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take over the male lord RAW novel - Chapter 38
38
달이 두둥실 떠올랐다. 노란 달빛이 지상을 비추고 있었다. 마법으로 특별히 제작된 가로등에서 불빛이 흘러나왔다. 달빛보다 더 강렬한 빛이었기에 지상을 비춘 달빛이 이곳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마차가 여관으로 달리고 있었다.
“수도의 밤은 밝군요.”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던 더윈이 말했다. 그러자 로이가 그 말에 동의했다.
“지상의 빛이 강해서 별들이 잘 보이지 않아.”
“그렇습니다.”
전쟁터의 밤은 어둡다. 그래서 별들이 잘 보였다. 하지만 여기는 아니었다. 지상의 빛이 강해서 상대적으로 밤에 보이는 별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차가 멈추었다. 여관에 도착한 것 같았다.
말에서 내린 더윈과 로이는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이 되자 여관은 술집으로 변해 있었다. 여관에 묵는 이들이 내려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디서 마실까요?”
더윈이 로이에게 물었다.
“방에서 마시지.”
그리 말하고 로이는 종업원에게 방으로 와인과 과일 안주를 가져다줄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방으로 올라간 두 남자는 문을 열었다. 방에는 침대가 두 개 놓여 있고 책상과 소파가 놓여 있었다. 2인실이었다.
곧이어 종업원이 와인과 안주를 들고 왔다. 그것들을 테이블 위에 놓은 뒤 종업원이 고개를 숙이고 내려갔다.
로이는 자리에 앉아 과일 조각을 포크로 찍어 먹었다. 더윈은 병마개를 열어 잔에 와인을 부었다. 와인이 잔 안에서 찰랑거렸다.
“드십시오.”
더윈이 잔을 내밀었다. 그러자 로이가 잔을 들고 와인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군.”
“대장은 전쟁터에 있을 때 술을 안 드시니, 몇 년 만에 드시는 거 아닙니까?”
“맞아.”
거의 전쟁터에서 살았다. 그동안 술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술을 잘 마셨지만 마시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어 다들 로이가 술을 못 마신다고 생각했다.
“내가 따라 주지.”
로이가 병을 들고 와인을 따랐다. 그리고 와인으로 가득 채운 잔을 더윈에게 넘겨주었다. 더윈은 두 손으로 와인잔을 받았다.
“건배합시다.”
“무엇을 위해 할까.”
“음, 호리슨 영애와 대장을 위해서?”
아니, 왜 그런 말이 나온단 말인가. 로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더윈을 보고 말했다.
“너와 나를 위해서라고 하지.”
“에이, 시시하게 왜 이러십니까.”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게 재미있나 보군.”
로이가 투덜거렸다. 그러자 더윈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이었다.
“대장과 호리슨 영애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겁니다.”
“그녀가 가진 관심이 연애 감정이 아닐 수도 있어.”
그냥 존경하는, 동경하는 사람으로 편지를 보낼 수 있는 일이다. 그 역시 답장을 보내면서 엄청난 감정은 기대하지 않았다.
“아니라 해도 좋은 감정은 있는 것 아닙니까. 그 감정이 연애 감정으로 바뀔 수도 있는 거지요.”
“꼭 내가 그녀와 잘되기를 바라는 것 같군.”
“대장이 소중히 여기는 아가씨라 더욱 그렇지요.”
소중히 여긴다, 라. 그건 맞았다. 그녀가 보내는 모든 게 다 소중했다. 친구들이 보낸 편지가 소중하듯 그녀가 보낸 편지도 소중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의미는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 노력이 잘 안 돼서 문제이긴 하지만.
로이는 술을 들이켰다.
자신의 주제를 알라고 한 황태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때 자신도 모르게 나서서 말하고 말았다. 언제나 길고 가늘게 살기 위해 어떤 부당한 일에도 나서지 않던 자신이 다른 행동을 취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싶진 않았다.
“내 주제가 뭘까.”
로이가 더윈에게 물었다. 그러자 더윈이 로이를 바라보았다.
“황태자가 하신 말씀 때문입니까?”
“그래.”
“신경 쓰지 마십시오, 대장과 호리슨 영애 사이 문제에 황태자가 끼어드는 건 옳지 않은 일입니다.”
더윈은 로이의 편을 들었다. 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술을 한 잔 더 마셨다.
마시면 마실수록 술이 당겼다.
황태자가 기억나고 아직 만나지 못한 그녀가 떠올랐다.
“호리슨 영애도 대장이 온다는 걸 알고 있겠죠?”
“그렇겠지.”
“예쁘게 꾸민다고 이것저것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더윈의 말에 로이가 피식 웃었다.
“그런 일이 생긴다면 재미있겠군.”
동경하던 남자가 온다. 호리슨 영애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더윈은 그녀가 예쁘게 꾸미느라 정신없을 거라 말하지만 과연 글쎄, 그럴까. 로이는 더윈의 말을 흘려들었다.
술을 어느 정도 마시고 나니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리고 자신을 좀 더 솔직하게 직면할 수 있었다.
“나는 말이야.”
로이가 자신에게 말하듯 말했다.
“나를 보고 웃어 줬으면 좋겠어.”
편지 속에서 그녀는 항상 즐거워 보였다. 그래서 편지를 보면 자신도 즐거워졌다. 전쟁의 우울함을 떨칠 수가 있었다.
“대장.”
“그러면 좋겠지만 그건 꿈이겠지.”
그는 쓰게 웃었다.
아마도 그녀는 황태자와 첫 춤을 추게 될 거다. 그리고 자신은 그것을 바라봐야 할 것이다.
고삐가 풀린 그의 마음이 천천히 흘러나왔다.
“답장을 보내면서 아무래도 마음을 좀 더 두게 된 것 같아.”
“대장.”
“그냥 그렇군.”
왜 하필 그녀는 편지에 자신을 배려한 걸까. 배려하지 않았다면 무시했을 텐데.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이런 마음 따위 먹지 않았을 텐데.
“대장, 그리 말씀하시니 꼭 사랑 고백 같습니다.”
“몰라.”
“취하셨습니까?”
로이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얼굴에 뜨거운 열이 올라왔다.
“응.”
그는 긍정했다.
이런 이야기는 술이 들어가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이야기니 말이다.
“선물을 받았어.”
“아!”
대장에게 펜과 잉크가 갑자기 새로 생긴 걸 봤다. 물어보고 싶었는데 역시 호리슨 영애가 보낸 것이었다.
“제가 사용하려고 하니 선물받은 거라면서 사용 못 하게 하셨던 그 펜요?”
“그래.”
“기분이 어떻습니까?”
더윈이 물었다.
“좋았어.”
소박하지만 필요한 물건이었다. 자신이 부담을 가지지 않고 적당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으로 골랐다. 아마도 오랫동안 고민하고 선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녀의 다정함이 몸에 스며들었다.
그 다정함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대장.”
“응.”
“그만 마시죠. 내일부터 수도 관광 해야지요.”
더윈은 내일부터 놀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더윈의 말에 로이가 남은 술을 바라보았다. 아까웠지만 더 이상 마셨다가는 내일 숙취로 고생할 것 같았다.
“그러지.”
술을 내려놓은 로이는 안주를 마저 챙겨 먹었다. 과일을 마저 먹어 치우고 두 남자는 잠을 청했다.
침대에 올라와 잠을 청하던 로이는 눈을 멀뚱멀뚱 떴다.
주제 파악을 하라고 한 황태자의 목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것 같았다.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 * *
신년회 당일이 되었다. 저녁에 있을 가면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사람들이 열심히 치장을 하고 있었다. 아리스 역시 치장에 열을 올렸다. 다자이너의 손에 완성된 꽃 문양이 고급스럽게 수놓인 드레스를 입었다. 거기에 적색에 잘 어울리는 분홍색 계열로 색조 화장을 하고 눈썹을 고정했다.
“눈썹이 길어서 예뻐요.”
눈썹을 있는 힘껏 올렸다. 인조 눈썹을 살짝 덧붙여서 눈매가 이전보다 또렷해졌다.
신년회는 전국적인 큰 행사다. 초대받은 귀족들이 한 곳에 모이는 자리였다. 마지막에 얼굴을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화장을 마무리했다. 화장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모습을 바라본 아리스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보다 더욱더 세심하게 꾸몄다. 아름다워진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든 듯 거울을 계속 보고 방긋 웃었다.
“누가 오는지 안 알려 준대.”
가면 파티다. 입구에서 신분 검사를 받지만 회장에 들어올 때 누구인지는 비밀이었다.
“로이 님을 내가 발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자 가면을 준비하던 루진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녀의 어깨를 다독였다.
“아가씨가 아름다워서 알아서 접근하실 거예요.”
“그럴까?”
“그럼요!”
루진은 오늘 변신한 아가씨를 보고 황홀한 눈빛을 보냈다. 평소에 이렇게 꾸미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한 달 동안 얼마나 준비를 철저히 했던가. 생전 쓰지 않던 인조 눈썹까지 붙이면서 말이다.
머리카락은 손을 써 곱슬로 바꾸었다. 반 묶음해서 머리를 넘기고, 화장을 하고, 거기에 적색의 드레스를 입었다. 천이 가슴까지 내려오고 어깨 부근은 시스루로 된 원피스는 단정하면서도 은근한 노출이 있었다. 새하얀 어깨와 등을 살짝 비추고 있었다.
“다 되었느냐.”
아버지가 문을 두드렸다.
“네, 다 되었어요.”
아리스의 말에 시녀들이 문을 열어 주었다. 이안은 오늘 변신한 딸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매번 무도회에 갈 때마다 놀라고는 했는데 이번에도 그녀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내 딸, 너무 아름답구나.”
“고마워요.”
아리스가 사르르 웃었다.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미소였다. 그녀의 외모와 미소에 이안은 허우적거렸다. 자신도 이렇게 빠져들 것 같은데 다른 남자들은 오죽하랴.
“로이가 와서 이렇게 꾸민 거냐.”
딸이 평소보다 배나 힘을 준 걸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아리스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그자가 저번 주에 도착했다.”
“정말요?”
어떻게 안 것일까.
“폐하를 알현했다고 하더군.”
“아아.”
“황태자 전하께서도 그를 찾았다고 하더구나.”
황태자가 왜 로이를?
느낌이 별로 좋지 않았다.
참견하지 않겠다고 황태자가 말했지만 과연 그럴까.
로이에게 무슨 말을 한 걸까.
오늘 가서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가자꾸나.”
“네, 아버지.”
아리스는 이안과 팔짱을 꼈다. 그리고 방긋방긋 웃으며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무도회는 황궁에서 열린다. 저택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