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single before returning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파경대계
“온다니? 뭐가? 몬스터가?”
의아하게 묻는 송민아에게 클레어가 다시금 대답을 하려 했지만.
“그게 아니라…….”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무언가는 클레어의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평범한 몬스터 무리가 다가오는 속도가 아니었다.
각성자의 눈에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서 접근하는 걸 알아챌 수 있는 건, 황금안을 가진 클레어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퍽!
클레어가 송민아를 밀쳐 냈다. 그와 동시에.
콰과과광!
클레어가 있던 자리에 굉음이 울리며 붉은 빛줄기 하나가 잔상을 남겼다.
“큭……!”
어느새 검과 갑옷을 갖춰 입은 클레어가 힘겹게 공격을 막아 냈다.
‘얼마나 날아온 거지……?’
공격을 막아 내는 것과 동시에 클레어의 몸이 붕 떠서 한참이나 뒤로 밀려났다. 풍경이 바뀔 정도로 긴 거리였다.
‘도움은… 아니, 오히려 좋아.’
거리가 벌어진 만큼 지원을 기다리려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싸움에 손을 보탤 수 있을 만한 인원이 적었다. 청진명도 아직은 안정을 취해야 하는 상태였고.
억지로 전투를 돕게 하는 것보단 얌전히 있어 주는 게 나았다.
‘내가 쓰러뜨리는 거야.’
각오를 다졌다.
상대는 끝이 두 개로 갈라진 모양의 창으로 클레어를 찌르고 있었다. 칼날로 막아 냈지만, 길게 뻗은 가위표 모양의 창날에 쇄골이 찔리기 직전까지 맞닿아 있었다.
검을 쥔 클레어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검을 밀어내는 힘이 상당했다.
캉!
클레어가 검의 궤도를 비틀어 창날을 치워 내고 거리를 벌렸다.
멀리서 보니 상대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소년인지, 소녀인지 알 수 없는 외형에 긴 머리칼을 기른 인물. 겉보기엔 강인하다는 인상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주 대했을 때 느꼈던 압박감을 떠올려 보면, 클레어와 같이 마력으로 완력을 보조하는 타입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정도의 클레어 이상으로 마력을 운용할 수 있는 존재라면.
‘사도.’
그리고 지금 남은 사도는 한 명뿐이었다.
“당신이 장서주로군요.”
클레어의 예상은 정확했다.
‘이자가 여기 왔다는 건…….’
장서주를 상대하러 간 도율과 주대현은 어떻게 되었다는 거지?
그런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두 사람 다 당했다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클레어는 고개를 저어 고민을 털어 냈다.
‘분명 다시 올 거야.’
지금은 눈앞의 상대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아즈모디아는 그런 클레어를 바라보는 듯, 바라보지 않는 듯했다. 시야는 분명히 클레어를 눈에 담고 있었지만, 그 너머를 보는 듯이 초점이 흐릿했다.
“그러는 넌.”
아즈모디아가 창을 겨눴다.
“언제까지 구경만 할 거지?”
쾅!
다시 한번 아즈모디아가 땅을 박차고 클레어를 향해 창을 내질렀다.
칼날과 창날이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어마어마한 속도와 위력을 가진 찌르기를, 클레어는 쳐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그마저도 오른쪽 눈에 깃든 황금안이 보조하는 게 아니었다면 불가능했다.
‘팔이 저려……!’
이런 상태로는 오래 버텨 봤자 이쪽만 소모를 강요당할 뿐이었다.
승부수를 띄워야 했다.
“빛이여.”
클레어의 검에 마력을 두르자 황금색 빛이 넘실거렸다.
이 마력은 칼날의 의지를 대행한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주인을 지키고 가까이 닿는 적을 섬멸하기 위해 뻗어 나갔다.
어두운 대지 위로 솟아난 한 줄기 광명. 소중한 이들을 지키기 위한 빛이었다.
“갑니다.”
클레어가 검을 쥐고 돌진했다.
넘치는 마력이 전신에 활력을 북돋웠다. 폭발적으로 향상된 신체 능력에 더해, 절대적인 위력을 가지는 칼날을 휘두르니 아즈모디아의 창날 역시 밀려났다.
이어지는 연격. 빈틈을 향해 클레어가 칼을 꽂아 넣었지만 곧바로 되돌아온 창날에 막히고 말았다.
역시 사도는 사도. 쉽사리 당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주도권은 아직……!’
이대로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려던 찰나.
아즈모디아가 창을 쥐지 않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짙은 방벽이 세워지며 클레어를 막아섰다.
“조금 더.”
아즈모디아가 모자란다는 듯 클레어를 꼬드겼다.
“더 할 수 있지 않나.”
아즈모디아의 표정은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말대로 클레어는 아직 출력을 더욱 높일 수 있었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았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마계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의 출력으로도 탈진해 쓰러졌어야 했는데. 지금은 아직도 여유가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유와 동시에 어딘가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 이상 이 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직감. 사도를 앞에 두고도 가진 힘을 모두 끌어다 쓰는 건 꺼려질 정도였다.
“제가 왜 그래야 하죠?”
“아직 망설이나.”
클레어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자, 아즈모디아가 다른 방법을 찾았다.
“보충하도록 하지.”
갑작스러운 아즈모디아의 말에 클레어가 의아함을 느꼈다.
‘뭘……?’
아즈모디아는 지옥의 문을 열어 주대현과 도율을 그 자리에 묶어 두고 있었다. 그걸 유지한 채로 클레어와 전면전을 펼치려 하니, 원하는 만큼 힘을 이끌어 낼 수 없었다.
보다 많은 힘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연료가 필요했다.
그리고 장서주 아즈모디아에게 있어서 연료란.
“영혼 수확.”
“……?”
아즈모디아가 뻗은 손끝을 타고 희뿌연 무언가가 퍼져 나갔다.
그게 무엇인지, 황금안을 통해 바라본 클레어는 곧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죽음과 영혼의 주인, 장서주가 힘과 양식으로 삼는 것은 다른 이들의 영혼이었다. 희뿌연 안개는 그것을 거둬들이기 위한 매개체였다.
그것이 마치 은의 장막처럼 보였다.
“당신……!”
주위에 있던 몇몇 몬스터 무리가 의식을 잃은 듯 픽 쓰러졌다. 그리고 그 영혼들이 아즈모디아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러나 은의 장막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멀리 퍼져 나갔다.
주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먹어 치우려는 듯한 움직임. 그리고 이 주변에는 안정을 취하고 있는 청진명을 비롯한 다른 인간들 또한 있었다.
두꺼운 마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클레어는 괜찮았지만, 다른 이들은 무력하게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만두세요!”
클레어의 말에 따를 아즈모디아가 아니었다.
‘이걸 막으려면…….’
클레어의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더 많은 마력을…….’
그녀가 갖고 있는 마력을 쏟아부어서 이 은의 장막을 통째로 짓이겨 버리는 것.
아즈모디아가 장막을 위해 소모한 마력보다 훨씬 많은 마력으로 짓눌러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갖고 있는 마력을 모두 쏟아 내고 쓰러지게 되겠지만. 뒤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클레어가 마력을 더욱 퍼 올리려던 그 순간.
쿠르릉!
구름 한 점 없이 평탄한 어둠을 자랑하는 마계의 하늘에서 때아닌 뇌성(雷聲)이 울려 퍼졌다.
하늘 위를 가로지르는 듯한 소리가 멎은 직후. 번쩍이는 빛과 함께 벼락 줄기가 지상을 내리쳤다.
콰장창!
번개가 아즈모디아가 펼쳐 놓은 장막을 깨부쉈다.
“이건…….”
아즈모디아가 드물게 놀란 표정으로 번개가 내리친 방향을 돌아보았다.
그곳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던 거 마저 해야지?”
도율이었다.
* * *
“…도율 씨……!”
클레어의 부름에 돌아본 도율이 손짓했다.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있으란 뜻이었다.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무사하단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겨라.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남은 영혼을 다해 도율에게 넘겨 준 주대현은, 지난 세월을 모조리 돌려받은 것처럼 말라비틀어졌다.
그 후 지옥의 강물로부터 몸을 띄워 주던 연꽃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용암 아래로 가라앉았다.
장례다운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다.
괴팍한 노인이었지만 세상에서 단 한 명, 도율과 같은 처지에 있었던 남자였다. 마음이 썩 불편했다.
‘이기마.’
할 수 있는 건 그 유언을 실현시켜 주는 것뿐이었다.
“어리석긴.”
아즈모디아가 혀를 찼다.
“영혼과 강물의 맹세는 절대적. 덕분에 나도 섣부르게 손을 댈 수 없었던 거다.”
절반의 영혼을 바친 도율과 주대현이 죽음에 이르지 않는 건 장서주조차 멋대로 손을 댈 수 없는 계약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온전한 영혼을 달고 온 도율은 이제 더 이상 그런 제약의 대상이 아니었다.
얼마든지, 마음대로 손을 댈 수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제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오려 하는군.”
그러나 도율은 그런 아즈모디아의 겁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도율이 보이는 여유로운 태도에 아즈모디아가 차가운 분노를 드러냈다.
“미물이.”
아즈모디아의 등 뒤로 묵빛 원이 퍼졌다. 여러 겹의 등심원으로 이루어진 원의 둘레들에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져 있었다.
“죽음에 순종하라.”
그런 도율의 발밑에서 해골로 된 손아귀들이 튀어나왔다.
끼이익.
땅에서 솟아난 거대한 관이 솟아났다. 십자가가 새겨진 철의 관. 그 문이 열리고 도율의 몸을 집어삼켰다.
쿠웅!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 같았던 관의 문이 굳게 닫혔다.
그러나 실낱 하나 샐 수 없을 것 같은 강철 관 안에서, 미약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찰나의 번득임. 아즈모디아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이윽고 안에서 뇌명이 울려 퍼지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어떻게……?”
아즈모디아가 눈썹을 찌푸렸다.
죽음은 다른 사도에게는 주어지지 않은 장서주만의 특권.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종류의 힘이었다.
영혼을 다루는 법은 그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반대로, 그것이 가능하다면 장서주의 속박과 공격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설마……!”
아즈모디아가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도율을 노려보았다.
“네놈도……?!”
생과 사. 이승과 저승의 경계. 윤회의 굴레를 읽는 힘에 눈을 뜬 것인가.
그 힘에 눈을 뜬 자는 눈동자에 곡옥 모양의 반점이 떠오른다. 그러나 도율의 눈엔 어떠한 무늬도 보이지 않았다.
도율이 아즈모디아의 의심을 부인했다.
“그렇게 보지 말라고. 너랑 난 다르니까.”
아즈모디아의 예상과 달리, 도율은 장서주와 같은 죽음의 힘에 눈을 뜬 건 아니었다.
어쩌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랐다. 영혼의 절반을 빼앗긴 채로 오랜 세월을 살아왔으니. 언젠가는 장서주가 다루는 것과 같은 종류의 힘을 깨우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도율은 주대현이 채워 넣은 온전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이전엔 장서주가 다루는 힘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그가 다루는 능력은 확실히 불합리하고 기이한 종류의 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깨고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달리 이유가 있었다.
“후우.”
도율이 호흡했다.
단전에서 소용돌이치는 내공이 신체의 말단까지 흘렀다. 뻗어나간 내공이 다시 단전으로 되돌아오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불가능했다. 영혼이 불안정한 상태에서는 기를 멀리까지 뻗어 보낼 수 없었다. 다른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있었지만, 그게 발목을 잡고 있었다.
‘더 멀리.’
도율의 기가 몸 안에서 흐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메마른 마계의 땅에 도율이 기를 퍼뜨렸다. 자신의 기가 세상에 퍼져 녹아드는 느낌이 들었다.
기의 순환이 한 바퀴를 그릴 때마다, 그 영향력이 조금씩 더 커지고 있었다.
“이건…….”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지금까지 행해 온 흔적을 퍼뜨리는 행위.
아즈모디아 역시 언젠가 본 적이 있었던 광경이었다. 언젠가 제 무리를 숨기고 도망쳤던 겁쟁이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오랜 세월 몸을 숨길 수 있었던 이유.
도율은 도망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파경대계.”
죽음의 지배자 앞에 맞서 싸우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