이죠.”
동시에 그녀를 향해 젠틀하게 손을 내밀었다.
“이곳 던전은 제가 클리어할 예정이니, 이제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그의 말에 잠시 멈칫한 그녀가 이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래, 랭킹 101위요?”
“하하하, 그렇습니다. 어이, 권소예!”
“예?”
“뭐하나, 생존자가 있는데. 빨리 비상식량이랑 어디 두를 담요라도 가져오지 않고. 날이 춥잖냐!”
“…….”
입을 삐쭉인 드루이드 권소예가 손을 들었다.
두드드드!
그러자, 바닥에서 특이 식물 하나가 튀어나오더니.
그 이파리가 그녀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아주 혼자 영웅 나셨지.’
입 모양으로 중얼거린 후, 배낭에 챙겨 온 건빵과 육포 하나를 투욱! 집어 던졌다.
“가, 감사합니다.”
러시아 여성이 꾸벅 인사한 후 그걸 받아들였다.
찌릿!
봉재영은 그 불온한 태도의 권소예를 살짝 흘겨보더니.
러시아 여성 옆에 붙어 하나둘 물어보기 시작했다.
여기엔 어쩌다 들어오게 됐는지.
일행은 어떤 자들이었는지.
이 던전에서 봤던 것들이 무엇인지.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한 던전이란 소리를 들었을 때, 솔직히 욕심이 좀 났던 것 같아요…….”
“저런 저런.”
“이상한 안개가 뒤덮였을 때, 그냥 밀고 나갔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죠. 혹시 모르잖아요. 벼락 맞을 확률로 기연이라도 얻을지…….”
“으음, 그랬군요. 그거야 뭐, 많은 헌터들이 원하는 순간이기도 하죠. 아, 아까 공격한 놈은 어디로 갔다고 했죠?”
“저쪽이에요. 저기 오솔길을 따라 사라졌어요. 랭커시면…… 제 동료들의 억울한 죽음을 되갚아주시겠지요?”
“하하하, 뭐. 그 정도야 어려운 일은 아니죠. 이제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봉재영과 여성이 떠드는 동안.
“동훈 씨.”
내 옆으로 기소율이 다가와 속삭였다.
“예.”
“던전 안에서 저렇게 생존자라고 막 받아줘도 되는 거예요?”
“……흠, 그러게요.”
아무리 나보다 랭킹이 낮다지만, 무려 세계 101위다.
남다른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겠거니 하며, 지켜보는 중이긴 한데.
‘생각보다 별론데?’
누군가는 그게 정의라 말할 수 있겠지만.
난 원래 던전 안에서 누군가를 잘 안 믿는 편이다.
특히 던전 내부에 지적 몬스터가 있는 걸 안 이후로부터는 더더욱.
“이상한 부분이 좀 보이긴 하죠. 이렇게 빡센 던전에 여성 혼자만 살아 있다?”
“느껴지는 기운도 좀 이상해요.”
“그쵸.”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약한 기운만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이질감이 있달까?”
태청심법으로 스캔한 결과.
그녀의 몸속에 기운이 거의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게 더 이상했다.
아예 힘이 없는 여성이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아직 살아 있는 점 하며.
또한, 목소리에는 물기가 가득하지만.
말하는 내용만 뜯어보면, 공포나 절망 등의 감정이 묻어 있지가 않다.
요컨대, 연기 입시반 수준의 톤?
그래.
이런 애매한 순간에는.
투욱!
나는 바닥에 지팡이를 가볍게 찍었다.
“그분을…… 부르시려는 거군요?”
기소율이 아는 체했다.
“예, 뭐든. 확실한 게 좋으니까요.”
[스킬, ‘만술의 가르침’(SS급)을 사용합니다.] [기력 20을 사용합니다.] [‘만술의 달인’이 등장합니다.]“허어.”
주변을 둘러보던 노인이 가볍게 숨을 토해냈다.
“뭐지, 이 공간은?”
“왜, 그러십니까, 어르신?”
“그냥, 내게는 상당히 익숙한 냄새가 나는구나.”
익숙한 냄새?
스슷!
허공으로 솟구친 노인이 천천히 360도 회전하며, 이곳 지형을 파악했다.
“역시, 저 안개로구나. 허어, 어찌 저딴 게 이곳 세상에도 있단 말이냐?”
“도대체 뭔데요?”
내가 궁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런 게 있노라. 과거, 내가 살던 세계에 당휘평이라는 놈이 있었는데. 독고(毒蠱)를 기가 막히게 다루던 놈이었지.”
“독고면…….”
“그래, 독충 같은 것들이지. 네놈의 그 독무(毒霧) 속에도 몇 마리 들어 있지 않더냐?”
“맞죠.”
“그놈이 만든 거랑 비슷해. 저 안개.”
“…….”
“그놈이 만든 독고(毒蠱)가 뿜어내던 방귀가 저 형태였지.”
“방귀요?”
저거.
안개가 아니라.
벌레의 가스였어?
어쨌든 한 가지 사실이 확실해졌다.
지금.
노인을 불러낸 게, 좋은 선택이었다는 거.
“으음.”
내가 미간을 좁히자, 노인이 혀를 찼다.
“저 지독한 것. 사람의 심리를 조작하는 거라 우리 세계에서는 내가 아예 없애버렸는데……. 다시 보니,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로구나.”
“저 여성은 어떻습니까?”
“저 색목(色目) 계집?”
노인이 러시아 여성을 살짝 흘깃했다.
“말해 뭐하느냐. 딱 봐도 음흉한 속을 숨긴 게 느껴지는데.”
역시.
내 감이 틀린 게 아니었다.
“왜요, 왜요?”
기소율이 궁금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녀도 ‘역시’라는 생각을 했는지 침묵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여자.
“성함이 봉재영이라 했나요? 이름이 정말 멋있어요. 근데…… 언제 출발하시나요? 저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요.”
어느덧.
눈물이 사라진 채, 당연하다는 듯 목소리를 내는 사람.
“…….”
스윽!
기소율이 내가 선물해 준 단검을 움켜쥐었다.
“잠시만요.”
내가 속삭였다.
“그냥 내버려 두죠.”
“네?”
기소율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에 맞추어, 단검도 살짝 기울어졌다.
“안 그래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인데, 굳이 지금 쳐봐야 의미 없잖아요.”
“아.”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데려갈지 그냥 두고 보자는 거군요?”
“예. 괜히 섣불리 움직이다 꼬리가 잘릴 수도 있는 거니까요.”
이곳은 넓다.
또한, 던전인데도 저런 자가 있다는 것도 수상하다.
만약, 저 여자가 함정이라면.
나는 오히려 함정에 빠져서, 이 던전의 깊은 곳을 바라보고 싶었다.
“확실히 많이 성장하신 게 느껴지네요.”
기소율이 잡았던 단검에서 손을 떼었다.
“이건. 진짜 실력에 자신 있는 헌터만 쓰는 방법인데.”
“자신감이야 뭐. 예전부터 항상 넘쳤으니까요.”
기소율을 바라보던 내 시선이 다시 봉재영을 향했다.
마침 그가 일어선 채 나를 바라본다.
“어이, 주동훈.”
“예.”
“아무래도 저 오솔길이 수상하다. 여기서 쉬는 것보다, 바로 이동하는 게 나을 것 같으니. 준비해라.”
“음…… 뭐, 그러시지요.”
내가 쿨하게 응했다.
나도 굳이.
적과의 동침을 할 생각은 없거든.
* * *
누군가가 말했다.
던전보다.
몬스터보다 무서운 게 어쩌면 사람일 수도 있다고.
같은 헌터일 수도 있다고.
‘악당.’
세상은 넓고, 사람은 무수하기에.
악당의 존재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착하고 도덕적이길 바라는 게.
확률적으로 더 말이 안 되지 않은가?
“…….”
우리, 정확히는 러시아 여성과 봉재영 파티, 그리고 나와 기소율은 어느 장소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정확히는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봉재영이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우욱.”
권소예가 역겹다는 듯 입을 부여잡았고.
임수진과 기소율도 슬쩍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 크르르륵!
– 그륵, 그르륵!
오솔길을 따라 걷자 나온 곳은 커다란 공터였다.
그 공터에는 수많은 철창이 쌓여있었고, 그 안에 갇혀 있던 건…….
“어, 어떻게?”
권소예가 중얼거렸다.
“어떻게 사람을 이런 식으로 가둬 둘 수가 있는 거죠?”
그랬다.
마치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이라도 한 걸까?
수많은 철장 속 침을 질질 흘리는 존재는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이런, 제기랄.”
노인이 욕을 내뱉었다.
“분명 예전에 봤던 거랑 똑같은 독고의 효과다. 독을 먹여 이성을 잃게 하는 대신, 인간 본연의 힘을 증폭시켜 소진시키는 거지. 저 독고 하나면 삼류 무사도 단박에 일류가 되는 거다. 쯧쯧, 참으로 고약한 술법일진대.”
“…….”
광경은 끔찍했다.
시뻘건 눈의 사람들이 철창을 잡고 아드득, 아드득! 씹고 있었으며.
손톱과 발톱은 이미 다 뭉개진 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눈물샘에 액체가 마르지 않는다.
“…….”
왜일까.
나는 그 순간.
러시아 여성의 눈을 쳐다봤다.
역시나 동요 하나 없는 눈동자.
쿵쿵!
심장이 뛰었다.
피가 끓었다.
“저기요.”
그래서 다가가 물었다.
“예?”
그녀가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과연.
봉재영이 혹할 만한 신비한 외모긴 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전혀 예뻐 보이지 않는다.
왜냐.
미약한 그녀의 기운 속에서.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살기(殺氣)가 느껴지거든.
그래.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을 기회로 보고 있었던 거다.
우리가 이러한 흉측한 광경을 보고, 심적으로 흔들릴 때를 노리는 것.
하지만, 그거야 내가 모를 때의 이야기고.
안 이상 그냥 당해줄 순 없지.
“동료랑 같이 이 던전에 들어오셨다 했죠?”
“아, 예…… 맞아요. 흑. 설마 제 동료들도 저기 저 사람들과 같은 꼴을 당한 걸까요……?”
가증스러운 목소리의 떨림.
내가 씩 웃었다.
“혹시, 그 동료의 이름이 뭘까요?”
“동료 이름이요……? 그건 왜…….”
“왜요. 갑자기 아무거나 떠올리려 하니까, 생각이 잘 안 나나 봐요?”
“예……?”
그녀의 눈썹이 살짝 뒤틀렸다.
또한, 내 물음에 봉재영이 나섰다.
“이봐, 주동훈. 아무래도 심신 미약한 생존자한테 그런 취조식의 말투는…….”
“설마 저 여자를 두고 심신 미약한 생존자라 하는 건가요?”
“엉?”
“흠, 랭커라길래 상황 판단은 좀 할 줄 알았더니만, 안목을 좀 더 키우셔야겠네요.”
나는 판단을 내렸다.
쇠주먹, 봉재영에겐 더는 배울 게 없다.
존경할 여지도 없다.
그런 이에게 억지로 대우해 줄 필요 없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아무에게나 숙이는 것도 내 가치를 떨어뜨리는 법.
“너 지금 뭐라고…….”
멍청한 표정의 봉재영이 말을 걸어왔지만, 가볍게 무시한 나는 다시 러시아 여성을 바라봤다.
“신기하네요. 동료 이름이 뭐냐는 쉬운 질문에 대답조차 못 하는 모습은 둘째 치고. 왜 막강한 실력을 지니고도 가녀린 척 연기하는 건가요?”
“…….”
내 직설적인 물음에 입을 꾹 다물고, 주먹을 쥐는 러시아 여성.
그녀의 낯빛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권소예와 임수진도 설마 하는 표정으로 나와 러시아 여성을 번갈아 바라볼 찰나.
내가 씩 웃었다.
“음, 말로 하는 대화보다 몸으로 하는 대화를 더 선호하시는 편인가?”
화르륵!
이어서 순식간에 팔을 들어 신살(神殺) 창을 든 내가 주저 없이 여성을 향해 내질렀다.
후우웅!
“무, 무슨! 뭐 하는 짓이야!”
봉재영이 놀라며 말리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러시아 여성이 본 모습을 드러낸 상황이었다.
내 창을 슬쩍 피하며, 입꼬리를 기이하게 비트는 그녀.
“키키키키, 어떻게 알았지?”
와우.
웃음 소리가 저게 뭐야?
나는 문득 온몸에 털이 솟는 걸 느꼈다.
알았는데도 소름이 돋을 만큼 기괴한 소리였다.
“안개를 뚫고 올 때부터 비상한 놈인 줄은 알았다만…… 과연 제법이로구나?”
그녀가 본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스슷! 스스슥! 스윽!
공터 사방으로 수많은 인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기세가 상당한 자들.
“후.”
나 역시 짧은 숨을 내뱉었다.
이제야, 좀.
이곳 던전의 실마리가 보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