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255
68 복수에 대하여 (6)
김수인의 죽음에도 비명을 지르는 이는 없었다. 바벨에서 했던 훈련은 아무런 의미도 없지 않았다.
명치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비명을 삼킨 훈련생들은 침착하게 몬스터와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기원호 트레이너는 그러지 못했다. 훈련생을 이끄는 위치인 그였지만,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에는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멍하니 서 있는 그를 바라보며 소이연이 소리를 질렀다.
“트, 트레이너님 뒤로 피하세요!”
땅개는 그런 타깃을 놓치지 않았다.
기원호 트레이너의 앞에 소이연이 마력으로 보호막을 짜 올렸다. 쿠웅! 전위에 선 기원호 트레이너를 향해 달려들던 땅개는 소이연이 만들어 낸 보호막에 막혔다.
━그르렁!
이성을 잃은 듯이 달려드는 땅개를 막는 것은 투명한 보호막이 전부였다. 기원호 트레이너는 자신의 앞에서 이를 드러내고 달려드는 땅개의 모습에 넋을 놓았다. 바닥에 주저앉은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이렇게 될 리가 없는 훈련이었다.
겨우 C급 게이트, 거기에 S급 잠재력의 유선제와 바벨에서 갓 졸업한 루키들까지. 가벼운 산책이 되어야 했을 그들의 게이트 공략이, 지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자신의 바로 앞에서 반 토막 난 시체를 보며 기원호 트레이너는 입을 틀어막았다. 흔들리는 시야의 구석에 들어오는 핏자국과 자신을 향해 이를 드러낸 땅개를 본 기원호 트레이너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으으으.”
소이연이 무어라 소리를 질렀지만, 기원호 트레이너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투명한 막을 박박 긁으며 땅개는 이를 드러냈다. 뒤에 있는 땅개는 멀리에서 달려와 보호막에 쿠웅 몸을 부딪쳤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공포에 젖은 몸은 움직여지지 않았다.
기원호 트레이너가 그렇게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사이, 훈련생들은 눈앞의 몬스터를 처리할 방법을 필사적으로 찾았다.
겉으로 보면 평범한 C급 몬스터인 땅개지만, 저건 평범한 땅개가 아니었다. 평범한 땅개였다면 갑자기 몸이 갈라져 눈앞의 헌터를 삼키지 않았을 테니까.
눈앞의 몬스터는 겨우 둘뿐이었지만, 여섯 명의 훈련생들은 깨달았다. 저 괴물을 처리하는 건 상당히 어려울 거라는 걸 말이다.
“……저런 건 생전 처음 봐.”
“어떻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데?”
“일단 전위가 붙어야…….”
뒤에서 흘러나온 말에 전위 포지션인 이태진이 외쳤다.
“미쳤어? 저거한테 가까이 가라고? 갔다가, 내 몸이 반 토막이 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아니지, 씨X, 그냥 나더러 너희가 공격할 시간을 벌게 죽으라는 거잖아!”
“일단 뭐라도 하긴 해야 하잖아! 이, 일단 공격이라도 날려 보는 건?”
“지금 저 상황에서 우리 쪽으로 어그로가 끌리면 어떡하려고? 저걸 어떻게 대응할지 생각하지도 않고 일단 공격을 날렸다가, 우리한테 달려들면? 그때는 다 죽어!”
누군가의 말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들은 여태까지 누군가의 완벽한 지시대로만 행동했다.
바벨에서는 늘 완벽한 공략이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완벽한 공략 아래에서 자신의 몫을 해내는 데에 능했다. 자신의 몫이 아닌 것에는 굳이 몸을 들이대고 싶지 않았다.
특히, 눈앞에서 허망하게 죽은 놈을 본 다음에는 더더욱 그랬다.
“난 여기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이태진의 말에 누군가 외쳤다고.
“그래서 뭐, 전위인데 뒤로 빼겠다고?”
“그래! 네가 전위니까, 일단은 네가 앞을 맡아 줘야 할 거 아니야!”
이태진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들이 배운 공략은 간단했다. 전위가 앞을 막아 어그로를 끄는 동안, 뒤에서 서포터가 보조를 하고, 강력한 화력을 가진 헌터가 숨통을 끊는다.
클래식하지만 언제나 잘 먹혀들었던 방법이다.
“네가 버텨 줘야지, 우리가 뭐, 뭘 하든 하지!”
그러니 이런 말이 나오는 거겠지. 그 말에도 이태진은 발이 땅바닥에 붙은 사람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뭐가 됐든 좋으니까, 빨, 빨리 결정해. 나도 오래는 못, 못 버텨…….”
소이연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훈련생들이 의미 없는 말다툼을 하는 도중에도 소이연의 마력은 쭉쭉 빠지는 중이었다. 그녀의 손끝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소이연의 보호막은 순간적인 타격을 막는 데에는 유용했지만, 이렇게 오래 버틸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오 분이 넘게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낸 그녀는 이미 한계였다. 소이연의 얼굴을 살핀 이태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일곱 명의 헌터 중 한 명은 전투 시작과 함께 몸이 반 토막 나서 사망, 한 명은 제대로 전투에 들어가기도 전에 전력 아웃. 남은 전력만 가지고 저 정체도 알 수 없는 몬스터 두 마리를 해치울 수 있을까?
그때 누군가 희망을 가지고 외쳤다.
“유선제 헌터님은?”
그라면 지금의 이 상황을 마법처럼 순식간에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허나 그들의 희망은 곧 비참하게 꺾였다.
왜냐, 유선제 또한 습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쪽에 붙은 몬스터는 무려 일곱. 도움을 바라고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던 훈련생들의 얼굴에 절망이 깃들었다.
‘젠장.’
저 몬스터들을 해치우고 유선제가 그들을 도와주러 올 수도 있겠지만,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몬스터의 공격을 막고 있던 보호막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원호 트레이너가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하…….”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
이태진은 이를 악물고 뒤에 매어 두었던 창을 꺼냈다.
* * *
뒤에서 일어난 소란에도 유선제는 시선을 뒤로 돌리지 않았다.
그의 앞에 나타난 일곱 마리의 몬스터들이 그에게 일제히 달려들었으니까.
그와 동시에 유선제의 동공이 희게 물들었다. 허공에 작은 번개들이 툭툭 튀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개들을 피해 재빨리 허공으로 몸을 이동시킨 유선제는 곧바로 그 개들을 향해 낙뢰를 꽂아 넣었다.
공기 사이를 찢고 날아간 마력은 땅개들의 몸에 그대로 내리꽂혀 그대로 살점을 태워 버렸다.
근육과 핏줄이 모두 타들어 가는 고통에 땅개들은 땅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땅개들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검었던 눈동자가 붉게 물들고 입 사이로 걸쭉한 액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땅개의 형상을 했던 괴물들은 곧 본 모습을 드러냈다. 매끈했던 뱃가죽이 갈라지기 시작하며 그 안에서 날카로운 이빨들이 드러났다. 언데드처럼, 불길한 흑마력을 내뿜는 놈들의 모습에 유선제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에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 있는 몬스터는 확실히 언데드화 되었다.
근육이 익어 버리면 더는 움직이지 못하는 다른 생물체와는 달리 흑마력의 힘으로 움직이는 언데드들은, 번개에 제법 강했다.
하지만…….
공중으로 몸을 띄워 올린 유선제는 양손에 마력을 모았다. 그의 손짓에 따라 주변의 공기들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유선제의 몸을 타고 모인 난폭한 마력들은 곧 수십, 수백 개의 번개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선제의 의지를 따라 그 번개들은 하나의 점으로 모였다.
일점 폭발.
모든 번개가 한점으로 모여 땅개의 몸을 갈겼다.
세상이 번쩍였다. 한곳으로 집중된 번개의 힘을 맞은 땅개는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언데드고 무엇이고, 막대한 힘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 온몸의 근육을 익혀 버리는 것만으로 멈출 수 없다면, 먼지 하나 남지 않게 태워 버리면 그만.
남은 땅개의 수는 여섯.
유선제는 또 한 번 정신을 집중해 마력을 모았다. 그러나 그때. 슈웅, 유선제를 향해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예민한 감각 사이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창을 눈치챈 유선제는 힘을 흩어 내고 바닥으로 순간 이동했다. 조금 전까지 자신이 있었던 허공을 거대한 창이 꿰뚫고 지나갔다.
유선제는 눈을 가늘게 뜬 채로 그 창을 응시했다. 하늘을 향해 날아가던 창은 그 순간 꼿꼿이 멈춰 섰다. 마치 유선제를 노려보는 듯이. 그러고는 곧바로 유선제를 향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유선제는 창을 향해 번개를 쏘아 냈지만, 창은 유선제의 번개를 그대로 흡수했다.
유선제의 눈동자가 커졌다.
창에 몸이 꿰뚫리기 직전 유선제는 가까스로 또 한 번 몸을 이동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바닥에 떨어지듯 착륙한 유선제는 몸을 비틀거리며 자세를 다시 잡았다.
자신의 번개를 흡수한 공중에 뜬 창을 노려보면서.
“내가 못 본 사이에 재미난 기술을 익혔네.”
숲 사이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유선제는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캡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그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등 뒤에는 조금 전 유선제를 향해 날렸던 것 같은 창들이 다섯 개나 떠 있었다. 놈의 손짓을 따라 땅에 꽂혀 있던 창이 그의 등 뒤로 날아갔다.
염동력, 능력자.
유선제는 천천히 놈을 살폈다. 캡 모자 아래로 드러난 턱 끝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화상을 입었는지, 아니면 원래 저렇게 생긴 것이든.
“그동안 잘 있었냐? 잘 있었겠지, 씨X.”
놈은 다짜고짜 유선제를 향해 욕설을 뱉어 냈다. 놈은 마치 유선제를 아는 것처럼 친근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누구는 이 꼴이 돼서 인생을 말아먹었는데, 너는 여전히 시리우스의 간판이 되어서 잘 나갈 거라니. 그런 건 안 되지, 안 되고말고…….”
놈은 손을 들어 올려 손톱을 물어뜯었다.
‘제정신이 아니군.’
그 신경질적인 모습에 유선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망상? 정신이상인 것 같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지. 여기에서 자신을 노린 건 무엇 때문이지? 유선제가 그런 생각을 이어 나갈 때였다.
“나, 나잖아!”
놈이 가슴을 팡팡 치며 유선제에게 말했다.
답답함에 유선제가 그 말에 답했다.
“도대체 네 놈이 누군데?”
맹세컨대, 자신의 머릿속에는 저 녀석에 대한 정보가 조금도 없었다. 저런 끔찍한 얼굴을 쉬이 잊었을 리가 없었을 텐데도.
그 말에 놈은 잠시 멈칫했다가 곧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렇지, 네 놈이 나를 기억할 리가 없지. 그래…….”
놈은 캡 모자를 집어던졌다. 끔찍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드러났다. 붉게 물든 동공이 유선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젠 기억하게 될 거야. 영원히, 세상 사람들은 날 영원히 기억하게 될 테지. 그 빛나는 시리우스의 간판 유선제를 죽인 사람으로…….”
“네까짓 게 날?”
유선제는 놈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언데드를 준비하고, 아티팩트까지 준비한 모양이지만 저런 녀석에게 자신이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유선제는 마력을 끌어올려 놈을 향해 쏘아 보냈다.
하지만 유선제의 번개는 놈이 아니라 놈의 창으로 모여들었다.
“그거 알아? 네가 다루는 번개 말이야. 마력으로 만들어진 거긴 해도, 이 자연에 존재하는 그 번개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거 말이야.”
놈은 천천히 유선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유선제는 수없이 놈에게 마력이 담긴 번개를 쏘아 보냈지만, 놈은 그때마다 공중에 창을 회전시켜 유선제의 번개를 흡수했다.
유선제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하하!”
유선제의 표정을 살핀 놈이 웃음을 터트렸다.
“끝내주지? 이 창이 뭐냐면 말이야. 썬더버드의 서식지에서 특별히 채굴한 금속으로 만든 거란 말이지.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금속보다 번개를 잘 끌어당기는 속성을 가지고 있단 말이야.”
피뢰침에 번개가 내리꽂히듯, 유선제의 번개는 놈의 창에 가장 먼저 내리꽂혔다.
“네가 아무리 잘난 헌터여도 말이야. 금속이 번개를 끌어당기는 자연 현상 자체를 뒤집을 순 없어. 이 창이 있는 한 넌 내 몸에 손끝 하나 댈 수 없다고.”
놈의 끔찍한 미소를 본 순간 유선제는 깨달았다.
저 녀석은 정말로 자신을 ‘사냥’할 작정으로 이곳에 왔다는 걸.
제25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