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iterate tycoon RAW novel - Chapter 175
173장. 긴급 소환
솔로몬 회장의 시선을 힘겹게 받아 내던 이재영이 엄살을 부리기 시작했다.
“회장님도 잘 아시겠지만 저희 삼선그룹의 미국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삼선증권도 상황이 썩 좋지가 않습니다. 라마존과 거래의 민족이라는 고래들 사이에서 등이 터져 버린 저희 e커머스 플랫폼 삼선 헤르메스는 적자만 쌓여 가고 있고, 강선재를 견제하기 위해 무리하게 인수한 항공사 유나이티드 에어버스의 구조조정에도 천문학적 자금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엄살이 아니라 실제로도 힘겨운 이재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우……! 솔직히 지금으로선 회장님을 돕고 싶어도 도울 여력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본사에서 자금을 끌어오면 되지 않겠나?”
포기하지 않고 강요하는 솔로몬 회장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재영이 곤혹스럽게 대답했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반도체 경기도 예전만 못합니다. 게다가 제가 책임지고 진행한 미국 쪽 사업에 워낙 많은 돈이 들어간 상태라 본사에 더 이상의 지원을 요청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하지만 자네가 몇백억 달러쯤 아무렇지도 않게 빼내 올 수 있는 회사가 있을 텐데?”
이재영이 피식 실소했다.
“저희 삼선 계열사 중에 제가 모르는 그런 노다지 같은 곳이 있단 말입니까? 그곳이 대체 어디입니까? 저도 궁금하니 말씀해 주십시오.”
“…….”
취한 눈으로 이재영의 눈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던 솔로몬 회장이 나직이 내뱉었다.
“바로 삼선생명에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현금이 쌓여 있질 않나……?!”
“뭐, 뭐라고요? 삼선생명에 쌓여 있는 고객들의 보험 예치금을 빼내라는 말씀입니까?”
솔로몬 회장이 음산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흐흐! 삼선증권은 삼선생명의 지주회사이고, 자네가 삼선증권의 대표까지 겸임하고 있지 않나? 그러니 자네 부친 몰래 수백억 달러쯤 몰래 빼냈다가 다시 집어넣는 것은 일도 아닐 거야.”
이재영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회장님, 정신 차리십시오! 보험회사에 적립되어 있는 고객들의 보험 예치금을 사사로이 전용하는 건 범죄행위입니다!”
“내가 보유한 콜드만삭스의 지분 50%를 자네에게 넘기겠네!”
“뭐, 뭐라고요?”
“더불어 강선재와의 지분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자네를 공동 최고경영자로 임명하겠네.”
“바, 방금 그 말이 진심이십니까?”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인 콜드만삭스의 최고경영인이 된다는 것은 사업가라면 누구나 꿈꿀 만한 일이었다. 그것은 이재영 본인은 물론 삼선그룹의 이름을 전 세계인들의 가슴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 분명했다. 물론 현재 솔로몬 회장이 처한 상황이 그다지 녹록하지 않다는 것은 이재영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도 평소의 그였다면 절대로 이처럼 승리를 확신하기 힘든 싸움에 삼선생명의 보험 예치금을 꺼내 쓰는 것 같은 무모한 모험 따윈 절대 감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솔로몬 회장을 돕지 않는다면 강선재가 콜드만삭스를 통째로 집어삼키게 될 것이다!’
이번에도 선재에 대한 비정상적인 경쟁심과 질투심이 이재영이 냉철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솔로몬 회장이 선재에 대한 이재영의 열등감을 알고 콜드만삭스의 공동 소유주이자, 공동 CEO라는 제안을 던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콜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가 되어 한국과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기업인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야 할 인물은 강선재가 아니라 바로 나 이재영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이재영이 살짝 갈라지는 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강선재로부터 콜드만삭스의 경영권을 지켜 내기 위해 필요한 자금이 대체 얼마나 됩니까?”
“500억 달러일세.”
“헉! 500억 달러면 50조 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거금이 아닙니까?!”
입을 떡 벌리는 이재영을 향해 솔로몬이 눈을 번뜩였다.
“강선재가 보유하고 있는 실탄이 만만치가 않아. 그놈을 완전히 제압하고 콜드만삭스의 경영권을 지키려면 최소 그 정도의 자금은 필요할 거야.”
솔로몬이 망설이는 이재영 쪽으로 상반신을 기울이며 유혹적으로 미소 지었다.
“강선재를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 콜드만삭스의 공동 CEO가 된다면 그 500억 달러를 다시 삼선생명에 채워 넣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닐 거야.”
“으음……!”
잠시 솔로몬 회장과 눈싸움을 벌이던 이재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크흐흐흐! 자네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 * *
“이건 좀 이상하군.”
3월도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던 수요일 아침에 선재는 자신의 사무실 정면 벽에 걸린 대형 모니터에 떠오른 그래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선재가 손가락으로 거의 비슷한 높이를 그리고 있는 파란색 그래프와 붉은색 그래프를 가리키며 말했다.
“3월 초까지만 해도 우리가 콜드만삭스의 지분 보유 현황에서 솔로몬 회장에게 확실히 앞서 나가고 있었어. 그런데 3월 중반부터 솔로몬 회장이 맹렬하게 추격을 시작하더니, 어느새 우리와 거의 비슷한 지분을 보유하게 되었지. 이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선재가 자신과 마주 앉아 있는 이민선과 김인홍을 쳐다보며 물었다.
먼저 김인홍이 흠흠, 헛기침을 하고 나서 대답했다.
“솔로몬 회장의 저력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겠죠. 그러잖아도 솔로몬 회장이 자신의 거미줄 같은 인맥을 총동원하여 대규모의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습니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선재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시선을 이민선에게로 옮겼다.
“이 과장은 어떻게 생각하지? 김 과장과 비슷한 생각인가?”
“아뇨,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르게 생각한다는 거지?”
흥미를 보이는 선재를 향해 이민선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방금 대표님께서 말씀하셨다시피 3월 초에 저희는 이미 솔로몬 회장과의 지분 싸움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았었습니다. 아무리 솔로몬 회장의 인맥이 대단하다고 해도 승부의 추가 기운 상황에서 그의 친구들이 수세에 몰린 솔로몬 회장에게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을 것 같지는 않군요. 더구나 지금처럼 우리와 동등한 싸움을 벌이려면 수백억 달러에 육박하는 자금이 필요했을 텐데요.”
“역시 이 과장은 김 과장과는 뭐가 달라도 다르구만.”
선재가 이민선을 칭찬하자, 김인홍이 볼멘소리로 물었다.
“그럼 대체 솔로몬 회장이 누구에게 도움을 받아 저렇게 많은 지분을 긁어모았다는 겁니까?”
“글쎄요……, 그것까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시원하게 대답하지 못하는 이민선을 대신해 선재가 말했다.
“이 과장의 말처럼 수백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대규모 자금이 솔로몬 회장에게 일시에 투자되었어. 그렇다면 이건 여러 사람이 아니라 어느 한 사람에게 투자를 받았다고 봐야 할 거야.”
이민선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솔로몬 회장과 삼자연합을 구성했던 라마존과 삼선이 발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누가 그 정도 자금을 지원할 수가 있었을까요?”
“나는 그처럼 무리한 투자를 할 사람은 삼선증권의 이재영 사장밖에는 없다고 믿고 있어.”
“네에……? 이재영 사장이오?!”
김인홍이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소리쳤다.
“하지만 이재영 사장의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다고 말했던 건 바로 대표님이셨습니다!”
“맞아, 미국에서 활동 중인 삼선그룹 법인들의 지주회사를 맡고 있는 삼선증권은 현재 그만한 자금을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이 없어.”
선재도 순순히 인정했다.
“한국에 있는 삼선그룹 본사도 이재영의 무리한 투자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이건휘 회장이 회사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콜드만삭스에 대한 무리한 투자를 허락했을 리도 만무하지.”
김인홍이 답답한 듯 말했다.
“아! 그럼 대체 어떻게 그만한 돈을 투자했다는 겁니까?”
“삼선그룹 계열사들 중에 그 정도 자금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빼낼 수 있는 회사가 딱 한 군데 있긴 있거든.”
의미심장하게 미소 짓는 선재를 향해 이민선과 김인홍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그게 대체 어느 회사인데요?”
“바로 삼선생명이야.”
“삼선생명이라면……?!”
“삼선생명에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차곡차곡 모아 온 고객들의 보험 예치금이 수천억 달러씩이나 쌓여 있거든. 만약 이재영이 솔로몬 회장에게 수백억 달러의 자금을 투자했다면 분명 그 보험 예치금에 손을 댔을 거야.”
* * *
며칠 후, 삼선그룹의 이건휘 회장은 청와대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청와대 경제수석이 박원태 대통령께서 이건휘 회장과의 독대를 원한다며 직접 전화를 걸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경제수석은 한마디 당부를 덧붙였다.
“이번에 청와대로 들어올 때 꼭 이재영 사장님도 함께 오시라는 당부가 있으셨습니다. 미국에서의 사업이 바쁜 줄은 알고 있지만 웬만하면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 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꼭 아들 녀석과 함께 대통령님을 찾아뵙겠습니다.”
결국 이재영까지 불러들여 이건휘 회장 부자는 기분 좋게 청와대로 향했다.
“서울시장 시절부터 우리 삼선에 적대적이었던 박원태 대통령이 왜 아버지와 저를 초대했을까요?”
“막상 그 자리에 앉고 보니 우리 삼선 없이는 대한민국 경제를 살릴 수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겠지.”
“역시 그렇겠지요?”
“으하하하! 이제 다시 옛날처럼 우리가 대통령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날이 올 것이야!”
기고만장했던 이건휘와 이재영 부자의 얼굴은 그러나 막상 대통령 집무실에서 박원태와 마주 앉자마자 흙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박원태 대통령은 혼자가 아니었다. 대통령의 옆자리에 선재가 빙글빙글 웃으며 앉아 있었던 것이다.
“강선재 대표……, 당신이 왜 이 자리에……?!”
“실은 제가 대통령님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삼선그룹의 이건휘 회장님과 이재영 사장님을 독대하시는 자리에 저도 꼭 참석하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이건휘 회장이 선재를 지그시 쏘아보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이 나라의 국정을 이끄시는 대통령님과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삼선그룹이 만나는 뜻깊은 자리에 태성그룹 따위가 끼어들 자리는 없네!”
“노여우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회장님.”
선재가 이건휘 회장을 향해 머리를 숙이는 순간, 박원태 대통령이 간신히 화를 참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회장님께서 여기 강선재 대표에게 화를 내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삼선그룹을 살리기 위해 오늘의 이 자리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강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강 대표가 우리 삼선그룹을 살리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들었다고요? 그게 대체 무슨……?!”
“자네는 짚이는 일이 있을 텐데?”
박원태 대통령이 추궁하듯 이재영 사장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