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65)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65화
마탑 도시 (4)
태양창이 자신의 패배를 시원하게 인정했다.
그 순간.
백무흔에게는 심한 현타가 찾아왔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주군께서 한을 없애주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삶을 찾아주셨다.
정이 고팠던 자신에게, 같은 목표를 지닌 동료들도 생겼다.
‘그런데?’
백무흔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검이 아닌 빗자루를 쥐고 있는 손.
그 모습이 왜 이리 초라해 보이는 걸까?
‘나는 검신(劍神).’
무림에서 검으로 당해낼 자가 없었던, 고금제일인이다.
그런 전설적인 검수가 어려 보이는 애한테 핀잔이나 듣고, 청소나 하고 있었다.
유치한 점수 놀이에 정신이 팔려, [주군]을 위한다는 마음조차 까먹었다.
그깟 막내라 불리는 게 뭐라고.
그게 그렇게 자존심 상할 일인가?
‘꼴이 우스웠군.’
이런 자신의 모습을 검신이라 할 수 없었다.
빗자루를 들고 있으니 빗신.
‘아니, 빙신이지. 한심한 꼴을 보였다.’
이럴 시간에.
자존심 좀 굽히고 검이나 휘두르는 게 나았다.
그의 꿈은 여전히 고금제일인, 그것도 우주 최고의 고금제일인이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
백무흔이 고개를 들어 태양창을 바라봤다.
태양창 역시 묵묵히 백무흔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윽.
백무흔이 빗자루를 아래로 늘어뜨렸다.
투욱.
태양창 역시 마대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두 주군이 청소를 그만두자.
처, 처저저적!
약 20만 스켈레톤들이 각각 청소를 멈추고 정숙을 취했다.
“태양창.”
백무흔이 입을 열었다.
“말해라.”
태양창이 응대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네가 날 싫어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맞나?”
백무흔은 궁금했다.
왜 태양창이 자신을 아니꼽게 바라보는지.
쿨하게 넘어가기엔, 신경 쓰지 않기엔.
앞으로 볼 날이 많았다.
검을 휘두르더라도 태양창과의 갈등을 매듭짓고 가야 한다.
그것이 [주군]을 위한 길.
“…….”
잠깐 멈칫하던 태양창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혹시, 이유를 물을 수 있나?”
“이유라.”
태양창의 눈이 살짝 떨렸다.
싫은 이유?
사실, 딱히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격지심에 가깝지만…….
태양창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 사실을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주군을 모시는 입장에서.
자신보다 더 뛰어난 대체재가 나타났는데, 어찌 싫지 않으랴.
하지만, 그걸 밝히기에는 자신의 옹졸함이 표면에 드러날까 두려웠다.
주군이 알까 두려웠다.
정확히는 백무흔이 싫은 그 이유가 백무흔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 그를 가장 짜증 나게 했다.
“…….”
태양창이 굳은 표정으로 대걸레를 꽉 쥐고 있을 때였다.
“태양창.”
백무흔이 천천히 말했다.
“이 승부는 내가 기권하겠다.”
“……뭐?”
태양창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자기?”
“솔직히 무력으로 하면, 너는 나한테 안 된다. 이는 나도 알고, 너도 알고. 지나가는 똥개도 알겠지.”
“…….”
너무 맞는 말이라.
자존심 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네가 선배는 맞는 것 같다. 무력이 아닌 다른 부분에서 네게 배울 게 있다는 걸 느꼈다.”
“…….”
“나는 눈앞에 승부에만 집착하느라,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잊고 있었어.”
“본질?”
“주군을 위하는 것.”
백무흔의 답에 태양창이 의외라는 듯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지금 자신들이 이러고 있는 것이 과연 주군을 위하는 길인가?
백무흔이 계속 말을 이었다.
“네 말대로 각성이 늦었으면 막내라 불릴 수도 있는 거지. 그런 호칭 따위가 크게 중요한 게 아니잖나?”
맞지.
자존심.
그게 밥 먹여 주는 건 아니니까.
더군다나 다 같이 주군을 모시는 처지인데.
누가 위고 아래인지가 무엇이 중요하랴.
“그러하니, 미안했다. 태양창. 막내로 부르고 싶으면, 언제든 막내라 불러라. 나도 선배라 부르도록 하지.”
“……킁.”
백무흔이 먼저 사과하고 나서자, 눈을 좁힌 태양창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감정은.
또 그의 삶 속에서 처음 느껴본다.
자신보다 강한 자가, 먼저 사과를 하다니.
‘이게 아닌데.’
솔직히, 막내라 부르기도 애매했다.
그냥.
자격지심에 자극했던 게,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그도 굳이 검신을 막내라 부르고 싶진 않았다.
태양창이 어색하게 서 있을 찰나였다.
우우웅!
빛무리가 생기더니, 허공에 포탈이 열렸다.
짝짝짝짝!
동시에 손뼉을 치며, 등장하는 붉은 머리 소녀.
엘로이즈 아린.
“그럼 승자가 정해진 건가요? 어떻게 할까요. 점수로는 백무흔 씨가 이겼는데, 그 전에 백무흔 씨가 기권 의사를 표시했네요?”
“……그게.”
눈썹을 찡그린 태양창이 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이내.
“제기랄.”
욕설을 내뱉었다.
“그래, 나도 솔직히 말하지.”
펄럭!
태양창의 검은 날개가 천천히 활개했다.
“맞다. 난 네가 싫었다. 백무흔.”
“그래.”
백무흔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건 너 때문이 아니다.”
“…….”
“나 자신 때문이었다.”
태양창이 활개한 날개를 천천히 접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너는 강하지. 나보다 우수하며 능력 있다. 그 덕에 앞으로도 주군께 큰 도움이 될 테고. 나는 그걸 인정하는 게 힘들었다. 맞아. 단지 그 이유로 네가 싫었던 거다.”
“…….”
백무흔이 태양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자신에게 감정이 있었던 게.
본인이 너무 강해서라고?
“음. 그거야 뭐.”
백무흔이 슬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살면서 너무 많이 느껴보고 받아봤던 시선이자 대우였다.
자신과 검을 섞은 자들은 다 저런 눈빛을 했었으니까.
부러움, 질투, 경악.
등등.
덕분에 별 감흥이 없었다.
또.
이럴 때 주로 사용하던 말이 있지.
“네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군.”
“아니다. 그렇게 말할 필요 없다. 내 잘못이 확실하니까. 막내는 무슨. 다 같은 주군의 수하끼리. 더 강해지기 위해 먼저 손을 뻗어도 모자랄 판에 말이야…….”
둘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남자들이란 그런 것일까?
처음엔 죽도록 싸우다가도, 누가 손 하나 내미니 또 갈등이란 게, 눈 녹듯 녹는다.
바라만 봐도 죽도록 짜증 났던 것이, 이제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 모습을.
아린이 웃으며 바라봤다.
“히힛, 이거 트랩을 설치한 보람이 있는데요?”
“트랩…….”
백무흔의 동공이 살짝 커지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나.
천장에 설치된 말도 안 되는 마법 트랩.
그게 저 앙큼한 꼬맹이 짓이었군.
하지만.
그 덕에 깨달음을 얻었다.
“괜찮다. 막내라 불러라.”
“막내는 무슨. 그냥 백무흔이라 부르겠다. 너도 그냥 태양창이라 불러라.”
“……태양창?”
“그래, 원래 하던 대로. 백무흔.”
모든 감정을 털어낸 태양창이 씩 웃었다.
“이런 걸 보통 친우라 부른다지?”
“……친우.”
“주군은 서로의 무력을 떠나,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는 자들을 친우라 부른다고 하더군.”
광전사가 그렇고.
김진아가 그렇고.
플로아가 그렇다.
벗.
가깝고 정이 두터운 사이를 뜻하는 말.
“……친우라. 참 어색한 단어로군. 그래도 되겠나?”
백무흔이 어색하게 중얼거렸다.
한평생 검을 휘두르느라 친구 하나 없었던 그.
“……안 될 것 없지 않나? 어차피 앞으로 좋든 싫든 계속 마주해야 할 사이인데 말이야.”
태양창이 마주 받았다.
그 역시, 반인반수로 살며.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었던 사막 제국의 황제였다.
그가 먼저 조심스레 손을 내밀었다.
백무흔이 그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사내와 사내의 악수.
‘……후.’
아린이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둘을 바라봤다.
솔직히 살짝 오글거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철천지원수라도 되듯 노려보며 전류를 튀길 땐 언제고.
이렇게 쉽게 화해하다니.
이런 게 남자들인가?
‘좀 아쉽긴 한데.’
고급 인력들을 이렇게 보내야 한다는 게 좀 안타까웠지만.
그래도 결과가 좋으니, 다행이었다.
“아린, 고맙다. 네 덕분에 상황이 잘 해결되었어.”
스윽!
백무흔이 빗자루 대신 검을 들었다.
후웅!
태양창 역시 마대를 대신 파괴룡의 창을 꺼내 들었다.
아린이 빙긋 웃었다.
“백무흔 씨.“
그녀가 백무흔을 응시했다.
”잘못을 인정하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용기가 쉽게 나오는 게 아니어요. 당신이 이 갈등을 마무리 지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잘했어요.”
웃으며 그의 용기를 칭찬했다.
다음은.
“태양창 씨도 잘했어요.”
아린이 태양창을 응시했다.
“때로는 진실된 마음을 표출하는 것이, 그 존재를 더욱 품격있어 보이게 하죠. 당신의 인정으로 인해, 진정한 친구를 얻었으니……. 오히려 잘된 것 아니겠어요? 내기를 포기하고 트랩을 해결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고요.”
“……아직 이 세상에 배울 게 많다는 걸 느꼈다.”
“다 그런 거죠. 뭐.”
아린이 싱긋 웃었다.
두 수하의 갈등.
그것은 이렇게 간단한 해프닝으로 끝이 났다.
* * *
마탑 도시.
허공 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탑과 그에 맞추어 지어진 조화로운 건물들을 바라보며.
“끌끌끌.”
만술 노인이 혀를 차며 웃고 있었다.
“수하들끼리의 갈등이라니. 참, 이제는 저것들을 망자라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하고, 느끼고, 판단할 수 있으면……. 그게 생자 아니겠어요?”
옆에서 내가 응답했다.
사실, 우리는.
이전부터 저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탑 내부까지 들여다본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 모르겠는가.
도시에서 저렇게 살벌하게 청소해 대는데.
어떻게 된 건지, 아린에게 물었고.
그녀가 마법으로 그 경과나 상황들을 다 보고했으니,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안다고 보면 되겠다.
그런데도 내버려 뒀던 것은.
‘존중하니까.’
나는 수하들의 감정을 존중한다.
또한 그들이 죽은 자가 아닌 살아 있는 자로서, 제2의 삶을 살길 진심으로 원한다.
원래 삶이란 게 그렇다.
복잡한 수수께끼처럼 얽혀 있다.
갈등도 있고, 싸움도 있고, 화해도 있고.
나중에 또 다른 갈등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다.
그러한 반복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거지.
주인이란 이유로.
저들의 삶을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억압하려 들면, 그건 저들에게도 의미 없는 삶이지 않을까?
‘이게 내 방식이야.’
내버려 두고 지켜보는 것.
수하들이 만들어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바라보면서.
그들이 자기 방식으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래서.”
노인이 날 바라봤다.
“바로 가려는 게냐?”
“네.”
내가 명패 모양의 매개체를 꺼내 들었다.
마지막 매개체, ‘성좌의 길’(SSS급).
“델라일라, 그 여자애는 안 만나 보려고?”
“시간이 없어요. 그것보다 이게 먼저예요.”
무려 마지막 시련이다.
얼마나 힘들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일인데.
권선지의 종말 예고까지는 3개월 정도뿐이 남지 않았다.
델라일라가 진짜 급했으면, 무릉도원에 남아 있어야 했다.
아니면, 적어도 김진아에게 말했어야 했다.
그녀는 현재로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니까.
‘일단.’
우우웅!
기운을 불어넣자, 명패에서 신묘한 빛이 흘러나왔다.
‘이거부터 질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