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 villain, but I wish for world peace RAW novel - Chapter 344
88 젠트리 제약 회사 (2)
김성득 의원이 그렇게 되면서 현무 제약이 위태로워졌으니, 이쪽에서도 무언가 방법을 찾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하니 젠트리 제약 회사라는 이름이 벌써 언급될 줄은 몰랐다.
‘빌어먹을 도미노 효과.’
그나저나 그쪽에서 벌써 각성자 관련 약물을 개발하는 중이었다니.
‘딸이 그렇게 되고 나서부터 개발에 착수한 게 아닌가.’
설마 딸이 벌써 잘못된 건가? 혹시 모르지, 내가 바꾼 무언가가 딸의 죽음을 초래했을지도.
당장은 그쪽의 정보를 찾아보는 게 급선무였다. 나는 한서현에게 젠트리 제약 회사 사람들, 특히 사장을 중심으로 정보를 캐 달라고 부탁했다.
내 부탁에 한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주변을 쓱 훑으면 되는 거죠?”
“응, 사장하고 그 딸 위주로.”
혹여나 딸이 잘못되었다면……. 뭐, 새삼 내가 초래한 죽음에 죄책감을 가질 생각은 아니지만, 그래도 알아는 둬야 하지 않겠는가. 원래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을 운명이라지만, 그래도 그녀의 죽음을 그냥 넘길 생각은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한서현이 내게 물었다.
“그나저나 각성자 제어 약물이라니, 그게 정확히 뭐예요? 정말로 각성자의 능력을 제어하기라도 할 수 있단 뜻이에요? 그런 게 가능하기는 한가요?”
질문이 쓸데없이 장황하다. 뭐, 한마디로 대답을 해 주자면.
“응, 제어하는 게 가능해.”
젠트리 제약 회사의 약은 ‘진짜’다. 과거에는 확실히 진짜로 개발해 내는 데에 성공했었지. 내 대답에 한서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어라면, 어떤…….”
“정확히 말하자면 제어라기보다는 무력화에 가까워. 한마디로 각성자를 비각성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뜻이지.”
“히익!”
한서현은 내 말에 겁을 집어먹었다. 그야, 한서현은 자신의 능력을 무엇보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지.
“그런 끔찍한 약물을 왜 개발하는 거예요?”
“영구적인 건 아니야. 약효가 도는 건 두 달 정도랬나.”
“두 달이라도 싫어요! 도대체, 아니, 왜 기껏 생겨난 능력을 없애 버리는 거냐고요.”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능력이 끔찍할 만큼 싫을 수도 있잖냐.”
“그럼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왜 없애기까지 해요?”
“그야, 이 사회에서 각성자는 비각성자보다 훨씬 살기가 힘드니까. 잠재력이 높은 경우면 몰라도, 잠재력이 낮은 경우는 더더욱. 너도 알잖아, 서현아.”
내 말에 한서현이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한서현은 내가 하는 말을 완벽히 이해했을 거다.
‘한조희’라는 예시를 알고 있으니까 말이지.
이 각성자 혐오가 만연한 대한민국에서 어중간한 각성자는, 비각성자보다 훨씬 사는 게 힘들었다. 평범한 아르바이트 자리도 각성자라는 사실을 밝히면 탈락하기 일쑤니까. 결국 각성자라며, 몸이 상할 게 뻔한 고된 업무에 갈려 나가는 수밖에 없다는 거다.
사실 저등급의 각성자면, 비각성자나 거의 다름없는데도.
“그런 사람들에게 그 약은 희망이 될 거야.”
“정말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나라가 그 꼴을 내버려 둘까요?”
한서현의 가라앉은 눈동자를 보며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곧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정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이 바뀌기 위해선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약이 나와도 그걸 제대로 써먹을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겠지.
“뭐, 그게 아니더라도 쓸 곳은 많아. 범죄자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도 있을 거고.”
“지금의 정부라면 그걸 남용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요. 솔직히 말하자면 양지보다는 음지에서 훨씬 잘 쓰일 것 같은 약물이잖아요, 그거. 여태까지 각성자라고 으스대던 놈한테 몰래 꽂은 다음에 암살을 한다든가…….”
나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약물에 대해 듣자마자 바로 범죄에 써먹을 생각을 하는 게, 누굴 닮아선지 참으로…….
━비열하다고?
‘똑똑하다고 하려고 했는데요.’
━참나!
확실히 한서현의 말대로 악용될 여지 또한 많았다.
세상은 젠트리 제약 회사 사장의 생각처럼 아름답지 않으니까.
“흠…….”
잠깐, 음지라고?
“무슨 생각해요?”
“네 말대로 이 약은 양지보다는 음지가 훨씬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
애초에 한국에서는 양지에서 팔 수 없는 약이다. 각성자들을 견제하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필사적으로 판매 루트를 막고 이 약의 사용처를 제한할 테니까.
기껏해야 내가 말한 대로 범죄자들을 제압하는 용도로나 사용하겠지.
사장의 원래 개발 의도대로 각성자로 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구원할 약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쓸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음지에서 유통한다면?
물론, 이미 각성자로 등록된 사람들에게는 쓸모가 없을 거다.
하지만 각성자로 살아가길 바라지 않는, 아직 ‘등록이 되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라면…….
‘가능할 거야.’
개발자가 원하는 대로 모두를 자유롭게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몇몇은 자유롭게 할 수 있겠지.
아니면, 해외에 유통해도 되고. 아니, 해외에 유통하는 쪽이 답일 거다. 그쪽은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처럼 우리를 막을 사람도 없을 것이고.
‘만약 이 약물이 미국이나 중국에서 대중화가 된다면, 오히려 한국으로 역수입이 가능할지도?’
‘어차피 설록진에게 찍힌 이상, 한국에 있을 수는 없잖습니까.’
본래는 젠트리 제약 회사의 일을 모두 포기하고 도망이라도 내보내야 하나 싶었지만, 음지에서라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그 재능을 모두 썩히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낫지 않은가. 게다가 이 방법이라면 붕 떠 버린 은월회의 생산 시설도 쓸 수 있을 거고.
어차피 ‘약’을 생산하는 것이니, 기존 마약 생산 루트와 자원을 그대로 이용할 수도 있을 테니…….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기 아닌가?
일석이조, 아니, 일석삼조, 사조도 가능한 전략이라는 거지.
━서현이 말대로 음지에서 유통되기엔 너무 위험한 약 같은데.
‘흠, 그거야 차근차근 알아보면 되지 않을까요. 상황이 바뀐 만큼, 약이 개발되는 방향도 바뀔 수 있을지 모르고 말이죠.’
━만약 일이 잘 풀려서 그쪽에서 네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마약을 대체할 만한 수익원이 될 것 같진 않은데. 한국에서나 좀 팔리지 않을까?
‘해외에서는 음지에서 유통될 필요가 없죠. 각국의 정부들과 거래를 맺는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마약만큼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조직을 유지할 만큼의 수익은 얻을 수 있을 거다. 그쪽에서는 영 마땅찮아 하겠지만, 일이 잘 풀려서 조직을 양지로 올릴 수 있다면 그쪽에서도 좋아하겠지.
음, 젠트리 제약 사장은 생각도 없는데 내가 너무 그 회사를 갈가리 찢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미안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설록진보다는 내 쪽에 이용당하는 게 훨씬 나을걸.
어쨌거나 자세한 계획은 그쪽의 정보를 알고 나서 짜야겠다. 상황이 어떨지 모르니 말이지.
가만히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옆에서 한서현의 말이 들려왔다.
“그 인간은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에요?”
“그 인간?”
“전 대통령이라는 사람이요.”
하여간, 누가 복수 예찬론자 아니랄까 봐.
“금 박사 본인은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잖아.”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금 박사는 복수를 원하지 않았다. 그가 미운 건 사실이지만, 이미 자신은 그 감정을 전부 넘어섰다나. 복수에 대해 생각하느니 모바일 게임 가챠를 한 번 더 돌린단다.
어차피 자신은 부자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살 수 있으니 상관없단다.
그 태평한 말에 얼마나 기운이 빠지던지.
오히려 복수를 해야 한다며 길길이 날뛰는 건 한서현이었다.
“그래도 금 박사를 불행하게 만든 인간이잖아요.”
“그냥 그놈이 나쁜 놈이니까 터는 거야 별 상관이 없지만, 금 박사를 위해서라는 말은 영 아니라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금 박사는 나름의 행복을 찾아 버렸으니까.”
애초에 누군가를 미워하는 게 안 어울리는 사람이긴 했다. 음, 확실히. 호구라는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람이 이상한 데서 쿨하니까 말이다.
물질이든, 감정이든. 오래 붙잡고 있는 파가 아니랄까. 언제든 미련 없이 자신이 가졌던 걸 놓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실제로 과거에도 백도산이 설록진의 개가 되었다는 걸 깨닫고 백도산을 버리고 떠난 적도 있었고…….
“정말로 금 박사를 위해서 뭔가를 해 주고 싶은 거라면, 박사가 부탁한 거나 착실히 알아봐야지.”
금 박사가 내게 따로 부탁한 건 하나였다.
바로 그의 어머니에 대한 소식을 알아봐 달라는 것.
“그 집에는 없던걸요. 수상한 사람도 없었고……. 대중에 알려진 부인과 아들뿐이었잖아요.”
그렇게 말한 한서현이 투덜거리며 입을 삐죽였다.
“그 녀석, 너무 밝아서 기분이 나쁘던걸요. 너무 사랑받은 태가 난다고나 할까.”
“그야, 사랑받았을 테니까.”
“정말이지 이상하지 않아요? 같은 아들인데 한쪽은 몰래 죽여 버리려고 했으면서, 다른 한쪽은 애지중지 끼고 살다니. 처음에는 대중에 말한 게 전부 거짓말이려니 했는데. 진심으로 아끼는 것 같아서 더 기분이 나빠요.”
김석훈의 아들 김영호. 요즘 애들치고는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꼬맹이였지만, 확실히. 누가 봐도 김석훈 미니미에 교육도 잘 받고 사랑을 받은 티가 나는 꼬맹이였다.
한서현은 그래서 더 기분이 나쁘다고 말했다.
“금 박사는 고생 때문인지 얼굴이 그렇게 됐는데…….”
“얼굴이랑은 상관없지 않나?”
“상관 많죠.”
흠, 확실히 김영호에 비하면 좀 그렇게 생긴 건 사실인데. 그래도 사람을 생긴 걸로 놀리면 좀 곤란하지.
“어쨌거나 그 집에는 금 박사가 찾는 사람은 없었어요.”
나는 금 박사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궁금해.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살아는 있는지 궁금하다고 해야겠지.”
금 박사의 쓸모가 사라지자마자 금 박사를 죽이려고 들었던 남자다. 과연 금 박사의 어머니를 살려 뒀을까.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다.
“이건 내가 알아보도록 할게.”
“보스가요?”
“그래, 아무래도 이건 무턱대고 찾는다고 찾아질 정보가 아닌 것 같거든. 진실을 아는 사람이 있는데 굳이 멀리 돌아갈 필요도 없고.”
“정말로 그 ‘계획’대로 할 생각이에요?”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급한 것부터 처리하고.”
“젠트리 회사 일부터 처리하자는 거죠?”
“그래, 설록진이 움직이기 전에 그쪽 사람들을 모두 빼돌려야 하니까.”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 설록진에게 선수를 빼앗기면 곤란하다. 그쪽에 세뇌라도 걸어 버리면, 게이트 안으로 그 사람을 데리고 가지 않는 한 세뇌를 풀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차라리 저희 쪽에서 선수를 쳐서 납치하는 건 어때요?”
한서현의 해맑은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아니, 바로 납치하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그럼 어쩌게요. 아, 저는 벨츠머츠라고 하는데요. 하하, 좋은 사업 제안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이렇게 말할 순 없잖아요? 애초에 저 사람들이 순순히 우리랑 대화를 나눠 줄 것 같아요?”
“음, 아니지…….”
내 뜨뜻미지근한 대답에 한서현이 외쳤다.
“역시 납치가 최선이라니까요.”
그 말에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제34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