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06
58 사기꾼과 거짓말쟁이 (1)
어제 게임이 진행되었던 카지노 홀. 나는 약속대로 어제 게임을 했던 테이블로 향했다.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니키가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도망가지 않고 왔네요?”
“약속했잖아요, 오늘 보기로.”
오늘까지만 당신의 돈을 쪽 빨아 주겠습니다.
내 말에 레이가 태클을 걸었다.
━정말이지, 자랑스러운 계획이구나.
‘애초에 돈을 잃으면서도 한 판 더 하고 싶다고 말한 건 저쪽이잖습니까. 소원대로 해 주는 거죠. 저쪽에서 일종의 자선사업을 하고 싶다는데, 협조해 줄 수밖에요.’
━자선사업이라고? 내가 아는 자선사업이랑은 뭔가 아주 다른데 말이다. 여기 어디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구제 사업이 있냔 말이다.
‘대충 비슷한 거라고 치자고요.’
━대충 비슷해? 하나도 안 비슷하다, 이놈아! 도박하러 여기에 온 거면서 자선사업? 밖에서 쫄쫄 굶고 있는 꼬맹이들이 네 생각을 알면 널 죽이려고 들 거다.
‘으윽,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양심이 너무 아픈데요.’
오늘 아침에 내게서 핫도그를 받아 갔던 꼬질꼬질했던 꼬맹이의 얼굴을 떠올리니 내 입을 매우 때리고 싶어졌다.
내가 감히 자선사업이라는 말을 했던가? 끄응, 진짜 자선사업이 필요한 이들이 저 밖에 널려 있는데, 이런 상황에 자선사업이라는 말을 쓰다니.
오늘도 내 양심은 무척이나 잘 발동했다. 하지만 그런 죄책감은 뒤로 던져 놓아야 할 때다.
빈민 구제는 나라님도 못 한다는 소리가 있지 않은가.
‘전에도 말했던 적이 있지만, 당장 그런 애들이 불쌍하다고, 할 수 있다고 손을 뻗으면.’
길에서 사는 고양이가 불쌍하다고 고양이를 전부 다 구조해서 키울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진짜 책임질 수 있는 한두 마리만 키워야지. 전부 다 구해 오면 그게 바로 애니멀 호더의 길이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빌런이다. 불쌍하다고 다 줍고, 다 마음을 주면은 이 일을 못 하지. 아암!
알겠냐! 내 목표는 복수뿐이다! 설록진 그놈한테 피의 복수를 하는 것뿐, 나머지는 알 바 아니라고!
━진심이냐.
‘예.’
━그런 것치고는 제법 고아 줍기에 진심인 거 같은데.
‘고아라서 구한 게 아닙니다! 줍고 보니 고아였던 거지.’
어쨌거나 지금으로서는 니키의 자선사업, 아니, 적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적당히 비위를 맞춰 주는 것만으로도 뒤탈 없이 돈을 던져 준다는데, 거절할 필요는 없겠지.
‘문제는 이 돈이 정말로 뒤탈이 없는 돈이냐 하는 거겠지만요.’
그냥 재미를 보려는 게 아니라, 무언가 의도가 느껴지면 빨리 튀어야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 니키의 눈에 보이는 건 호기심뿐이었지마는, 사람의 마음이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니까.
사람이 꽉 들어찼던 어제와는 달리 테이블은 휑하니 비어 있었다.
“오늘은 어제 봤던 친구들이 안 보이네요.”
내 질문에 니키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재미가 없대.”
돈을 더 뜯기기 싫다든가, 하는 이유가 아니라 그냥 재미의 문제였나.
하긴, 제대로 된 규칙도 모르고 머릿수만 채운다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나마 어제는 내게 당하는 니키를 보는 맛이라도 있었겠지만, 그걸 오늘 또 보긴 싫다는 거겠지.
“나는 왔지롱.”
리아가 빼꼼 니키의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내게 말했다.
“일방적으로 지는 판에 관심이 있는 건 니키뿐만인 줄 알았는데요.”
니키가 내게 가장 많은 돈을 잃긴 했지만, 잃은 돈만을 따지면 리아도 만만치 않았다.
내 도발적인 말에도 두 사람은 기분이 나쁘다는 표정 대신 와하하, 웃기만 했다.
리아는 내게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다.
“니키가 다음 달 수수료를 빼 주겠다고 했거든요.”
어제 했던 말이 허언이 아니었군. 상납금을 건드릴 수 있을 정도의 권한을 가진 건 길드 마스터뿐이다.
소규모로 얼렁뚱땅 돌아가는 길드라고 하더라도 한 달 상납금을 저런 식으로 빼 준다고 하는 게 말이 안 될 텐데. 니키의 권한이 제법 엄청난 모양이었다.
“그렇게까지 오늘 포커 친구가 필요했던 겁니까?”
“포커를 제대로 칠 줄 아는 사람이 없단 말이야. 이번 기회가 아니면 또 언제 포커를 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을 꺼낸 니키는 볼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모레면 다시 일하러 떠나야 하거든.”
“음, 그렇군요.”
다행히 내가 먼저 도망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다. 그럼, 오늘 정말 탈탈 털어 주지.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사람이 부족한데요.”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있는 사람이 총 셋뿐이라는 것. 어제 했던 텍사스 홀덤을 치기에는 사람이 너무나도 적었다. 내 말에 니키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여기 널린 게 아는 사람들인데, 뭐.”
“아는 사람들이요?”
니키는 씩 미소를 지으며 뒤로 고개를 돌렸다.
“이 테이블로 올 사람? 선착순으로 일곱 명! 다음 달 상납금 빼 준다.”
그 말에 일제히 모두가 이곳을 바라보았다. 어림잡아 백 명 정도가 되는 사람들, 모두가. 부산을 떨며 그들 모두가 일어나는 모습에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설마…….”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니키와 아는, 아니, 니키 길드 소속이었단 말인가.
어쩐지, 왁자지껄하게 게임을 해도 아무도 불편한 티를 내지 않더니…….
“설마라는 말은 이쪽에서 해야 할 소린데. 정말 내가 누구인지 몰랐어?”
니키의 말에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거, 아무 생각 없이 앉았던 테이블에 거물이 앉아 있었을 줄이야. 소속원이 백 명 정도 되는 대형 길드의 마스터였다고?
그것도 상납금을 이런 식으로 탕감해 줘도 아무런 불만도 듣지 않을 정도로 길드를 꽉 잡고 있는 길드 마스터라니.
‘그냥 친구들끼리 뭉쳐 만든 길드라 상관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러면 말이 바뀌죠. 딱 봐도 고압적인 타입은 아닌 것 같고, 그만큼 인망이 두터운 거겠죠.’
━갑자기 저 사람 얼굴에 금칠은 왜 하는 거냐?
‘예? 금칠이라뇨.’
━자세는 왜 다소곳해지는 거고?
이 정도로 잘 나가는 길드의 마스터를 앞에 두고 경거망동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정말이지, 어이가 없구나.
잘 나가는 사람에게는 언제든지 잘 보여 둬야 한단 말이다.
내 바뀐 태도에 니키가 와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처음에 그쪽이 그런 타입인 줄 알았어. 그, 왜…… 유명인 옆에 와서는 난 당신이 유명한지 전혀 몰랐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괜히 관심을 끌려는 타입.”
“죄송하지만, 제가 헌터 쪽은 잘, 그, 몰라서 말이죠.”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이긴 하잖아?”
“죄송하지만, 그, 미국에 온 지도 얼마 안 되어서…….”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었나, 눈앞의 니키라는 사람이?
━감이 오는 사람도 없나?
‘미국은 제가 맡은 곳이 아니어서 말이죠.’
차라리 중국 쪽 헌터가 훨씬 익숙했다. 으음, 게다가 미국은 헌터의 천국이라는 말이 맞을 정도로 용병대도, 길드도 너무 많아서 말이지. 테이카 쿠퍼야, 워낙 전 세계적으로 세계 최강이라는 이미지로 유명해서 잘 알고 있던 거지, 당장 테이카 쿠퍼가 소속된 길드의 다른 헌터들에 대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는 지경이었다.
“뭐, 그건 아무래도 좋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나와 니키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뒤에서 나름의 혈투를 겪고 올라온 일곱 명의 사람이 테이블의 빈자리를 채웠다.
“오늘도 재밌게 놀아 달라고.”
“예에.”
누구 말씀이시라고요, 당연히 그래야죠.
어차피 니키의 정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니키를 털어먹는 데에 죄책감을 전혀 느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거다.
‘그래요, 저런 갑부를 털어먹는 데에 죄책감은 사치라고요.’
━새삼 죄책감을 느꼈던 것처럼 말하는구나.
좋아, 이렇게 된 이상 아주 탈탈 털어 주마.
게임은 시작되었고, 딜러는 패를 나눠 주었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어제와 그다지 달라진 건 없었다.
니키는 내 얼굴을 노려보며 내 속을 읽으려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했고 돈을 쓸어 담는 것은 나였다.
“이상하네! 아까는 뻔히 속이 보였는데!”
“그거야…….”
그때에는 표정을 굳이 숨길 생각을 안 했으니까?
“패를 들고 있을 때만 이렇게 사람이 바뀌다니. 정말 신기할 정도야. 솔직히 말해 봐, 이거 무슨 재능 같은 거 아니야?”
그 말에 나는 팔을 들어 올렸다.
“재능이 있어도 이곳에서는 쓸 수 없다고 들었는데요. 게다가 애석하게도 저는 각성자가 아니라서 말이죠.”
“아니, 그 재능 말고 말이야. 도박에 재능이 있다는 뜻이었는데.”
“없는 것 같진 않은데요.”
니키는 나를 노려보며 투덜거렸다. 저런 말이 나올 법도 했다. 아까부터 니키에게서 턴 돈이 상당했으니까. 니키의 부름으로 이곳까지 온 길드원들의 얼굴 또한 흙빛이 된 지 오래였다.
특히 나를 노려보는 길드원들의 눈빛에 원망이 가득했다.
니키를 털어먹는 데에 거리낌이 없어진 나는, 어제보다 더욱 공격적으로 배팅을 했고 어제의 나를 모르는 길드원들까지 말려들어 버렸거든.
니키가 중간에 ‘이놈을 이기는 놈에게는 특별 상품을 주겠어!’하고 말했음에도 나를 이긴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
“솔직히 정체를 털어놓는 편이 좋아. 원정 도박꾼 같은 거지?”
“게임이나 하죠.”
“그래! 이건 어때. 그쪽에 대해 말해 주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줄게.”
니키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다지 그쪽이 누구인지 궁금하지가 않아서.”
내 말에 니키는 입을 딱 벌렸다.
“정말? 조금도? 아니, 지금 이 상황을 보고서도 나에 대해 전혀 궁금한 게 없단 말이야?”
“유명하신 분이면, 나중에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나올 거 아닙니까.”
나는 니키의 얼굴을 살폈다. 니키라는 이름이 본명이라면, 그리고 길드의 마스터라면, 그리 찾기 어렵지 않겠지.
어깨까지 오는 검은색 곱슬머리에, 광택이 도는 구릿빛 피부, 검은색 눈동자. 백칠십 중반 정도 되는 큰 키의 니키는 모델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외모가 괜찮은 편이었으니 광고 모델도 했을 법했다.
나이는 이십 대…… 일까나?
━왜 마지막 정보에는 확신이 없는 거냐.
‘여자들의 나이는 잘 모르겠습니다…….’
쑤어하오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함부로 추측하다가는 큰코다치기에 십상이라고.
어쨌거나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사람 하나를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거 내가 너무 불리한 싸움이잖아!”
그걸 지금 알았습니까? 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할 뻔했다.
음음, 귀한 호구시다. 말을 조심하자.
“은근히 톡 쏠 줄 안단 말이지. 처음에는 재미없는 동부 촌놈인가 싶었는데…….”
“동부 촌놈이요?”
“그래, 그쪽 말투가 딱 그래. 평생 공부만 한 범생이 같은 말투라고.”
내 말투가 그렇게 낡은 느낌인가. 아무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까, 내 말투에 대해서 감이 안 온단 말이지. 아무래도 아나운서한테서 영어를 배웠으니 너무 정석인 톤이라는 자각은 있지만……. 그렇게까지 재미없는 범생이 느낌인가.
“그런 주제에 우리를 탈탈 털어먹을 정도로 도박에 능하고 말이야. 그러니까 궁금해지는 거지. 대체 이 인간은 어떤 사연으로 이 도박판에 굴러 들어오게 된 걸까.”
“그런 걸 안다고 저를 이기는 데에는 별 도움이 안 될 텐데요. 아, 하프요.”
대화 와중에도 판돈을 올리는 내게 니키는 눈을 흘겼다.
“포커 정말 재미없게 치네.”
“원래 포커라는 게 돈을 따야 재밌긴 하죠.”
“하하! 재밌네! 하프, 받고 하프!”
멘탈을 공격당한 니키는 고작해야 원 페어를 들고 나를 무리하게 따라잡다 마지막에 폭사해 버렸고, 승리는 나의 차지가 되었다. 분해하는 니키의 옆에서 리아는 불 난 집에 기름을 뿌렸다.
“그렇게 돈을 올려 대길래 뭐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으으! 이번 한 번을 위해서 몇 판을 사렸는데.”
확실히 돈을 걸던 패턴만 보자면, 넘어갈 수도 있는 판이었다. 하지만 말이지. 나한테는 뻔히 보이거든.
니키는 정말로 좋은 패를 가졌을 때 검지로 패를 쓸었고, 블러핑을 칠 때는 꼭 왼쪽으로 먼저 눈을 굴렸다.
본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말이다.
‘오늘 판이 끝날 때쯤, 알려 줄까 봐요. 비싼 과외비도 받았겠다, 그 정도 가르침은 줘도 되겠죠.’
━병 주고 약 주고냐?
‘그보다는 돈 받고 약 주고겠죠.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라고요.’
꺼억,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어제처럼, 아니, 어제보다 더 확실하게 니키를 털어먹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그럼 저는 여기까지 해 보겠습니다.”
딜러의 옆에 직원이 다가왔다. 딜러에게 무어라 속삭인 직원은 묘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떠났고, 딜러는 우리에게 특별한 제안을 하나 건넸다.
그 제안을 듣는 순간 나는 주먹을 쥐었다.
‘이거, 호구 작전을 쓸 필요도 없겠는데요.’
내가 호구 작전을 쓰기도 전에 니키가 이 카지노 제일의 호구로 소문이 나 버렸다.
제2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