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Remove the Kind Protagonist’s Mask RAW novel - Chapter (93)
93화
“요이델 님, 거울 좀 보세요.”
시종은 머리를 빗기다 말고 거울을 가리켰다.
거울 안에는 둥글고 순한 눈매를 가진 요이델이 있었다.
눈을 깜빡이자 말간 빨간색 눈동자가 자신에게 눈인사를 했다. 평소랑 똑같은데, 왜지?!
환각 마법이 풀렸나?! 식은땀이 나던 그때.
“신관님, 요즘―”
험상궂게 눈을 찌푸리던 시종들은 어어, 하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점점 더 아름다워지세요. 표정이 훨씬 밝아지셔서 그런가요?! 로사리움 앞에 계시면 누가 장미 밭인지도 모르겠어요!”
“맞아요. 왜 이렇게 귀여워지실까요. 큰일이에요. 안 그래도 다른 관의 시종들이 로사리움으로 오고 싶어서 난리예요.”
“네? 왜요?”
“요이델 님께서 맛있는 빵도 잔뜩 만들어 주신다고 자랑했더니, 부러워서 난리가 났어요! 하하핫!”
시종들은 자랑스럽게 웃으며 저들끼리 주절거렸다.
“곧 대신전이 완전히 개방되는데 모두 우리 신관님을 보고 반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요즘도 고백 편지를 솎아 내느라 바쁘다니까요, 정말.”
그들은 음흉하게 콧구멍을 넓히며 까르륵 웃었다.
“완전 개방이요? 대신전의 내부 공간까지 열리나요?”
“로사리움이나 본관처럼 안쪽의 중요한 곳을 제외하고 전부요. 이제 봄이니까요. 세례식이 열린답니다.”
“성하께서는 세례식 때 한층 더 위엄이 넘치시는데, 이번엔 얼마나 멋있으실까요. 하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구나.
요이델은 새삼 놀라며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았다. 요즘 들어 해가 빨리 뜨긴 했다.
‘나도 세례를 받았을까?’
대륙을 막론하고 귀족들은 일정 나이가 되면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곧 생각을 접었다.
‘저택 밖으로 못 나왔으니까 아마 아니었을 거야.’
기억에 따르면 요이델이 밖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던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
그나마 13살 되던 해, 상점도 식당도 아니라 느닷없이 성국으로 보내졌을 뿐.
그게 첫 자유이자 처음으로 밟아 보는 바깥 땅이었다. 당시 성직자로 보내지기 위해 혹독한 교육을 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백치에 가까웠다고 했었지. 공작 부부가 분명히 그렇게 말했어.’
그러고 보면 과거 자신의 삶과 닮은 점이 있었다.
수녀님들이 문 앞에서 자신을 발견했을 당시, 무더운 여름날이었는데 밖에 쪼그려서 자고 있었다고 했다. 그때가 5살 무렵의 일이었다.
자신은 예전의 기억이 없고 처음엔 말을 잘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때 시종 한 명이 눈을 빛냈다.
“요이델 님도 세례 방법을 배워 보는 게 어떠세요? 왠지 잘 해내실 것 같아요.”
‘세례식…….’
대신전의 완전 개방.
그건 곧 추방된 요보힐데 공작가를 제외한 브리칼트의 사람들도 성국에 올라올 수 있다는 뜻이었다.
‘황제도 행차할 수 있어.’
세례식은 거대한 행사였다. 이곳은 주신 시엘로를 따르는 세계.
국가 원수가 참석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아냐, 황제는 올라오지 못할 거야. 원작에서 그는 제국은커녕, 성 밖으로도 잘 나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요보힐데 외에도 수족은 있겠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
남관의 파멜라는 피곤한 듯 책상 아래에서 눈을 비비고 올라왔다.
요이델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왜 사람들 앞에서 비비지 않는 거예요?”
“예의거든요. 아무리 찌들었어도 그 정도 사회생활은 할 줄 알아요.”
파멜라는 과거 하일이 없을 때 남관에서 만난 신관이었다. 부소속을 권유했던 사람.
“치료술을 배우는데 체력은 치유가 안 되네요…… 하압. 신관님, 오늘은 뭘 물어보려고 오셨댔죠?”
“아니에요, 피곤해 보이니까 이만 갈게요.”
“가지 마요.”
파멜라는 요이델의 손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요이델 신관님이 계시면 예하께서 부러운 눈길을 보내서 어깨가 으쓱하니까, 가지 말아 줘요.”
“파멜라 님은 솔직하네요.”
“그냥 파멜라. 부탁드렸잖아요.”
“……파멜라는 솔직하네요.”
“그럼요. 하일 원로 예하가 더 나이 들면 저리 치우고 제가 남관의 장이 될 거예요. 지켜봐 주세요.”
그녀는 하극상을 저지르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럼 궁금한 게 있어요, 파멜라. 저도 누군가에게 세례를 내려 줄 수 있나요?”
“보통 세례는 원로급과 성하를 제하면 주로 남관의 신관들이 진행해요. 그들이 외지로 파견되거나 초청되거나 하죠. 그러나 나서는 수가 많지는 않아요.”
“왜요?”
“축복 마법은 신성력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조건을 찾기도 까다로운데 시험도 봐야 하고, 특성상 출장도 잦아요. 보수에 비해 업무 강도가 꽤 있죠.”
파멜라는 보수가 아주 중요하다며 검지와 엄지를 동그랗게 말았다.
“게다가 세례를 내렸는데 그 신관이 나중에라도 부정한 일을 저지르면 상당히 곤란해지거든요. 뭐, 미래에 나는 비리를 저지르겠다! 이런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을 나눠 주는 일이니― 막중한 일이긴 해요.”
“아……!”
“만일 전대 원로였던 지오르베니에게 세례를 받았었다고 생각해 봐요. 부정 탄 것 같고, 끔찍하죠.”
“아, 그건 정말 그러네요!”
“그래서 제 기분이 찝찝해요. 제가 받았거든요.”
파멜라는 혀를 쯧쯧 찼다.
요이델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말하며 사색이 됐지만 정작 그녀는 멀쩡했다.
“얼마 전 요이델 신관님에게 기록지를 가져다줄 수 있었던 것도, 제가 과거에는 동관 소속이어서 그래요.”
“그럼 남관은 부소속인가요?”
“아뇨, 완전히 떴죠. 제가 감이 좋은 편이라 지오르베니의 탁한 눈을 이상하게 생각했거든요. 표정이 진심이 아니랄까? 그래도 뭐― 일반 신관들에겐 친절한 자였어요. 수련 신관도 비밀 도서관에 데려가 줄 정도로.”
“파멜라가 갔었나요?”
“아뇨, 이름이 뭐더라. 기억 안 나는 걸 보니 정식은 못 됐던 것 같군요. 전 콩고물이 떨어질 사람들만 기억하는 타입이라.”
“파멜라는 솔직하네요.”
“그래서 요이델 신관님은 절대 놓치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피곤에 바싹 마른 얼굴로 먼지처럼 웃었다. 다소 직설적인 말과 달리 보라색 눈동자는 총명하게 빛났다.
“뭐, 세례받을 때 반대로 가끔 특이한 교인이 나타나기도 해요.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세례를 안 받겠다고 하거나, 아니면 본인도 해 달라고 난리난리를 떨거나.”
“그럼 제재당하지 않나요?”
“봄에 열리는 성 시엘로 세례식에서 그 난리를 피우는 용감한 사람은 없어요. 있다고 하면 제압을 당하― 아! 비슷한 일이 있긴 했네요. 과거의 소동이랄까, 난동이랄까요.”
파멜라는 도저히 생각이 안 나는 듯 머리를 감싸고 끙끙 앓았다.
“칼춤?”
“네?!”
“아아, 칼트 칼트. 브리칼트.”
드디어 떠오른 듯 눈을 부릅떴다.
“브리칼트의 황제와 황태자였죠.”
“그들이 소동을 일으켰나요?”
“아뇨, 두 사람은 주신을 섬겨 세례를 받았고 그걸 지켜보던 브리칼트의 황자 중 한 명이 난동을 일으켰어요.”
“그런데 브리칼트의 황제에게 자식이 있었나요?”
요이델이 알기로 브리칼트의 황제에게는 자식이 없다.
“아, 잠깐만요. 잘못 말했어요.”
그녀는 다급히 말을 멈췄다.
“정확히 말하면 세례를 받은 건 황제가 아니라 전대 황제, 전대 황태였네요.”
“현 브리칼트의 황제는요?”
“그는 받지 못했어요.”
파멜라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그녀의 손짓에 요이델은 귀를 가까이 붙였다.
“지금 황제는 쿠데타를 일으켜서 제위에 올랐어요.”
“그런 자세한 내막까진 몰랐어요.”
“원래 차기 황제로 내정된 사람은 죽은 황태자였어요. 현 황제는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떨거지랄까요? 아무도 그가 황제가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죠. 지금 상태를 보면 성하의 안목이 뛰어나시긴 해요.”
“성하께서 브리칼트의 현 황제와 인연이 있나요?”
“그쪽의 일방적인 악연 취급이겠지만, 있냐 없냐만 따지면 있어요. 성하께서는 당시 황자였던 현 황제에게 절대 세례를 내려 주시지 않았거든요.”
파멜라는 눈을 가늘게 휘며 웃었다.
“전대 브리칼트의 황제는 역대 황제 중 유순한 편이라 성하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어요. 오히려 회복되고 있었죠. 황태자 선정을 놓고 성하께 도움을 구할 정도로요.”
“그때 성하께서 현 황제를 반대했나요?”
“그럴 거예요. 일종의 예언이었죠. 그 황자가 황제가 되면 나라를 망칠 거라는 말씀을 내렸다는 소문이 돌았어요. 다 없앨 거라고요. 부모도, 형제도, 제국도.”
“결국 맞았네요.”
“흥미롭게도요. 뭐 제국은 현재 진행 중이지만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신성 권력의 파급력은 전 대륙을 아울러요. 대신전의 인정은 중요하죠. 그런데 대놓고 무시를 당했으니 얼마나 펄펄 날뛰었겠어요?”
“그래서였군요.”
“지금은 슬슬 악행이 드러나서 몸을 사리고 있지만, 언제까지 갈까요? 분명 사리 분별 못 하고 성하에게 타격을 입힐 만한 걸 노리겠죠. 이를테면 소중한 대상이라든가.”
파멜라는 낯빛을 바꿔 요이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조심하셔야 해요, 성하의 소중한 분.”
━━━━⊱⋆⊰━━━━
율리시스는 눈부시게 하얀 세례식용 정복을 걸치고 요이델을 돌아보았다.
그의 몸에 맞는지 확인한 재단사들이 마무리를 위해 다시 옷을 거두어 갔다.
달칵.
문이 닫히고 방 안에는 둘만 남았다.
“제 반려께서는 관음을 즐기시는군요.”
“아니에요!”
“아니셔서 그곳에 숨어 계셨습니까.”
방금 전의 그는 마치 대천사 같아서 쉽게 다가가기 어려웠다. 물론 진짜 천사를 본 적은 없지만.
어쨌든 세상에서 하얀색과 빛이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 같았다.
그는 조용히 다가온 요이델을 보더니 입꼬리를 올려 매혹적으로 웃었다.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이곳은 성궁에 있는 그의 개인 공간 중 하나.
지난번에 봤을 때와 똑같이 아름다운 성이었지만 집무실과 달리 이 방은 더 커다랬다.
‘이래서 예전의 로사리움이 수수하다고 했구나.’
그의 다용도 공간은 그녀의 침실, 아니 대회의장을 방불케 할 만큼 넓고 높았다.
하지만 그렇게 드넓은 곳치고는 온기 한 점 느껴지지 않았다.
온통 눈처럼 하얗고 발코니는 아예 없다.
저 조막만 한 창문마저 가린다면 금방 암흑이 될 공간 같은, 차갑고 쓸쓸한 방이었다.
‘내 침실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꾸며 주신 거였어.’
응접실도 몇 개나 생겼고, 쓸모 있는 공간도 많아 시종들의 거처도 신건물에 마련해 주었다.
시종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담소 공간은 물론, 정원도 새로 꾸며 그네나 의자 등을 놓아주었다.
침실은 아예 하나의 집처럼 넓고 포근했다. 짙은 녹색과 금색, 연분홍색으로 꾸며 언제든 안정감을 누리게 하는 보드라운 공간이었다.
‘아 참.’
딴생각을 잇던 요이델은 준비해 온 상자를 내밀었다. 율리시스는 단번에 눈치채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실 준비가 되신 겁니까.”
“어떤 결과든 뺨 맞았을 때보다 놀라진 않을 테니까요. 괜찮아요.”
요이델은 밝게 웃었다.
상자에 담아 온 건 요이델의 머리카락이었다. 친자 감지 마법을 할 수 있는 신체의 일부.
율리시스의 안색은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그는 요이델의 볼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아프진 않나 확인하듯 천천히 뺨을 쓸었다.
“아, 제가 잘못 말했나 봐요. 하나도 안 아파요, 성하. 그게 언제 적 일인데요? 장난이었어요. 그냥 고통의 크기로 따지자면 그랬다는 뜻이에요. 아무 의미 없어요.”
“……그렇습니까.”
율리시스는 수긍해 주었다.
예전 기억이라고 잊힐 리 없겠지만 요이델의 의사를 무시하고 싶진 않았다.
그녀가 아니라면 아닌 게 맞겠지.
‘친부모라면 죽일 것이고, 친부모가 아니라면 친부모의 손에 처리될 수 있도록 돕는 게 맞을 것이다.’
만일 요이델이 요보힐데의 친자식이더라도 상관없다. 그리하여 제국 측에서 놓아주지 않겠다면 공작가를 없애면 될 터.
그러나 모든 일은 요이델이 모르게 해야 한다.
“성하, 표정이 어두워요.”
“옷을 맞추는 일은 항상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아주 긴 과정이고 그다지 의미도 없군요.”
율리시스는 상자를 테이블에 놓고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그에게선 어떤 변화가 느껴졌다. 알 수 없이 깊은 감정이 서린 눈빛이었다.
알고 그러는지 모르고 이러는지는 몰라도 당사자인 요이델에겐 보였다.
“왜, 왜요?”
요이델은 뚫어져라 보는 시선에 뒤로 주춤 물러났다. 그는 나긋나긋한 미소를 지은 채 요이델을 바라보았다.
“저희가 그 이후에 아무 말도 없이 어물쩍 넘어간 것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