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act, it's a different world RAW novel - Chapter 45
045화
다시 촬영장. 의 본방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지만, 촬영은 해가 들락 말락 하는 새벽에야 겨우 이제야 겨우 끝이 보이는 수준이었다.
“슬슬 해 뜰 거 같으니까 마지막 촬영하고 정리합시다!”
잠깐 쉬던 사람들이 박 감독의 말에 꾸물꾸물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장을 부려봤자 촬영장에 있어야 할 시간만 더 늘어나니까 빨리빨리 움직이죠.”
알고 있지만 당장 조금이라도 더 쉬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이정 역시 최선을 다해 천천히 움직였다.
“어?”
다들 억지로 천천히 움직이려 하지 않아도 몸이 너무 피곤하니 저절로 그렇게 되던 때, 스태프 한 명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왜? 뱀이라도 나왔어요?”
“감독님 서울 한복판에서 무슨 뱀이에요.”
“우리 드라마 지금 실검인데요?”
“진짜?”
스태프의 말에 모두 놀라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헐 진짜네?”
그의 말대로 여태 좋은 일로 올라가 본 적 없어 무소식이 희소식이었던 이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하고 있었다.
― 5 드라마 초콜릿 인생은 카카오 86% 초콜릿
― 7 초콜릿 재민 초콜릿 재민 본명
― 15 초콜릿 남주 누구
― 20 이수희 작가.
“오, 화려하다 화려해.”
비슷한 실시간 검색어가 묶이지 않았다면 훨씬 더 많이 차지하고 있었을 일이었다.
“근데 오늘 무슨 내용이었지? 왜 갑자기 터진 거야?”
“오늘 9화였죠? 아, 그거다. 재민이 차이는 거.”
“그건가?”
바로 직전에 촬영했음에도 다들 워낙 정신이 없어서 오늘 내용이 뭔지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정 씨, 축하해.”
“본명으로 오른 건 아니지만 이게 어디야?”
“축하해요.”
움직이기도 싫어 꾸물대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금세 사기가 차올랐다.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이정이었지만 스태프들 역시 그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드라마가 화제가 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요.”
“지금보다 더 열심히? 그러다 죽어 이정 씨.”
하도 여러 사람이 그를 부르며 축하하는 바람에 그의 환상이 조금 옅어졌지만 아주 잠깐은 버틸 수 있었다.
‘와… 미치겠다.’
이정이 쿵쿵거리는 심장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이정 씨. 이럴 때까지 차분하기 있어요? 얼굴만 보면 뭐 나쁜 일로 올라간 줄 알겠어.”
“전혀 차분하지 않은데요. 수현 씨.”
“정말로? 그냥 표정이 얼굴에 잘 안 드러나는 건가?”
“티 안 나요?”
“전혀.”
성연의 말에 오히려 이정이 당황했다.
환상이 옅어진 탓도 있지만, 너무 기뻐 표정 관리를 전혀 하지 않고 있었음에도 무표정하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뭐야, 이정 씨, 표정 좀 풀어요. 이번엔 좋은 일이잖아요?”
“…저 지금 되게 기쁜데요?”
성연뿐만 아니라 다른 스태프들 역시 이정의 표정이 밝지 않아 보였는지 한마디씩 말을 얹었다.
“그러고 보니까 이정 씨, 저번에 강현한테 얻어맞았을 때도 되게 차분하고 무표정했잖아? 원래 표정이 그래?”
“연기하는데 표정 몰빵하는 거야?”
“저 지금 놀라서 머리 아픈 정도인데.”
전혀 담담한 상태가 아닌 이정이 변명 아닌 변명을 해보았지만, 스태프들은 이정을 놀릴만한 건수를 잡았다는 듯 웃으며 장난치기 바빴다.
“이거 메이킹 필름으로 올리면 재미있겠네. 주린 씨랑 정훈 씨도 가서 이정 씨 좀 놀려봐.”
“어휴, 감독님. 이정 씨 울겠어요. 그러다.”
말은 그렇게 해도 주린 역시 기다렸다는 듯 냉큼 이정을 놀리기 시작했다.
아직 서로 완전히 친해지지 못한 정훈만이 어색하게 웃으며 한 발짝 물러날 뿐이었다.
“저 진짜 놀랐다니까요.”
“오구, 그래써여? 이정 씨 나중에 메이킹 꼭 봐. 지금 이정 씨 표정이 어떤지.”
자신의 표정이 차분한 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기쁜 상황에도 제대로 티 내지 못할 정도라는 건 꿈에도 몰랐다.
되려, 지금 이 상황에도 이정의 심장은 표현하지 못하는 주인의 얼굴을 대변하듯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그냥 지금 거울을 보면 안 될까요?”
“응. 그건 안돼요.”
한참을 그렇게 이정을 놀리던 사람들은 뜨면 안 되는 해가 뜨는 모습을 보고서야 멈췄다.
“헉. 해 뜬다!”
“악! 아직 촬영 안 끝났는데! 안돼!”
촬영하려고 했던 장면의 배경이 한밤중인 터라 해가 뜨기 시작해 누가 봐도 새벽인 지금은 전혀 상황에 맞지 않았다.
“안돼…. 이러면 내일 또 밤샘이잖아….”
“이미 오늘이야….”
누군가가 절망 어린 탄식을 내뱉었다. 놀릴 때는 좋았지만 그 잠깐의 기쁨이 촬영 시간 증가라는 어마어마한 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오늘은 텄다! 일단 접고 몇 시간이라도 자러 갑시다!”
“내일, 아니 오늘 오전 촬영 누구예요?”
“정훈 씨랑 주린 씨요. 11에 8부터 13까지 박물관 씬 찍고 오후 촬영장으로 넘어가야 해요.”
“그럼 9시까지 박물관으로 집합하겠습니다. 해산!”
박 감독이 해산을 외쳤지만, 누구 하나 먼저 가는 사람 없이 정리를 돕기 시작했다.
“주린 씨, 이것 좀 부탁할게요. 이따 오전에 가져와 줘요.”
“또 있어요? 오전 씬 의상 몇 개 안 돼서 차에 자리 좀 남아요.”
다들 피곤하지만. 촬영팀 스태프, 배우 개인 스태프, 그리고 배우 본인들까지도 단 1분이라도 빨리 현장을 정리할 수 있게끔 손을 보태는 것이었다.
“이정 씨는 돕지 말고 빨리 가요.”
“맞아요. 촬영 있지 않아요?”
“밥은 어떻게 하게?”
“네. 8시부터 시작이라 편의점 도시락 사서 가려고요.”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이정은 제외였다. 하나만으로도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 모두가 촬영을 병행하는 이정을 배려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6시 반인데? 얼른 가요, 지금 가야 가는 동안 잠깐이라도 쉬지.”
“이정 씨 한 명 더 있다고 뒷정리 시간 엄청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얼른 가요.”
“그럼 먼저 갈게요. 이따 오후에 봬요.”
“내일 보자고 인사하고 싶은데, 그것도 못 하네. 이따 봐요.”
이정이 인사하자 정리 중이던 스태프들이 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차피 12시간 안에 다시 볼 얼굴들이지만 매번 이렇게 인사를 했다.
“어, 이정아!”
주차장으로 걸어가던 이정이 웬일인지 밖에 나와 있는 우재와 마주쳤다.
“형, 왜 나와 있어요?”
“너 실검 떴더라?”
“아, 아까 봤어요. 드라마 때문에 겸사겸사 오른 거 같던데요?”
이정이 본인의 본명이 아닌 재민의 이름으로 실검에 올랐던 거라고 말했지만 우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네 본명. 프로필도 없는데 어떻게 이름이 퍼졌는지 지금 실검 8위야. 자다 일어나서 깜짝 놀랐다 나도.”
“네?”
우재가 이정에게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보여주었다.
조금 전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그를 놀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정의 ‘ㅇ’ 자조차 찾아볼 수 없었던 실시간 검색어에 이정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 1 드라마 초콜릿 인생은 카카오 86% 초콜릿
― 5 이이정 초콜릿 재민, 초콜릿 재민 본명
― 13 초콜릿 남주 누구
― 17 이수희 작가.
그 외의 키워드들도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순위가 오른 것은 덤이었다.
“그래서 지금 급하게 프로필 신청했어. 원래는 좀 오래 걸리는데 내가 아는 사람한테 부탁한 거라 적어도 점심시간 전에는 등록될 거야.”
“역시 인생은 인맥….”
“네가 지금 그거 감탄할 때야?”
이정이 오디션을 본 것조차도 서 교수, 더 나아가 지원의 인맥을 통해서였다 보니 저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어쨌든, 이슈되고 있으니까 지금 까지 시작하면 한층 더 인지도 다지기 쉬울 거야.”
“그렇겠네요.”
“안규승 역 원래 니리온 박도혁 역이었다며, 그쪽 극성팬들 유명한데 너한테 팬 생기면 욕 좀 덜 먹겠지.”
“아, 그거론 욕먹어도 상관없어요.”
회귀 전 안규승 역을 맡았던 배우가 어떻게 됐는지 뻔히 알면서도 선택한 일이다 보니 그쪽까지는 크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됐는데, 정말 기획사 안 찾을 거야?”
“말했잖아요. 들어가고 싶은 기획사가 있다고.”
우재와 계약을 할 때 그에게는 미리 들어가고 싶은 기획사가 있어 임시로 개인 매니저 계약을 하는 거라고 말을 해 두었다.
“그러니까 그게 어딘데! 이러다 너 골든타임 놓칠 수도 있어!”
“제가 기획사 들어가면 형 잘릴 수도 있는데요?”
“참나, 내가 갈 데 없어서 이러는 줄 알아?”
“그건 아니죠.”
우재가 능력 있는 매니저라는 말은 이미 전해 들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초짜 배우의 로드 매니저 역할을 수락한 게 신기할 정도였다.
“기획사랑 계약하는 것도 다 때가 있어. 지금 간 보다가 뭐 하나 잘못되면 바로 급 낮은 데 밖에 못 간다니까?”
우재가 태평한 이정이 답답하다는 듯 화를 냈다. 이정이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그에겐 당연히 속 터지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처음 이정은 민혁의 계약이 만료되는 내년까지는 계속 소속사 없이 다닐 생각이었다.
“저야말로 이렇게 빨리 인지도가 생길 줄 몰랐는걸요.”
“하긴 첫 작부터 터지는 게 쉽냐만 서도….”
멤버들과 다 같이 차리든, 민혁 혼자 떨어져 나오든 남은 시간은 이정의 회귀 직후를 기준으로 겨우 1년 반이었다.
배우로서 완전히 자리를 잡기엔 짧은 시간이니 그사이에 천천히 인지도를 쌓은 뒤에 민혁의 회사와 계약할 생각이었지만 지금 상황으로는 계속 소속사 없이 활동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이번 주 내로 얘기해 보고, 말씀드릴게요.”
“그러니까, 누구랑?”
“친구요. 그 친구 아마 곧 소속사 따로 차릴 거거든요.”
이정의 말에 우재가 순간 기가 막힌다는 얼굴을 했다.
“너… 아니, 내가 친구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건 아닌데, 기획사 굴러가는데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는 알지?”
“알죠.”
우재보다도 민혁의 기획사에서 이것저것 일했던 이정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친구랑 기획사를 차리겠다고? 무슨 재벌 2세라도 돼?”
“괜찮아요. 걔 돈 많거든요.”
우재의 말에 이정이 잠시 고민하다 말을 이었다. 어차피 민혁과 계약하게 되면 다시 우재와 재계약할 생각이었으니 굳이 숨길 것도 없었다.
“재벌 2세까진 아닌데, 일단 돈은 진짜 많아요. 형도 아는 사람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