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36)
36화
“마르셀리나 님?”
요이델이 마르셀리나를 피하며 며칠을 보낸 뒤, 마르셀리나가 먼저 요이델의 처소를 찾아와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제발 우리 수식 하나만 같이 풀어 봐요, 네?”
요이델도 그녀의 간절한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셀리나 님은 조금 무서울 뿐이지, 위협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요이델 군. 제안이 부담스럽다면 이제 하지 않을 테니까요.”
마르셀리나는 요이델이 내온 따뜻한 차를 마시며 휴우,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요. 많이 놀라게 했죠? 나이를 먹어도 인재를 보면 시각이 뒤집히는 이 성격은 어쩔 수 없군요.”
이후 요이델은 마르셀리나와 다시 수업을 재개했다.
실은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도 있었다. 요이델은 몇 권의 책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이게 뭔지 아세요, 마르셀리나 님?”
“어머, 찢어져 있기도 하고 누더기처럼 많이 헐었네요. 힘들게 엮은 것 같은데…… 표지는 예쁘군요.”
“전대 신수 관리자께서 놓고 간 자료래요.”
“다시 보니 참 훌륭하군요. 세월의 고단함이 느껴져요.”
마르셀리나는 귀한 책이라며 태도를 바꿔 마구 칭찬했다.
“제가 메디아어를 어떻게 읽을 수 있었을까요?”
“어렸을 때 자연스럽게 습득한 언어는 배운 기억이 안 날 수도 있죠.”
“정말요?”
마르셀리나는 당연하다는 듯 상냥하게 웃었다.
“메디아어는 체계가 어려워서 귀족들이 으스댈 겸 많이 배우는 언어예요. 대륙이 워낙 큰 만큼 배워 두면 도움이 되고요. 요이델 군도 그때 터득한 게 아닐까요?”
그녀의 대답에 요이델은 그렇구나, 하고 수긍했다. 요보힐데도 일단 귀족 가문이니까.
“메디아의 교역로가 왜 닫혔을까요?”
“궁금한가요?”
“휘스랑 라이의 나라니까요.”
“소중한 친구들의 나라니까? 하지만 그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답니다, 요이델 군.”
마르셀리나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둘은 그래도 귀족가의 아들이라서 오고 가는 게 자유로운 편이거든요. 교역로와 통행로 모두 닫혔지만, 자국민들은 드나들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정말요? 그럼 다행이에요. 그런데 둘은 언제 이곳에 온 거예요? 마르셀리나 님을…… 편하게 부르던 것 같아서요.”
“건방진 휘스테론이 또 저를 할망구로 부르고 다녔나요? 오호호.”
“앗, 아, 아니에요! 정말로……!”
“휘스테론의 고약한 말버릇은 잘 알고 있답니다. 변명해 주지 않아도 돼요. 걱정 말아요.”
마르셀리나는 잠시 옛날 기억을 짚는 듯했다.
“아마도 꼬마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나는군요.”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항간의 소문으로는, 메디아가 무언가를 잃어버려서 문을 닫았다고들 하죠.”
“잃어버려요?”
“듣기로는 메디아가 잃어버린 게 어떤 ‘보물’이 아니냐고 하더군요.”
보물.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요이델의 귀가 쫑긋 열렸다.
“진짜 금화란 말은 아닐 것 같아요.”
“역시 요이델 군, 맞았어요. 메디아가 물질이 궁핍한 나라는 전혀 아니니 말이죠. 그만큼 소중할 거라는 추측인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정말 금은보화라면 더 놀랍겠네요.”
마르셀리나도 과연 뭘까, 하고 궁금한 듯 중얼거렸다.
“아주 소중한 것이겠죠. 교역로를 닫은 걸 보면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서 그 안에서 찾고 있을 테고요. 하지만 벌써 20여 년이 다 되어 가는 일이랍니다.”
“오랜 세월이네요.”
“아직 찾지 못한 걸 보면 머지않아 다시 문을 열지 않을까 싶네요. 교역로를 닫고 폐쇄성을 유지하는 데에도 기한이 있기 마련이랍니다.”
마르셀리나는 사실 그것보다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다. 요이델을 만나 마구 해 보고 싶었던 것.
‘성하께 주의를 받긴 했지만.’
하일에 비하면 자신은 지식으로 괴롭히는 수준도 아니었다.
“자, 그럼 우리는…… 이걸 풀어 볼까요?”
쿵.
마르셀리나가 가져온 책이 테이블을 진동시켰다.
━━━━⊱⋆⊰━━━━
‘많이 졸렸나 보군요.’
마르셀리나는 어느새 잠든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너무 과했나? 다른 옛 제자 녀석들처럼 도망가 버리면 곤란한데.’
간만에 마음에 쏙 든 귀엽고 풋풋한 신관이었다.
마침 하일이 자리를 비운 이때가 적기였다. 그 녀석이 요이델 군을 빼앗아 가기 전에 자신이 환심을 잔뜩 사 놓아야 했다.
하일만큼이나 학구열이 높은 마르셀리나는 요이델을 바라보며 후후 웃었다.
말랑한 뺨이며, 세상 물정 모르고 잠든 순진한 얼굴이 귀여워서 이때 채 가야 했다.
‘비록 첫 번째 선수는 성하께 빼앗겼지만, 부소속은 서관을 택하게 하고 마리라.’
투지를 불태우던 마르셀리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뭔가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데.
“으……”
배앓이를 하는 듯 요이델의 안색이 묘하게 안 좋았다.
게다가 의식이 없는데도 아랫배를 감싸고 자고 있다.
‘……설마, 그럴 리가.’
마르셀리나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마법 가방에서 마도구를 뒤적거렸다.
마침내 나온 건 진실을 투시하는 쌍안경. 마르셀리나는 그것을 눈에 대고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어머나.’
분수대에서 물이 솟아오른 그날부터 혹시나, 싶었다.
그녀는 대신전 내 모든 마법 연구의 중심, 예민한 관찰력을 요하는 서관의 장답게 여러모로 뛰어난 감각을 가졌으니까. 그런데 설마가 역시나였을 줄이야.
‘성하께서는 알고 계신가?’
짐작하기로 성하는 페어링이 되었다. 그건 곧 특별한 사람이 있다는 뜻.
그런데 그게 요이델인가 하면…… 마르셀리나로서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는 어떤 것도 확언해 주지 않았으니까.
하일은 매번 알아내러 갔다가 빈털터리로 돌아와 터덜거렸다.
마르셀리나는 고민했다.
‘이 아이에게서 성하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도 한데, 착각일 수 있다. 확신하기엔 섣부른 일이야.’
역시 성하는 모르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꽤 강력한 변장 마법인데, 성하께서는 어떻게 알아채지 못하셨을까?
‘가문과 관련된 일일까?’
마르셀리나가 알기로 요이델은 요보힐데 공작가와 거의 절연 상태라고 했다.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요보힐데 가문이 걸어 준 마법이 이렇게 강력할 수 있나?
‘무슨 일인지 몰라도 사연이 있겠지요. 고생이 많았겠어요, 요이델 양.’
마르셀리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요이델의 뺨을 살며시 쓸어 주었다.
비밀을 흘릴 생각은 없었다. 그건 자신의 주제를 벗어난 일이었으므로.
그녀의 눈길이 따뜻하게 요이델을 어루만졌다.
━━━━⊱⋆⊰━━━━
요이델은 넓은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메모를 적었다. 받침이 없어 무릎에 댄 종이는 마구 쭈글쭈글해졌다.
요이델은 끙끙거리고 고민했다. 마르셀리나와의 수업은 즐거웠지만,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웠다.
그래서 요이델은 지식이 쌓인 후에는 꼭 이렇게 메모로 적어 놓았다.
마르셀리나는 요이델을 천재라고 칭찬했지만, 사실은 열 번 정도 수기해야 외워지는 노력파였다.
‘금술.’
마르셀리나가 열과 성을 토해 내며 말했던 주제.
보통 금기 마법은 위험성이 커서 호기심으로라도 잘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런 걸 개의치 않고 남용하는 악의 무리가 딱 하나, 있긴 했다.
‘바로 브리칼트 제국이지.’
요이델은 자신에게 주어진 편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건 공작가에서 온 편지였다.
부모 자식 간의 정도 없었지만, 어쩐지 버리기에는 애매한 그런 편지.
“뭐 해, 델?”
“꺄악!”
요이델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전과 달리 편지를 얼른 태워 없앴다.
“휘스, 라이!”
“뭐 비밀 편지라도 교류했어? 누구? 설마 저번에 러브레터 준 그 귀엽게 생긴 신관?”
휘스테론은 히죽 웃으며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엔 장난기가 넘쳐흘렀다.
연무장에서 두 호위기사의 수련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요이델은 깜짝 놀라 주위를 바라보았다.
성기사들의 시선도 힐끔힐끔 이쪽을 향해 있었다.
요이델은 어쩐지 민망해서 목소리를 낮췄다. 아, 그렇지.
“있잖아, 휘스, 네게 소중한 건 뭐야?”
“나?”
휘스테론은 보랏빛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렸다.
그런 건 생각한 적도 없는 듯했다.
“식사? 굶으면 기분이 안 좋으니까.”
“그건 그렇네.”
요이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런 휘스테론을 한심하게 보는 시선이 있었으니, 바로 라이오스였다. 그는 혀를 찼다.
요이델은 이번에는 그를 불렀다.
“라이!”
“네, 신관님.”
라이오스는 땀에 젖은 연무복을 정돈하며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라, 라이! 제발 무릎 꿇지 말아 줘! 친구인데 존댓말도 안 했으면 좋겠어.”
“명령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아니, 응. 맞아, 명령이야. 그러니까 제발 하지 마.”
“노력해 보겠습니다, 신관님.”
소용이 없을 듯하다. 요이델은 포기하고 일단 질문을 던졌다.
“라이, 있잖아. 라이에게는 뭐가 제일 소중해? 혹시 있어?”
라이오스는 휘스테론과 같은 질문을 받자, 잠시 고민했다.
“저는 신관님의 호위기사이니 신관님이 가장 소중합니다.”
“와. 나도 저런 대답 할걸! 델, 나 다시 물어봐 줘, 응? 어?”
그 말에 요이델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그거야!’
폐쇄적인 메디아는 수장 일가를 따라 대륙 전체가 움직인다. 그 정도로 수장 일가의 권력은 막강했다.
그런데 그들조차 고전하고 있는 것이 있다.
개개인이 모두 뛰어난 능력을 가진 메디아 대륙이 여태 교역로를 열지 않을 정도라면, 그게 대체 뭘까?
‘쉽게 찾을 수 없는 것. 타국에 협조를 요청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고, 한 세력이 찾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
끝나지 않은 보물찾기.
요이델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사람.’
답은 하나였다.
메디아 대륙이 잃어버린 건,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