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213
00213 #10 – 관심이 필요해 =========================================================================
#10 – 관심이 필요해(8)
2층 시설을 둘러보던 츳키가 탄성을 내질렀다.
“와! 이걸 봐봐! 전망대야!”
알파고가 주워온 잡동사니 중에 분명 저런 것도 있었지.
바보는 높은 곳을 좋아하니까 분명 좋아할 거라고 했던가.
나도 저거 받고 무진장 좋아했던 기억이 있는지라 묘하게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가끔 하늘 구경이나 하라고 준 거야.”
“이거 어떻게 작동해!?”
“잠깐만 기다려봐.”
스위치를 넣고 전기를 연결시키자 작게 위잉하는 소리가 났다.
“오오!”
망원경과 연결된 기기판에서 불이 몇 차례 점멸하더니 이내 완연한 초록색 불이 들어왔다.
츳키는 냅다 망원경에 들러붙어 빤히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무진장 신음을 흘리며 난처해하였다.
“아무 것도 안 보여…”
“그게 네 미래야.”
“뭐 임마!?”
농담은 거르더라도 전망대가 고장 난 건 아니다.
우리는 핵전쟁 이후의 세대이니까.
푸른 하늘이나 밤하늘의 별이 은하수처럼 물결치는 광경은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거다.
이뤄질 수 없는 소망 같은 거지.
대량의 먼지와 검은 운무가 하늘에 드리운 이후로, 낮에도 환한 하늘은 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아마 제대로 된 하늘을 보는 건 영원히 불가능할 거다.
“왠지 실망스럽네.”
얼굴에 바람을 채워 넣으며 토라진 표정을 짓는 것도 어찌 이리도 귀여운지.
알파고가 아니라 츳키와 먼저 만났다면 분명 내 파트너도 바뀌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뤄질 수 없는 만약의 가정에 불과하더라도, 이런 상상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그래서 다이스 게임이 있는 거잖아?”
그렇다.
다이스 게임은 단순한 오락으로서의 기능만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자유롭게 누빌 수 있는 세상, 현실세계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연의 신비, 자유로운 인간관계와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원시시대나 다를 바 없는 야만에 대한 동경에 이르기까지.
피와 폭력.
검과 마법.
지혜와 재치가 존재하되 그 가치는 한없이 추락한 원시적인 봉건사회를 살아간다는 것은, 그것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법이기에 수많은 갤러리들이 방송을 애청하고 또 다른 삶을 향유한다.
그런 점에 미루어보면 게이머라는 직업도 의외로 보람이 있는 편이다.
무장요원 씨도 나름 감회가 들었는지 몇 마디를 거들었다.
“다이스게임은 소망의 결정체와 같습니다. 저희 같은 폭력으로밖에 살아갈 수 없는 현대 무장요원들에게는 특히나 그렇죠. 밤하늘에 별이 없다면, 적어도 다이스 게임에 떠오른 작고 실낱같은 희망이야말로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주기에. 어떤 의미로는 게이머야말로 저희들의 별과 같습니다.”
“우와… 무진장 낮간지러운 말이네. 보통 거기까지 생각하면서 플레이를 하고 있을까.”
“후훗. 개복치씨가 그리 생각해주고 계시니 다행일 따름입니다. 다른 별들은 죄다 썩어문드러진 다크스타처럼 보이니까요.”
악성향 게이머에 대한 재치 있는 폭언인가.
무장요원씨.
그래도 말이지.
별이라는 건 자신의 생명을 불태우면서 후세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법이라고.
게이머와 갤러리의 간격이 몇 백만 광년 같은 아득한 거리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고 해도, 별은 언제든 갑작스레 저물거나 죽을 수도 있는 법이다.
우주의 광활함과 아득한 심연, 무자비한 허무가 그러하듯이 게이머의 성향과 이상, 목표라는 것도 언제든 다이스게임의 가혹한 사망플래그에 집어삼켜질 수 있으니 말이다.
과연 나는 앞으로 몇 번의 죽음을 버틸 수 있을까.
때로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두려워진다.
평정을 가장해도 내 정신도 이제는 상당히 피폐해졌다.
만일 누군가의 조력이 없었다면.
내 곁에 알파고나 츳키 같은 든든한 갤러리들이 없었다면, 가혹한 플레이와 죽음의 반복 속에서 정신줄을 놓고 완전히 망가진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모든 꿈과 희망을 집어삼키고 폭주하는 블랙홀(Black Hole)처럼 왜곡된 욕망 하나만을 투사하는 무수한 악성향 게이머와 마찬가지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그래도 별이라면 차라리 나을 지도 모르겠네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죠?”
“별은 관찰자의 의지 따위에 영향 받지 않지만, 게이머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쉽게 흔들리고 꺾일 수 있으니까요.”
게이머의 타락이 아니더라도, 갤러리의 타락이 있다.
각박한 현실의 생활에 먼저 미쳐버리는 거지.
그릇되고 왜곡된 불안 심리를 투사하며 비정해질 것을 요구하고, 법과 도덕을 어길 것을 요구하며, 오로지 욕망만을 달성하는 도구로서 자신의 별인 게이머를 타락시킨다.
잘못된 길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눈치 챌 즈음이면 게이머도 갤러리도 이미 전부 늦어버리고 만다.
게임 방송이라는 컨텐츠도.
이를 통해 유대관계를 얻는 게이머와 갤러리들도.
모든 것이 전부 엉망진창으로 망가져버린 뒤라는 거다.
“개복치. 방송하기 힘들어?”
츳키가 걱정스레 나를 올려다보며 묻는다.
글쎄.
그런 소리를 들어도 순순히 힘들다고 말해버리면, 그런 얼빠진 녀석이 별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걸까.
대답은 말이다.
처음부터 정해져 있고, 언제나처럼 밝게 스스로를 불사를 수 있어야만 별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전혀. 지금의 플레이는 역대급으로 잘 풀리고 있잖아. 모두가 기뻐하는 것도 즐겁고. 조금도 힘들지 않아.”
진심 반 가식 반의 대답이었다.
츳키는 무척이나 다행이라며 두 손을 끌어 모아 안도했다.
…그래, 이거야말로 정답이다.
내 플레이에 의미가 있다면 오직 이런 순간을 위해서겠지.
나는 싸울 수 있다.
나는 플레이할 수 있다.
조금 더, 이런 갤러리들을 위해서라면 말이다.
“감시카메라를 보십시오. 누군가 왔습니다.”
줄곧 주시하고 있었던 걸까.
무장요원이 카메라를 가리키며 내게 넌지시 알려왔다.
역시나 무장요원, 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반응속도이다.
“저 차량이라면… 알파고와 구아악이 왔군요.”
그 말에 츳키가 화들짝 놀랐다.
“구아악? 그 말로만 들었던 정보생물체?”
아아.
츳키는 구아악의 비밀을 알고 있는 네 명 중에 한 명이지.
나와 알파고, 무장요원, 그리고 무장요원을 통해서 이쪽의 모든 상황을 전해 들었던 츳키까지 이 네 명은 구아악이 정보생물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인원들이었다.
“바람잡이라는 건 역시 속은 기분이 상당하지만…”
찌릿.
가느다랗게 노려보는 시선이 무진장 따갑다.
“그렇다고 굶어죽게 내버려둘 수도 없으니까. 나원참. 거기까지 힘들었으면 나한테 도와달라고 말만 했으면 됐잖아.”
“아무리 나라도 염치라는 건 안다고. 게이머가 와트구걸 시작하면 그건 끝난 거나 다름없잖아. BJ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고는 해도 메인은 엄연한 게이머이니까.”
“흥. 그런 흔해빠진 종자였으면 애초에 보지도 않았어.”
구걸을 하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다녀왔습니다.”
“어서와!”
방역절차를 마친 알파고가 입구에 발을 들이자마자 멈칫했다.
“인간여자의 냄새…”
“…그러는 넌 웨어울프냐?”
“이실직고 하십시오. 떡 쳤습니까?”
“안했어! 그보다 단도직입적으로 뭔 핵폭탄을 던지는 거냐!”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알파고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두 팔을 벌렸다.
정말이지, 장난기 하고는.
얄밉다는 듯이 알파고를 흘겨보다가 못내 지는 척 품에 안겨들었다.
음음.
알파고에게 안기는 건 역시나 기분이 좋다.
코드가 콘센트에 꽂힌 기분이라고 할까, 있어야 할 자리에 돌아왔다는 안정감이 든다.
“헉…….”
그런데 등 뒤로 무진장 따가운 시선이 꽂히는데.
뭐죠.
어째서 츳키가 도끼눈을 치켜뜨고 있는 거지.
“떠, 떠, 떨어져! 어찌 이리도 파렴치한 짓을! 어떻게 감히 개복치를 먼저 안을 생각을 할 수 있는 건데!”
“누굽니까, 남의 집에서 분수도 모르고 짖어대는 여자는?”
“어… 츳키라고, 알지? 너랑 같은 12년차 갤러리.”
알파고는 말없이 츳키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읏. 뭐, 뭐야.”
츳키도 지지 않겠다는 듯이 두 눈에 힘을 주었지만, 결국 알파고의 무표정에 못 이겨 먼저 시선을 회피했다.
“이겼습니다.”
“…나이값 좀 해라. 눈싸움이 웬 말이냐.”
“그거라면 안심입니다. 알파고는 귀여운 15세 미소녀이니까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닌데.
뭐지.
묘한 반칙을 본 것 같은 이 기분은.
“어째서 저 못생긴 여.. 츳키가 여기에 있습니까?”
“고의성이 굉장히 짙구나, 너.”
나는 츳키에게 들었던 정보를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찌릿.
말하기가 무섭게 츳키가 화난 표정으로 날 노려본다.
아니, 딱히 알파고한테 숨길 비밀은 아니었잖아.
왜 나만 엄청나게 타겟팅을 당하는 거냐.
“괜찮아. 알파고한테는 뭐든지 말해도 돼.”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그럼 뭐가 문제인데?”
“으으! 우리 둘 만의 비밀이 아니게 되어버리잖아!”
“둘만의 비밀…?”
핀트를 잡지 못해 헤매고 있는데 이걸 또 알파고는 알아들은 모양이다.
씨익.
보란 듯이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에 손을 얹는다.
“개복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제게 매료되었습니다. 침 바를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암고양이.”
“우, 웃기지 마! 나라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츳키는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성큼성큼 내게 걸어왔다.
뭐, 뭐지?
아니, 그보다 얼마나 가까이 다가오는 거냐.
“처, 처음이니까…”
“뭐? 읍…!”
츳키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나와 입을 맞추었다.
쪽.
보드라운 입술의 감촉과 온기만을 남긴 채 그녀가 입을 떼었다.
“…와.”
내가 멍하니 츳키를 바라보자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의기양양해하는 시선이 보인다.
“어, 어때? 이걸로 개복치는 내 거라는 게 증명됐어!”
“이런 거였다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알파고가 내 고개를 위로 비스듬히 돌리고는 입을 맞췄다.
츄릅. 츕.
단순히 입과 입을 맞대는 수준을 넘어서 혀를 섞는 농밀한 키스였다.
“푸하압…! 너, 너무 길잖아!”
“그래서, 싫습니까?”
“아니, 완전 좋기는 하지만! 갑자기 왜 경쟁심을 불태우는 건데 너희들!?”
알파고는 숫제 하수를 내려다보는 고수마냥 오연한 시선으로 츳키를 내려다본다.
씨익.
입가에 번진 미소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의미를 띠고 있다.
“제가 이겼습니다.”
“아, 아니야!”
“츳키는 이보다 더한 섹스어필을 할 수 있다는 겁니까?”
알파고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알았다.
츳키와 알파고.
두 여자 사이에서 나를 두고 경쟁심에 불이 붙은 거다!
세상에.
나로서는 남자들이 한 여자를 두고 이런 이벤트가 벌어지는 건 익숙해도, 남자의 몸으로 여자들의 경쟁심에 불이 붙는 광경을 보게 될 날이 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다이스게임이 아닌 현실에서의 H한 이벤트라니!
“어, 어떻게 결혼도 안 하고 그런 파렴치한 짓을!”
순간 나도 모르게 엄청나게 짜게 식은 시선을 보냈다.
다이스 게임에서 H씬에 열광하던 갤러리는 어디 갔냐.
그게 다 가식이라고는 믿을 수 없으니 이게 내숭 같은데.
“그럼 단념하시길. 개복치는 이미 저와 장래를 약속한 사이입니다.”
“뭐, 뭐라고…! 그게 사실이야!?”
“어… 그렇지? 알파고랑은 몸도 마음도 잘 통하니까.”
그렇게 말해놓고 나니 뭔가 가슴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 정도로 알파고를 좋아했었구나.
그런 마음과는 다른, 좀 더 음흉한 촉이 서는 것 같은데.
그래.
이거, 잘만 이용하면 주도권을 내가 쥘 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면 알파고에게는 언제나 당하기만 했었지.
나라도 주도권을 쥐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다고.
“그래도 알파고는 너무 주도적이니까. 츳키처럼 온건한 성향의 여자를 보게 되니 이건 이것대로 즐거운데?”
대놓고 추파를 던지지는 않되, 적당히 츳키와 알파고를 동시에 자극하는 발언을 제시한다.
아니나 다를까.
츳키는 무진장 분해하기 시작하고, 알파고는 조금이나마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말이 없고 무표정한데 어딜 봐서 불안해하는 거냐고?
의외로 수다스러운 성격의 알파고가 태클도 정론도 내밀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야말로 당황하고 있음을 알리는 증거. 그 정도쯤은 동거인으로서 간단하게 간파할 수 있지!
“하, 하겠어! 하면 되잖아!”
“뭐를?”
“우, 우우…! 너, 너, 너랑… H한 일을 하겠다고!”
떴다.
H이벤트 플래그가 제대로 떠버렸다!
“개복치의 정실로서 두 사람만의 육체적 교제는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아…
알파고가 이렇게 나오면 명분도 뭣도 없어지지.
뭐, 츳키의 재밌는 반응도 봤고.
아쉽지만 장난은 이쯤에서 그만둘까.
그렇게 생각하는 내게 알파고의 폭탄발언이 떨어졌다.
“여기서는 제대로 H배틀을 통해서 제 몸이 츳키보다 매력적임을 증명하겠습니다.”
일이 도리어 한층 더 커져버렸다.
맙소사.
난데없이 3P 이벤트 플래그가 서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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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휴가를 만끽하는 중입니다.(1/3)
리코멘트가 없어도 양해를 부탁드려요!
대신 다음 화에 간만의 H씬이 등장합니다.
그것도 무려!
3P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