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41
041화
― 음? 송 감독을 아나?
주석의 입에서 나온 감독의 이름에 말이 먼저 나간 것도 잠시, 이정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요. 하하. 그냥 선생님이 추천해 주시는 거니까요. 지금 제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조금 고민했었습니다.”
― 뭐, 이정 씨 바쁜 거 뻔히 다 아는데 지금 하자고 했겠어? 어쨌든 하겠다니 가닥 잡히면 연락하지.
“네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은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는 척할 뻔했다….’
몇 년 후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지는 감독이지만 그 전까지는 중고신인 취급도 못 받던 무명 감독이었다.
“선생님도 알 거라고 생각하고 말씀하신 건 아닐 테고.”
무명 때의 송 감독은 국내 영화 애호가인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을 정도라 이쯤 되면 오히려 한주석이 그녀를 알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무슨 영화지?”
송 감독의 영화들을 되짚어봐도 딱히 이거다 싶은 작품은 없었다.
“됐다. 뭐든 찍으면 되는 거지.”
당장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송 감독이 스타 감독이 되고 난 뒤엔 재조명받을 수 있는 데다가, 인맥을 다질 기회니 놓치면 아쉬울 일이었다.
“이정아, 집에 안가?”
“아, 형. 가요!”
어쨌든, 당장은 시작하지도 않은 영화를 기대하기보단, 내일을 위해 쉬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 * *
“웬 보양식이에요?”
이정이 촬영장에 도착한 배달되어 온 삼계탕을 보고 물었다.
보통 간식차나 밥차가 오는 것과 달리 하나하나 개별포장된 진짜 보양식이었다.
“우리 시청률 10% 넘었다고 성연 씨가 통크게 쏜대.”
“10% 넘었어요?”
“저번 주 연속으로 넘었거든요. 본인 출연작에 관심을 좀 가집시다. 주연 배우님.”
“요즘은 핸드폰 할 시간도 없어서….”
스태프의 농담에 이정이 뻘쭘한 표정을 지었다.
“저번에 내가 얘기했잖아? 대답도 했으면서.”
“제가요?”
스태프들과 함께 삼계탕을 옮기던 우재가 다가와 이정에게 말했다. 우재는 시청률이 나온 다음 날 촬영을 가는 길에 말해주었다고 했지만, 전혀 기억에 없었다.
“잤구나?”
“그런가 봐요. 그나저나 많이 올랐네요.”
“노이즈 마케팅도 됐고, 드라마 자체가 호평받고 있어서 꾸준히 올랐어.”
1, 2화의 시청률은 각각 3.8%와 4.2%. 앞으로가 기대되던 시청률이었던 것과 달리 논란 기사가 올라갔던 당시 3, 4화의 시청률이 2%까지 떨어졌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강현한테 얻어맞았다는 사람이 누군가 싶어서 보기 시작했다는 사람도 꽤 있고.”
“이름을 들어도 누군지 모르니까요?”
“그렇지.”
“사람들이 저를 몰라서 시청률에 도움이 됐다니 아이러니하네요.”
그 이후 최영호 역이 교체되면서 방영된 모든 회차가 큰 폭으로 올라 결국 8화가 방영된 저번 주 다들 반신반의했던 10%대를 뚫을 수 있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덕분에 도 꽤 관심받고 있는 모양이더라. 너에 대한 글도 종종 올라오고.”
바쁜 일정에 보답하듯 아찔했던 순간들이 지나가고 나자 기다렸다는 듯 일이 술술 풀렸다.
“체감이 안 되네요.”
자고, 먹고, 일어나서 촬영하고, 다시 자고를 반복해서인지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어도 인기에 대한 실감이 전혀 나지 않았다.
“한동안은 촬영하느라 바빠서 힘들 거 같고, 종방연쯤 되면 실감 나지 않을까?”
우재가 대신 그때까지 쉼 없이 달려야 한다며 웃었다.
“ 촬영 종료랑 막방이랑 거의 겹칠걸요? 우리 종방연 못할지도 몰라.”
“아. 수현 씨.”
“이렇게 뭐라도 사 들고 와야 잠깐이라도 쉬지. 이정 씨랑 매니저님도 먹어요.”
일회용 용기에 담긴 삼계탕을 건네준 성연이 국물에 떠다니는 파를 건져내며 말했다.
“사전제작 분량 날려 먹는 바람에 다음 주에 나갈 거 지금 찍고 있잖아요. 로케이션 하나 삐끗해도 결방이고 편집팀 누구 하나 실려 가도 결방이고, 우리 중 누구 하나 아파도 결방인 최악의 상황이죠.”
늦어도 마지막 방송 1~2주 전에는 촬영이 종료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러기는커녕 결방의 위험까지 있다는 말이었다.
“드라마 촉박하게 찍는 거 싫어서 사전제작 넉넉하게 찍는걸로 골랐더니 이런 난리가 터질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내 말이! 그나마 강현이 촬영 펑크내고 그래서 몇 개 안 찍었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더 억울할 뻔했어.”
주린이 자연스럽게 다가와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늘 촬영이 없는 정훈을 제외한 주연배우 세 사람이 모두 모였다.
“이정 씨 하이. 오늘은 안자네?”
“저라고 뭐 맨날 자나요.”
“요즘엔 컷 들어갈 때 빼곤 거의 자고 있지 않았나?”
“그렇긴 하네요.”
차마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이제는 의 촬영이 끝나고 시즌 2를 준비하면서 아주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 그전까지는 정말 컷 소리와 함께 잠들고 깨기를 반복했으니까.
“그나마 실내 촬영이 많아서 다행이지. 야외촬영 많았으면 더 늦어졌을걸요?”
“맞아. 노을 씬 찍으려면 노을 기다려야 하고, 새벽 씬 찍으려면 새벽 기다려야 하고. 으, 끔찍해.”
“다들 피곤에 쩔어있는데 이렇게라도 몸보신도 하고, 시청률 10% 돌파한 거 축하해야 힘이 나지.”
성연의 말대로 지나가며 인사하는 스태프들의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아, 맞다. 이정 씨 삼촌한테 연락받은 거 있어요?”
주석이 어떻게 그의 번호를 가지고 있나 했더니 성연을 통해 구한 것이었다.
“저번 주쯤인가? 삼촌이 이정 씨 번호 달라고 해서 줬는데. 사실 난 안 주려고 했는데 뺏긴 거예요.”
“네. 어제 잠깐 통화했었어요.”
“뭐래요? 영화 캐스팅 건 맞죠? 내가 이정 씨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나중에 하라고 하니까 빨리 선점해둬야 한다고 완전히 강탈해갔어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물어보지도 않고 번호를 줘 미안하다 사과한 성연이 제멋대로인 주석의 행동에 열이 받는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당장 크랭크인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빨라야 몇 달 후에 들어갈 건데 미리 하자고 말씀하신 것뿐이에요.”
“그래도 그렇지. 이번 드라마 끝나면 이정 씨 몸값 꽤 오를 텐데. 호구 계약하지 말고 계약서 잘 보고 계약해요. 알았죠?”
성연은 영 그가 헐값에 계약이라도 할까 신신당부했다. 발넓고 인망 좋은 주석에게 이런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것은 성연뿐이었다.
“언니, 주석 선생님이 신인 후려치는 스타일도 아니고 뭐가 그렇게 걱정이야?”
“그…. 그냥 뭔가 믿음직스럽지가 않아. 삼촌이 좋은 사람이란 건 아는데 그냥…. 음.”
“가족 같으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친구가 아무리 잘나가도 그냥 친구인 것처럼.”
뭐라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성연의 태도에 이정이 슬쩍 말을 거들었다.
“아, 맞아요! 연기할 때 보면 존경스럽긴 한데 그 외에는 뭐랄까 그냥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이라.”
“그럴 수 있죠. 저도 그런 친구가 있어서.”
단적인 예로 이정 역시 민혁이 아무리 세계에서 잘나가는 아이돌이어도 때때로 바보 같아 보이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삼계탕 다 드셨으면 촬영 시작합시다! 성연 씨 덕분에 몸보신했으니까 또 힘내서 찍어봐야죠! 자 파이팅!”
“파이팅!”
버거운 일정에 자칫 날카로워질 수 있는 촬영장 분위기도 박 감독의 꾸준한 격려와 안정적인 시청률, 그리고 불화 없이 최선을 다하는 배우들이 합쳐지자 쉽게 누그러졌다.
“힘들어도 저런 거 보면 힘 나지 않아요? 사실 우리보다 더 힘든 건 스태프들일 텐데. 우리 현장 분위기 진짜 좋은 거 같아.”
성연의 말에 그렇지 않아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이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다음에 어딜 가던 조금 삭막하게 느껴질 거 같아요.”
“어후, 우리가 특이한 거지 다른 데랑 비교하면 안 돼요. 이정 씨. 배우들 중에 진짜 또라이 많거든. 강현 겪어봐서 알잖아요?”
“맞아요. 나도 연예인이지만 진짜 사회생활 하는 게 신기한 애들 많으니까 조심해야 해.”
연예계 진상들에 대해서라면 성연보다 이정이 더 잘 알고 있었지만, 이정은 성연과 주린의 걱정 섞인 잔소리를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세 분 스탠바이 해주세요!”
“네에!”
스태프의 말에 성연이 크게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먹느라 입술 다 지워졌으니까 살짝 수정만 하고 올게요.”
“나도 같이 가 언니! 먼저 가 있어요. 이정 씨.”
오자마자 분장실에서 머리도 했고, 협찬받은 옷으로 갈아입은 이정은 할 일이 없었다.
길어봤자 10분도 걸리지 않을 테니 따로 뭔가를 하기도 애매한 시간.
“잠깐 대본이라도 볼까.”
이정이 새로 받았음에도 손때가 타 너덜너덜한 대본을 꺼내 읽었다.
“아 됐어요. 그냥 깔끔하게 내가 차인 거 맞는데요. 수현 씨가 미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수현에게서 예림을 겹쳐보다 결국 예림을 택하게 되는 것이 기존 흐름이었지만 그가 남자 주인공이 되면서 결국 수현과 이어지는 쪽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오늘은 대망의 고백 씬.
‘러브라인이 중간에 바뀐 게 티가 나지 않게 잘 해야하는데.’
본래 재민은 서브 남자 주인공에 불과했기 때문에 감정선을 잘못 쌓으면 자칫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 있었다.
그걸 최대한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이정이 할 일.
“그래도 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