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53
68 복수에 대하여 (4)
처음 유선제가 등장해서 재능을 선보였을 때, 훈련생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의 재능을 내보였다.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 건 그다음이었다.
기원호 트레이너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이곳에 있는 몇 명이 유선제와 팀을 이루게 될 거라고.
그 순간, 훈련실에 흐르던 공기가 바뀌었다.
무려 ‘그’ 유선제와 팀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었다. 게다가 기원호 트레이너의 말을 들어보면 그 팀은 일회성도 아닌 것 같았다.
시리우스 최고의 헌터와 같은 팀에 소속되어 시리우스의 간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이 훈련이 끝날 때까지 눈에 띄어야만 했다.
같이 이곳에 입사한 동료가 최악의 라이벌이 되는 순간이었다.
심지어 유선제를 흉봤던 이도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첫 번째 날은 최악으로 끝이 났지만, 그다음 날부터 훈련생들은 정신을 차렸다. 적어도 흉한 꼴은 보여서는 안 됐다.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면 버려질 테니까.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 그들은 최고의 아카데미인 바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졸업생들이었다.
그다음 날부터 다들 이를 갈고 좋은 모습을 보여 주었다. 기원호 트레이너의 표정은 그제야 나아졌지만, 유선제는 두 번째 날부터 나오지 않았다.
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유선제의 눈에 띄는 게 제일 중요했지만, 유선제는 이미 그들에 대한 희망을 모두 버렸다는 듯이 나오지 않았다.
그 실망감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훈련생들은 죽어라고 최선을 다했다. 어쩌면, 기원호 트레이너의 말을 들은 유선제가 다시 와 주지는 않을까 해서.
그리고 오늘, 훈련 내용을 확인한 소이연의 얼굴은 죽상이었다.
일대일 전투라니.
이번 훈련에서 소이연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점수를 딸 수 있는 건, 몬스터를 처치할 때뿐. 보조계 능력자인 그녀가 이 테스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소이연 훈련생은 이번 훈련에서는 열외.”
“저, 저도 할 수 있어요.”
“보호막을 만드는 재능 아니었습니까?”
“아티팩트가 있으면…….”
“지금 훈련은 순수하게 자신의 재능으로 몬스터를 얼마나 처리할 수 있냐는 겁니다. 아티팩트 사용은 금지되고요.”
기원호의 설명에 소이연의 어깨가 추욱 처졌다.
기원호의 말대로 소이연의 재능은 보호막을 만들어 내는 거였다. 공중이든, 어디든, 그녀는 실체를 가진 실드를 짜낼 수 있었다. 허공에 보호막을 만들어 낸다는 간단한 재능이지만, 잠재력 A급에, 막대한 마력으로 짜내는 보호막은 웬만한 공격은 전부 방어할 수 있었고 그녀는 훌륭한 성적으로 바벨을 졸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훈련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기본적인 점수는 준다고 했지만, 이 정도 점수만으로 유선제의 팀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훈련이 끝나고, 소이연의 곁에 다가온 훈련생들은 가볍게 말을 던졌다.
“너는 보조계니까 대충해도 무조건 팀에 뽑힐 거 아니야.”
누군가의 말에 소이연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소이연이 제일 싫어하는 말이 저거였다. 너는 어차피 보조계니까 대충해도 되잖아. A급 보호막이라니, 그냥 개꿀 아니냐? 아무것도 안 해도 다들 널 데려가려고 할걸.
물론, 타고난 재능 덕을 소이연은 많이 봤다. 실제로 몬스터들과 근접해 싸우는 헌터들을 보면 자신이 얼마나 편한지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훈련을 등한시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이 단조로운 재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하지만 그 노력은 이곳에 도착한 첫째 날, 최악의 형태로 나타났지.
첫째 날, 소이연이 보호막을 잘못 깔아 아군의 공격을 가로막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 유선제의 눈빛은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원래도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그때에는 정말이지. 한심하다는 기색이 역력해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자신이 동경하던 헌터에게 그런 눈빛을 받았다니.
죽을 만큼 부끄러웠다.
‘나도 알았냐고, 그때 걔가 마력탄을 날릴 줄!’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결국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고 보호막을 친 건 소이연 본인이었다. 그 보호막 때문에 세 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도 지워 낼 수 없었다.
‘그런 실수까지 저질렀는데, 그냥 보조계라고 안심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소이연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 누구도 소이연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이미 소이연은 그들에게는 동료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자신의 자리를 빼앗아 갈 수도 있는 라이벌. 아니, 무조건 한 자리를 빼앗아 갈 염치도 없는 보조계 각성자.
그들의 눈빛에는 경멸이 가득했다.
‘그런 실수를 저질렀어도 너는 괜찮을 거야.’
‘너는 상관없잖아, 든든한 재능이 있으니까.’
‘너한테는 몇 번이고 기회가 있을 거야.’
‘우리랑은 달리.’
‘응, 우리랑은 달리.’
언젠가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소이연이 주먹을 꽉 쥐었다. 더 역겨운 것은 그들의 말이 맞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는 거였다.
‘있겠지, 내 자리는.’
왜냐? A급 보호막 재능이니까.
이 세계에서는 재능이 전부니까.
* * *
[생각하지 마. 그냥 받아들여. 넌 모든 에너지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분류해서가 아니야. 그냥, 네 재능이 그걸 가능하게 한다고.] 내가 몇 번이나 그렇게 말했음에도 에드워드의 움직임에는 아직까지 머뭇거림이 있었다.머리로 공격을 보고 종류를 나눠 생각하는 건 에드워드의 버릇일 뿐, 재능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넌 운동에너지도 흡수할 수 있잖아. 마력이 담긴 공격이 아니어도 넌 반응할 수 있다는 뜻이야.] 에드워드가 지닌 재능의 범용성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했다. 에너지 자체를 흡수할 수 있다니. 에드워드는 단순히 마력으로 된 것만 흡수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에너지의 형태면, 무엇이든 흡수가 가능했다.
열기든, 냉기든, 운동에너지든, 뭐든.
그걸 정말로 ‘인식’해서 컨트롤하는 거라고?
‘장담하건대, 에드워드는 그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에너지를 구분해서 분석하고 흡수하는 게 아니라 그냥 본능적으로 흡수하는 거라고.’
━칭찬이냐, 욕이냐.
‘정확한 분석이죠.’
하지만 내 설명에도 에드워드의 반응은 똑같았다.
[그래도 봐야 반응하지.] 그 말에 나는 몸을 뒤틀었다. 이 쓸데없이 고집만 센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안 되겠다. 이 방법만큼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는 안대를 꺼내와 에드워드에게 건넸다.
[무, 무슨 짓을 하려고…….] [알잖아,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하는지.] 나는 에드워드에게 안대를 씌웠다.
[네 그 고집을 꺾으려면 이 방법이 최선이야.] 나는 에드워드를 세워 놨다.
[그, 그냥 날 패고 싶었던 건 아니고? 엉? 내가 잘못했어!] 나는 그 말을 무시했다. 이 상황을 모면하려고 아무렇게나 하는 말에 내가 넘어갈 줄…….
[저번에 재호 푸딩 먹어 놓고 모른 척해서 미안. 그거 사실 나였어.] [너였냐!] 그때 화난 김재호를 달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범인이 너였냐! 순간 욱해서 훈련을 잊을 뻔했다. 후, 나는 속으로 심호흡했다. 저 녀석의 얕은수에 다시는 놀아나지 않겠다.
나는 서서히 내 몸의 기척을 죽였다. 마력까지 써서 완벽하게 지웠으니, 저 녀석이 내 기척을 느낄 가능성은 제로다.
내 기척이 사라지자 불안한 듯 에드워드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말을 던졌다.
[하하, 미안하다니까. 나도 설마 푸딩 하나에 재호가 그렇게 화를 낼 줄은……. 근데 왜 이렇게 조용해? 여기에 있지? 있는 거지?] 그 간절한 질문에도 나는 가만히 숨을 죽였다.
[설, 설마 가 버린 거야? 화났다고 날 여기에 버리고 가 버린 건 아니지?] 에드워드가 간절히 나를 부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음, 아직 멀었다.
에드워드는 곧장 공격이 날아들 줄 알았겠지만, 그건 하수나 하는 짓이다. 그럼 기껏 눈을 가린 보람이 없어지지 않는가.
나는 충분히 기다렸다. 에드워드의 긴장이 흐트러질 때까지. 정말로 내가 떠났다고 생각하고 에드워드가 안대를 풀려고 할 때, 내 공격이 에드워드에게 날아들었다.
[윽!] 내가 쏘아 보낸 약한 마력탄이 에드워드의 가슴을 쳤다. 에드워드의 어깨가 튀었다.
[뭐, 뭔데! 여기에 있었어?] 난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다시 기척을 죽였다.
[미친…….] 욕부터 하다니. 역시 최악의 원어민 교사라니까. 나는 또 한 번 숨을 죽이며 에드워드의 긴장이 풀리길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마력탄을 쏘아 보냈다. 마력탄을 얻어맞은 에드워드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놀라움과 긴장, 분노, 공포가 가라앉으면……. 그때에는 분명 내가 원하는 반응이 나올 거다.
나는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레이에게 말을 건넸다.
‘타고 태어난 재능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없죠.’
━넌 바꿨지, 대단한 나를 만나서.
‘예, 예. 저는 이 세상 최고의 행운아죠.’
하지만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말은 레이가 얼마나 대단한 아티팩트인가 하는 게 아니다.
몸에 새겨진 재능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적다. 나도 전생과 현생을 합쳐 ‘레이’라는 예외를 빼고는 그런 경우가 있다는 걸 듣지 못했으니까. 두 개의 재능을 가진 경우나, 세 개의 재능을 가진 경우를 보긴 했어도 한 번 각성한 재능을 바꾼 경우? 극히 드물다.
하지만 자신이 타고 태어난 재능을 발전시키는 경우는 있다.
단순히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것밖에 못 하던 한서현이 흑마력을 이용해 소환물을 발전시키고, 마법을 부릴 수 있게 된 것처럼.
그림자에 녹아드는 것을 어색해하던 재호가 그림자 안에서 살림을 차릴 수 있게 된 것처럼.
처음에는 지정된 장소로밖에 이동하지 못했던 차송진이, 사람에게 이동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재능이라는 건 결국, 어떻게 응용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마련이다.
[으윽!] 나는 마력탄을 쏘아 보내며 생각했다.
‘에드워드는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어요.’
다만 정말로 대단해지기가 어려울 뿐이다.
‘안주하기에도 딱 좋은 재능이니까요.’
에드워드의 잠재력은 B. 그걸 본 사람들 모두가 이렇게 생각할 거다.
그래, 얘는 B급이니까, 딱 그 정도만 강해지겠네. SS급인 테이카 쿠퍼는 꿈에서도 못 이기겠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순간이나마 에드워드는 테이카 쿠퍼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 에너지를 제대로 써먹지 못해 본인도 부상을 당하긴 했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말이야.
잠재력이 A급이든, B급이든. 그걸 제대로 개화해 내지 못하면 결과적으로는 다 똑같아지거든.
잠재력은 말 그대로 잠재력일 뿐.
어떻게 피어날지는, 본인에게 달린 거다.
[젠장! 진짜 나 가만히 안 둔다! X발, 진짜 X 같고, X 같은데!] 내 마력탄을 얻어맞은 에드워드가 또 한 번 욕을 내뱉는 걸 보면서 레이가 말했다.
━일단 욕은 일취월장하는 중인 것 같은데…….
나는 한숨을 쉬었다.
‘꽤 오래 걸릴 것 같긴 하네요.’
제25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