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aise a Skeleton RAW novel - Chapter (504)
나는 스켈레톤을 키운다 504화
천신의 날개(3)
한 번 정한 대상을 바꿀 수 없다면 얘기가 또 달라진다.
선정할 때, 더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말이다.
“……왜요?”
김진아가 주동훈의 등에 매미처럼 매달린 채 고개를 갸웃했다.
“왜 설정 안 해요?”
“설정하기 전에 실험해 볼 게 있어요. 일단, 잠시 좀 내려와 주시면 안 됩니까?”
“칫.”
김진아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내려왔다.
사실, 그녀에게도 상태창이 떴다.
[주의하세요.] [한 번 설정하면 대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대상을 바꿀 수 없다는 말.
다른 말로 하면, 저 날개를 완전히 독점할 수 있다는 말도 된다.
‘그냥 좀 하게 해주지.’
김진아가 꿍시렁거리자, 주동훈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바로 해주고 싶긴 한데, 이게 전부다 부길마를 위한 거예요. 괜히 했다가 바로 후회하면 어쩌시려고 그래요?“
물론 김진아 성격상, 후회해도 꾹 참고 꿋꿋하게 할 거다.
때문에 확실하게 확인하고 넘어가고 싶은 거다.
“그래서 무슨 실험을 할 건데요?”
“일종의 담력 테스트예요.”
“담력?”
“원래는 날개에 넣은 다음에 실험해 보려 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별수 없죠.”
후.
짧게 한숨을 내쉰 주동훈이 가파른 부위로 이동해 그곳을 가리켰다.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절벽이었다.
”……설마.“
김진아가 불안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주동훈이 씩 웃었다.
“예, 맞아요. 저기로 뛰어내려 보세요.”
“억……. 진짜요?”
김진아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줄도 없이요?”
그녀는 고소공포증이 없다.
예전에는 간혹가다 번지 점프를 즐겼을 정도로 스릴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줄 없이 자연 절벽으로 뛰어내리라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앞으로 부길마가 날개 컨트롤을 해야 할 텐데, 전투 중에는 정신 차리려면 이 정도 담력은 있어야지요.”
주동훈이 단호하게 말했다.
“참고로 여기서 떨어지는 것 정도는 제 전투에 있어서 약과입니다.”
“……길마님이야 당연히 그러시겠죠.”
그때 영상으로도 보지 않았던가.
아가레스의 철퇴에 맞고 저 멀리 날아가는 길마의 모습을.
그것에 비하면, 여기서 낙하하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닐 거다.
“후.”
김진아가 토 달지 않고 묵묵히 절벽 위에 섰다.
“여기서 뛰어내리기만 하면 된다는 거죠?”
“예, 그 정도 담력이면 믿어볼 만할 것 같네요.”
“……당연히 잡아주시는 거고요?”
랭커들과 달리 그녀는 거의 일반인 수준이다.
이런 데서 떨어지면, 그대로 즉사다.
“뭐, 그런 당연한 말을…….”
“혹시나 해서요.”
김진아가 이를 악물었다.
그래.
랭커들은 이런 것보다 훨씬 고강도의 훈련을 날마다 받는데, 자신 또한 주동훈에게 전투적인 도움이 되려면 이 정도 시련은 겪어내야 한다.
두려움을 떨쳐 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신뢰.
길마가 김진아를 믿고 자신의 등을 맡기기로 한 만큼.
그녀 역시 길마에 대한 충분한 신뢰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이 정도도 믿지 못하는데, 어찌 그의 뒤를 지킬까.
“……가, 갑니다?”
그녀가 물었고.
끄덕.
주동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씨, 몰라!”
입술을 깨문 김진아가 그대로 절벽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끄아앗……!’
공포가 극에 달하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쐐애애액!
떨어지는 그녀의 몸에 가속도가 붙었다.
볼때기가 푸들푸들하는데도, 주변을 휙휙 돌아본다.
‘……길마님이 굳이 이걸 시키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떨어지는 속도가 엄청나, 주변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곳곳에 튀어나온 바위에 맞기라도 하면?
그대로 머리가 터져 나가겠지.
‘으아아…….’
하지만, 정신 차려야 했다.
길마님이 평소 이 정도 속도로 움직일 거기 때문.
‘근데.’
빠르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떨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바닥이 엄청난 속도로 그녀에게 쇄도한다.
아마 10초 정도면 그대로 부딪힐 터.
김진아가 본능적으로 몸을 뒤집어, 저 절벽 위를 봤다.
‘어……?’
길마님이 아직도 저기 계셨다.
저 위에서 떨어지는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고 계셨다.
참으로도 세상 고고하게.
엥?
자, 잠깐만.
그럼 난 어떻게 되는 거지?
이대로 떨어져 죽는 건가?
김진아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꺄아아아악!”
미친 듯 비명을 내질렀다.
그 순간.
휘이잉!
저 아래에서 바람이 불어 올랐다.
밑에서부터 솟구치는 엄청난 풍압에 떨어지는 속도가 점차 줄어들더니, 이내 무중력 상태로 돌입한다.
“아아…….”
김진아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게 정령인가?”
후우우웅!
바람의 최상급 정령 실레스틴.
거친 풍압에 언뜻 보이는 존재에 김진아가 감탄했다.
영상을 통해 싸우는 모습은 봤었는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휘이잉!
몸이 점점 떠오르더니, 다시 산꼭대기 쪽으로 날아올랐다.
김진아는 멍하니 그것을 느끼다가 이내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타악!
다시 발에 땅에 닿자마자.
“흐아아…….”
그대로 풀썩 주저앉았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그렇게 쉽게 뛰어내릴 줄은 몰랐는데요? 인정. 조금은 머뭇거릴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직접 잡아주는 거 아니었어요? 난 또 같이 뛰어내려서 잡아주는 줄.”
“…….”
김진아의 칭얼거림을 무시한 주동훈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이 정도면 합격입니다. 제법이었어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도전.
거기에 떨어지는 와중에 눈을 감지도 않았고.
자신의 상태까지 확인하는 여유를 보였다.
비랭커 치고는 확실히 재능이 있는 편.
‘원래는 던전도 한번 데려가야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어 보였다.
일단 비행에 거부감이 없는 것만으로도 만족이었다.
* * *
한차례 심호흡을 한 김진아가 다시 주동훈의 등에 매달렸다.
[‘김진아’를 믿을 만한 존재로 설정하시겠습니까?] [주의하세요.] [한 번 설정하면 대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설정한다.”
주동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진아’가 믿을 만한 존재로 설정되었습니다.]스르륵!
김진아가 그대로 날개 뒤로 흡수되었다.
– 뭐, 뭐야!
그녀가 까무러치게 놀랐다.
자신의 육체가 사라지고, 영적 존재처럼 시야만 존재한다.
주변을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자신의 몸이 보이지 않는다.
길마님의 뒤통수와 그 주변만 보일 뿐.
– 와, 이거 되게 신기한 기분인데요?
“들어왔어요?”
– 예.
김진아의 목소리가 주동훈의 머릿속을 울렸다.
이런 식인 건가?
옛날 만화에 사람끼리 합체해서 싸우고 하는 내용이 있었다는 걸 들어 아는데…….
‘쩝.’
그걸 내가 하고 있을 줄이야.
“뭐 별다른 거 없어요?”
– 별다른 게 너무 많아서 문제인데요?
김진아가 눈을 반짝였다.
그녀 시야에 보이는 광경은 마치 전투기 조종석을 연상케 했다.
각종 알 수 없는 문양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고, 표적 설정부터 에너지 빔의 양까지 알 수 있는 칸이 있었다.
– 정말 길마님 말대로 적응하려면 시간 꽤나 걸리겠어요. 우선……. 표적 설정이 있는데……. 어, 잠시만요. 이걸 어떻게 움직이지?
김진아가 시선을 돌렸다.
정 가운데에 있는 조준점이 그녀의 시야를 따라 움직였다.
– 아, 됐다!
이제.
표적에 딱 맞춰서 쏘면 될 것 같은데…….
– 쏴봐도 돼요?
“어디에요?”
– 저기, 바위에…….
절벽 건너편, 으리으리하게 솟구친 돌산이 보였다.
웬만큼 강한 공격으로는 꿈쩍도 안 할 만큼 큼지막한 산이었다.
무릉도원 내부 자연이라 살짝 아깝긴 한데……. 어차피 개척해야 할 곳이기도 하고.
그 위력도 궁금한 주동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쏴보세요. 한번.”
– 네!
김진아가 눈을 부릅떠 시야를 집중했고.
본능적으로 보이지 않는 왼쪽 손에 힘을 주자.
피잉!
주동훈의 왼쪽 날개에서 하얀 빛 덩어리가 튀어나와 쇄도하기 시작했다.
쐐애애애액!
공기를 찢으며 날아간 빛 뭉치가 표적에 닿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크읍?”
어마어마한 반탄력에 주동훈이 자세를 낮췄다.
– 뭐, 뭐야.
김진아 역시 당황했다.
작은 빛 뭉치라 세면 얼마나 세겠거니 했는데 무슨…….
– 사, 산이 사라졌는데요?
말 그대로 산이 소멸했다.
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로, 텅 비어버리게 된 거다.
물론, 그 정도는 현재의 주동훈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장난이 아니었어.’
주동훈은 분명 쏘아지는 그 기운을 느꼈다.
그것은 잘 정제된 정수의 힘과도 비슷했다.
등골이 서늘해질 만큼 끔찍한 힘.
“…….”
주동훈은 왜 그제야 믿을 만한 존재에게 이 힘을 맡겨야 한다는 지 깨달았다.
당장 김진아가 악한 마음을 먹고 날개에 있는 모든 힘을 자신에게 쏟아부어 자폭하면?
‘확실히 위험하긴 하겠네.’
아무리 주동훈이라 하더라도 위태로울 수 있었다.
목(木)의 말마따나, 양날의 검.
‘그래도.’
이건 너무 사긴데?
이제 전투할 때 앞만 보고 달릴 수 있다.
누군가 뒤에서 급습하려 하면?
김진아가 나서서 에너지 덩어리로 대응할 수 있는 거다.
물론, 여러 가지 상황을 두고 김진아가 잘 대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시켜야겠지.
문제는…….
쿠구구구구구……!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힘이 휩쓸고 지나감에 따라 산사태가 오는 것이다.
“……이거, 아무래도 무릉도원에서 훈련하긴 힘들겠는데요?”
– 기, 길마님. 일단 도망가시죠?
땀을 삐질 흘린 주동훈이 발을 튕겼다.
그런 그의 뒤로 산이 무너져 내렸고, 흙먼지가 피어올라 하늘로 솟구쳤다.
이거, 아무래도 엘드린한테 잔소리 좀 듣겠는데?
뭐, 괜찮다.
나중에 정령들로 싹 정비 한번 하면 되니까.
* * *
날개에서 김진아를 꺼내는 방법은 간단했다.
나오겠다는 둘의 의사가 합치하면 자동으로 빠져나온다.
그 말인즉슨?
둘 중 하나라도 나오기 싫다 하면, 영영 아이템에 갇힐 수 있다는 말도 된다.
“진짜 끝내줬어요!”
김진아는 본인의 임무가 상당히 마음에 드는 듯했다.
“그 정도 파괴력이면 어느 정도예요? 랭커들은 이길 수 있어요?”
“……랭커요?”
주동훈이 픽 웃었다.
“랭커뿐만이 아니라, 저조차도 공격에 맞으면 장담할 수 없을 겁니다. 그만큼 위력적이었어요.”
“……와.”
“그래서 제대로 훈련할 생각입니다.”
위력을 알았으면, 이제 제때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놔야 한다.
방금엔 그저 서 있는 상태에서 멈춰 있는 산에다가 쏜 거지만.
실제 전투는 본인도 움직이고 상대도 움직인다.
앞으로는 그걸 맞히게끔 훈련해야 한다.
다만.
무릉도원에서는 못한다.
지구에서도 못한다.
괜히 훈련한답시고 몇 번 날렸다가 행성 자체에 자연재해가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든 마음껏 연습할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지.
“세계 협회장한테 협조를 구하세요.”
“어떤…….”
“요즘 랭커들 없어서 던전난이 심하다죠? 헌터들 실종 많이 한 던전 몇 개만 추려놓으라고 해요.”
“아!”
김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다.
사회에 기여도 하고 시원하게 훈련도 하고.
김진아 역시 시야에 보였던 날개의 모든 기능을 샅샅이 확인해 보고 싶었다.
주동훈이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부길마도 급한 업무들은 미리 다 끝내놓으세요. 당분간 훈련에만 매진할 생각입니다.”
“알겠어요. 문제없이 처리해 놓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