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touch it, it'd all be profit RAW novel - Chapter (148)
그런데 뭐.
괜찮았다.
지이잉─ 철컥.
인쇄 버튼은 한참 전에 누른 뒤였으니까.
──퓨퓨퓨퓨!
혀를 쭉 빼고 해맑게 웃으며 달려온 탐.
나는 메모지에 서익종의 통화내용을 휘갈겨 써서 이 사과문과 「조합」했다. 「럭키 스트라이크」는 기본이고.
이내 떠오른 메시지.
──「양질 전환」의 권능이 발휘됩니다.
──「미리보기」 스킬이 발동되었습니다!
──결과물을 선택해주세요.
──A. 목휴 프리미엄 A4용지 3매
──B. 서익종의 사과문 초고
──C. 서익종이 해당 통화상대와 주고받은 삭제 메시지 내역
저 사과문에 초고도 있어?
쓰잘데기 없는 데 에너지 낭비하고 있네.
이건 무조건 C옵션이지.
──「양→질 전환」이 완료되었습니다.
주황빛 마법진에서 팔랑거리며 떨어진 종이들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미치겠네.’
서익종의 배후에 있는 건.
바로 >크리스티 홍콩>임을.
‘······어쩐지 영어로 통화하더라니.’
서이수의 >무음>을 폄하하는 비평을 써달라고.
>크리스티 홍콩>에서 서익종에게 의뢰.
서익종은 옳다커니 하며 수락.
‘이 사람은 그걸 또 냅다 오케이해?’
서이수의 스승인 김인철 교수에게 듣긴 했었다. 서익종은 원래 미술계에서 악명이 자자하다고.
‘재능있는 신인작가는 한 번 눌러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랬지.’
그러니 이 제안을 수락했겠지.
그런데 >크리스티 홍콩>은 도대체 왜.
왜 같은 크리스티 지사에 칼을 꽂으려고 하는 걸까.
‘홍콩, 샹하이, 중국, 부호, 그리고 크리스티 서울······ 그렇구나.’
퍼즐은 금방 맞춰졌다.
>크리스티 홍콩>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지사.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수집가들에게 >크리스티 홍콩> 경매는 최고의 이벤트였을 터.
그런데.
올해 >크리스티 서울> 경매가 처음으로 열릴 예정이었고, 작은 지사라고 무시하고 넘어가기에는······.
‘서이수의 존재감이 너무 컸던 거지.’
어차피 돈 나오는 주머니는 같고.
큰손들의 수는 정해져 있다.
그런데 그들이 서울로 향한다면?
홍콩지사의 매출이 떨어질 것도 자명한 사실.
그러니 서이수만 꾸욱 누르면.
서울에 몰리게 될 화제성도, 구매력도 한꺼번에 억누를 수 있다는 생각이었겠지.
앞뒤가 맞아떨어지고.
그 심정이 이해는 된다.
‘그만큼 우리가 위협적이었던 거지.’
그러나 방법이 개떡 같았다.
‘개떡에는 개떡으로.’
나는 둘의 대화내역을 스캔 떠서.
그대로 미스터 빅에게 보냈다.
그리고 다시 굴을 씻으려는데.
바로 전화가 왔다.
[ 이 얼어죽을 놈들! 자네, 이거 어디서 구했나? ]미스터 빅은 전에 없이 흥분한 상태였다.
“연금술이죠.”
[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후, 정말 미안하게 됐네······ 내가 회장으로서 사과하겠네. ]미스터 빅은 겨우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 나도 관련 이슈는 계속 팔로우하고 있었네······ 서울 경매 때문에 자네가 발 벗고 나서고 있다는 것도 알고. 그런데 뒤에서는 내 직원이라는 놈들이 이런 쓰레기 같은 짓을 하고 있었을 줄이야······ 내 책임이야. 미안하네. 정말 미안하네. 내 사과를 받아주게. ]그래, 이게 사과지!
이래야 진짜 마음이 풀리는 거지!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답했다.
“아닙니다. 이렇게 음침하게 작업하는데 회장님이라고 어떻게 알겠어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사과는 받겠지만, 정말 괜찮습니다.”
[ 그래······ 서이수 작가 번호도 좀 줄 수 있겠나? 직접 사과의 뜻을 전하고 싶은데. ]서이수?
그 사람은 신경도 안 써요.
오늘은 제 전화도 안 받더라고요.
다시 조립한 스마트폰, 그거 맛갔다에 100원 겁니다.
“네, 드릴게요. 그런데 작가님이 전화를 받을지 모르겠네요. 워낙 속 편하게 사는 분이라.”
[ 알겠네······ 그런데 이거 홍콩지사 누군지는 모르나? 정말 미치겠군. ]“예, 그것까진 저도 모르겠어요.”
지금 당장은요.
한 번 더 「양질 전환」하면 나오긴 할 텐데.
전부 해고한다고?
어느 수준이 적절할까 잠시 고민하는데.
그런 내 기미를 눈치챈 미스터 빅이 먼저 말을 꺼냈다.
[ 자네도 그렇고, 고 지사장이나 다른 모든 직원들도 그렇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있는데 거기에 훼방을 놔? 그럼 그들의 노력은 누가, 어떻게 보상해주겠나? ]다시 높아지는 목소리.
[ 게다가 실수도 아니고 말이야! 아주 계획적이고, 악의적이야. 앞으로 또 이런 짓거리를 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어디 있겠나? ]“그건 그렇죠. 이번이 처음이 아닐 수도 있고요.”
[ 그러니 말이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작가를 건드려? 미쳐도 단단히 미친 새끼들! 이 바이러스 같은 놈들! ]아······ 노로바이러스 같은 놈들?
수화기 너머, 미스터 빅이 마구잡이로 내뱉는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굴 박스를 일별했다.
[ 자네, 내가 제일 많이 듣는 욕이 뭔지 아나? 예술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거야. 돈벌이로만 여긴다는 거지. 나도 동의해. 내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인데 어떡하겠나? ]정말이지 이렇게 화난 모습은 처음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 우리 크리스티는 예술가들을 지켜주고, 키워주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회사가 되어야 해. 그게 내 경영 철학이야. 그런데 이 빌어먹을 놈들이! ]그래, 그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동해바다가 나타난 것처럼 속이 뻥 뚫리는 기분······.
미스터 빅.
저는 당신이 너무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런데 잠깐 진정해봐요. 숨도 좀 쉬고요.”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저러다 쓰러지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였으니까.
[ 후우, 그래······ 그래야지. ]“네, 잘 밤에 시나몬 롤을 3개씩 드신다면서요. 건강 챙겨야죠.”
[ 그런 것도 기억하고 있나? 크하하······ 사실 어제도 2개 먹고 잤어. ]“이제 1개로 줄이시죠.”
[ 허, 1개? 자네도 이혼을 4번 정도 해봐! 1개로 그 외로움을 채울 수가 있나. 절대 안 되지. ]크크, 이 아저씨 미치겠네.
[ 그나저나 그 한국 교수는 어떻게 할 건가? ]아, 서익종.
“그 사람 소속 학교랑 평론지에 중요 메시지만 발췌해서 보내려고요. 대충 익명 제보로 돌리고 돌려서.”
[ 크하하! 그거 재밌겠군. 나중에 결과 알려주게. 참, 그리고 서이수 작가 말인데. ]은근하게 운을 띄우는 미스터 빅.
[ 어떤 작품들을 경매에 낼지는 정해졌나? ]역시 그게 궁금하시겠지.
나는 씨익 웃으며 답했다.
“11월이 어떤 달이라고요?”
[ 황금의 달이지. ]“그쵸. 그러니 황금을 내놓을 예정입니다.”
[ 아주 반가운 소식이군. 그럼 넘버 9인가? ]“그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고요.”
[ 다른 거? ]“예, 큰 거 하나 옵니다.”
언론 플레이.
내부징계.
투서.
모두 다 효과적인 대응이겠지만.
역시 가장 확실한 건 바로 무력시위.
“아마, 증명할 거예요.”
이 모든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대작이 숨을 고르고 있었다.
*
다음날, 어뮤즈 타워 앞.
나는 로버트 존슨에게 말했다.
“출장 연장, 성공하셨나 봐요?”
“예, 무조건 연장이죠. 언제 또 올지 모르는데 한 번이라도 더 먹어야지.”
한 손에는 토스트, 다른 손에는 컵 떡볶이.
로버트 존슨은 콧김을 내뿜으며 야무지게 저작운동을 이어갔다.
길거리 음식을 추천해달라길래 사드렸더니.
아주 입맛에 맞았던 모양.
“그런데 그거 다 드셔야 갤러리 입장 가능한데요, 편집장님.”
“그럼요, 그럼요. 잠깐만 기다려주시죠.”
로버트는 남은 것들을 몇 입에 해치우고는.
깨끗하게 손도 씻고, 옷매무새도 정성스레 정리했다.
표정도 진지해진 게, 뭔가 경건한 마음으로 전투를 준비하는 느낌이었고.
셔츠 앞주머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든 로버트는 비장하게 말했다.
“올라갑시다.”
“넵.”
위이이잉─
띠잉─
7층, 어뮤즈 아트 갤러리.
새로 만들어 붙인 포스터가 우리를 맞았다.
──────────
《서울의 조각들》
서이수, 멜라니 플로이드 2인전
──────────
그 포스터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세계적인 재능.
그 둘이 함께 준비한 전시회가 내 갤러리에서 열리다니.
‘멜라니도 진짜 대단하지.’
서울에 체류하는 동안 서이수에게 자극받았다며 바로 작품 하나를 만들어냈다. 뉴욕에서 >무음 10>을 그렸던 서이수처럼.
‘둘이서 안 어울릴 거 같은데 희한하게 잘 어울려. 말도 안 통하면서.’
어쨌든 나는 그걸 전시회로 열면 어떻겠냐고 물었고, 둘은 흔쾌히 OK했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전시회 오픈에 앞서.
나와 로버트가 제일 먼저 보기로 했던 것.
포스터를 바라보는 로버트는 무척 기대하는 눈치였다.
‘하, 궁금하네.’
작품을 만들 시간도, 전시를 준비할 시간도 촉박했을 텐데. 과연 잘 마무리했을지.
서이수의 >월광>은 어떻게 또 달라졌을지.
조금은 불안하고.
그래서 더 두근대는 마음.
“들어가시죠.”
나는 갤러리로 걸음을 옮겼다.
진짜로 문 열고 뛰어내릴 겁니다!
밤늦은 시간.
샤워를 마치고 나온 이연수 여사는 챠르르 떨어지는 가운을 입고 화장대에 앉았다.
그리고 얼굴에 톡톡톡, 영양크림을 발랐더니.
불현듯 떠오르는 고운 얼굴.
‘이것도 우리 채연이가 준 건데······.’
답답한 마음.
이연수는 침대맡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
“왜 불러?”
안경을 걸쳐쓰고 뭔가를 읽고 있던 정기현.
이연수는 못마땅한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당신은 이 세상이 천년만년 다 본인 뜻대로 굴러갈 것 같죠?”
“뭔 소리여, 갑자기.”
정기현이 시큰둥하게 답하자 이연수는 화장대에서 아예 허리를 돌려 앉았다.
“우희도 절대 안 된다고 했다면서요.”
“또 그 이야기야? 흐이구.”
“그럼 안 하게 생겼어요? 우희가 도와달라고, 제발 도와달라고 그럽디다. 우리 연이, 좋아하는 사람 있다잖아. 당신이 왜 거기 끼어들어서 애먼짓을 하고 있어요, 정말.”
정기현은 이불 위에 자료를 탁 던져놓으며 답했다.
“하, 거참······ 당신도 김 대표 알잖아. 김 대표가 자기 마크 딱 새긴 놈들, 죄다 난놈들밖에 없어. 아니, 된놈에 난놈들이지. 지금 전략기술원에 있는 박영수 실장 알지? 그리고 우리 민 서방이랑 저기 기획조정실에─”
쾅─
이연수는 크림통을 세차게 내려놓았다.
“좋게 좋게 말하려고 했더니······ 그렇게 마음에 들면 당신이 만나고, 당신이 결혼해! 왜 우리 연이한테 갖다대냐고.”
“아니, 우리 새끼들 중에 막둥이가 제일 참하고 제일 예쁘니 그런 거지. 참한 젊은이들끼리 마음 맞아서 지내면 좀 좋아?”
“그건 짝이 없을 때 얘기지, 지금은 만나는 사람이 있다잖아요.”
“그 친구도 만나는 처자 있대. 쌤쌤이지, 뭐.”
“······뭐요?”
이연수는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데.
정기현은 안경을 휙 벗으며 말했다.
“진성그룹 그 건너건너 손녀딸 있잖소. >마켓킬리> 대표로 있는.”
“뭔 소리예요?”
“그 둘이 만난다나 봐. 그러니 내가 그걸 어떻게 가만두겠어? 김치호 마크 붙은 놈이 진성에? 하이구, 어디 넘볼 걸 넘봐야지······.”
참다 참다못한 이연수.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이 영감이 참말로 노망이 들었나! 연이가 당신 사리사욕 챙겨주는 꼭두각시요? 걔도 다 큰 성인이고, 자기 삶이 있는데 지금이 쌍팔년도도 아니고 그게 말이에요, 방구예요?”
이렇게 노발대발 화가 난 부인은 너무 오랜만이라 정기현은 적잖이 고민이 됐다.
그 이야기까지 꺼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걸 들으면 이 사람이 화를 내도 10번은 더 낼 텐데······.
그런데 안 그러면 도저히 자신의 뜻을 몰라줄 것 같아서 대차게 질러버렸다.
“그 친구가 수현이를 똑 닮았다는데······ 어떻게 그냥 넘어가겠소.”
“······뭐요?”
역시나.
이연수의 얼굴은 일순간 싸늘하게 굳었고.
정기현은 허리를 받치던 베개를 빼내고, 그대로 침대에 돌아누웠다.
그러자 등 뒤에서 들려오는 서늘한 목소리.
“당신이 무슨 낯짝으로······.”
“······.”
“그 아이 이름······ 입에도 담지 말라고 내가 누누이 일렀는데······.”
“몰러.”
정기현은 대충 대꾸하고 말았고.
차박차박, 멀어지는 발걸음소리만이 들려왔다.
“······주무세요.”
쾅──!
그렇게 홀로 남은 방.
창가로 쏟아지는 달빛 아래.
정기현은 그리운 얼굴을 떠올렸다.
‘어떻게······ 잘 지내고 있냐, 이눔아. 안부 인사 한 번 없냐.’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는 괜찮아졌나 싶다가도.
‘썩을 놈······.’
이미 문드러져 찢어진 신문지가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돌아올 순 없었다.
정기현은 폰을 집었다.
그리고 엄지를 놀렸다.
사랑이라는 것도, 인연이라는 것도.
어차피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되는 것.
[ 계획대로 진행시켜. ]자신은 혹시나 하는 기대로.
접점을 만들고, 다리를 놓아줄 뿐이었다.
그것이 때늦은 미련과 집착일지라도.
*
경희대학교 캠퍼스.
정우희는 길가에 잠시 차를 세웠다.
‘연애조작단도 아니고 이게 뭐야.’
초조한 마음에 운전대만 만지작거리다가.
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지금 도착했어. 곧 끝난댔지? 엄마랑 잠깐 이야기하자. ]이윽고 백미러에 보이는 남다른 인영.
역시, 하나뿐인 딸이라 그럴까.
너무 파릇파릇해서 볼에서 새싹이 자라날 것만 같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대번에 눈에 띄는 아이였다.
철컥─
그렇게 조수석에 올라탄 민채연은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왔어? 촬영은 잘 끝났고?”
“네, 잘 끝났어요.”
다시 시작된 서울 촬영.
정우희는 집에서 대화할 기회를 노렸지만.
민채연이 새벽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는 터라 얼굴을 보기도 어려웠다.
잠시 마주쳐도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쌩.
정말 촬영 일정이 그런 건지.
아니면 일전에 말한 선 자리 때문인지······.
사실 정우희도 그 답은 알고 있었고.
결국 촬영이 일찍 끝나는 날을 캐묻고 캐물어 이렇게 직접 차를 몰고 왔던 것.
“밥은 먹었어?”
“네, 엄마는 드셨어요?”
“응, 먹었지.”
그러나 아무리 예의바르게 답해도.
민채연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가을 찬바람이 불고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