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an Item RAW novel - Chapter 73
00073 #3 – 만수무강하소서 여왕 폐하 =========================================================================
#3 – 만수무강하소서 여왕 폐하(4)
다음 성에 진입하자 우리가 맞이한 것은 전쟁터였다.
뭐야 이거.
텔레포트 제대로 한 거 맞아?
“하르멜 시에 온 거 맞아. 못생긴 새대가리가 그려진 깃발을 보니 틀림없어.”
그걸 알아보는 편이 더 놀라운데.
여기 니네 나라도 아니잖아.
켄이치 녀석, 상당히 똑똑하네.
“그보다… 이거 방문할 시기를 잘못 잡은 것 같구나.”
셀레나의 말대로 성내의 분위기는 흉흉하다고 표현할 수준을 넘어섰다.
내성 성벽 위로 한 무리의 병사들이 접전을 벌이고 있고, 동시에 환히 개방된 성문에서도 기사들이 서로를 향해 살초를 아낌없이 퍼붓고 있다.
내성관저와 도시 내 주요시설은 화재를 진압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고, 그런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망루 위에 올라선 병사들은 성 안에 불화살을 퍼붓는다.
그냥 뭐…
어느 하나만 꼽을 것도 없이 총체적인 혼돈이네.
-쓰레기 : 아. 여기에 서자 녀석 살았었지.
-묵제 : 서자! 시발 그 개새끼가 여깄었구나!
-다스 :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네요. 서자가 도움이 되다니.
갤러리들의 말을 듣고서야 문득 생각이 났다.
투르비쳬 공국에는 즈베늄과 마그람 외에도 악명 높은 NPC가 몇 명 존재한다.
겨우 우호도 좀 쌓아놓고 공국에서 뭣 좀 할라치면 반란 이벤트로 국력을 반 토막 내는 개자식들이다.
반란군 수장으로 손꼽히는 것이 노트레스(Noteless).
영주 하르멜이 이웃영지를 정복하며 영주 불칸의 어린 딸과 관계를 맺어 만든 환영받지 못하는 자식이다.
초창기만 해도 노트레스는 게이머와 갤러리들에게 상당히 인기를 끄는 녀석이었다.
잘생겼고, 인품 좋고, 게이머한테 잘 대해주거든.
뭔가 아, 이게 진짜 귀족이구나 싶은 놈이다.
그런데 그놈의 반란 퀘스트가 모든 걸 망쳐버렸다.
반란이 벌어지면 NPC가 우르르 죽어나간다.
장비 강화 좀 하려고 NPC한테 무기를 맡겼는데 대장장이가 죽으면?
템 없어진다.
급히 무기 회수하러 돌아가면 반란군이나 영주군한테 물자징발 당한다고.
만일 운 좋게 장비는 다 지니고 있었다면?
전시 차출된다.
어느 편인지 하나 정해서 붙어먹어야 된다.
마주친 병력에 즉각 합류하지 않으면?
적대 세력의 스파이로 분류당하고 시야 가득히 적이 바퀴벌레처럼 몰려오는 광경과 마주할 수 있다.
상행은 마비되고, 생산직 게이머는 재앙을 마주한다.
나라가 불온한 판국에 뭘 사고팔고 하겠어.
그렇다고 이벤트가 금방 끝나는지 물으면 그렇지도 않다.
노트레스가 타고난 인품으로 협력자들을 꾸준히 포섭해온 탓에 반란군의 전력은 장난이 아니게 강력하다.
즈베늄은 이 건이 영주 하르멜의 부덕함에 의해 초래되었다고 니네가 알아서 하라고 손 떼버리지.
지금이야 즈베늄이 병신 됐으니 방관하는 처지이고.
아무튼 이거 내버려두면 3년에 걸쳐서 주변 영지나 민간세력이 하나 둘 합류하기 시작하고, 종국에는 투르비쳬 공국 전역이 계급전쟁에 돌입하기에 이른다.
저 멀리 대륙 서부에 자리한 브랑시아 공화국이 공화국의 이념을 북방에도 떨치고자 친히 물심양면 지원을 해주거든.
그렇게 영지 내의 반란이 커지며 나라를 망하게 만든다.
여러 변수로 인해 퀘스트가 발생하지 않을 때는 있는데, 발생하면 투르비쳬 공국이 안 망한 적이 없었다.
시발.
특급 국가멸망 플래그가 서버렸다.
그냥 조기진압 하면 되지 않냐고?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이거, 배후에서 전쟁을 부추기는 놈들이 있거든.
애초에 힘없는 서자에 불과한 노트레스가 무슨 수로 수많은 인맥을 모았겠는가.
바로 마왕군이다.
이 녀석, 아비를 제치고 자신이 보다 많은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약속하며 마왕군에게서 전쟁물자와 전염병, 몬스터 웨이브 등을 통한 지원을 받고 있다고.
게이머가 전쟁 막으려고 하면 마왕군의 간부가 뜬다.
수준은 장비를 갖추지 않은 털보 급.
그만한 무력을 갖추고도 머리도 좋아서 지휘관 타입으로 미쳐 날뛴다.
쉽게 말하자면 이거다.
멍청한 NPC들이 마왕군 좋은 짓만 하고 있음.
그것도 셀레나의 마왕군이 아니라 봉인된 진퉁 마왕쪽의 마왕군이다.
‘셀레나. 당장 본성에 진입해야 한다.’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걸 보면 아직 늦지 않았다.
노트레스는 영주 하르멜과 결판을 짓지 못하고 있을 터.
마왕군 간부는 노트레스의 가신으로 위장하여 분명 같은 장소에서 3D 안경을 쓴 영화 관람객마냥 오오, 하며 상황을 즐기고 있겠지.
그 정도라면 아직은 어떻게든 승부를 낼 수가 있다.
쳐들어가서 마왕군 간부 목만 따버린다.
그러면 만사 해결이다.
다른 게이머들은 게임 초반부에 발생하는 이벤트라 미처 저지하지 못하지만, 나는 실력자들을 동료로 데리고 있다고.
셀레나와 켄이치의 저력이라면 어떻게든 해봄직하다.
“킥킥. 성에 들어가야 한다고?”
헌데 켄이치의 상태가 어째 이상하다…?
“그럼 들어갈 필요 없이 여기서 다 날려버리면 되잖아.”
“너, 그건…!”
“어차피 안에 들어가면 난전이 벌어질 텐데. 진짜 마왕군 간부랑 마주치면 셀레나가 곤란할 거 아냐? 차라리 거리가 있고, 적이 우리를 눈치 채지 못한 지금이 호기야.”
얘기만 들으면 논리정연하고 설득력도 있게 들리는데.
너, 눈이 죽었잖아.
뭔가 퓨즈가 끊겨버린 기계처럼 이상하다고.
“흐흐. 어차피 여길 정리하면 다음에는 마나포션을 빨면서 텔레포트 마법진을 열고, 체력포션을 빨면서 보물을 나르고, 기력포션을 빨면서 업무보고를 듣고, 다시 마나포션을 빨면서 텔레포트 마법진을 열어야겠지.”
‘어… 정답?’
“웃기지 마! 뭐가 정답이냐! 난 기계가 아니야! 마법사도 사람이야, 사람! 쉴 때는 쉬고, 스트레스 풀 때는 스트레스도 풀어줘야 되는 걸! 제발 한 방만 갈기게 해줘! 저 성을 박살내고 싶어! 나도 텔레포트 말고 다른 마법 쓸 수 있다고!”
이렇게까지 정신이 궁지에 몰렸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네.
미치광이가 되기 일보 직전이다.
가만 보니 머리에 ‘상태이상 : 광기’ 같은 것도 걸려있네.
살인적인 피로, 편두통, 포션중독 같은 건 덤이다.
-청읍성 : 母人人!
-츳키 : 알파고. 번역.
-알파고 : 엄마도 사람이야 사람!
-묵제 : 그 드립이었냐ㅋㅋㅋㅋ
-ㅇㅇ : 진짜 켄이치 애처로워서 못 봐주겠다ㅋㅋㅋ
내가 봐도 이건 좀 너무했다 싶긴 하네.
피로만 해도 조금만 더 일하면 얘 죽을 것 같아.
포션 빨로 움직이는 것도 한계가 왔다고.
포션중독 때문에 약효도 안 받잖아.
여기서 마법 못쓰게 했다간 나랑 셀레나한테 먼저 한 방 갈기고 자살할 것 같다.
‘좋다. 마음껏 써라.’
허가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켄이치가 품에서 시약을 꺼냈다. 뭔가 유리병 같은 걸 꺼내서 바닥에 철철 부으며 마법진을 그리는데.
냄새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거 피잖아.
이 녀석 대체 무슨 마법을 갈기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냐.
“악인의 살을 찢어발기고 몬스터의 흉성을 씹어 먹어도 가시지 않는 파괴본능은 더 많은 피와 파괴와 죽음과 절망과 나락을 갈망할지어니, 세상을 피로 물들고 죽음으로 물들이는…”
…저기, 켄이치씨?
주문이 무슨 세계멸망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장난 아닌데요?
게다가 주문은 애초에 안 외워도 되는 거잖아.
그거 전적으로 마법사가 자기 집중력 높이려고 만든 암시어구이고.
평소에 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거냐, 너.
아크메이지는커녕 어엿한 마왕군 사천왕이잖아.
피와 파괴에 굶주린 흡혈귀 종족 출신 파괴술사라도 되는 것 같다고.
그래서 이 녀석, 대체 무슨 마법을 쓰는 걸까.
멍하니 주문이 끝나기를 기다리니 산을 찢고 하늘을 가르고 주문으로 세상이 수십 번은 멸망해가고 있다. 이렇게까지 살의로 충만한 존재는 기존 마왕군에도 흔치 않은데.
“…하여 세상을 멸망시킬 죽음의 비가 내릴 지어니!”
이제 끝난 건가.
“허나 창세가 멸세에 달해도 가시지 않는…”
한참 멀었네.
이게 어딜 봐서 주문이냐.
주문을 빙자한 서사시지.
등장인물 하나만 넣어두면 50페이지짜리 영웅 대서사시 같은 거 하나 완성될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낭자아이한테 텍스트 파일로 하나 만들어달라고 해야지.
주문이 길어지는 탓일까.
심심해진 갤러리들은 마법의 정체를 두고 내기를 걸었다.
-멘쫑 : 최강의 마법! 그건 폭렬마법으로 정해져있지!
-츳키 : [익스플로───젼]!
-낭자아이 : 메구밍은 언제나 옳습니다.
-졸라 : 쟤 기세로 봐선 무난하게 [아귀지옥]이 아닐까.
-쓰레기 : 공격력 존나 쌔보이는데. [구속 제어 술식 0호 개방]일걸.
-구아악 : [파워 워드 킬]에 100와트 검.
나도 갤러리들과 내기를 할 수는 없지만, 셀레나와는 내기를 할 수 있단 말이지.
‘셀레나. 네가 보기엔 무슨 마법이 나올 것 같냐?’
“그걸 본녀가 어찌 알겠는가.”
‘내기해서 진 사람이 소원 하나 들어주기.’
시큰둥하니 날아드는 화살을 낚아채던 셀레나가 두 눈을 휘둥그레 치켜떴다.
뭐지.
나한테 걸고 싶은 소원이라도 있었던 건가.
얼굴을 붉히며 큭큭 하고 웃는 게 상당히 위험한 소원 같은데.
왼팔에 흑염룡이라도 봉인한 것 같은 웃음이라고.
“본녀는 [대붕괴]에 소원 20개를 걸겠네.”
엑!?
소원 그렇게 많이 거는 거냐!
평범하게 1개 가지고 하려고 했는데!
“후후. 자신이 없다면 내기는 없던 걸로 해도 상관없다만.”
셀레나는 의기양양하게 허리에 손을 얹으며 미소 지었다.
뭔가 승리의 자세 같은 걸 취하는 게 상당히 건방지네.
겨우 이 정도 도발에 넘어가리라 생각했다면 정답이다!
자신이 없다니.
나, 개복치.
자신이 없다고 쉽사리 물러서는 허약한 녀석이 아니다!
그 도전, 받아주지!
‘좋아. 그럼 나는 [폭식자의 구름]에 걸겠다!’
기본적으로 켄이치는 7써클이고.
기세를 보니 대량살상에 치중하는 게 틀림없다.
거기에 주문을 저렇게 길게 한다면 파괴력도 높을 거잖아.
7써클, 대량살상, 파괴력.
세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다면 역시 [폭식자의 구름]이다.
이거, 뜨면 구름에 닿는 건 죄다 녹아내리니까.
심지어 구름 자체가 몬스터 취급되어서 많이 먹으면 많이 먹을수록 강해지고, 유독가스도 뿜어대고, 온갖 상태이상도 발현시키고, 내구도도 강해지고 난리가 난다.
확실히 정신을 집중해서 장시간 영창을 할 수 밖에 없는 상당히 성공하기 어려운 고등마법이다.
“……오라! 여기 죽음이 도래할지어니! 악의의 끝에서, 마의 궁극을 추구하며 초마의 절망 아래 만민을 신음하고 절망하게 만들 지어다!”
오오, 드디어 주문이 절정에 이르렀다!
켄이치는 한껏 두 팔을 치켜 올렸다.
그리고는 결연한 표정으로 긴 영창의 종지부를 찍었다.
영창의 끝은 물론 주문명을 외치는 거지.
모두의 관심이 집중된 순간.
켄이치의 장엄한 외침이 널리 울려 퍼졌다.
“넝쿨 자라기!!”
넝쿨 자라기냐!?
-낭자아이 : 개씨밬ㅋㅋㅋㅋㅋ
-쓰레기 : ᅟᅮᆷ너ㅏㅣ루잫ㄹ우ㅠ재
-구아악 : 갸아아악 구아아악
-츳키 : 그 주문 다 뭐였던 건뎈ㅋㅋㅋㅋ
-멘쫑 : 식스센스 이후 최고의 반전; 뒷골이 다 찡하네;
그 길었던 주문하고 도저히 매칭이 안 되잖아!
넝쿨한테 대체 무슨 짓을 시키려는 건데!
비료로 시체를 뿌리는 거냐? 물 대신 피를 뿌려주는 거냐?
셀레나와 나의 어처구니 없어하던 시선이 점점 위로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점점 솟구치고 있다.
넝쿨이.
존나 크게 자라고 있다.
저게 뭐야.
어디까지 자라는 건데.
넝쿨 자라기 1써클 기초마법이라고.
이렇게 크게 키우는 사람 없었단 말이야.
구조랑 섬유질을 대체 어떻게 재배열시켜야 높이만 무려 70m도 넘는 넝쿨이 성을 칭칭 감고 자라고도 계속 하늘을 향해 뻗어나는 거냐.
굉장한 기세로 지진까지 동반해가며 자라고 있다고.
땅 밑에서 얼마나 두꺼운 뿌리들이 자라고 있을지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자, 잠깐… 저거, 넝쿨에서 이상한 게 자라고 있네만.”
넝쿨뿐만 아니라 진드기 같은 것들도 자라고 있다.
이게 어딜 봐서 넝쿨 자라기야.
동화 잭과 콩나무에나 나오는 세계수 같은 거잖아.
『파티원 켄이치가 과도한 물약중독으로 인해 광기상태로 시전한 마법이 놀라운 효과를 일으켰습니다!』
누군 눈 없냐.
그건 나도 봐서 알고 있다고.
누가 봐도 놀라운 효과잖아.
『초거대넝쿨이 차원의 틈을 비집고 자라납니다.』
……넝쿨이 뭐요?
어디로 자랐다고?
차원의 틈?
『초거대넝쿨이 특수차원 [거인들의 낙원]과 연결되었습니다.』
나 점점 상황을 쫓아갈 수가 없다.
이 약빤 마법사 년이 무슨 짓을 저지른 건데.
『초거대넝쿨에 뽑혀 올라간 하르멜 성이 특수차원 [거인들의 낙원]에 도달했습니다.』
심지어 지진인 줄 알았던 게 성이 넝쿨에 뽑혀 올라온 거라고 한다.
이게 무슨 짓이야.
갑자기 존나 뜬금없이 이상한 데로 도착했잖아.
“하아… 만족스러워… 난… 최선을… 다했… ㅇㅓ…”
풀썩.
힘을 모두 소진한 켄이치가 털푸덕 바닥에 쓰러졌다.
탈진이 와서 기절한 거다.
말도 안 되는 대형사고를 쳐놓고 깜냥도 좋구나.
어……. 음……. 그러니까…….
정리 좀 해보자.
약에 취한 년이 실수로 마법을 보강하고.
그게 초월마법마냥 차원의 틈을 쪼개고 들어갔고.
덤으로 성까지 딸려가서 거인들의 차원에 도착했단다.
마왕군 간부 하나 조지려다가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 작품 후기 ============================
갑질물 전개를 3화 연속으로 쓰다보니 기어이 금단증세가 일어나고 말았군요…
[나는 아이템이다]에서는 주인공이 얌전하면 NPC가 사고를 칩니다.
이걸로 존재감 없는 켄이치에게 [약물중독]과 [사천왕]과 [과로]와 [취중마법]과 [미소녀](까먹었다가 댓글을 보고 추가) 태그가 붙었군요. 조연의 캐릭터 성을 열심히 부각할 수 있어서 만족스럽습니다. 다음 화 전개요? 그건 영화 [잭 더 자이언트 킬러]를 한 편 보고나서 생각하겠습니다.
덧>선추코가 없으면 조금 슬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