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02
80 실수에서 배운다는 것 (2)
내 모든 이야기를 들은 첸륜은 극적으로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정말로 내가 ‘테이카 쿠퍼’와 알고 지내는 사이가 맞는지에 대한 의심을 한참 하긴 했지만…….
그래도 내 말이 ‘전부 사실’이라면,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단다.
덕분에 우리는 싸움을 멈추고 해성회의 본부로 초대받을 수 있었다.
해성회의 본부라는 곳은 의외로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가며, 한서현이 내게 속삭였다.
“정말 저 안으로 들어가는 거, 괜찮은 거예요?”
“여차하면 도망갈 수 있잖아. 그러니까 송진이 형이랑 손을 꼭 잡고 있어.”
한서현이 혀를 차며 말했다.
“너무 송진이 형만 믿고 있는 거 아니냐고요.”
음, 유사시에 도망칠 수 있는 수단이 있으니 든든한걸. 막상 내 말을 들은 차송진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지만 말이다.
에드워드가 내게 영어로 조용히 물었다.
[아까 송진이 말해 줘서 대충 들었는데, 정말 저 친구들을 용병으로 만들 생각이야?]
[그래, 그게 최선이잖아. 전원이 다 각성자겠다. 미래를 생각하면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지. 게다가 미국은 각성자에 한해서 범죄를 사해 준다며.]
첸륜의 능력은 절륜하다. 순간 이동이라는 능력은 언뜻 보기에는 사기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전투에 응용하기는 참으로 애매하다. 하지만 첸륜은 그 능력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거기에 유마라는 여자의 능력도 엄청나고.
해성회의 전력이 이 둘뿐일 리도 없으니, 어쩌면 정말로 대단한 용병대를 만들 수 있을지도.
[그동안 저질렀던 일을 책임지라는 말은 못 해도, 앞으로 그렇게 살지는 말라고 말해야지. 어, 그런데 말로만 끝나면 이쪽도 무책임한 거니까, 나름대로 책임을 져야지.]
적어도 이쪽은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면피용 변명이라도 있으니 말이지. 그래도 갱생의 기회를 한 번쯤은 주고 싶달까.
[그 책임이라는 게 테이카 쪽에 저놈들을 떠넘기는 거야?]
[인맥은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거니까.]
내 말에 에드워드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에드워드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하하, 세계 최강의 헌터한테 중국 범죄 조직을 떠넘긴다라. 정말이지 최고야.]
[뭐, 엄밀히 말하자면 테이카가 저 사람들을 책임지진 않을 거야. 명색이 테이카 쿠퍼인데. 대신 일을 처리해 줄 사람이 있겠지.]
[어…….]
내 말에 눈을 깜빡이는 에드워드를 보며 내가 덧붙였다.
[오승우라는 그 사람이 개고생하게 되겠지.]
테이카 쿠퍼 담당이니, 그 녀석이 저지른 일을 처리하는 것도 오승우의 몫이겠지. 내 말에 에드워드는 내 어깨까지 퍽퍽 쳐 가며 웃었다.
[최고의 복수야.]
딱히 오승우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이 일을 저지른 건 아니지만, 뭐, 에드워드의 속이 조금이라도 시원해졌다면 그걸로 오케이였다.
우리는 계속해서 첸륜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해성회의 본부는 지하에 있었다. 악당이라고 이런 칙칙한 곳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워낙 중국 정부의 감시가 빡빡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런 곳으로 몰리게 된 거겠지.
중국에서 각성자로 살아남는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말했듯, 중국은 공산국가이고 국가의 힘이 그 어느 곳보다 강한 곳 중 하나이니.
각성자마저 독재를 위한 발판으로 써먹으려는 지도자가 한가득인 곳이다.
실제로 정부와 붙어먹으며 다른 각성자들을 탄압하는 데에 앞장을 서는 각성자도 한 무더기이고.
그러니 그런 정부가 싫어 각성자임을 등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까지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범죄 조직이 될 필요는 없지.
이에 대한 남자, 그러니까 해성회의 보스 첸륜의 대답은 심플했다.
[그렇지 않으면, 애들을 전부 먹여 살릴 수 없는걸.]
알고 보니 이 첸륜이라는 남자는 딸린 입이 너무나도 많았다.
[보육원이라도 열어 둔 거야?]
나는 건물 안에 가득한 아이들을 보며 입을 쩍 벌렸다. 못해도 스무 명은 되겠다. 게다가 나이도 죄다 어렸다. 음, 우리 앞에 나타난 녀석들은 그나마 나이가 찬 편이었다. 여기에 있는 애들은 열 살도 채 되지 않은 것처럼 어렸으니까.
[왜 저렇게 어린 애들이 여기에 있는 거지?]
[불법적인 약물을 쓴 경우도 있고, 그쪽에 미리 각성할 사람을 알아낼 수 있는 능력자가 있는 모양이야.]
[그런 능력자가 있다고?]
이제야 IMS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각성자를 납치했는지 이해가 갔다. 각성을 하기도 전에 미리 납치했다면 말이 됐다. 그 누구도 아이의 잠재력을 알아내지 못했을 때, 미리 선수를 쳤다는 거지.
어쩐지, 이 중에 있는 아이들 절반은 아직 제대로 능력을 각성한 것 같지도 않았다.
IMS에서 노린 만큼, 후대에 대단한 각성자가 될 건 분명해 보이지만 말이지.
[이미 알아챘을지도 모르겠지만, 유마의 능력은 물과 동화되는 거다. 그 덕분에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원한다면 바로 알 수 있지. 그 능력으로 IMS를 염탐해, 미리 아이들을 빼돌렸다.]
유마의 능력이 단순히 물을 다루는 게 아니라, 물과 동화하는 쪽이었다니. 어쩐지, 자신이 소환한 물이 공격당했을 때의 반응이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하긴 했건만. 물을 조종하는 게 아니라 물에 동화된 상태였기에 물을 공격했을 때 그토록 고통스러워한 거다.
덕분에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곳에도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지만, 단점도 명확하긴 했다.
물과 온 신경을 동화하는 터라 전투에 써먹을 순 없고, 한 번 동화에 깊게 빠지면 다시 벗어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나.
어쨌거나 유마는 그 능력을 이용해서 이 모든 아이를 구해 냈다.
애초에 유마 또한 IMS의 피해자라고 했다.
[유마는 해성회에 팔려 왔었어.]
첸륜은 내게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 아비에게.]
해성회의 전대 보스, 첸륜의 아버지는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에게 살해당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직접 죽이다니. 보육원 출신이라 새삼 부정이라는 걸 모르는 나지만, 이게 평범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안다.
[궁금한 게 많다는 얼굴인데.]
[그야, 내가 듣기로는 그쪽이 어, 그쪽 아버지를…….]
[죽였다, 그래.]
막상 그 말을 내뱉는 첸륜의 얼굴에는 그 어떤 감정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인데?]
사실, 더럽게 궁금하긴 했거든. 내 질문에 첸륜이 가만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상황에 그리 중요한 정보는 아닐 텐데.]
[응, 근데 엄청나게 궁금해서 말이야.]
내 말에 첸륜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솔직하네. 보통은 패륜아에게 그렇게 정면으로 사정을 묻지는 못하는데 말이야.]
[그래서 뭐 때문이었는데.]
첸륜이 사생아라는 말은 들어서 안다. 하지만 단순히 사생아가 아버지의 권력을 탐해 저지른 일이라기에는, 내가 본 첸륜이라는 남자는 권력 추구형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애초에 권력을 위해서라면 저런 어린애들을 데리고 있는 것보단 IMS처럼 팔아치우는 게 훨씬 이득이었을 테니까.
[내 아버지라는 인간은, 그래, 쓰레기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사람이었지. 놈이 유마를 사 온 것은 열한 살 때의 일이야. 그때는 아직 능력치를 각성하기도 전이었지. IMS 또한 어떤 능력이 각성할지 몰라. 다만 엄청난 등급일 거라는 것만 말해 주었지.]
첸륜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니 그 전에 길을 잘 들여놓으라고 말했어. 능력을 각성한 다음에도 쉬이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유마가 잡혀 왔을 때의 나이, 겨우 열한 살. 그때부터 첸륜의 아비란 놈은 ‘미래’를 위해 유마를 길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길들인다, 그 익숙한 단어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당장에라도 토가 나올 것 같았다.
[꽤나 감성적인 편이네.]
막상 내게 그 말을 하는 첸륜의 얼굴은 담담하기 짝이 없었지만, 나는 크게 동요했다.
[아아, 그게 어떤 식인지 대충 알 것 같거든. 다행이네, 유마가 그 남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어서.]
[아니, 제대로 벗어나진 못했어. 그래서 아직도 저 모양이지.]
우리로부터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 서 있는 유마는 첸륜을 바라보며 무어라 말을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확실히 ‘정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긴 했다.
[이곳에 있던 어린애들을 억지로 끄집어내서 그 싸움터로 내보낸 것도,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야. 유마는 자신이 쓸모없다고 느껴지는 것과 버려지는 것에 엄청난 공포심을 느끼거든.]
[끄응.]
어린 시절부터 몇 년간 학대에 당한 터라, 시간이 흐른 뒤에도 완전히 그 생각을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수를 저질렀을 때 제대로 혼내 두지 않으면, 또 망가져서 실수는 확실하게 지적해 둬야 하지만 말이야.]
[그게 무슨…….]
[몇 번이고 제대로 대해 보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발작을 일으켜서 말이야. 혼을 제대로 내지 않아도 망가진다고.]
그렇게 말하는 첸륜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확실히 첸륜의 아버지는 가장 끔찍한 방법으로 한 사람의 인격을 부숴 놓았다.
[그렇다면 당신 아버지를 죽인 건…….]
[유마 때문은 아니야. 그건, 당신이 했던 말대로 ‘얻어걸린’ 거지. 아버지는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죽였어. 나는 그에 대한 복수를 했을 뿐이야. 해성회를 부숴 아이들을 돕기로 한 것도 내가 사랑했던 사람 때문이고.]
첸륜은 딱 잘라 그렇게 말했다. 자기는 좋은 사람이 아니지만,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은 그랬으므로 그 사람의 유지를 이었을 뿐이라고.
뭐야, 보기보다 엄청난 로맨티시스트잖아.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야. 그 사람이라면 내가 해성회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을 테니까.]
[으음.]
생각지도 못하게 훅하고 치고 들어온 TMI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은 건 네놈 아니냐?
‘그건 그런데, 갑자기 사랑 타령을 할 줄은 몰라서요. 그도 그럴 게,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타입이잖아요.’
잘생기기는 했지만, 어딘가 무기질적으로 보이는 데다가 나처럼 인상이 더러운 편이라 영 신뢰가 가지 않는 인상의 남자가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언밸런스 자체였다.
[그러니 말해 봐라. 이런 상황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지.]
왜 저 애들을 돌려보내지 않는 건지 내가 물었을 때, 첸륜이 한 대답은 간단했다.
저 아이들이 납치된 곳에서는 도저히 IMS로부터 저 아이들을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무리인 건 알지만, 내 사정 때문에 저 아이들을 다른 이들에게 보내고 싶지는 않아. 겨우 다른 사람을 믿게 된 참이니, 더더욱.]
그렇게 말한 첸륜이 내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우리 모두를 받아 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저지른 일은, 쉽게 용서받을 수 있는 게 아닌데도.]
[용서를 해 주고 말고는 내 일이 아니야. 그쪽의 일도 아니지. 나는 다만 기회를 줄 뿐이야. 내게 자격은 없지만…….]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래, 정확해.]
나는 첸륜의 검푸른 눈동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기회를 어떻게 살릴지는 당신의 몫이지. 다만, 한 가지는 명심해. 다시 한번 그런 사고를 치면, 그때에는 이렇게 웃는 얼굴로 서로를 바라볼 수 없을 거라는 거.]
나는 첸륜에게 경고했다.
내게 악을 징벌할 자격은 없지만 그럴 능력은 충분하니까.
제30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