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13
112화. 일반 퀘스트 (2)
균열을 중심으로 넓게 포진하여 박히는 나무 기둥들.
유리도 원래는 이 정도 대공사로까지 일을 키울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가 이곳을 거처로 삼은 이유도 조용히 숨어 있기에 좋은 환경이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만약 공사가 시끄럽다면 ‘나 여기 있어요’ 하고 떠드는 꼴이며, 은신처로서의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셈이었다.
하여 적당히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공사를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조용하게 공사를 하려 했었다.
그랬던 유리의 생각이 변하게 된 건 아린과 뽀삐, 그리고 테레시아가 합류하면서였다.
‘가만? 그런데 왜 내가… 아니, 왜 우리가 숨어 있을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문뜩 그런 생각이 들자 유리는 자신들의 전력을 생각해 봤다.
자신과 아린, 그리고 뽀삐만 하더라도 합을 맞춰 흑검병들을 상대했었다.
물론 곰 역할을 맡은 흑검병들에게 제약이 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자신들이라면 충분히 흑검병도 상대할 수 있다는 게 증명이 된 셈이다.
거기에 이제는 49기의 수석인 테레시아까지 있었다.
그녀의 실력을 가장 잘 아는 건 유리였다.
‘이 정도 전력이라면?’
50기는 물론이거니와 49기 열댓 명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전력이었다.
이에 유리는 깨달았다.
‘아, 그렇구나… 난 여전히 혼자라는 생각으로 공사를 하려 했던 거군.’
유리가 거처를 고르는 기준은 물론이거니와.
그가 하는 대부분 행위의 기준이 ‘나 홀로 대처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는 지금까지 유리가 단 한 번도 동료 의식이란 것을 가져 본 적이 없었기에 생긴 기준이었다.
하지만 그간 테레시아, 그리고 아린과 뽀삐와 합을 맞춰 보면서 그런 ‘나 홀로 기준’에 약간의 변화가 생긴 거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유리는 생각을 바꿨다.
‘애초부터 고작 은신처 역할이나 할 작은 요새를 만들 생각을 하면 안 됐던 거야.’
그건 모처럼 모인 이 정도 전력을 낭비하는 꼴이었다.
고작 은신처가 아닌, 그것을 뛰어넘어 강대한 적이 쳐들어와도 싸우기에 용이한.
현재 있는 구성원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그런 구조로 만들어야 했다.
‘쳐들어올 강대한 적이라…….’
그 대목에서 유리는 씨익 웃었다.
때마침 실험하기 딱 좋은 사람아 한 명 있지 않은가.
마치 자신의 거처를 제집인 것처럼 불쑥 찾아왔다가 바람처럼 떠나간 영감탱이가.
‘후후후, 뒈졌어, 노친네!’
물론 고작 이런 수준의 요새로는 하늘마저 뛰어다니는 요한을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아아아알만 만든다면 최소 놀라게는 해 줄 수 있겠지.’
그리고 요한을 놀라게 할 정도라면 다른 침입자의 목은 쥐도 새도 모르게 따 버릴 수 있을 거다.
거기까지가 공사 규모를 확장하게 된 첫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
그것도 역시 아린과 뽀삐, 테레시아와 관련이 있었다.
‘마체술을 익혀서 그런지 하나같이 체력이 짱짱하네.’
자신을 물론이거니와 궁술을 중점적으로 익힌 아린마저 체력적인 부분은 일반인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아린만 해도 힘과 체력이 일반인의 몇 배에 달했고.
특히 힘과 체력에 특화된 뽀삐는 지금과 같이 힘쓰는 일에서 수십, 수백 명분의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그로 인해 자신을 비롯해 테레시아, 아린, 뽀삐, 이 넷이 지난 사흘간 해낸 작업량은 일반인 수백 명이 일주일 넘게 했을 작업량과 맞먹었다.
다시 말해 마체술을 익힌 사람들은 건설업에 특화된 최고급 인력이란 소리다.
그러니 유리가 확장 공사에 욕심이 안 나겠는가.
‘이거, 생각보다 더 빠르게 끝낼 수 있겠는걸?’
비록 아직은 기초 다지기일 뿐이었지만, 이 속도라면 열흘이 가기 전에 작업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자신이 할 일은 저 고급 인력들이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게 배 속에 기름칠해 주는 것뿐.
유리는 점차 늘어나는 거대한 나무 기둥들을 보며 큰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 밥 먹고 하자!”
그 소리에 쫑긋거리는 세 쌍의 귀를 본 유리는 환히 미소 지었다.
‘많이 먹고 열심히 일해라, 노… 친구들아!’
그리고 그런 노예… 아니, 친구들의 활약에 힘입어.
그로부터 정확히 엿새 뒤.
북도의 북쪽 구역에 높디높은 나무로 둘러싸인, 괴상한 공간이 생겨났다.
* * *
요새의 기초를 완성한 날.
유리는 오랜만에 외출했다.
그 목적은 오로지 포인트 벌이.
그런 유리를 보고 아린과 뽀삐는 ‘포인트도 많으면서 쉬지도 않는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물론 그건 그들이 몰라서 하는 소리였다.
‘내가 포인트가 어딨냐?’
유리의 포인트 잔액은 이미 복불복 상자로 탕진해 바닥이 드러난 상태.
그리고 안 그래도 짧은 2월이다.
그중 열흘을 기초 공사에 투자했기에 이제 남은 시간은 18일.
이번 월말 평가와 다음 달 특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조금 빠듯하겠어.’
하여 유리는 기초 공사를 끝내자마자 퀘스트를 위해 움직여야만 했다.
이에 유리가 아린과 뽀삐에게 같이 움직이자고 권유해 보았지만.
[배고프다!] [포인트도 많은 데 뭐 하러? 우린 쉴 거야! 그러니 방해하지 말고 썩 꺼지시지!]둘은 질색하며 유리에게 손을 휘휘 내저었다.
대신 그런 유리 옆에는 의외의 인물, 테레시아가 함께하고 있었다.
둘이 함께 움직이는 이유는 오늘 아침에 테레시아가 한 제안 때문이었다.
[일반 퀘스트를 할 거면 너한테 딱 어울리는 게 하나 있어. 포인트도 다른 일반 퀘스트에 비해 많이 주고. 안 그래도 나도 그걸 하러 갈 생각인데… 같이 갈래?]유리로서는 그런 테레시아의 제안을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퀘스트를 받기 위해 같이 외출한 것인데…….
자신들이 가고 있는 방향을 본 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퀘스트를 받으려면 원형 경기장으로 가야 하는 거 아냐?”
그 질문에 테레시아가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모든 일반 퀘스트가 그런 건 아니야. 지금 우리가 하러 가는 퀘스트는 현장에서 직접 받을 수 있어.”
“그래? 음, 그것도 그거지만, 텟샤 선배랑 나랑 같이 퀘스트를 할 수 있어?”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가 같이 퀘스트를 하려는 건 아냐.”
“그럼?”
“1, 2년 차가 공동으로 받을 수 있는 퀘스트 시설이 지금 가는 곳에 있을 뿐인 거지.”
“길동무란 소리네. 여기서 멀어?”
“멀지 않아. 금방 도착할 거야.”
그리 답한 테레시아는 다시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유리가 그 옆으로 쪼르르 따라붙어 물었다.
“그래서 지금 받으러 가는 퀘스트가 뭔데?”
“생긴 지는 대략 15년 정도가 된 퀘스트고, 난이도는 별 두 개에서 일곱 개…….”
“별 두 개? 별 일곱 개?”
“…일반 퀘스트의 등급이야. 자세한 건 나중에 네가 알아봐. 그리고 자꾸 내 말 끊으면 얘기 안 할 거다.”
“넵, 조용히 하겠습니다.”
유리가 장난스럽게 입을 꾹 다물자 살짝 한숨을 내쉰 테레시아가 다시 말했다.
“우리가 가는 퀘스트의 명칭은 기관 돌파야. 50m 길이의 함정 기관을 얼마나 빠르게 통과하냐를 측정하는 퀘스트지.”
퀘스트명 기관 돌파.
이를 받기 위해서는 연차별로 지정된 장소로 가야 하며, 원형 경기장을 기준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기관 돌파 퀘스트 시설이 자리해 있다.
그중 1, 2년 차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기관 돌파 시설은 북쪽에 있다는 게 테레시아의 설명이었다.
이를 들은 유리가 이해했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래서 나한테 딱 어울리는 퀘스트라고 한 거였군.”
“맞아.”
테레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본 유리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민첩성이 높은 마체술을 익히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마체술의 특성상 유리에게 함정 기관을 돌파하는 퀘스트는 적격이라 볼 수 있었다.
자신이 그러했듯 말이다.
“너라면 어렵지 않게 순위권에 들 거야.”
“순위권?”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리를 보고 더 설명해 주려던 테레시아는 멈칫했다.
“거의 다 왔네. 자세한 건 직접 보면서 들어.”
“나야 좋지! 그런데 말야…….”
“……?”
“갑자기 왜 잘해 줘?”
“뭐가?”
“보통, 이 정도로 정보를 풀었으면 대련 요금으로 쳐 달라고 했을 텐데? 오늘은 그냥 술술 이야기해 주네?”
“…그냥. 가끔은 이런 날도 있어야지.”
유리의 질문에 테레시아는 그리 답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알고 싶으니까.’
유리가 빠르다는 것은 아마 그와 매일같이 대련하는 테레시아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은 그저 막연하게 빠르다고만 느끼고 있었을 뿐.
때문에 정확히 알고 싶은 거였다.
유리가 얼마나 빠른지.
자신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그래서 그를 이곳으로 데려온 거였다.
이 퀘스트라면 그가 얼마나 빠르고, 자신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런 속마음을 대충 얼버무리고.
테레시아와 유리가 마침내 기관 돌파 퀘스트장에 도착했다.
눈앞에 드러난 광경에 유리는 살짝 입을 오므리며 감탄했다.
“오?”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건 거대한 절벽이었다.
그 절벽에는 21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고, 곳곳에 구멍으로 가는 계단이 정교하게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절벽의 밑으로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를 본 유리가 물었다.
“저게 함정 기관 입구야?”
“그래, 자세히 보면 입구에 시계를 작동시키는 버튼이 있어. 그걸 누르고 들어갔다가 나와서 다시 누르면, 네 기록이 측정되는 거지.”
그런 테레시아의 설명에 예시를 들기라도 하듯 한 동굴 입구에서는 한 남자가 시계 동작 버튼을 누르고 뛰어 들어갔다.
테레시아와 유리는 자리에서 멈춰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2분여 뒤.
입구로 뛰어 들어갔던 다시 나와 시계를 정지시켰다.
사내가 숨을 할딱이며 시계를 확인하는 모습을 테레시아가 가볍게 손가락질했다.
“저렇게 하면 되는 거야.”
“별로 어려운 거는 없네.”
“맞아, 어려울 건 없어.”
“그런데 저건 뭐야? 저 입구.”
유리가 손가락으로 절벽의 가장 위.
여타 동굴의 입구와 유난히 다른 것을 가리켰다.
다른 20개의 입구는 모두 녹색으로 색이 칠해져 있었지만, 그 동굴만은 홀로 붉은색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기까지 했다.
유리가 물어본 게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테레시아.
“저건…….”
그녀가 이에 대해 막 설명하려는 찰나.
“힘내!”
“꼭 성공해라!”
“너라면 할 수 있다!”
절벽 아래가 사람들의 난데없는 응원으로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그 응원을 받으며 한 소년이 씩씩하게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층, 한 층.
거침없이 계단을 올라, 소년이 마침내 유리가 가리켰던 붉은 입구의 동굴 앞에 섰다.
이에 테레시아의 미간이 살짝 찡그려졌다.
“50기인가?”
“그런 거 같은데?”
“…어쩐지 오늘따라 유달리 사람이 많다더니, 저래서였군.”
찡그린 미간을 편 테레시아가 이번에는 살짝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건 안타까움이 잔뜩 묻어나는 한숨이었다.
그사이 붉은 동굴 앞에 선 소년이 비장한 얼굴로 시계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그그그긍-.
철문이 위로 올라가며 검은 통로를 드러냈다.
소년은 검을 쥐고 그 속으로 용감하게 돌진해 들었다.
그때 테레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내가 했던 말 기억나?”
“무슨 말?”
“이 퀘스트의 난이도가 별 두 개에서 일곱 개짜리라고.”
“응, 그랬지.”
“이 퀘스트의 난이도가 별 두 개에서 일곱 개짜리로 급격히 올라가는 원인이… 바로 저거야.”
“저게?”
유리가 시선을 붉은 동굴 입구에 둔 채 질문을 던졌다.
테레시아도 딱히 신경을 쓰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나머지 녹색의 동굴들도 위험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차분히, 정신을 차리고 대처한다면 충분히 깰 수 있어. 운이 안 좋으면 크게 다치기는 하지만, 보통은 자잘한 부상으로 끝나. 하지만…….”
테레시아가 그리 말끝을 흐린 그 순간.
그그그긍- 쿵!
절벽의 가장 꼭대기.
붉은 동굴의 철문이 갑자기 내려와 순식간에 입구를 봉해 버렸다.
이에 밑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술렁였다.
“뭐, 뭐야? 갑자기 왜 닫혀?”
“찰리는? 아직 찰리가 안 나왔는데?”
그렇게 찰리라는 소년을 응원하러 왔던 이들은 당황하여 서로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입구는 열리지 않았다.
“설마… 찰리 녀석…….”
이에 누군가 지금 상황이 무엇인지 깨닫고 소리치니.
“주, 죽은 거야?!”
그 비명을 들은 테레시아의 설명이 이어졌다.
“…저 붉은 입구의 동굴은 운이 좋으면 살아 나올 수 있는 곳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