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you touch it, it'd all be profit RAW novel - Chapter (146)
뉴욕 미술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천재작가.
멜라니 플로이드였다.
“로버트!”
“오, 멜라니! 오랜만이군.”
둘은 구면이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뉴욕 미술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니.
“그러게요, 비엔날레 이후로 처음인가? 그런데 서울에서 다시 뵐 줄은 몰랐네요. 부럽네요, 이 대단한 편집장님을 여기까지 소환하다니.”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지.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야?”
멜라니는 나를 힐끗 보며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다.
“저는······ 이수가 휘트니에서 전시할 때, 유럽에 가있어서 못봤거든요. 그래서 전시회 초청한다길래 왔죠. 예전부터 한국도 와보고 싶었고. 그런데, 저 사람한테 완전히 속았잖아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던데요?”
아니, 나한테 속았다니.
어제 나 몰래 갤러리 들렀다가 딱 걸린 사람이 누군데!
‘하마터면 만나지도 못하고 미국으로 다시 보낼 뻔했지.’
그치만 멜라니 플로이드는 사람이 뭐라고 해야 할까, 플로리다산 오렌지 같았다.
엄청 붙임성 있게 다가와서 하루만에 급속도로 친해졌다.
······물론 나 말고 서이수랑.
>무음> 전시를 보고는 어도러블, 고져스, 오마이가쉬, 난리를 치던 멜라니는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 서이수랑 얘기 좀 해볼 수 있어? ]그래서 통화 연결을 해주고 통역까지 해줬더니.
[ 진짜 너희 집에서 잔다? ] [ 응. ] [ 내일도? 내일 모레도? ] [ 상관 없어.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는 걸까.
그렇게 둘은 말을 섞은 지 5분만에 룸메이트가 되었다.
‘이수 씨가 잘 챙겨줬으려나······.’
워낙 내면 세계에만 충실한 사람이라.
나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멜라니에게 물었다.
“멜라니, 잠자리는 안 불편했어?”
“그럼, 이수가 침대까지 내줬는데. 자기는 아무데서나 자면 된다더니 거실 바닥에 이불도 안 깔고 자더라고.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알아? 이수는 내가 나올 때까지도 계속 자고 있었는데 나는 한숨도 못잤어, 아하핳!”
“시차 때문에?”
“응, 그래도 이걸로 버텨야지.”
멜라니는 어뮤즈 커피를 흔들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우선, 한 가지만 확실히 할게. 난 표현하는 사람이지, 평가하는 사람이 아니야. 당연히······ 누군가의 비평에 간섭하는 것도 질색이고.”
뭐야, 서이수랑 둘이서 짰나.
멜라니는 서이수가 했던 말과 거의 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그치만 이수 작품에 대해서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아하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열받아서 말이지.”
그 발랄하던 눈매가 날카롭게 돌변했다.
“그 비평에는 존중이 부족하다고.”
잠깐 잊고 있었지만.
멜라니 플로이드는 경매에서 낙찰된 작품을 그 자리에서 바로 파쇄할 정도로 미친 사람.
“존중하지 않는 상대를 존중해주는 것만큼 병신짓거리도 없더라고.”
어느새 에메랄드빛 맑은 눈의 광인이 되어.
허공을 응시하며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로버트 존슨도 그에 격하게 동의했다.
“나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동원할 생각이야. 이미 뉴욕에서는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작가를 꼽을 때 서이수의 이름을 빼놓을 수가 없어. 그런데 모국에서는 이게 무슨 퍼킹, 쓰레기 같은 협잡질인지.”
옳소, 옳소!
굳이 힘들게 설득하지 않아도 이미 뜻을 모으고 있는 이런 아름다운 시츄에이션이라니.
나는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도원결의는 이쯤에서 마치고······.”
“왓? 복숭아밭?”
아, 말이 통한다고 뜻까지 통하는 건 아니네.
나는 헛기침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두 분이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저희 작가님을 도와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우선 제 생각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회의.
우리는 어렵지 않게 뜻을 하나로 모았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같이 식사나 하실까요? 제가 한국 불고기, 일품으로 하는 곳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런데 로버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조심스럽게 묻는 멜라니.
“유원, 너도 봤지?”
“뭘?”
“이수 작업방에 있던 작품.”
아······ >월광>.
“봤지. 입을 떡 벌리고.”
그러자 멜라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고마워. 진심으로.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그 작품을 못 봤을 거고, 그걸 못 봤다면 나도 이렇게 불타진 않았을 테니까.”
서이수의 집.
그 아파트에서는 뭔가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
국립중앙박물관 대강당.
>현대미술로의 초대> 컨퍼런스.
거대한 스크린을 뒤로하고.
100여 명의 청중과 취재진을 앞에 두고.
연사 서익종은 발표를 이어나갔다.
“그래서 혹자는 그런 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게 어떻게 예술이냐, 그냥 말장난 아니냐. 똥을 싸도 박수를 쳐주는 게 현대미술이라면 나도 한 번 현대적으로 싸보겠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고.
서익종은 씨익 웃으며 슬라이드를 넘겼다.
“하지만 어떤 작품들은 그런 날 선 반응을 얻는 것 자체가 목적입니다. 이 이미지를 보십시오.”
거대한 스크린에 떠오른 건.
경매장에서 파쇄되고 있는 작품.
멜라니 플로이드의 >바이탈 아일랜드>였다.
“이 작가는 소더비에서 자신의 작품이 낙찰되자마자 그대로 파쇄하는 퍼포먼스를 보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정말로 그냥 아무 생각없이 똥을 싼 걸까요?”
다들 골똘히 생각에 잠긴 듯.
대강당은 고요해졌고.
“왜 그랬는지 생각하게 만들죠? 그게 작가의 목적일 겁니다.”
서익종은 다시 슬라이드를 넘겼다.
거기에는 두 개의 이미지뿐이었다.
액자와 말풍선.
“이 경우에 둘 중 무엇이 작가의 작품일까요? 액자 속 그림일까요, 아니면 메시지일까요?”
서익종은 청중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는.
단호하게 답했다.
“명백히 후자겠죠. 현대미술의 정수도 거기에 있습니다. 예술가의 아이디어, 행위, 메시지······ 그러므로 그에 뒤따르는 감상자의 반응도 현대미술의 일부이자 목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음 작품을 봅시다.”
새롭게 떠오른 이미지.
서이수의 >무음>이었다.
“이 작품에는 어떤 새로운 메시지가 있나요? 어떤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행위가 있을까요?”
노골적인 비판.
“아주 진부한 메시지뿐이죠. 쉽게 말해, 이 작품은 여전히 액자 수준에 머물러있는 겁니다. 수십년 전, 미국 회화를 그대로 답습하면서요.”
동시에, 취재진의 카메라가 번쩍거렸다.
찰칵─
찰칵찰칵찰칵─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였으니 당연했다.
“여기에서 아주 극명하게 갈립니다. 현대미술을 이끄는 메인스트림과 한국 미술의 격차가. 만약 이 작가가 현대미술의 정수를 이해했다면 더욱 본질적이고, 고유한 것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안타까운 현실이죠.”
서익종은 더없이 만족스럽게 웃었고.
짧은 마무리 멘트를 더해, 발표를 마쳤다.
짝짝짝짝──
쏟아지는 박수갈채.
사회자가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그러면 이어서 Q&A 세션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있으신 분, 손들어주시면 저희가 마이크를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사회자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제일 앞에서 번쩍 올라온 가느다란 팔.
무표정하다 못해 삭막한 분위기의 여자였다.
“강연 잘 들었습니다. 저는 주해림이라고 합니다.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예, 말씀하세요.”
서익종은 여상하게 답했다.
“아이디어와 메시지가 없는 작품의 예시로 서이수의 >무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에.”
“그런데 저는 동일한 작품을 보면서 상당히 흥미로운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는데요. 그 작품의 메시지가 진부하다는 건 강연자의 주관적인 의견 아닙니까?”
도발적인 질문.
‘주제에 뭘 안다고, 쯧.’
서익종은 이맛살을 찌푸렸으나.
최대한 감정을 감추며 답했다.
“주관적 의견일 수 있겠죠. 그런데 질문하신 분이 >무음>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읽었다는 것도 본인의 주관 아닙니까?”
서익종은 이어 말했다.
“세상에 완벽한 객관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더 나은 주관만이 존재하죠. 그런데 여기서 누구 주관이 더 우월한지 토론할 시간은 없지 않습니까? 피차 바빠죽겠는데.”
하하하─ 청중에서 터져나온 웃음.
서익종은 스윽 안경을 고쳐 쓰며 그 기세를 이어갔다.
“그래도 질문자보다는 제가 경험한 것도, 배운 것도 많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이 문제는 넘어가도록 하죠.”
진행요원이 마이크를 회수하러 가던 그때.
주해림이 말했다.
“글쎄요, 저도 현대미술 하는 작가인데요.”
“작가요?”
서익종은 잠깐 놀랐다가 재빨리 질문자의 이름을 떠올렸다.
“주해림······이라고 하셨나요? 저는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하하하하.”
무명작가라면 그냥 닥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때.
예상치도 못했던 답이 돌아왔다.
“아뇨, 저는 옆에 앉아계신 작가님의 말씀을 통역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예?”
“작가님 이름은 멜라니 플로이드입니다. 강연자님이 방금 인용하셨던 그 작가죠.”
뭐야, 뭐라고, 멜라니라고, 이게 뭐야─
웅성거림으로 가득해진 대강당.
영문을 알 수 없던 서익종은 질문자의 옆자리를 바라봤고.
‘뭐······ 진짜란 말인가?’
구불구불한 금발을 모자로 덮은 외국인 여자가 손을 들어 헤이─ 인사하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창피가 있을 수 있나.
현대미술의 총아로 불리는 작가 앞에서.
심지어 자신이 인용한 작가 앞에서.
더 나은 주관 운운을 하고 있었다니······.
서익종은 얼른 변명거리를 찾으려 했다.
그런데.
주해림은 틈을 주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다음 질문 드리겠습니다. 저는 >아트뉴스> 편집장, 로버트 존슨입니다.”
서익종은 귀를 의심했다.
‘뭐? 아, 아트뉴스······ 편집장?’
“서이수의 >무음>이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답습했다는 주장을 하신 걸로 아는데. 구체적으로 미국의 어떤 작가, 어떤 작품을 답습했다고 보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석화 마법에 걸린 듯.
서익종의 얼굴은 실시간으로 굳어갔고.
대강당 제일 뒷쪽, 제일 높은 곳.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던 한 청년은 그저 싱긋 웃을 뿐이었다.
그놈, 보통 놈 아닙니다
알고 맞는 스트레이트보다 모르고 맞는 냥냥 펀치가 더 아프다고.
Q&A를 마치고 대강당에서 빠져나가는 길.
서익종의 머릿속은 새하얘져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와있는 거지?’
>아트뉴스>의 편집장, 로버트 존슨.
그리고 멜라니 플로이드.
둘은 번갈아 질문 세례를 퍼부었고.
그 질문 하나하나는 자신에게 비수처럼 박혀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겼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미국 미술과 서이수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은 >아트뉴스> 편집장보다 해박할 수 없었고.
[ 강연자는 크로포드 스틸을 언급하셨는데, 크로포드 스틸의 주제의식과 서이수의 주제의식은 완전히 정반대에 있지 않나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그리고 예술작품의 독자성에만 너무 천착하시는 것 같은데 보편성을 획득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게 서이수의 >무음>이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이유일 테구요.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한, 현대미술의 메시지와 지향점에 있어서.
자신은 항구 외곽을 맴도는 갈매기에 불과했다.
그 비교상대가 현대미술이라는 거함의 뱃머리에 앉아있는 멜라니 플로이드라면······.
‘으으······.’
자신이 뭐라고 답변을 해도 무시당할 것 같았다. 한 단어 한 단어 겨우 고르느라 말을 더듬기도 했다.
그러다 아예 대답도 못한 질문이 부지기수.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 맞, 맞습니다······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그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하고 싶어서.
마지막에는 도망가듯 대강당을 빠져나왔고.
그러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손이 떨리고, 초점이 흐릿했다.
머리통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쿵쾅댔다.
‘으으······.’
강연이 끝나자마자.
자신을 위해 와있던 취재진이 전부 그 둘에게 향한 것도 당연한 수순.
이제 어떤 기사들이 쏟아질지.
어떤 역풍이 불어닥칠지.
서익종은 그 규모를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머릿속에 떠오른 건.
>마션>에서 읽었던 첫 문장뿐.
‘아무래도 나는 진짜 ㅈ된······.’
서익종은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에게.
[ Hello? ]자신이 방금 무슨 수모를 겪었는지도 모르고.
여상스럽게 전화를 받는 상대.
서익종은 치밀어오르는 욕지기를 참아내며 거칠게 쏘아붙였다.
“이거 무슨 일입니까, 도대체!”
[ 무슨 말이에요? ]“거물들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도 없고, 애초에 서이수 쪽에서 가지고 있던 카드들 같은데 그걸 몰랐습니까?”
[ 아니, 울지 말고 차근차근 말씀해보세요. ]“그러니까 내가 강연을 하는데!”
분통이 터져서일까, 서익종은 복도를 지나치던 다른 사람을 확인하지 못했고.
“악!”
“억!”
서로 부딪치는 바람에 행인은 들고 있던 팜플렛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팜플렛 표지에 적혀있는 표제는 >현대미술로의 초대>.
“어? 방금 강연하신······.”
“아닙니다.”
서익종은 고개를 숙이고, 부리나케 화장실로 도망쳤다.
그제야 전후사정을 쏟아내자.
상대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 그래요? 희한하게 돌아가고 있군요. 저희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인데. ]“이제 여론전입니다. 지원사격을 해주시든지, 반대 여론을 잠재우든지, 뭐가 됐든 어떻게 좀 해주십쇼.”
[ 지원사격이라면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서익종은 후우, 한숨을 내쉬고 답했다.
“아니, 그쪽도 있을 거 아닙니까! >아트포럼>이나 >아트리뷰> 쪽 비평가나 멜라니보다 더 잘나가고 권위있는 작가······ 그런 사람들 불러서 지원 사격하라고요!”
서익종은 간절히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 하하······ 미스터 서. ]상대는 건조하게 답할 뿐이었다.
[ 저희는 이 일을 더 키울 순 없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 그 정도 수준에서 마무리하시죠. ]그 정도 수준에서 마무리하라니.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 미술계 어디에서도 얼굴을 못 들고 다닐 텐데.
서익종은 격한 반응을 내보였다.
“아니, 한배를 타기로 했으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할 거 아닙니까! 일이 이렇게 됐는데 그냥 마무리하라고요? 나도 한국에서 이름이 있고, 지위가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죽으라고요?”
[ 왜 저희한테 책임을 뒤집어 씌웁니까? 그 사람들 질문에 제대로 답도 못하고 어버버한 건 본인 잘못 아닙니까? ]“아니······.”
서익종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러나 이렇다 하게 대꾸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 지금 많이 심란하신 것 같은데 머리 좀 식히시고. 저희도 회의 좀 해보겠습니다. 한두 시간 뒤에 또 통화하시죠. ]뚜우─ 뚜우─
“······이 그지 같은! 썩을 놈들!”
서익종은 그대로 폰을 주머니에 쑤셔넣고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조금 뒤.
끼이이이익─
슬며시 문이 열리는 칸 하나.
그리고 그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 바깥 동태를 살피는 청년.
‘······그런 거였어?’
신유원은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심증은 있어도 물증은 없었는데.
순수한 비평조차 아니었다니.
이제 손속에 자비를 둘 이유가 없었다.
통화 덕분에 「양질전환」 재료마저 마련된 상황.
‘배후에 누가 있는지도 털어봐야겠어.’
신유원은 씨익 웃으며 손을 씻고는.
유유히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하여튼 화장실에는 자주 오고 볼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