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349
00349 #15 – 셸터(Shelter) =========================================================================
#15 – 셸터(Shelter)(6)
알파고의 정보조작이 느닷없이 진짜 스파이를 잡아냈다.
실로 황당한 사태였지만 이거 다 구라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졸지에 우리는 ISD와 오랜 정보전을 벌인 끝에 사악한 음모를 밝혀낸 전쟁영웅이자 셸터를 몰락의 위기에서 구해낸 구원자 취급을 받았다.
“구라지?”
“아니야.”
“구라잖아.”
“아니야.”
“…엄청 의심스러운데.”
물론 낭자아이는 속지 않았다.
그런 웃기지도 않는 착각을 하기에는 12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도 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제로는 어떻게 된 거야?”
“…이거 절대로 어디 가서 얘기하면 안 된다?”
결국 낭자아이에게만은 진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럼 알파고가 왠지 저쪽이 수상해, 하면서 증거를 위조했더니. 대뜸 외교부 부장 성진이 제 발 저려서 나온 거네?”
“뭐, 그렇지.”
“으으으. 진상이 밝혀졌다간 엄청난 소동이 벌어질 게 틀림없잖아. 그 아이가 엉뚱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런 터무니없는 짓을 저지를 줄이야… 정말이지 민폐 커플이네.”
어째서 나까지 도매 급으로 민폐가 되는 거냐.
“알파고는 셸터를 발칵 뒤엎은 선에서 그쳤지, 너는 전 세계를 발칵 뒤엎었잖아. 안 그래도 그 건으로 해외에서까지 난리가 났다고.”
그러네.
사고 친 규모로만 따지면 내가 몇 천배는 더 크게 쳤네.
“으으. 저지른 일을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고…… 꿀 빠는 시간도 이걸로 영영 바이 바이가 되어버렸어…….”
“정비는 평소에 할 일 다 해놨잖아. 뭘 만들고 싶어도 만들 재료가 없으면 손가락만 빨아야 하고.”
“네가 아직 지옥불반도 시절부터 전해져 내려온 이 땅의 조직생활 전통을 잘 모르는구나.”
낭자아이는 어딘지 모르게 해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만들 게 없으면 있는 거 해체해. 그리고 재조립하지. 덤으로 신형 모델을 계속 연구해야 해. 만들어줘도 예산 없다고 조립도 못할 걸 말야. 그러면서 싸게 맞추라고 갈구고, 싸게 맞추면 전에 거랑 뭐가 달라졌냐고 갈구지.”
“…존나 병신 같은데?”
“그래도 효과가 없는 건 아니야. 셸터 내부에는 신형 모델을 개발했다고 허세를 부리고, 이게 또 셸터 근처에 어슬렁거리려던 부랑자들한테는 잘 먹히거든.”
정말로 다이스 게임이랑 별반 다를 것도 없네.
오드마이어 제국의 불량귀족들 아래에서 시달리는 대장장이들이 딱 저런 트롤링을 당했었지.
물론 그건 내가 겪어본 일이기도 하다. 마지막에는 기껏 신형병기도 개발했더니 밥도 안 줘서 굶어죽었지. 그 귀족새끼는 이번 회차에서 무조건 망하게 만들 거다.
“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니지. 우리 쪽은 어떤데?”
“발전소 연합과는 이미 대화중이야. 놈들이 셸터에 스파이를 심은 건을 빌미로 선제공격을 할 의지가 엿보인 이상, 지금까지대로 버티기만 해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 그 새끼들은 시간을 줘봤자 힘만 계속 커질 뿐이니까.”
쇠락의 시기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몇 백 년이 지나도 지금의 판세가 바뀔 일은 없다.
아니, 바뀌기는 하겠지.
적어도 우리들에게는 조금 더 살기 힘든 세상으로 말이다.
“모두가 직감하고 있는 거야. 수많은 겁쟁이들을 이끌고 전쟁에 나설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는 걸.”
“그런가.”
“락킹 마스터 씨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츳키네 발전소 연합은 어때? 너야 동거 중이니 들은 얘기가 있을 거 아냐.”
“그쪽도 파벌은 있지. 싸우기 싫어하는 겁쟁이와 싸워야만 한다는 걸 알고 있는 현실주의자들의 파벌. 외교부 부장 성진은 겁쟁이 쪽이었지?”
“그래. 안 그래도 그 건으로 발전소 연합에도 압박을 넣고 있어. 너희 쪽 주화파도 알고 보면 돔과 결탁해서 딴 마음을 품고 있으니 뒤로 빼는 거 아니냐고.”
갑작스레 터진 일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기도 했다.
핵전쟁으로 인해 세계가 반쯤 멸망했다는 이유로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하는 무리들.
그들이 존재하는 한, 인류는 스스로 만든 지옥 속을 살아가겠지.
아니, 그런 건 생존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사육이다.
돔과 극동사령부, ISD의 먹잇감이 되기 위한 삶이지.
우리는 증명해야만 한다.
너희가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약자가 아니라고.
폭력으로 억압하고, 제멋대로 만든 규칙에 휘둘릴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고. 이제는 너희가 몰락할 차례가 되었음을, 이 거대한 시대혁명의 흐름을 보라고 말이다.
‘그 시초가 알파고의 블러프였다는 건 참 미묘한 기분이지만…….’
어쩌면 먼 미래에는 이 일에 대해서도 역사의 비화, 정도로 농담 삼아 이야기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지.
적어도 그런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전쟁은 반드시 일으키고, 승리해야만 하는 통과의례이다.
“귀여운 알파고는 혹시 실수한 겁니까?”
“아냐. 잘했어. 그런데 성진이 스파이라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다이스 게임의 플레이 데이터를 통해 대조, 식별한 결과 외교부 부장 성진이 돔의 제 1 순위 영입대상이었습니다.”
과연.
데이터가 쌓이면 이런 것도 알아볼 수 있는 건가.
내심 감탄하는 한편, 작은 의문도 들었다.
“1순위라는 건 혹시 2순위도 있는 거야?”
“있습니다.”
“누군데?”
“치안대 대장 빅터입니다.”
“…….”
제 아무리 막 나가는 알파고라도 그 자리에서 폭로를 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거기서 치안대 대장 빅터까지 스파이 혐의를 걸었으면, 당장 셸터 내부에서 항쟁이 벌어지고도 남았겠지.
만일 항쟁이 벌어졌다면 가뜩이나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는 중이었던 셸터는 자신들이 느끼던 충격과 혼란에 공포의 감정을 실어서 하이퍼 넷으로 뿌려버렸으리라.
그 결과는, 두 말할 것도 없지.
ISD에 유리한 여론이 생성되고, 역으로 저들 쪽에서 선전포고를 하며 대대적인 침략을 개시했을지도 모른다.
언뜻 보기에는 무심하게 막 지르는 것 같아도, 제대로 파급효과를 고려하며 계산한 행동이었다는 거다.
“…역시 대단해. 알파고가 없었다면 나, 지금쯤 살아있을 것 같지가 않아.”
“그것뿐입니까?”
“물론, 이런 매력적인 여자가 없으면 외로워서 못살았겠지.”
표정변화는 적지만, 그런 알파고라도 때때로 작게 미소를 짓고는 한다.
왠지 모르게 지금의 알파고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물론 꽁냥거리는 우리 커플을 지켜보는 낭자아이는 잔뜩 심술이 난 채로 야유를 퍼부었다.
“솔로한테 염장 지르기냐!”
“그런 불순한 말투, 괜찮은 걸까? 좋은 걸 주려고 했는데.”
“남자야?”
“아니. 1와트.”
“으으으! 엄청나게 열 받아!”
평소의 내가 그 심정이었지.
제대로 되갚아줄 수 있어서 다행이야!
괄괄한 목소리로 울리는 방송에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뭔 방송이 저래. 엄청 굵은 남자 목소리잖아. 이런 건 원래 목소리 고운 여자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원래는 그랬는데, 안내양 목소리 더 듣고 싶다고 일부로 못 들은 척 뻐기는 놈들이 있었거든. 그래도 오늘 방송남 정도면 양반이야.”
“다른 날은 어떻기에 그래?”
“사장님 톤으로 방송으로 명령해대는 목소리도 있어.”
“…그건 진짜 싫다.”
역시 셸터 거주민들의 엽기성은 독보적이라니깐.
그런 생각을 품으며 회의장에 도착하자 간부들이 열띤 시선으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지난번처럼 적의 가득한 시선 대신 호의가 넘치는 시선이라는 점에서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부담스럽기는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우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개복치님의 정보 덕분에 셸터에서도 많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것도 나름 변화라면 변화이겠지.
반말 찍찍 내뱉던 락킹 마스터 녀석도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공손하게 인사말을 건넨다.
“얘기는 충분히 나누셨나요?”
“결론은 내렸습니다. 셸터는 발전소 연합과 힘을 합쳐서 군소조직들을 포섭, 빠른 시일 내에 돔을 향해 진격할 예정입니다.”
최상의 결정이다.
어려운 결단을 내려준 그의 용기에는 나 역시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품었다.
짧은 시간 동안 어찌나 치열하게 회의를 나누었는지, 락킹 마스터의 말은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마음 같아선 극동사령부를 우선적으로 공략하고 싶었습니다만, 그쪽은 수도권에 인접해 있어서 대규모 군세의 파견은 뮤턴트들과 충돌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거기는 안 건드리는 게 낫죠. 전에 알아보기로는 근처에 있는 4형 뮤턴트들만 열 명이 넘는 곳이던데요.”
“초인적인 전투력을 지닌 뮤턴트들이 전국시대나 오호십육국마냥 격전을 벌이는 터전에 참전할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 점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냉정하게 회의를 진행할 때도 느꼈지만, 그는 무엇이 중요한지를 혼동하지 않는 냉철한 수완가였다.
“현재 국내에서 반 ISD의 연합을 집결시킬 경우, 최우선적으로 공략해야 할 대상은 돔입니다. 그들의 규모는 단연 독보적이며, 극동사령부를 무너뜨려도 배후에서 돔이 움직이면 뒷감당이 불가능하지요.”
조직의 장으로서 그가 지닌 혜안은 특출 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손색이 있는 수준도 아니었다.
게이머로서 많은 지휘관이나 장교, 귀족 등을 접해왔던 나로서는 기꺼이 A급 딱지를 붙여줄만한 인재이다.
“반 ISD연합군은 가능한 한 신속하게 돔을 포위하고 공성에 나설 계획입니다. 다행히도 돌입에 관해서는 일전에 포획한 백사부대 대장 이준성에게 얻은 정보가 있습니다.”
“그래도 수적인 우위에서는 뒤처지지 않나요? 온갖 세력을 모두 집결시킨다고 해도 돔의 규모에 간신히 맞먹을 정도라고 생각하는데요. 거기에 예의 와트병기까지 고려하면…”
“정확합니다. 저희도 그 건에 대해서 고민한 결과, 한 가지 돌파구를 찾아내었습니다.”
락킹 마스터는 전세를 단번에 역전시킬 전략을 구상하고 있었다.
“돔의 노예군단을 아군으로 포섭시키는 겁니다.”
실현만 가능하다면 병력의 우위는 확실히 이쪽으로 기운다.
그 뿐만이 아니지.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가능하다고 장담할 수 있다.
시설파괴, 병기탈취, 요인암살 등등.
적진 내부에서 갑작스레 등장한 아군이 할 수 있는 일은 수도 없이 널려있기 때문이다.
“이걸로 현실 쪽의 공략은 어떻게든 저희들의 힘으로 해결될 것 같습니다.”
“현실 쪽이라는 말씀은…….”
“다이스 게임. ISD가 노리는 또 다른 목표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저희들의 힘이 미치지 못합니다. 이제 와서 게이머를 육성하기에는 시간도 능력도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슬슬, 이 영리한 남자가 나를 부른 이유가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타국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국내에서는 ISD의 리스트에 수배된 게이머들을 지원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지원입니까?”
“컨트롤마스터나 민지..와쪄염 등의 초일류게이머를 비롯한 여러 일류 게이머들과 유망주에게 게임 공략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지원을 실시하는 것입니다. 실력자 게이머들과 계약을 맺어 공략을 진행 중인 게이머의 게임 내부에 파견시키는 방안도 고민 중이지요.”
“그 얘기를 저에게 해주신다는 것은.”
“생각하시는 대로입니다. 개복치님도 유망주 중에 한 분으로 선정되셨습니다. 게임 진행에 필요한 와트의 지원은 서류검토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며, 공략정보는 무상으로 제공해드릴 예정입니다. 그밖에도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낭자아이를 통해서 전해주십시오.”
그 말에 멍하니 시간만 때우고 있던 낭자아이가 화들짝 놀랐다.
“저, 저요? 또 뭘 시키려고!”
“개복치님은 ISD의 공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의 신변보호를 겸하여 셸터와의 긴밀한 공조체계를 이루기 위해 고위급 간부 한 명을 파견할 예정이다. 거기에 너를 선정했다만, 싫은가?”
“네. 싫은데요.”
“……이유를 말해라.”
“할 일 존나 많을 것 같아서요.”
단도직입적으로 일하기 싫다고 말하는 거냐.
“그를 보필하는 일을 거절한다면, 맹세컨대 너만큼은 책임지고 가장 일손이 필요한 보직으로 보내주도록 하겠다.”
“물심양면으로 성심성의껏 개복치를 보필하겠습니다. 보필하게 해주십시오!”
“그럼 결정됐군.”
뭘 너희들 멋대로 얘기 다 끝난 것처럼 굴고 있냐.
이쪽은 아직 의문이 잔뜩 남았단 말이다.
“와트지원 상한선은 어디까지죠.”
“명확한 기준은 없지만, 개복치님의 현재 이류게이머 급 활약을 감안한다면 1억 와트까지는 제공해드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한테 파견시킬 예정인 게이머는 누가 있죠.”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간부 한 명이 홀로그램 파일을 띄워 올렸다.
[이름 : 조홍] [등급 : 삼류 게이머] [특기분야 : 무력(절정 下), 지휘(이류 上), 전쟁(맹장형 中下)]어째 견본 한 개만 봐도 답이 나온다.
“얘네들 존나 쓸모없는데. 그냥 지원 안 받으면 안돼요?”
“당연히 가능합니다. 지원을 희망했던 게이머들에게는 안타까운 얘기가 되겠지만, 솔직히 삼류 게이머가 누굴 도울 실력은 아니죠.”
“이 새낀 전부터 꼭 엿 먹이고 싶은데, 이렇게 갑질을 다 하게 되네.”
내친김에 친필사인이나 보내줘야겠다.
혹시 알아?
나중에 게이머 짓 그만두고 밥벌이가 궁할 때, 사인 팔아서 밥이나 한 끼 사먹게 될지.
“우와, 기분 나빠. 생각하는 게 훤히 보이고 있어.”
“알잖아, 그 녀석 재수 없는 거. 툭하면 만만하다고 스트레스 풀러 왔던 거.”
“조홍이 재수 없는 건 사실이지. 방금 네 얼굴이 굉장했던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렴 어떠랴.
강적에게도 제대로 엿을 먹였고, 소소한 원한까지 한 번에 갚아줬는데.
셸터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된 이상, ISD의 공격적인 방해를 받는다고 해도 더는 두려울 게 없었다.
============================ 작품 후기 ============================
[Q & A 코너(2/2)]
Q : @안녕하세요 나는 아이템이다 정말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연재와 관련해 질문할것이 몇가지 있는데요 1.이 작품은 앞으로 몇화쯤 남은건가요? 2.이 작품을 완결낸 후 다음 작품을 연재하실건가요? 3.다음작품을 계획중이라면 현 작품 완결후 며칠후에 하실건가요? 입니다 앞으로도 재밌는 글 기대하겠습니다
A :
1. 정확한 편수는 공개해드리지 않습니다만, 아직 잔뜩 남았습니다!
2. 다음 작품도 물론 연재할 생각입니다. 조아라가 될지, 옆동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아마 타 플랫폼에서 실패하고 그대로 조아라에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3. 완결 이후에 [나는 아이템이다]를 얼마만큼 손 보는지, 매니지 선정을 빠르게 하는지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습니다. 설령 이 과정을 거친다고 해도 지금 생각하는 차기작 후보군이 호러 미스테리 추리 갑질물 정도로 막연하고도 기괴한 조합인지라… 구체화시키려면 시일이 좀 걸리리라 생각합니다.
덧> 완결은 아직 한참 멀었습니다! 그저 스케일이 빵빵한 이벤트가 발생했을 뿐이에요!
덧> 잠시 조아라 서버가 터졌던지라 349편은 조금 늦게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