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391)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392화
고행 (2)
“와.”
“와아아…….”
새하얀 홀.
델라일라와 심사위원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홀 위를 가득 채우던 홀로그램은 거의 다 사라진 지 오래였고.
가장 커다란 화면 두 개만 남아 있었다.
배지민.
그리고 쉿 이터.
“둘 다 제법이잖아요?”
“잘하면 얘네들도 4단계 맛보겠는데?”
그들은 현재 테마3를 진행하는 중.
테마3는 회피의 장이다.
[게임이 시작되면 각종 ‘물체’가 쏘아집니다.] [쏘아지는 ‘물체’에 몸이 닿는 순간, 해당 인원은 탈락합니다.] [전원이 탈락하면 해당 게임은 종료. 점수에 따라 팀 기여도가 산정됩니다.] [기여도에 따라 보상을 획득합니다.]1단계는 간단하다.
느린 속도로 ‘구체’가 날아오고, 그걸 집중해서 피하기만 하면 끝.
24시간이 지나면 2단계로 넘어간다.
2단계는 그 ‘구체’가 ‘화살’로 바뀐다.
1단계에 비해서는 확실히 잔인해지는 거다.
그리고 3단계.
2단계에 더해서, 바닥이 바둑판 모양으로 금이 간 후, 기형적으로 움직이는 단계다.
어떤 바닥은 360도 회전하고.
또 어떤 바닥은 위아래로 요동치고.
보통은 여기서 다 탈락한다.
4단계 이상 넘어간 팀?
시련 역사상 두 팀뿐이었다.
광전사, 장대웅이 소속했던 ‘크레이지’ 팀.
그리고 주동훈이 소속했던 ‘드래곤 슬레이어’ 팀.
“변승태는 좀 힘들어 보이지만, 배지민은 무난히 넘어설 것 같습니다.”
“보법을 밟는 게 예술이에요. 얜……. 언제 저런 기술을 배운 거지? 랭커인 저보다도 잘 움직이는 것 같은데요? 역시 허투루 용을 잡은 게 아닌가 봅니다!”
입을 꾹 다문 채.
결연한 표정으로 뛰어다니며 화살을 피해내는 배지민.
“…….”
델라일라는 눈에 힘주어 그녀를 바라봤다.
3일이라는 시간 동안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그녀를, 델라일라 또한 쉬지 않고 감시하고 있었다.
‘그래, 결국.’
초창기 시련을 짰을 때 의도하던 대로 흘러갔다.
테마2까지는 선별의 장이고.
테마3부터가 단련의 장.
‘그리고.’
이번 시련도.
결국은 소수만 단련의 장으로 넘어왔다.
그 결과.
‘성공이나 다름없지.’
배지민 같은 자를 발굴해서 키울 수 있다는 것.
그녀 하나의 가치가 평범한 다른 참가자 수십만보다 훨씬 가치 있다.
주동훈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잘 키워놓은 인재 하나가 추후 인류를 구할 수 있다.
‘힘내세요.’
배지민 씨.
그저 힘만 내어주시면, 제 능력이 닿는 한 빡센 시련을 가져다 부어줄 테니까요.
* * *
“…….”
나는 내가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자의로 차단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이 가지는 오감(五感).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그 모든 것을 포기한 무(無)의 상태로 들어섰다.
시커먼 우주에 홀로 남겨져 빛조차 공급받지 못하는 상태.
그걸 내 의지로 만들어낸 것이다.
정확한 기한을 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심득(心得)할 때까지 자체 봉인한 셈이다.
‘그래도.’
예전보다 두렵진 않았다.
랭커가 되고, 많은 경험을 하면서 그때보다 훨씬 성장했다는 의미겠지.
‘버텨보자.’
나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평온하게.
공포라는 감정을 배제한 채, 머릿속의 모든 것을 깨끗이 비우기 시작했다.
오감만 배제하면 안 된다.
사고 역시 정지시켜야 했다.
망상이 킬링 타임이라고들 하지만, 그만큼 시간을 느리게 흐르도록 한다.
‘내가 필요한 것은 세월.’
비유하자면 영혼의 숙성이었다.
가자.
해보자.
은하가 내쉬는 숨결 한 번에 수천만 년이 흐르는 것처럼.
나 역시 커다란 존재가 되면 그만큼의 세월을 가져올 수 있다.
동화하자.
내가 거대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이 거대한 힘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인간의 육체를 탈피해야 한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한계가 있다.
인간이었을 때의 나를 잊자.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
후우웅!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곳에서, 나는 팔을 뻗는 그림을 그려냈다.
‘그저 휘두른다.’
어려울 것 없는 일이었다.
지금껏 해왔던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그저 몸이 가는 대로.’
화르륵!
신살(神殺) 창을 휘둘렀다.
검을 올려 치고, 활을 쏘았다.
당연히 느껴지진 않았다.
하나, 확실한 건 그 과정 속에서 만술(萬術)의 숙련은 계속해서 쌓이고 있었다.
‘아아.’
어르신이 그랬을까?
유령일 당시.
이런 과정을 겪어온 것일까?
아니.
어르신 생각하지 말자.
무상. 무상. 무상…….
* * *
우주 어딘가.
흰 구름으로 뒤덮인 도시에 부드럽게 밝은 햇살이 스며들어 온다.
누가 장식한 것인지.
건물 하나하나가 천상의 보석처럼 성스럽고 아름다운 도시.
아마 세상 그 어떤 존재에게 보여줘도, 이 도시를 보면 경이로운 눈빛을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왜냐.
이곳이 바로 진정한 신(神).
장성급 존재들이 우주에서 가장 능력 있는 기술자들을 불러 형체화시켜 놓은 도시이니까.
이 도시는 양면성이 있다.
지금 보이는 밝은 도시는 빛(Light)이 통치한다.
허공에 둥 떠 있는 도시 가운데 솟아 있는 하얀 거탑이 바로 빛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반면에.
도시 자체를 거꾸로 뒤집으면, 시커먼 도시가 나온다.
마치 깊은 어둠의 구덩이가 끝없이 펼쳐진 듯한 느낌을 주는 곳.
그곳은 언제나 새까만 밤이고, 허공에 별 한 점 보이지 않는다.
어둠(Dark)이 통치하는 곳.
일곱 신 중 빛과 어둠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조차 그곳을 꺼린다.
때문에 다른 오신의 건물은 빛이 통치하는 곳에 위치한다.
물론.
이곳에도 거주민이 있다.
최소 성좌급 존재부터, 초단급 존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곳.
그 중.
성좌급 존재들이 하는 일은 대다수가 「시스템」 관리다.
그에 대한 설명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하여튼.
구석진 건물에 쭉 나열된 성좌 중 하나가.
“……동훈아, 우리 주동훈.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구나.”
아련한 눈빛으로 구슬을 바라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는 떠올렸다.
과거, 지옥처럼 변한 한 지하철의 입구에서 어린아이를 향해 꼭 돌아오겠다 약속했던 것을.
그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꼭.”
힘이 들어가 있는 목소리.
“살아남거라.”
살아남아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알겠지?
“…….”
아련했던 눈이 다시 사무적인 눈으로 돌아왔다.
무언가에 들키면 안 된다는 듯, 감정 없는 얼굴로 돌아서는 검은 머리의 성좌.
그러고는 이것저것 넘기며, 다시 일을 시작했다.
빠르고 철저하게 손을 움직였다.
그런 그의 왼쪽 가슴에는 영혼에 새긴 듯한 자국이 형상으로 남아 있었다.
[지구, 주광철]* * *
끊임없이 반복되던 휘두름.
그 훈련이 어느덧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후웅!
휘두름을 멈춘 게 아니다.
‘다만.’
느껴졌다.
이 시간을 버티면 버틸수록, 기운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솔직히 지금까지는 즐거웠다.
하루가 다르게 강해져 간다는 것은, 내가 선택한 이 방식이 맞다는 방증이기도 하니까.
또한.
반복적인 휘두름 속에서도.
지금껏 보고 배우고 느껴왔던 각종 술(術)의 묘리들이 녹아들어 가기 시작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닌, 몸으로 이해하는 것.
체득(體得).
이 훈련방식이 좋은 점은 한둘이 아니었다.
우선 정신을 길게 쪼갠다.
몰입과 집중을 통해 주변 시간을 느리게 가게끔 하는 것.
그로 인해 1년 이상을 생각해도 밖에서는 1시간밖에 흐르지 않게끔 하는 것.
1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세월을 경험하기 위해서 가장 적합한 방법이었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지금이야 편하고 재밌다.
강해지는 걸 몸소 느끼니, 행복감까지 올라온다.
하지만?
‘갈 길이 구만리라는 거지.’
우리는 세월을 견디지 못하기에 인간이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100년도 버티지 못하고 지쳐 버리겠지.
그 시간 동안 희로애락 없이 부동의 자세로 휘두름만 반복하라고?
아마 대다수가 정신적으로 미치거나, 자살을 꿈꿀 거다.
하지만.
그걸 견뎌내야 인간을 초월할 수 있는 것도 맞다.
우주의 시간은 인간의 생(生)을 하루살이 취급할 정도로 길고 넓으니.
‘아니지.’
하루살이라니?
솔직히 그런 표현은 하루살이한테 미안할 정도다.
하루는 개뿔.
아마 우주의 입장에서 지구의 탄생과 죽음도 찰나의 순간에 불과할 터이니.
‘그래도.’
가자.
나아가자.
우주고 신이고 나발이고.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도 그 빌어먹을 성좌 좀 되어보자!
하세라도 하고 수하들도 하는 걸, 나만 못할 순 없잖아?
후웅!
내가 다시 무기를 휘둘렀다.
* * *
그 시각.
북한산 위로 펼쳐진 청명한 하늘.
그 아래 기괴암석 사이로 소복이 쌓인 눈 위에서.
“하아앗!”
“타앗!”
수많은 헌터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천마신교 사장로(四長老) 중 하나인 검마(劍魔) 이학승이었다.
“허허허.”
원래도 검마였던 그는 옛 하세라의 무술, 파천아수라를 익히고 한층 더 강해진 상태였다.
“뭘 그리 실실 웃느냐, 검마야.”
그리고 그의 옆에는 도마(刀魔) 윤홍이 있었다.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으냐. 교도들이 이렇게 성장했는데.”
이학승이 고고하게 뒷짐을 지었다.
“후후, 아마 오늘이 마교 역사상 최강의 전성기일 게야.”
“역사? 누가 보면 우리 단체가 유구한 세월이라도 겪어온 줄 알겠네.”
윤홍이 픽 웃었다.
“한데. 네 말이 맞지.”
이학승과 윤홍뿐만이 아니다.
사장로를 포함한 교도 전체가 가슴에 하나의 큰 자부심을 품고 있었다.
우선.
단체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천마가 성좌다.
세계 랭킹 2위이자, 알려진 자 중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한 랭커.
게다가.
권선지의 예언 이후, 수많은 랭커들이 천마신교의 문을 두들겼다.
자신이 해오던 훈련법들을 버리고, 신교의 무학을 익히길 원했다.
그 결과.
불과 1년 만에 기존 전력에 세 배 이상 상승한 것이다.
“이 정도면 세계 최강 집단이나 다름없지.”
별천지는 인원이 적으니 논외로 하고.
마왕군?
이번에 나름 증원했다지만, 거기도 상당히 폐쇄적인 곳이라 수혜란 수혜는 천마신교가 다 받은 셈이다.
“이번 세계 랭킹 발표식이 한 달 정도밖에 안 남았지?”
윤홍이 자신의 애도(愛刀)를 어깨 위에 올렸다.
이학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25일쯤 남았으니. 그렇지.”
“기대되는구나, 그때가.”
아마 세상이 놀랄 거다.
아수라파천을 받아들인 사장로들과.
구(舊) 사장로의 무술을 받아들인 교도들의 랭킹이 얼마나 올라설 것인가.
“자자!”
윤홍이 훈련하는 교도들을 향해 일갈했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 뻗어라! 죽을힘을 다해 내질러라! 몸이 안 움직이는 자가 있으면 손을 들어라! 어떻게든 움직이게 만들어줄 테니!”
본래 항시 조용하던 북한산이 기합과 비명으로 가득 찼다.
* * *
“…….”
그리고.
그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는 하세라.
우우웅!
가부좌를 튼 채, 명상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백무흔.’
주동훈과 합동 훈련을 한 이후, 그녀는 또 다른 세계를 맛보았다.
‘그리고 주동훈의 스승이란 자.’
하늘 위의 하늘이라 할 수 있는 자들.
천외천(天外天).
실력만큼은 하늘 같던 자신의 스승, 강소소도 그들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런 세상인데, 천마신교의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저기 사장로는 그 사실을 모른다.
천마신교가 최강인 줄 알며, 자신이 하늘인 줄 안다.
자신이 굳이 얘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려줘 봐야 모를뿐더러, 의욕만 사라질 뿐이지…….’
열심히 훈련하는 자들에게 가서, 우리보다 별천지가 세! 난 사실 약해! 이렇게 말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저들도 알게 된다.
충격이야 받겠지만,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
또 받아들이겠지.
‘그리고.’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더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자신처럼.
쿠구구구……!
하세라가 기운을 끌어올려,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제 성좌라는 경지에 올라선 그녀였지만, 거기서 만족할 생각은 없다.
자신보다 강한 주동훈은 지금도 폐관에 들어서 있다지?
‘경쟁하자는 건 아냐.’
주동훈과 자신은 적이 아니다.
오히려 이번 매개체 던전으로 인해, 나름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러하니.’
그저 좋은 자극 요소였다.
가끔 나약해지는 마음을 일깨우는.
“움직여! 더 빨리 움직여!”
“발표식 날 높은 랭크에 떠 있을 네 이명을 생각하란 말이야! 너희의 움직임에 천마신교의 명예가 걸려 있다!”
“옙, 장로님!”
“흐아아아아아압!”
“아자자자자자자!”
저 멀리.
아직도 의욕을 불태우는 사장로를.
하세라가 씁쓸하게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