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25
61 버림받은 사냥개 (1)
한참 차송진을 놀리던 내가 말했다.
“그나저나 교과서를 만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니 대단하네.”
내가 기준을 제대로 세워야 우리 조직이 제대로 설 수 있다니.
덕분에 생각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대충 어떻게 기준을 세워야 할지도 감이 왔고. 확실히 제대로 된 기준을 세워 둔다면 한서현과의 마찰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지 알 수 없던 실타래는 생각지도 못했던 돌파구를 만나 풀리게 되었다.
내 말에 차송진이 볼을 긁적거리며 말했다.
“어, 교과서를 만들려고 하니까 아주 간단한 것부터 스스로 생각하게 되더라고. 도덕은 무엇인가부터, 어, 어떤 것부터 가르쳐야 할까 같은 거. 그렇다 보니까 훨씬 생각을 열심히 하게 됐달까, 그래.”
무어라 더 중얼중얼 말을 잇던 한서현이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혹, 혹시 이걸 노리고 우리더러 교과서를 만들어 보라고 한 거야?”
그렇게 말하는 차송진의 눈동자가 지나칠 정도로 반짝거렸다.
윽! 선망과 존경의 의미까지 담긴 눈빛에 나는 나도 모르게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런 걸 노리고 교과서를 만들라고 했냐고? 그럴 리가 있겠냐. 내가 애들한테 교과서를 만들라고 한 건 그런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그냥 오해하게 두지 그러냐. 널 좋게 생각해 주겠다는 건데 그리 나쁜 것도 없지 않냐.
평상시의 나라면 그랬을 거다.
하지만 차송진에게 고마운 충고까지 받은 입장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는가.
나는 뼈를 깎는 심정으로 진실을 토해 냈다.
“아니, 그냥 내가 카지노에 가 있는 동안 시간이나 때우라고 한 건데……. 괜히 가만히 있으라고 해 봤자, 사고나 칠 것 같아서…….”
내 말에 차송진의 입이 벌어졌다.
“사실 교과서는 그냥 서점 가서 사면 그만이잖아.”
죄책감에 가슴이 아렸다. 누가 이렇게 열심히 할 줄 알았냐고! 그냥 대, 대충 시간만 때워도 되는 거였잖아!
━애초에 뼈를 깎는 심정으로 말할 내용이냐, 이게.
레이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진실을 털어놓는 사람인 나와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차송진은 서로 진지했다.
“그, 그랬구나.”
내 말을 들은 차송진은 복잡한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그러더니 나를 보며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거 서현이한테는 말 안 하는 게 좋겠다.”
“어?”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말하지 마.”
차송진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진심이야.”
그리고 나는 차송진의 진심 어린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차송진의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그게 이렇게 진지하게 말할 내용이냐고.
* * *
그날 하루 종일 끙끙거리며 나름의 기준을 만든 나는 한서현과 김재호, 차송진을 불러 한자리에 모였다.
에드워드는 안타깝지만, 회의에서 제외되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벨츠머츠를 위한, 벨츠머츠에 의한 회의였으므로.
‘애초에 끼워 줘도 알아듣지를 못할 거고요.’
게다가 내용도 좀 그러니까. 한서현은 뚱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김재호도 뚱한 표정인 건 마찬가지였다.
“서현이는 그렇다 치고, 재호는 표정이 왜 저래?”
“에드워드랑 영화 보고 있었대요.”
“영화? 여기서 나오는 영화는 죄다 영어지 않나?”
“애니메이션 영화였거든요.”
아하, 귀여운 거라면 사족을 못 쓰는 김재호니 이해가 갔다. 어쩐지 그래서 저렇게 불만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군.
“빨리 끝내 줘.”
“중요한 거니까 좀만 참아라.”
“그래, 그 중요한 게 뭐길래 사람을 이렇게 다 부른 건데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큼큼, 헛기침을 하며 목을 다듬었다. 차송진이 내게 힘내라는 듯 눈짓했다. 나와 차송진의 사이를 곁눈질한 한서현이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팔짱을 꼈다.
우리 둘 사이에 흐르는 이 미묘한 유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음, 너무 대놓고 우리끼리 말을 나눈 티를 냈나.’
모두가 의자에 앉고 난 뒤, 나는 천천히 모두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에 모두를 부른 이유는, 어, 앞으로 우리 벨츠머츠의 행동 강령을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내 말에 한서현이 물었다.
“애초에 우리한테 행동 강령 같은 게 있었어요?”
“어, 적합한 질문이다! 그래! 여태까지는 행동 강령이 아무것도 없었지! 그게 바로 문제였다!”
퉁, 하고 테이블을 친 내가 말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
“……그래서 그 행동 강령이라는 게 뭔데요.”
한서현의 말에 나는 꿀꺽 침을 삼켰다. 마치 대학교수 앞에서 과제를 점검받는 대학생의 심정이 이러할까.
과연 내가 열심히 짜낸 이 기준으로 한서현을 설득할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앞으로 우리는 정말로 피치 못하게 죽여야 하는 놈들만 죽일 거다. 다른 방법이 있는 놈들까진, 손을 대지 않을 거야.”
내 말에 한서현의 눈이 가늘어졌다. 딱 봐도 이 행동 강령이라는 게 누구 때문에 나온 건지 빤히 보였으니까.
“여태까지는 아무런 기준도 없었잖아요.”
“앞으로 우리가 활동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기준이 있는 편이 좋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하필이면 나랑 그런 대화를 한 다음에요?”
역시 내 예상대로 반응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내 진심을 들으면 달라질 거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도 제대로 된 기준은 필요해. 지금에야 내 기준에서 죽어 마땅한 놈을 고르고 있다지만, 언제 내 기준이 흐려질지 모르잖아. 그리고 그 기준이 흐려져 버리면…… 글쎄, 아무나 죽여 버리는 살인마랑 다를 게 없게 되겠지.”
나는 이미 그런 살인마를 몇 명이나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사람의 목숨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멋대로 손에 쥐고 흔들어 대다 보니 그게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잊게 된 것이지.
처음에는 그들을 욕했던 나지만, 나 또한 비슷해졌다.
내 말에 한서현이 발끈했다.
“내가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세상에, 내 말을 저렇게 받아들이다니. 아니, 잠깐. 그렇게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나? 나는 한서현의 오해가 깊어지기 전에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니, 너랑은 상관없어.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나 때문이야.”
내 말에 한서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날 봐, 서현아. 나는 있잖아, 문제가 생기면 그거에 대한 가장 간단한 방법이 누굴 죽이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이게, 그러니까, 옳은 건 아니잖냐?”
“세상에는 죽어 마땅한 놈들도 많잖아요.”
“그걸 어떤 기준으로 정할 건데?”
나는 한서현에게 말했다.
“그래, 오늘 우리는 나름의 기준으로 죽어 마땅한 놈을 정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대로 있다 보면 언젠가 ‘우리의 줄을 새치기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죽어 마땅한 놈이라고 말하게 될지 모른다는 거지.”
“……설마 그렇게까지 되겠어요?”
그렇게까지 되더라.
나는 설록진을 떠올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어쨌거나 기준을 명확히 하자는 건, 나를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해.”
내 말에 한서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왜요, 보스가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아서요?”
그건 이미 늦었고, 너희가 나처럼 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지.
나는 속으로 떠오른 말을 꾹 삼키고 다른 말을 꺼냈다.
“그야, 앞으로 조직을 잘 운영하려면 이런 규칙이 있는 게 좋잖냐! 그래야 어, 기강도 잘 잡힐 거고 말이지.”
애써 웃으며 꺼낸 내 말에 한서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깨를 으쓱인 한서현이 내게 말했다.
“그래요, 그래서 그 잘난 기준이 뭔데요?”
“뭐, 여러 가지 세세한 조건이 많긴 한데, 딱 한마디로 하면 ‘김성득 의원 같은 놈?’”
김성득 의원은 저지른 일도 저지른 일이지만, 자신이 지은 죄를 회피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제일 나쁜 놈이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러니까 속된 말로 말하는 ‘정의로운 방법’으로는 잡을 길이 없는 악인이기도 했고.
“법적으로 죄를 물을 수 있는 놈이면, 적당한 법의 철퇴를 맞게 두는 게 나을 거야. 하지만 자신이 지은 죄를 피해 도망칠 생각을 하는 인간이라면, 글쎄, 그런 놈들에게는 이 세상에 카르마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 줘도 되겠지.”
내 말에 한서현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경찰들하고 협조하겠다는 거예요?”
“어, 협조까지 되나? 그냥 그놈들한테 떠넘긴다는 말인데.”
“어떻게 떠넘길 건데요. 그냥 가만히 둔다고 여태까지 무능하던 경찰들이 나서서 나쁜 놈들을 잡아가진 않을 거 아니에요?”
한서현의 질문은 제법 날카로웠다. 마치 이런 일을 몇 번이고 생각해 본 사람처럼.
“……혹시 엿들었어?”
내 말에 한서현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하나도 안 들었는데요.”
“……대체 무슨 말이냐고 되물었어야지.”
내 말에 한서현의 얼굴이 벌게졌다.
“그, 그러게 누가 둘이서만 그렇게 얘기하래요? 둘이서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어쩔 수 없었거든요?”
차송진도 몰래 엿들었다고 고백하더니. 어째서 여기엔 죄다 남의 말을 엿듣는 사람만이 가득한 거냐!
“너 인마!”
“왜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면서요!”
그리고 한서현에게는 든든한 쥐돌이와 새돌이가 있었지. 나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교과서를 만들라던 이유가 그런 거였다는 건 좀 열 받았지만,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알겠어요.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도요. 그게 하필이면 내가 제대로 나서게 해 달란 다음이라는 것도 좀 열이 받지만…….”
그렇게 말한 한서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보스가 바라는 대로 해요.”
“그, 그래도 되나?”
“송진이 형이 말한 대로, 우리 조직의 기준은 보스니까요. 보스가 그러길 바란다면 나도 좋아요.”
그렇게 말한 한서현이 내 눈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난 보스가 나를 이용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나도 보스를 이용하는 거예요. 나 혼자서는 형의 복수를 도저히 할 수 없었을 것 같아서 보스를 찾아온 거니까요. 그러니까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그 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야기를 엿들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조금 화가 났지만 이렇게 사람을 감동하게 해서야 따질 수가 없잖아.
━그러게, 평상시에 진작 속을 털어놨으면 쟤가 네 말을 몰래 엿들었겠냐!
‘그래도 엿들었을 것 같은데요.’
━……하긴, 저 녀석이라면 그랬을지도.
옆에 앉아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김재호를 확인한 한서현이 내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 생각이 궁금하다면, 그냥 물어보면 되잖아요.”
“하지만…….”
나는 한서현의 말에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김재호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멋대로 넘겨짚는 것보다는, 그냥 물어보는 게 백 번은 낫거든요?”
한서현은 나를 부추겼다.
“우리가 있어서 조금 그런 거면 나가 줄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는데.”
“아니면요, 또 혼자서 우리한테 폐가 되는 건 아닐까. 우리를 이용해 먹는 건 아닐까 하고 땅을 파려고?”
한서현의 말에 심장이 또 찔렸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분위기가 좀 괜찮았던 것 같은데. 순식간에 이렇게 변하기냐.
━그만큼 네가 우물쭈물하는 게 답답하다는 거겠지.
한서현은 내 가슴속에 남아 있는 죄책감을 모두 몰아내고 싶은 모양이었다.
“재호 형한테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물어보라니까요.”
한서현의 말에 김재호는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나한테 물어보고 싶은 거 있어? 빨리 물어봐.”
애니메이션을 보러 가고 싶은지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김재호의 얼굴에는 한 점의 심각함도 없었다. 반짝이는 김재호의 눈동자를 보고 나니, 더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김재호와 처음 만난 것은, 설록진의 밑에서 구른 지 막 삼 년 차가 됐을 무렵이었다.
제22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