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touch it, it'd all be profit RAW novel - Chapter (147)
신유원.
화장실에서 이루어지는 작당모의만큼은.
둘째가라면 서러운 남자였다.
*
한편.
현장에 와있던 문화부 기자들은 죄다 로버트와 멜라니에게 인터뷰를 따갔고.
덕분에 멜라니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있었다.
“유원······ 이제 끝난 거지?”
“어, 여기서는.”
“여기서는?”
“그 사이에 연락이 이렇게나 왔네?”
나는 폰을 들어보였다.
거기에는 어디 일보 누구누구입니다, 인터뷰를 원합니다, 라는 메시지가 줄지어 쌓여있었다.
둘 다 한국에 적이 없는 상황이라.
기자들에게 내 연락처를 줬더니 어느새 업계 전체에 풀어버린 모양이었다.
“오, 마이 가쉬······.”
입을 다물지 못하는 멜라니.
나는 손을 내저었다.
“이거 전부 다 받진 않을 거야. 멜라니는 많아봤자 1, 2개? 피해 안 가게 최대한 조율해줄게.”
“어······ 좋아. 그래주면 고맙지.”
“아냐, 우리가 고맙지. 아까 말을 아주 청산유수로 하던데?”
내가 서이수만 보아와서 그럴까.
천재는 어눌하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그런데 멜라니의 질문 공세는 그런 선입견을 와장창 깨버릴 정도로 논리적이고, 정교했다.
“내가? 다행이네. 나는 혹시 감정을 주체 못하고 격하게 이야기하진 않았나 걱정하고 있었어. 듣고 있는데 워낙 화가 나서 말이지······.”
“전혀, 너무 잘했어. 그 사람, 찍소리도 못하고 가만히 듣기만 하던데?”
나는 멜라니에게 엄지를 들어주고.
로버트에게 물었다.
“로버트 씨는 어떠세요? 앞으로 언론 인터뷰 괜찮으시겠어요?”
역시나 로버트는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워 하는 눈치였다.
“인터뷰? 좋죠. 아직 할 말이 두 톤은 쌓여 있어요.”
하긴 평론가 짬밥이 어디가겠나.
본업이 본업인지라, 로버트는 언론을 다루는 솜씨가 거의 만렙 수준이었다.
무례한 질문은 잘라내고.
애매한 표현 없이 단어도 정확하게 구사하고.
“좋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여론은 빠르게 뒤집혔다.
그 포문은 인터넷 기사들이 열었다.
페이지뷰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할 기세.
언론사는 손바닥 뒤집듯 보도방향을 뒤집었다.
타블로이드지만 그런 게 아니라.
유명 일간지도 마찬가지였다.
[ >문화산책> 서이수와 멜라니 플로이드··· 2020년대 현대미술을 이끌어가는 韓·美 양대산맥 ]이제 와서 한미 양대산맥이라니, 이 잡것들!
[ >칼럼> 비온 뒤 땅 굳듯··· 논란 딛고 피어난 걸작, 무음 ]아니, 처음부터 비가 안 내리면 더 좋잖아!
비 안 와도 땅은 원래 딱딱하다고!
그리고 9시 뉴스에서는.
어뮤즈 갤러리로 찾아와 로버트 존슨의 인터뷰를 따갔다.
물론 전문적인 해설은 쏙 빼놓고.
자극적인 멘트만 내보냈지만.
[ 로버트 존슨 / 아트뉴스 편집장 ] [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미국에서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재능이라고 평가받는 작가예요. 그런데 자국에서는 폄하하기 바쁘다니. ]로버트 존슨이 이 뉴스를 보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멜라니 플로이드의 경우에는.
조금 더 부드럽고, 편안한 자리로 잡아줬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가장 유명하고 전문적인 유튜브 채널, >알아두면 쓸데많은 문화예술>.
구독자 37만짜리였지만.
한국 전시회, 박물관, 갤러리 수요를 책임지는 힙스터는 다 모이는 채널이었다.
물론 서익종의 강연 이후로.
멜라니는 평론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삼가기로 했다.
다만, 그녀는 서이수의 찐팬.
무슨 얘기를 하든.
서이수에 대한 언급, 샤라웃이 빠지지 않았다.
[ 그래서 멜라니 작가님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실까요? ] [ 많죠. 정말 많죠. 항상 바뀌구요. 그런데 요즘은 서이수 작가에게 완전히 빠져있어요. ] [ 오, 그렇군요. 전시도 보셨나요? ] [ 그럼요! 이수 전시 보려고 한국 왔는데요. 사실 매일매일 보러 가요. 봤는데 또 보고, 봤는데 또 보고. 그런데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요. 어떤 날은 가슴이 뛰고, 어떤 날은 눈물이 나고. 개인적으로 자극도 많이 되고요. ] [ 그렇군요. 그런데 방금 이수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 [ 맞아요, 금방 친구 됐어요! ] [ 와아, 천재와 천재는 통한다는 건가요! ] [ 천재······ 이수는 몰라도 저는 아니에요. ] [ 겸손하시네요. ] [ 아뇨, 진심인데요? ] [ 예? 하하, 농담으로 알겠습니다. ] [ 저기요. ] [ 예? ] [ 저 진심이라구요. 그런데 조만간 따라잡으려고요. 무조건. ]호스트의 얼굴이 굳고.
멜라니의 두 눈에 에메랄드빛 광기가 번뜩이는 순간.
이 영상의 ‘가장 많이 본 장면’이었다.
‘크큭, 저 사람도 정상은 아니야.’
그렇게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복권 운동.
커뮤니티 여론이 뒤바뀌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 서이수 거품이라고 까던 ㅈ문가들 다 어디 갔음? 모뎀에 벼락 맞음? ]└모뎀ㅋㅋㅋㅋㅋ
└이 새끼 예전 글보기 하니까 자기도 깠더만
└ㄹㅇㅋㅋ 태세전환 우두루급
[ 퍼거슨 오늘도 1승 적립 ] [ 중립기어 박길 잘했지;;; 모르면서 까는 새끼들 진짜 ㅈㄴ 많음 ]└ㅇㅇ피카츄 배는 진리임
└삐까ㅏㅏㅏㅏ
[ 일개 그림쟁이: 봤냐? 외쳐 갓이수! ]└ㅋㅋㅋㅋㅋㅋㅋ
└ㅇㅈ 너는 미술해라 계속해라
[ 근데 솔직히 국뽕 참… 누가 입 잘못 털었다고 미국 평론가랑 작가가 직접 와서 까버리네 ㄷㄷㄷ 서이수가 얼마나 대단하면… ]└우리흥을 조기축구회 아저씨가 깐 거랑 똑같은 거지ㅋㅋㅋㅋ 그래서 해뤼케인이랑 무버지 돌연 한국행ㅋㅋㅋ
└비유 뒤져따ㅋㅋㅋ
└근데 그 조축 아재는 왜 암말없음? 사과도 없고?
└적당히 숨어서 지내다가 잊혀질 만하면 다시 튀어나오겠지 딱 3개월 본다
그렇게 커뮤니티를 둘러보다가.
나도 댓글 하나 남겼다.
[ 그거 앎? 서이수 작품 조만간 서울 경매에 나온다고 함. 추정가 200억. ]그러자 바로 우수수 달린 대댓글.
└200억? ㅗㅜㅑ
└아 어제 호빵만 안 사먹었어도 사는 건데
└서울에서 경매도 함?
└200억 지를 사람이 있음?
└회장님들 컬렉션 어마무시한 거 모름? 그분들이 사겠지
나는 히죽 웃으며 폰 화면을 끄고.
탐을 불렀다.
이제 배후를 캐낼 차례였다.
*
한남동 저택.
오늘따라 밤하늘이 맑았다.
정원으로 느릿하게 떨어지는 달빛을 눈으로 훔칠 수 있을 정도였으니.
“아쉽구만.”
진성그룹 총수, 진승건은 창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툭 던지듯 말했다.
“좀 싸게 사나 했더만.”
반대편에 앉아있던 >지니움>의 아트딜러, 허진태는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으로선 오히려 값이 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르니까! 요 며칠 나한테 떠보는 양반들이 많아졌어. >무음>, 그거 얼마쯤 보고 있냐고. 그 서익종인가, 에밀레종인가 하는 나부랭이는 왜 허튼 소리를 지껄여가지고!”
“맞습니다.”
허진태는 떠올렸다.
밤늦게 찾아갔더니 바로 바람을 맞히고.
다음날 새벽에 자기 집앞에 불쑥 찾아왔던 그 희한한 자의 얼굴을.
그리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사실, 처음부터 승패는 결정되어 있었죠. 회장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놈, 보통 놈 아닙니다. 이렇게까지 판을 키울 줄은 몰랐지만요.”
허진태 입장에서는.
반박 기사 혹은 다른 평론가의 반론 정도만 예상했었다. 그 과정에서 혹시나 자신에게 도와달라 손을 내밀면, 떡고물을 챙길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무슨, 멜라니 플로이드에 >아트뉴스> 편집장······ 자신조차도 섭외할 수 없는 빅네임들을 불러모았다.
명분과 정론.
거기에 든든한 조력자까지 얻었으니.
여론이 서익종에게 등돌리는 건 당연한 처사.
안 그래도 평판이 좋지 않았던 사람인데.
평론으로 밥 벌어 먹고 살기는 글렀다.
‘아주 대단해······.’
나름대로 고평가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조차 과소평가였다.
서이수도.
>무음>도.
그리고 신유원도.
“쯧, 됐어. 미술품은 제값을 주고 사야지.”
진승건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방석을 고쳐앉았다.
“그런데 >무음> 중에서 어떤 작품이 경매에 나오기로 했는지는 알아냈나?”
진승건의 오랜 수집철학.
작가의 대표작은 가격을 묻지 않고 수집한다.
그러니.
그가 가장 원하는 건 바로 >무음 9>이었고.
허진태는 활짝 웃으며 화답했다.
“예, >무음 9>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 잘 됐군. 얼마쯤 될 거 같애?”
“흠, 아무래도 국내 경매도 아니고 크리스티 경매라······ 예상이 쉽지 않습니다. 해외 구매자들까지 달려들 가능성이 있어서.”
“그것도 좀 알아 봐.”
“예,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이수의 다른 작품이 하나 더 나온다고 하는데······ 아직 비공개였습니다. 뭐, 구색 맞추기 수준이 아닐까 싶-”
“잠깐, 쉿.”
진승건은 허진태의 말을 끊더니.
서재 중앙, 초대형 TV의 볼륨을 높였다.
스크린 속.
구불구불한 금발의 여인이 말했다.
[ 그래서 조만간 이수랑 합동전시회도 열 예정이에요. ] [ 오오오! 대박 소식! 언제, 어디서요? ] [ 그건······ 전부 비밀입니다. ] [ 아, 저만 알려주세요! 저한테만이라도! ] [ 아하하핳! 어쨌든 거기에서 새로운 작품을 좀 공개할까 해요. 저도, 이수도. ]새로운 작품?
진승건과 허진태는 빠르게 시선을 교차했다.
아아, 님은 갔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데 톡이 하나 왔다.
──────────
[세인트 한강포레] 택배보관 안내받는 분: 신유원
보내는 분: LT홈쇼핑 충남제일수산
내용: 박스 1
요청 시 세대 배송
직접 수령 시 2F 컨시어지 데스크 내방 요망
──────────
‘히힛, 드디어 왔구나.’
군침을 흘리며 바로 2층으로 향했다.
택배 올 때마다 이렇게 알려주고, 집앞까지 가져다주기도 하고, 참 서비스도 좋다.
‘탄저균이 배달돼도 안전하겠어.’
아니지, 탄저균은 박스를 여는 순간 사망이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했다.
“신유원, 택배 찾으러 왔습니다.”
“예, 여기 있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하얀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어? 오랜만입니다.”
“아아, 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에 먼저 타있던 사람은 구면.
바로 박소정 결혼 사회를 봤던 국민배우 이세형이었다.
그도 날 기억하는지, 양손으로 박스를 받쳐든 모습을 보고는 알아서 37층 버튼을 눌러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무슨 녹음기 튼 것처럼.
“저도 한 2, 3층만 높으면 좋겠는데, 하하.”
······34층에 사는 게 진짜 어지간히 한으로 남았나보다.
“에이, 37층이나 34층이나 거기서 거기죠.”
“하하, 그래도 아쉬워서 말입니다. 그나저나 뭐 맛있는 거 시키셨나 봅니다.”
내 박스를 가리키는 이세형.
“아, 이거 굴입니다. 갑자기 땡겨서요.”
“아하, 가을은 굴의 계절이죠. 그런데······ 좀 위험하지 않습니까?”
“자연산이라서 괜찮을 거예요.”
“그래도 영······.”
이세형은 은행 CF라도 찍는 것처럼 송충이 같은 눈썹을 높이 처올렸다.
아니, 걱정하들들 마세요!
「양질 전환」한 다음에 「매의 눈」으로 찾아내면 안전하게 먹을 수 있으니까. 먹고 아파도 내가 아파요.
“하하.”
그저 멋쩍게 웃었더니 이세형이 말했다.
“참, 요즘은 제가 촬영하느라 바쁩니다만 조만간 26층에서 쇠질 같이 하시죠.”
26층?
아아, 피트니스 센터.
그러게, 거기 수영장이랑 스크린 골프도 한 번 이용해줘야 48억 뽕을 뽑을 텐데.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이 사람이 촬영 중이라는 영화가 그거 아닌가?
한기수 감독이 찍고.
>KJ E&M>에서 투자, 배급하고.
그 구도훈도 40억 박은 「초특대 불운」 작?
‘경쟁자였네.’
요즘 뉴스에서 재벌 3세 주가조작 사건 수사가 재개됐다느니, 가속화됐다느니 말 많던데.
그러다 영화 엎어지는 거 아니나 몰라.
촬영장 분위기도 뒤숭숭할 텐데.
슬쩍 귀띔해 줄까?
‘그래.’
나는 웃으며 말했다.
“예, 그런데 굴 좀 드릴까요? 진짜 탱글탱글한 게 맛있어 보이던데. 굴 먹고 쇠질하면 더 좋지 않겠어요?”
“으으응, 사양할게요. 그럼 들어가세요.”
이세형은 검지를 들어 까딱거리고는 엘리베이터를 나섰다.
‘그래, 사양하는 사람 안 잡아요.’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슬슬 먹을 준비를 하려는데.
띠링─ 메시지가 왔다.
[ 주해림: 대표님, 서익종 교수 트위터 확인 바랍니다. ]서익종 트위터?
사과문이라도 올렸나? 아니면 반박문?
바로 폰을 꺼내 확인했다.
[ 안녕하세요, 주선대 미술대학 명예교수 서익종입니다. 근래 서이수 작가님의 >무음> 연작, 그리고 제 비평에 관하여 약간의 소요가 있었음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소요?
시작부터 개판이네.
나는 초장 용기를 내려놓고,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정말 좋은 말인데 당신한테 어울리는 표현은 아닌 것 같은데?
[ 그럼에도, 제가 서이수 작가를 폄하한 것으로 곡해될 여지가 있었음을 인정합니다. 그로 인해 혹여 기분이 상하거나 오해하신 분들이 계셨다면 심심한 사과의 뜻을 전합니다. ]폄하한 것으로 곡해될 여지?
기분이 상하거나 오해하신 분들?
심심한 사과?
이 사람이 진짜 돌았나.
[ 그러나 일련의 소요를 겪으며 저 또한 가슴이 아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덕분에 배운 점도 많았습니다. 제 의도는 아니었지만,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기가 차서 바로 탐을 불렀다.
[ 그와 별개로 저에 대한 인신공격, 모욕, 명예훼손은 가급적 삼가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천고마비의 계절, 풍부한 독서와 풍성한 밥상으로······ ]이 양반, 사과문도 참 예술적으로 쓰시네.
아니나 다를까.
댓글 타래는 난리가 났다.
어우, 속이 시원하네.
더 보려고 페이지를 새로고침했다.
그런데.
‘뭐야, 어디 갔어?’
완전히 사라진 트윗.
순식간에 달린 댓글들에 지레 겁먹고 삭제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