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reached the ending with a death route character RAW novel - Chapter 94
제94화
공작령의 이름을 정해야 하는데 가문의 이름을 따서 베르게르 공국이라 부르기로 했다.
공국에서 제일 큰 도시이자, 수도로서 내가 머무는 성이 있는 곳은 민주크.
이곳은 일리브강을 끼고 있었으며, 역사가 천 년은 넘는 오래된 도시였다.
다만 체르니아 왕국과 너무 밀접한 게 흠이긴 했다.
‘그래도 당장은 제국이 위협이잖아?’
성에 도착하니 수백의 영지민들이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표정들이 하나같이…
‘썩었네.’
원래 이곳을 다스리던 영주는 왕당파에 속해 있다가 숙청을 당했다.
그렇더라도 영주의 아들이 이어서 다스리고 있었는데, 내가 오면서 새로운 땅으로 가문 전체를 이끌고 옮겨야 했다.
대대로 가문에 충성하던 집사나 하인, 기사 등을 모두 데리고 갔다.
새 영주인 나에 대해 영지민들이 아는 거라곤 제국에서 온 자라는 거, 전 영주를 탄압해서 쫓아냈다는 거, 나이는 어린데 무력은 세다는 거, 그리고 새로운 왕의 최측근.
아! 하나가 더 있었다.
자신이 살던 땅이 공국이 되어 체르니아 왕국과 분리되었다는 것까지.
저들로선 마음에 안 드는 것투성이였다.
그렇다고 반발하자니 나도 무섭고, 내가 데리고 오는 병사도 천여 명이나 되었다.
영지민들도 데리고 온다는 건데, 그들의 숫자도 만여 명이나 될 정도로 많았다.
빈 땅은 많지만 그래도 성 근처의 땅은 이미 자리를 다 잡아 놨기에 내가 데려온 영지민들에겐 다른 땅을 주어야 했다.
“영지민들끼리 충돌이 나지 않도록 하는 게 그대들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네.”
대답하는 건 전쟁터에서 만나 날 따르게 된 기사들이었다.
마셀과 그를 따르는 귀족들이 도망칠 때 버려둔 기사들.
저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으며 기존에 충성을 바치던 귀족을 버리고 날 따르기로 했다.
이들의 장점은 체르니아 왕국인이란 점.
그 때문에 영지민들끼리의 불화를 조율하도록 했다.
휘하의 지휘관들은 실버훈을 빼고 작위가 기사였는데 이참에 모두 올려 주었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몽크 기사에서 몽크 남작으로.
다만 섬머, 마고, 사이나는 빠졌다.
남녀 차별은 하고 싶지 않지만 이 세계에서 여자에게 작위를 주고, 영지까지 주는 경우는 없었다.
가문에 뒤를 이을 남자가 없다면 결혼을 통해서 남자를 들인 후에 영지를 상속시키는 경우는 있다.
당연히 지휘관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훌쩍훌쩍.
“전하! 용병인 제가 귀족이라니요. 죽을 때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저도 죽을 때까지 받은 은혜를 갚겠습니다.”
몽크와 페온이었다.
“한때 포로였던 저를 이렇게 높여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충성을 다해 전하를 모시겠습니다.”
“불 속이라도 뛰어들라고 하시면 하겠습니다!”
바렛, 제이미, 레이몬드였다.
“제가 평생 가장 잘한 건 전하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신 반다이크 영주님이 전하의 모습을 보셨다면 크게 기뻐하셨을 겁니다.”
윈터와 어텀이었다.
이외에 섬머, 마고, 사이나, 말콤도 한마디씩 했다.
이드로, 피스토, 그리고 아시모프와 한스까지도.
특히 한스는 작위를 받으며 벌벌 떨었다.
“저, 저 같은 미천한 사냥꾼이 작위를 받아도 될지…….”
“된다!”
내 비밀을 가장 많이 아는 게 한스였다.
작위를 주는 건 앞으로도 비밀을 지키라는 의미도 있었다.
또 한스 말고는 최면으로 21세기의 기억을 되살릴 자가 없었다.
한스가 아니었다면 흑색 화약도 만들지 못했을 거고, 앞으로도 필요한 게 무척 많았다.
어쩌면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중요한 게 한스였다.
그 때문에 한스의 영지는 내가 수도로 정한 민주크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섬머와 레이몬드는 영지를 주었어도 수도에서 계속 재정을 보도록 했다.
실버훈은 작위를 하나 높여 백작이 되었다.
“백작님.”
“네, 전하.”
“그냥 편하게 말 놓으시죠.”
“그, 그래도 될지…….”
“됩니다.”
“흠흠, 알았네.”
“결혼을 하셔야겠습니다.”
화들짝.
“겨, 결혼?”
“정략결혼이요.”
사위가 장인에게 정략결혼을 하라고 하는 게 유교 사상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어쩌겠나.
공국은 막 세워졌고, 기반을 다지려면 결혼을 해야 하는데.
내가 하려고 하면 세 아내가 들고일어날 거다.
“누, 누구랑 해야 하나?”
“제국 남쪽에 있는 하르가르엔 왕국의 파트로 대너스 후작에게 나이 많은 딸이 있다고 합니다. 결혼을 약속한 자가 있었는데 파혼을 했고, 이런 일이 두 번이나 연속되면서 결혼을 못한 채로 계속 있다고 하네요.”
이런 정보는 어디서 따로 입수한 게 아니라 고인물인 내가 가진 거였다.
그래도 상단을 통해 확인 절차는 거쳤다.
이 세계에서 내가 아는 것과 다른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파트로는 이전에 말했지만 소드마스터다.
나이는 90에 가깝지만 육체가 재생되어 겉으로는 30대 초반으로 보인다.
딸이 40대인데 아버지보다 오히려 늙어 보인다는 게 웃기는 일이었다.
“소드마스터의 딸?”
워낙 유명한 자라 실버훈도 단번에 알아들었다.
“네.”
“흠흠, 그쪽에서 좋다고 할까?”
“제안은 해 보려 합니다. 솔직히 성사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되기만 하면 우리 공국에게 좋은 일이긴 하겠군.”
“후처는 얼마든지 두셔도 되니 이 결혼을 승낙해 주십시오.”
귀족이 후처를 두는 건 흠도 아니니까.
“끄응, 알겠네. 한 것도 없이 백작 작위를 받았으니 이런 거라도 해야지. 내가 숫총각도 아니니 뒤로 뺄 것도 아니고.”
승낙을 받았기에 파트로 대너스 후작에게 사람을 보냈다.
결과는?
‘끄응, 거절이군.’
뻔히 자신을 이용하려는 게 눈에 보이는지 거절을 당했다.
사실 신생 공국의 백작은 소드마스터의 입장에선 볼품이 없었겠지.
‘그래도 과년한 딸이라 승낙을 받을 줄 알았는데.’
좀 아깝게 됐다.
‘나중에라도 마음이 바뀌면 좋겠군.’
거절 소식을 전해 주었더니 살짝 서운해하는 표정이었다.
“정략결혼이었는데 되기를 바라셨나요?”
“어? 하하, 솔직히 내 맘을 나도 모르겠네. 다시는 결혼 같은 거 안 한다고 결심했었거든.”
도박으로 모든 걸 잃었으니까 이런 마음을 품은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런데 정략결혼이지만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싱숭생숭하기는 했지.”
“후처를 들이세요. 예쁜 여인으로요.”
“하하, 레아가 어찌 볼지…….”
“이해할 겁니다.”
“흐음, 알았네. 그럼 용기를 좀 내 볼까?”
얼마 후, 실버훈은 얼굴이 환해져서 나에게 왔다.
“하하, 결혼하기로 했네.”
“오~ 축하드립니다.”
“상대는 자네도 아는 사람이네.”
“누군데요?”
“어… 마고…….”
화들짝.
“네에?”
마고라면 내 휘하의 마법사잖아!
“의외였나?”
“네에.”
나이 차이가 30년? 그 이상일 것 같은데?
“그동안 연금술을 연구하면서 그녀의 도움을 많이 받았지. 서로 대화를 많이 나눴었어.”
“아! 그러셨군요.”
“내가 결혼할 수도 있다고 했더니 꽤 실망한 표정을 짓더군. 거기서 자신감을 얻었지.”
뭐야, 그러니까 내 덕분이네?
“이 나이에 결혼식은 좀 그렇고,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초대해서 간단한 파티로 대신하려 하네. 자네도 와 주겠지?”
“그럼요!”
나중에 레아, 아나이스, 이자벨까지 데리고 파티에 참석했다.
***
“전하, 병사 말입니다. 더 뽑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윈터가 걱정하며 물었다.
“그래야지.”
“그런데 영지민들이 전하를 잘 몰라서 따라 줄지… 아! 백성들이요. 영지민이라 하던 게 습관이 돼서. 죄송합니다.”
“괜찮네. 아무렇게나 부르면 어떤가?”
사실 땅을 바꿨다고 거기 사는 사람들까지 바뀐 건 아니었다.
또 기존의 가문들이 영지민들까지 데리고 간 것도 아니고.
그 때문에 사람이 없는 빈 땅은 아니었다.
하지만 충성도 문제에선 제국에서 날 따라 여기까지 온 이들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였다.
“따라오게 만들어야지.”
“전하, 백성의 숫자가 몇 배는 늘어난 거 아시죠? 여기선 하루 세 끼… 안 됩니다.”
이 말은 섬머가 했다.
“이전 영지에서도 못했고요.”
이전 영지라는 건 땅을 바꾸기 전의 땅을 말했다.
“앞으로도 안 해도 된다. 마음 같아선 하루 세 끼를 먹이고 싶지만 나로서도 한계다.”
약탈한 재물로 챙긴 게 많지만, 하루 세 끼씩 주다가는 무기는 하나도 만들지 못할 거다.
“병사는 새로 모집하겠다.”
“징집이 아니라 모집이요?”
“그래. 억지로 끌려온 이들이 얼마나 잘 싸우겠나? 도망칠 생각만 가득하겠지.”
“그래도 제국과 싸울 수 있는데 어느 정도 인원은…….”
“걱정 마라. 저들의 내전이 정리되려면 꽤 걸린다.”
최하 몇 년.
하지만 최악의 경우는 말하지 않았다.
‘최악은 남북이 서로 협의하여 휴전하는 거지. 그러고 난 후에 유제프가 날 치러 오는 거.’
이 경우엔 불과 몇 달 후에 쳐들어올 수 있었다.
‘이런 얘기를 해서 걱정시킬 필요는 없지.’
진짜 최악의 경우고, 일어나기도 힘든 일이었다.
‘영지민 문제는 신경 쓰지 말자. 할 일이 많아.’
당장은 내정보다 신무기 개발이 먼저였다.
바로 총!
화약을 만들었으니 다음은 개인 화기로 가장 강력한 총이 자연스러운 순서였다.
‘총이 마법을 사라지게 하지는 않을까?’
어느 판타지나 원거리는 마법사가 이기고, 근거리는 기사가 이긴다는 설정인데, 총이 나오면 원거리에서도 충분히 마법사를 잡으니까.
물론 엄청난 파워의 대마법사는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대마법사가 되기도 전에 총 맞아 죽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그냥 나무통에 쇳조각을 넣어서 터트리는 정도만 해도 될 텐데 총이라니!
내가 미친 짓을 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들었다.
‘잠깐, 내가 왜 그런 것까지 걱정해야 해?’
당장 내가 살아남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
‘그래. 까짓것 만들자.’
화약도 뭐라 안 했으니 시스템이 방해할 것 같진 않았다.
공작이 되고, 공국까지 만들었는데도 엔딩이 뜨지 않는 것도 총을 만들려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젠 나도 뭘 어떻게 해야 엔딩으로 가는지도 모르겠다.
‘황제? 그거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상하는 건 이거였다.
그런데 총을 만들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이게 뚝딱하고 나오는 게 아니었다.
우선 총을 만드는 철.
그냥 철도 아닌 강철.
대장간에서 두들겨서 만들 수도 있지만, 한두 개도 아닌데 어느 세월에?
결국 대량 생산이 필요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장식으로 할 건지, 후장식으로 할 건지.
흑색 화약은 있지만 발화를 위해 뇌홍을 만들어야 하는지.
후장식으로 한다면 스프링은 어떻게 할지.
탄피도 문제였다.
가장 간단한 건 종이 탄피였다.
‘그렇지. 간편하지. 다만 종이가…….’
이 세계에는 양피지가 흔하게 쓰이고, 종이는 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예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라는 거.
이것까지 만드는 기술을 운운하며 가르칠 필요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으음, 얻을 정보가 많아. 아무래도 한스를 불러야겠어.’
내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는 기억이 다시 필요했다.
한스를 불러 전처럼 최면을 받았다.
정신을 차린 후에 내가 말하기도 전에 한스가 입을 열었다.
“전하, 비밀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