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짐작조차 못 했던 폐쇄 이유였다.
이번에도 브리칼트 제국과 연관이 있을까? 만일 그랬다면 지금까지 제국이 멀쩡할 리가 없는데…….
어쨌든 아마 무척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겠지.
대륙을 봉쇄했는데 모두 그 뜻을 따랐을 정도면 아마도 수장 일가의 가족쯤 될까?
‘그렇게까지 애타게 찾아 주는 가족이 있다니. 신기해.’
요이델은 자신의 부모, 요보힐데 공작 부부를 떠올리다가 곧 그만두었다.
“델? 어디 아파? 업어다 줄게!”
“신관님, 괜찮습니까?”
숨이 가쁘고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 변화를 그녀의 호위기사들은 민감하게 눈치챘다.
“저어, 요이델 신관님이세요?”
그때 어디선가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리니 반짝이는 눈빛을 한 성기사들이 쪼르르 줄을 서서 말 걸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꼭 도토리를 쥐고 선 다람쥐들 같았다. 성기사들은 도토리, 아니 그들의 손을 들이밀었다.
“호, 호호, 혹시, 염치 불고하고 축복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요이델 신관님?”
“꼭 요이델 신관님을 만나 뵙고 싶었어요. 정말 영광이에요.”
요이델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눈을 깜빡였다.
“안 돼.”
“너무하다, 휘스테론. 나는 신관님께 여쭸어!”
“아, 닥쳐. 안 되니까 꺼져. 호위기사는 나랑 라이오스고, 너희들은 권리가 없어. 우리 신관님은 땀 냄새 싫어하신다. 근육들은 저리 가라.”
휘스테론은 손목을 휘적거리며 요이델의 앞을 막아섰다. 떨떠름한 표정의 라이오스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도토리를 지키는 수비대 같았다.
“델, 곤란했지? 나 잘했어?”
휘스테론은 뒤를 돌아 작은 소리로 물었다. 요이델은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괜찮아, 휘스! 그 마법은 어렵지 않아. 둘의 동료잖아?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많은 사람을 볼 수 있는 기회기도 하고. 그러니까 해 볼래.”
두 호위기사가 간과한 게 있었으니, 요이델은 친구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붉은 눈동자가 반짝 뜨이고 가슴이 쿵쿵 뛰며 설렘이 가득 찼다. 친해질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요, 요이델 신관님! 그럼 혹시……?”
“알았어, 델. 대신 무리하지 않는 거다.”
그들의 걱정 어린 시선과 기대감에 사로잡힌 수십 명의 성기사들을 바라보며 요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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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이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야.”
“거봐, 보통 일이 아니라니까. 델, 오늘 무리했어.”
요이델은 녹초가 되어 바닥에 쓰러졌다.
처음엔 수십이던 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백 명 돌파, 이백, 삼백……. 아마 이 대신전 안의 성기사에게 모두 축복을 내려 준 것 같았다.
“요이델 님, 저도……!”
“으악! 죽다 살아난 마수들이 따로 없네. 델, 도망쳐. 일단 연무장 쉼터에라도 들어가 있어. 우리가 따돌릴게.”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끝난 줄 알았던 행렬이 다시 이어졌다.
“미안해, 고마워!”
요이델은 둘에게 뒤를 맡기고 가까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자그마한 방으로 몸을 피한 요이델은 깊게 안도했다.
덜컹.
그때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아, 쉼터여서 쉬러 왔구…… 꺄악! 왜 옷을 벗지?’
요이델은 불이 켜지기 전 재빨리 구석으로 숨었다. 그리고 더 깊이 어떤 관물대 안으로 들어갔다.
“와, 신관님의 축복을 받으니까 몸이 안 아픈 것 같지 뭐야.”
“대단하셔, 요이델 신관님.”
‘엄마야. 옷을 갈아입고 있어!’
그랬다. 요이델이 도망치듯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연무장의 탈의실이었다.
요이델은 숨을 죽이기 위해 입을 막았다. 그런데 점차 숨이 막혀 왔다.
기척을 내지 않기 위해 조용히 있다 보니 공기가 부족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습하고 답답한 공간이었다.
‘숨 막혀.’
어둡고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성기사들이 나간 듯 밖의 불이 꺼졌지만, 이번엔 이쪽에서 문이 열리지 않았다.
쿵! 쿵!
이게 왜 안 되지?
요이델은 당혹감에 문을 몇 번이고 두드렸다.
‘엄마, 아빠, 잘못했어요. 배고파요.’
어둡고 좁은 곳에 갇혀 있으니 과거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아니야, 그건 옛날의 일이야. 나는 어리지 않고, 무섭지 않아.’
하지만 의지와 몸은 달랐다.
숨이 너무나 가쁘고 심장이 지끈거렸다. 꼭 누가 발밑 어두움 속으로 그녀를 끌고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불안으로 온몸이 경련하듯 떨려 왔다.
그리고 그 순간, 저미는 고통을 느낀 건 요이델 혼자만이 아니었다.
‘무슨…….’
회의장에 있던 율리시스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일순간 심장이 멎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착각이었나? 아니, 이 불길한 기운은 환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통증일 리가 없었다.
그러니 가능성은 단 하나. 바로 요이델이 느끼는 고통.
‘외부의 고통만 공유하는 게 아니었나?’
요이델과 딱히 감정을 교류한 적 없다. 그러니 페어링의 단계가 더욱 깊어졌을 리도 없다. 그만큼의 마음을 나눈 적이 없으니.
적어도 그가 생각하기에는 그랬다.
태생적으로 강한 몸을 타고난 그의 심장마저 울렁거리게 만드는 고통이라면, 이 느낌의 당사자인 요이델은 더할 것이다.
율리시스는 추적 마법을 사용했다.
‘성기사들의 연무장이군.’
그렇다면 라이오스와 휘스테론이 함께 있을 확률이 높다는 건데 어째서 이런 곤경에 놓인 것인가.
저번엔 오해였다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요이델의 호위기사들을 책문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요이델도 마찬가지였다.
‘감히 저를 움직이게 만든 책임을 지셔야 할 겁니다.’
그 분홍 머리 신관은 여러 번 자신을 종처럼 부린다. 하지만 문책을 하기 위해선 일단 요이델이 무사해야 한다. 그게 순서였다.
율리시스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하? 무슨 일이십니까?”
정기 회의가 아닌, 급한 안건으로 임시 개최된 오후 회의장이 소란으로 일렁였다.
성황인 그가 드물게도 인상을 굳혔기 때문이다. 웬만한 일이 아니면 늘 미소만 짓고 계시던 분이 갑자기 저런 초조한 기색이라니.
그제야 율리시스의 눈에도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지금은 회의 중이었다. 그런데 대신전의 중심인 자신이 자리를 비우려 했다니.
그는 자신의 오판에 놀라 일순 안색을 굳혔다.
“큰일이 생기신 겁니까?”
의장이 그에게 물었다.
평소답지 않은 그의 모습에 주변의 신관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때 옆자리에 있던 마르셀리나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더 중요한 일이 생기셨다면 제가 대신 안건을 살피겠습니다, 성하.”
“……아닙니다.”
어느 순간에도 우위인 가치, 그건 그에게 있어 오로지 성국뿐이었다. 요이델이 곤경에 처했다고 해서 그가 주인 잃은 개처럼 쫓아가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런 위험을 대비해 붙여 둔 게 호위기사 아니었나.
휘스테론과 라이오스는 1기사단 내에서도 최상위를 다투는 실력자다.
별일 아닐 것이다. 외부적인 고통이 따르는 것도 아니고 심장이 잠깐 덜컹거렸던 것뿐.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헤헤 웃으며 나타나겠지. 그 붉은 눈의 신관은 반드시 그럴 것이다.’
그는 소매 밖의 손과 옷 안에 숨은 자신의 팔을 바라보았다. 특별히 상흔이 올라오는 곳은 없다.
율리시스는 냉정히 판단했다.
어느 것도, 그 어떤 사람도 그의 업무보다 우선시될 수는 없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지켰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성하, 정말 무슨 일 있으신 것 아닙니까?”
주위의 신관들이 그에게 염려를 내비쳤다.
“……아무 일도 아닙니다. 회의를 재개하겠습니다.”
율리시스는 다시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어떤 때에도 예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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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이델은 답답한 목을 부여잡았다. 목까지 단단히 채워진 단추를 풀어도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뭐라도 제대로 해내면 좋으련만.’
‘어쩌면 이렇게 바보 같은 답만 내올까. 이런 아이일 줄 알았다면 차라리…….’
점점 안 좋은 기억이 밀려왔다. 요이델은 쪼그려 앉아 온몸을 마구 긁었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차차 눈앞이 흐려졌다. 아주 깊이, 어둡게…….
팅!
그때 손가락에 긁혀서 손끝으로 내몰린 반지가 바닥을 타고 굴렀다.
자그마한 틈새로 빠져나간 반지는 ‘팅, 팅그르르―’ 하고 청아하게 달아나 바닥을 질주하다가 한 남자의 구둣발 앞에서 멈추어 섰다.
율리시스는 그 반지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곧은 손가락이 빙그르르 회전하는 반지를 톡, 친 후 손아귀에 담았다.
“이건…….”
특이한 모양새는 아니지만 분명 본 적이 있다. 그 분홍 머리 신관의 작고 새하얀 손가락에서 보았다.
그는 주인 없이 홀로 있는 반지를 보고 눈을 찡그렸다.
‘마법의 흔적이 남아 있군.’
가까이서 보니 미묘한 기운이 묻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왜 늘 반지를 끼고 다닐까, 의문이 들긴 했다.
율리시스가 소지하고 다니는 반지는 성국의 인장 반지였다. 그에게는 그걸 껴야 할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요이델은 가주가 아니다. 반지는 유품이라고 들었으나, 장식 없이 평범하고 연식이 짧아서 귀족 가문에 내려올 귀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요보힐데 가문 중 누군가의 유품에 애착을 가질 정도로 살가운 관계가 있지도 않겠지.’
그답지 않게 서둘러 오느라 가빠진 숨을 겨우 갈무리하고 반지를 쳐다보았다.
“명하신 대로 사람을 모두 내보내고 건물을 폐쇄했습니다. 마수가 잠입한 게 사실이라면, 어두운 곳 위주로 수색을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생체 기운이 감지되는 곳은 전부 찾아내도록.”
“알겠습니다.”
마수가 침입했다는 거짓 선언으로 회의를 긴급 중지시켰다.
율리시스는 그런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는 곳으로는 다가오지 마십시오.”
“존명.”
율리시스는 반지를 손안에 거머쥐고 급히 이동했다.
탈의실에 들어간 그는 이를 으드득, 짓씹었다.
“젠장.”
탈의실 구석에서 빛의 궤적이 멈췄다. 저 좁은 곳에 들어갔다고? 미치겠군.
기대고 있을까 봐 문을 열지 못하고 거대한 구멍을 뚫었다.
탕!
좁은 관물함의 문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어린아이나 겨우 들어갈 만한 좁고 어두운 곳에 몸을 웅크린 분홍 머리 신관이 있었다.
“이런 때는 제 예상을 엇나가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그는 꿇어앉아 조심스레 요이델의 몸을 안아 들었다.
‘잠들었다. 다행히 큰 이상은 없군.’
율리시스는 그제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참았다가 겨우 뱉는 제대로 된 숨이었다.
그는 땀에 젖은 요이델의 이마를 손으로 부드러이 쓸어 주었다.
감긴 눈과 피부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흥건했으나 개의치 않았다. 결벽증에 가까운 그가 그깟 것은 눈에 제대로 인식하지도 않았다.
그는 치유의 기운을 가득 불어넣어 주었다.
율리시스는 자신이 주운 반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쿵쿵!
그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하, 무슨 일 있으십니까? 혹시 마수가 그곳에 있습니까?”
“아니오.”
그의 손길이 여린 피부를 어루만지자 땀에 들러붙어 있던 머리카락이 서서히 걷혔다.
모두 보였다. 그의 품 안에서 평온해진 표정도, 얕은 숨을 토해 내는 입술도.
아니, 뭔가 평소와 다르다.
그는 반지를 가만 바라보다가 요이델의 손에 천천히 그것을 끼워 주었다. 그리고 침묵이었다.
“……아무도 없습니다.”
요이델을 살피는 그의 눈빛이 무섭도록 침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