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going to retire just to save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221
김채민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진짜로?”
“네.”
“정말로요?”
“S급이라도 다 같은 S급입니까. 홍 선생님이 따라간다고 하셨으니 괜찮습니다.”
“억울해! 저도 학교라는 감옥을 벗어나 일탈을 누릴 자유가 있어요!”
“…….”
“……그렇게 보면 부끄럽거든요.”
비록 이런 마법사일지라도 부끄러움을 알기는 해서 다행이다.
김채민은 멋쩍은 얼굴로 웃었다.
나는 그 얼굴을 빤히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홍 선생님이 들어가는 건 아무도 모르니까 김 선생님도 그렇게 알고 계시면 됩니다.”
“…….”
“왜 그렇게 보세요?”
“아뇨…. 우 선생님도 한 번씩 무서운 소릴 잘한다 싶어서요. 저희가 악당 아닌 거 확실하죠?”
“혹시 악당 노릇을 하고 싶다면 저희와의 연결 고리는 확실하게 끊은 뒤에 부탁드립니다.”
“아, 진짜!”
김채민은 깔깔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마주 웃어 주었다. 물론 진심으로 한 말이었다마는.
곧 웃음을 멈추고 진정한 김채민이 다시 물어왔다.
“그럼 불법 공략? 그런 거예요?”
“불법이라니. 그런 큰일 날 소리를.”
나는 곧바로 부정했다.
“전 허가받았고요. 홍 선생님은 그냥 절 따라오는 겁니다.”
“그게 불법 공략 아닌가요?”
“다르죠. 홍 선생님이 던전 들어간다고 하면 기자 몇 명이 달라붙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입니다.”
“아, 그렇긴 해요. 세이렌 던전 공략하러 들어갔을 때도 그랬거든요.”
그때 기자들에게 시달린 건 공략 때문이 아니라 다른 요인이 더 컸다고 생각하지만….
예를 들면 홍석영이 부상을 입었다거나 하는 종류의.
“그리고 저도 공략을 하고 나올 생각은 없고요. 상황이 여의찮다면 공략하기야 하겠지만.”
“그러면 왜 들어가는 거예요?”
“거기에….”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잠깐 단어를 골라낸 나는 김채민의 물음에 답했다.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요.”
* * *
강원도 철원.
일명 진흙 던전.
원래는 한태경을 데리고 가려고 했다. 한태경과 상성이 잘 맞는 곳이었기 때문에 한태경의 재능을 일찍 일깨우는 데 그만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선의 반대로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그러면 질보다 양이라는 논리에 따라 한태경과 무수히 많은 던전을 도는 것으로 대체했다.
함께 던전을 돈 뒤로 한태경은 내가 뭐라고 말만 걸어도 도망가는 흡족한 상태가 되었다. 비록 그게 오래가지는 못했더라도 말이다. 그래도 한태경이 인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증거였으니 소득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던전을 공략하고 다녔는데, 다행히 전투에 있어서도 무언가 깨달은 게 눈곱만큼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거면 충분하다. 한태경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다음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 수 있을 거다.
한태경에게 깨달음을 주면서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입만 놀려서 실적을 쌓을 수 있었으니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결과가 어디 있겠는가.
그 실적에 더해서 홍석영의 제자라는 타이틀과 이미선의 입김이 살짝 작용하자, 짜잔. 놀랍게도 S급 던전 탐사 허가가 났다.
생각보다 쉽게 허가가 난 건 철원의 진흙 던전이 방치된 지 오래되었던 탓도 있다.
명동 사태 이전에도 이곳을 관리하던 길드는 던전에 자주 들어가지 않았다. 괜찮은 자원도 없었고 외진 곳에 있다 보니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럴 거면 던전을 관리하겠다고 했으면 안 됐지….
방치된 S급 던전만큼 소름 끼치는 게 또 어디 있겠는가. 던전 공략이 아니라, 내부가 안정되어 있는지 확인한다니까 허가가 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바로 그 던전에 누나의 검이 있다. 그게 누나의 검일까, 아니면 내가 들고 있는 것이 누나의 검일까.
여전히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의문이 쌓여 간다.
“그만한 성능의 검이 하나 더 있으면 좋지.”
내가 철원의 진흙 던전에 대한 비밀을 말했을 때 홍석영은 고민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런데 자네, 검 안 쓰잖아? 검이 또 필요해?”
“…여태 제가 휘두르던 건 뭐였습니까? 막대기? 이쑤시개?”
“아니, 아니. 이제 다시 창을 쓸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
“…….”
아무렇지 않게 사람 짜증 나게 잘한다.
“때 되면 알아서 씁니다.”
“자네도 혹시 그건가?”
“네?”
“아직 내가 창을 꺼내 들 만한 격을 갖춘 이가 없는?”
“또 뭐 이상한 거 읽었죠.”
홍석영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히죽 웃었다.
더 말해 봤자 내 속만 터지지.
“아니면 쌍검? 그런데, 같은 아이템끼리 있어도 되는 건가? 왜, 도플갱어를 만나면 죽는다는 말도 있잖은가.”
“그러면 전 진작 죽었어야죠.”
“…그렇군?!”
이 사람을 진짜 어쩌면 좋을까.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있었지. 이록이 녀석은 아무래도… 작잖은가? 아무래도 크기가 다르면 같다는 느낌은 잘 안 들지.”
“십 년만 기다려 보세요.”
“십 년?”
“끝내주는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십 년 뒤라면 우이록도 스무 살인가. 그때라면 괜찮겠는데. 그보다는 한… 오 년쯤 뒤가 진짜 고비일지도.
…칠 년 뒤에도.
당장 삼 년 뒤에도 조금.
“오, 십 년이라고?”
그러나 홍석영은 어쩐지 반색했다.
어쩐지 또 내가 싫어하는 말을 할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
“내가 겪는 시련이라면 당연히 내가 보호자라는 말이겠지? 역시 아들 할 텐가?”
“…이록이한테 허락 못 받았잖습니까.”
“아, 고거. 조그마한 게 성격은 맹랑한 것이 딱 자네 같다니까.”
슬슬 익숙한 패턴으로 대화가 돌아간다.
이 아저씨는 지겹지도 않나. 왜 자꾸 이쪽으로 대화를 트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기서 내가 다른 이야기를 꺼내면 홍석영은 못 이기는 척 나를 따라와 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꺼낼 이야기라고 해 봤자…. 홍석영의 아들 타령과 알렉스 호프, 헨리 레만과 노아 미셀 중에 뭐가 제일 나을지 고민해 보았다.
뭐 하나 괜찮은 게 없다. 인생이 왜 이럴까.
나는 한숨을 내쉬며 운전대를 꽉 쥐었다. 다선에게 빌린 차는 승차감만큼은 좋았다. 그게 유일한 내 위안이었다.
철원으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은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흙 던전(2)
‘이 검을 얻은 던전?’
미간 사이에 잔뜩 주름이 잡힌 여성이 퉁명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왜, 들어가면 너도 뭐 하나 주워 올 것 같냐?’
‘…….’
‘아서라. 내가 나오면서 문을 닫기도 했고, 뭣보다 거긴….’
턱을 톡톡 두드리던 여자는 픽 바람 새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진짜 개더러워.’
* * *
쏴아아….
한 치 앞을 보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비였다. 폭우라는 단어로는 이 비를 설명하기 어렵다. 다른 단어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질 정도다.
크게 소용없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하는 마음으로 챙겨 온 우비는 던전에 들어오자마자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 되었다. 이래 봬도 꽤 비싼 물건이었다. 예티의 가죽으로 만든 우비도 이만한 비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비 때문에 바닥은 이미 진흙투성이다. 걸을 때마다 무릎까지 발이 푹푹 빠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물속을 헤엄쳐서 발목을 물어뜯는 몬스터는 없다는 점이다. 그랬더라면 던전 공략 난이도는 가파르게 상승했을 것이다.
“…! ……!!”
내 목소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는데 남이 내는 소리라고 다르진 않다. 신경을 곤두세워 봤자 폭포처럼 아래로 떨어지는 빗소리만 들린다.
그런 빗줄기 속에서도 어떻게 하늘을 올려 보면 별이 가득한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기이한 광경이다. 맑은 하늘. 비구름조차 없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
홍석영을 향해 손을 움직였다. 따라오라는 간단한 수신호를 보내자 알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들어오기 전 설명을 해 두긴 했지만 나도 이 던전은 처음 들어와 본다. 부디 누나가 날 놀린다고 생략한 사실이 없기를.
쏴아아… 쏴아아….
“…….”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받으며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물에 흠뻑 젖어 달라붙는 옷이 이동을 방해한다.
철벅거리는 물은 무릎 높이에서 더 올라가지 않았다. 이만한 비라면 무릎이 뭔가, 턱 끝까지 물이 차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다면 어디론가 물이 빠지는 구멍이 있다거나, 아니면….
던전은 한정된 공간이다. 게이트가 열리지 않는 이상 던전 안의 몬스터는 이곳에 갇혀 있다. 식물이나 아이템 같은 걸 채취해서 던전 밖으로 나가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몬스터로 분류된 생명체가 던전 브레이크 없이 던전을 나갈 수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겉보기엔 식물처럼 보이는 것이라도 인간을 공격하는 몬스터라면 나갈 수 없다.
호프에게서 던전의 정체를 듣지 못한 예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그러한 메커니즘을 일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옛날이라면 갑작스럽게 폭우가 내리는 던전 환경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 던전이 외계 생명체를 보호하려는 우주선 비스름한 것임을 안 이상 뻔하다.
던전 안의 환경은 탑승객을 위해 맞춰져 있다. 던전을 떠나면 죽는 몬스터는 나가게 할 수 없지만 일부 부품이 나가는 건 아무 상관 없다. 환경 조성용 식물이 외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죽어 간다고 해도, 탑승객만이라도 안에 계속 있다면 그것으로 용도는 다 한 거 아니겠는가.
이 비도, 물 높이가 무릎 언저리로 맞춰진 채 더 낮아지지도 더 높아지지도 않는 것도 전부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누나에게서 들은 이 던전의 몬스터라면…. 음.
질척거리는 진흙을 헤치고 겨우 동굴 입구를 찾는 데 성공했다.
다행히 지대가 조금 높은 곳에 있어서 오래 걸리진 않았다. 입구도 진흙에 완전히 막혀 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폭우에 넘실거리는 빗물이 좁은 동굴 입구로 쏟아지고 있기는 했다.
입구는… 대충 내 허리 높이 정도. 크지 않다.
“…….”
홍석영에게 바로 저기라고 수신호를 보낸 다음, 챙겨 온 형광봉을 꺾어 동굴 안쪽으로 던졌다.
동굴 안쪽은 경사져 있다. 형광봉은 흘러내리는 빗물과 진흙을 타고 아래로 미끄러졌다. 가방에서 형광봉 하나를 더 꺼내 발밑을 비추며 조심스럽게 동굴로 진입했다. 각성자의 튼튼한 몸은 동굴에서 미끄러졌다고 어디가 박살 나진 않겠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은가.
입구에서 조금 들어오자 빗소리가 멀어졌다. 홍석영은 머리를 털었다.
“비가 무슨…. 관절에 안 좋은 던전이군.”
“은퇴하세요.”
“…….”
“뭐요.”
홍석영은 고개를 저었다.
저 아저씨 정도 되는 인간이 약한 소리를 하면 그건 기만이다. 받아 주면 안 된다.
“할 것만 하고 얼른 나갑시다.”
“음…. 공략은 정말 안 해도 되나?”
“하면 좋긴 한데, 상태 어떤지 둘러보고 나온댔는데 공략까지 하면 좀. 하루 만에 나온다고 했으니까 시간 엄수해야죠.”
홍석영은 찝찝한 얼굴로 동굴 벽을 살폈다. 긁힌 자국이 있다. 날카로운, 발톱 따위에 긁힌 것 같은 자국.
“내가 들어가서 공략 안 된 던전은 없는데.”
“앞으로 많이 생길 텐데요.”
“…많이?”
당장 몽생미셸도 공략에 실패했다. 아니, 지금 시점에서도 공략하지 않고 그냥 나온 던전도 있을 텐데 왜 자꾸 시답잖게 농담이나 지껄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쪽은 신경이 자꾸 곤두서서….
혀를 찼다.
“그래도 이건 기록에 안 남잖습니까. 들키지만 않으면 됩니다.”
“자네 공무원이었다며? 그래도 되는 건가?”
홍석영은 눈이 빗물이 들어갔는지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며 물었다.
“들키지 않으면 된다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내가 무슨 대단한 비리 공무원처럼 들린다. 그건 아닌데…. 이게 다 복잡한 이유가 있다.
…아니, 이러면 진짜 비리 공무원의 처량한 변명처럼 들리잖아. 진짜 그런 게 아니라고.
관리청에 대해 조금 설명해 줘도 되겠지. 헌터고처럼 이번에는 관리청도 안정된 기반에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발톱 자국을 따라 동굴 안쪽으로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관리청은 국가 기관이기는 한데, 설립 과정이 많이… 난잡했습니다.”
홍석영은 슬쩍 내 얼굴을 보고선 그 이유를 짐작했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깊게 묻지 않았다.
대부분의 말썽은 명동에서의 일과 연결된다. 홍석영은 그걸 알 만큼 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능관리청인데 선생님 직급이 본부장이었던 것도 그래서고요. 직급을 비롯해 내부도 다소… 엉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