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161
160화. 야금술 (2)
유리의 미간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야금술이라고 해서 용광로를 데우고, 쇳물을 뽑아내고, 망치를 휘두르는 등.
직접적인 제조 기법을 예상했던 유리는 난데없이 철괴를 고르라는 말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입에서 떨떠름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꽁술 영감, 그쪽이 뭔가 착각했나 본데, 이 내기는 내가 영감한테 야금술을 배우고 그걸 제대로 익혀 내는지를 확인하는 거야.”
“알고 있다만? 그래서 지금 알려 주고 있지 않으냐?”
“뭘?”
“내가 한 얘기를 뭐로 들은 게야? 재료를 고르는 것 또한 야금술의 기본기라고 했을 텐데? 당연히 그걸 알려 주고 있는 거지!”
“아, 그래? 그럼 얼른 알려 줘 봐, 품질 좋은 재료를 구분하는 특별한 기술을.”
“그딴 게 어딨냐?”
“……?”
“그런 게 있었으면 평생을 훈련하라고 하지도 않았을 거다.”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가 자꾸만 이어지자 유리의 관자놀이에 혈관이 불거졌다.
“이게 뭔 개수작이실까?”
“개수작은 무슨.”
세경이 코웃음을 쳤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재료를 감별하는 눈은 워커 학파가 가장 중요시하는 기초 야금술이다. 그리고 그건 이론적으로 가르친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지.”
“그럼 그걸 어떻게 배우고 익혀?”
“간단하다.”
“뭔데?”
“많이 만지고, 많이 두드려 보고, 많이 녹여 보면 알아.”
“…….”
“오랜 세월 광물과 함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보는 눈이 트이고, 한눈에 품질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생길 게다.”
“…그게 기본기 맞아?”
“기본기지.”
“보통 그 눈이 트이는 데 얼마나 걸려?”
“골족 기준으로는 한 10년?”
“…한눈에 품질을 구분할 정도가 되는 건?”
“못해도 이삼십 년은 쇳덩이를 물고 빨며 살아야겠지.”
“아니, 그게 무슨 기본기야! 누가 봐도 대가의 경지에 오른 이들이나 보일 법한 경지잖아!”
“껄껄, 그게 바로 골족의 어린아이들이 가장 처음 배우는 기본기다.”
“사기 치는 거 같은데?”
“나중에 골족을 찾아가서 확인해 보든가.”
“…….”
“흐흐흐, 꼽냐? 꼬와도 어쩔 수 없다. 전부 사실이니까.”
자신만만한 얼굴을 보니 진짜 거짓말은 아닌 듯싶었다.
어처구니가 없어진 유리가 세경을 노려보았다.
“하? 이 영감탱이가 첫판부터 장난질이네?”
세경이 말한 재료를 보는 눈.
그건 그의 말처럼 야금술의 기술이었으나, 아니기도 했다.
이론으로 배울 수 있는 기술이 아닌, 오랜 시간 수많은 경험을 누적시켜 자연스럽게 체화하는 기술.
기본이되, 정해진 한계 없이 계속해서 성장시켜 나가야 할 근본이었다.
‘그런데 그걸 지금 나보고 하라고?’
이론이 있으면 그것을 토대로 따라 익히면 된다.
하지만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술을 자신이 어찌 선보이겠는가.
그것도 골족이 최소 10년이나 걸리는 일을.
유리가 혹시나 싶어 물었다.
“언제까지 하면 되는데?”
“오늘 중으로 끝내라. 나 바쁘다.”
“도전 횟수는?”
“나도 양심은 있으니, 3번까지는 기회를 주마.”
“…시발,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다 나려 하네. 12개의 쇳덩이를 품질 순으로 나열하라고? 그것도 3번 만에? 12번을 기회를 줘도 모자랄 판이구만!”
“꼬우면 포기하든가. 괜히 바쁜 사람 붙잡아 두지 말고, 안 될 거 같으면 후딱후딱 포기해라.”
세경의 비아냥에 유리는 입술이 삐딱해졌다.
‘저주받을 영감탱이.’
다른 건 모르겠지만, 이 영감탱이나 요한이나 남 속 긁어 대는 건 정말 수준급이었다.
세경은 부정할지 몰라도 그는 요한을 닮아 있었다.
유리가 짜증스러운 얼굴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철괴를 몇 개 집어 들었다.
그러자마자 쌍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옘병…….”
그의 욕은 실로 합당했다.
손에 들린 두 철괴는 너무도 똑같았기 때문이다.
색, 광택, 크기, 모양, 심지어 무게까지.
설마 다른 것도 전부 이런가 싶어 12개의 철괴를 쭉 놓고 확인해보니 도저히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유리가 샐쭉해진 눈으로 세경을 노려보았다.
“이거 전부 다른 거 맞아? 다 똑같은 거 가져와서 사기 치는 거 아냐?”
“이 새끼가 나를 뭘로 보고! 골족의 명예를 걸고 절대 아니다!”
“흠…….”
일족의 명예까지 들먹이는 그를 보고 유리가 나직한 신음을 토해 냈다.
그러고는 12개의 철괴 앞에 털썩 주저앉아 팔짱을 꼈다.
‘이걸 대체 어떻게 구분하지?’
입을 꾹 다문 채 철괴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유리.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세경의 입가에 옅은 비웃음이 서렸다.
‘흐흐흐, 애새끼야, 내가 그거 구분하는 데 정확히 42년이 걸렸다.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라.’
저 녀석은 절대 이 관문을 절대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세경은 강하게 확신했다.
* * *
“안 되겠지?”
오물오물.
“안 될걸요?”
우물우물.
“배고프다.”
우걱우걱.
순서대로 쪼르르 모여 앉아서 건량을 간식처럼 집어 먹는 테레시아, 아린, 뽀삐.
그들은 팔짱을 끼고 철괴를 노려보는 유리의 모습에 그리 평가했다.
그들도 귀가 있기에, 유리와 세경이 하는 이야기를 전부 들었다.
그러니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저건 아무리 유리라도 별수 없겠죠.”
우물우물.
그냥 단순한 기술이라면 유리의 재능에 기대를 걸어 볼 만도 했다.
하지만 세경이 요구하는 건 재능이 아닌 시간으로 피워 내는 기술의 정화였다.
만약 유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수십 년이라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저 12개의 철괴를 오늘 하루 만에 구분해 내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전 횟수가 무제한이었다면 대충 찍어서 맞히기라도 했겠지만…….’
하지만 도전 기회는 고작 3번뿐.
‘저 골족 할아범도 어지간하네.’
얼마나 이 내기에서 지기 싫었으면 이런 치사한 수를 준비했을까.
속으로 혀를 찬 아린은 과연 유리가 어떻게 나올지를 기대하며 건량 봉투에 손을 집어넣었다.
* * *
“네가 본다고 뭘 아냐? 대충 하고 얼른 끝내거라.”
비아냥 가득한 세경의 재촉에도 유리는 팔짱을 풀지 않았다.
‘이거 정말 방법이 없는 건가?’
그가 세경에게 배울 야금술은 총 다섯 가지.
그중 이번이 첫 번째였기에 이대로 포기하고 다음을 노려도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다음 내기 종목도 이딴 식으로 나오지 말란 법은 없지.’
아니, 저 영감이라면 분명 이것 못지않은 더러운 수를 준비해 뒀을 것이다.
하여 한 번의 기회조차 허투루 낭비할 수 없었다.
‘시도할 수 있는 건 전부 시도해 봐야겠지.’
그리 의지를 다지며 유리는 12개의 철괴를 들었다 놨다, 두드려도 보고, 철괴끼리 부딪쳐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보고, 듣고, 냄새까지 맡아 봤지만, 차이점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바로 그 순간.
유리의 뇌리를 스친 생각이 하나 있었으니.
[못해도 이삼십 년은 쇳덩이를 물고 빨며 살아야겠지.]‘그거다!’
조금 전 세경이 한 이야기에서 단서를 얻은 유리.
그는 쇳덩이를 향해 혀를 날름거렸다.
할짝-.
그 모습을 보고 구경하고 있던 세 사람은 놀라 인상을 찡그렸고, 세경은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한편, 유리는…….
할짝할짝-.
12개의 철괴를 순차적으로 핥아 나갔다.
할짝할짝-.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신중했고, 마지막 12번째 철괴를 핥고 나서야 다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음…….”
작은 신음을 흘리는 유리의 모습은 마치 맛을 음미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의 속내는 달랐다.
‘어, 음… 모르겠다.’
혹시 정말로 물고 빨면 뭔가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결국 헛짓거리였다.
혀끝에 감도는 비릿한 쇠 맛에 괜히 혀만 아릴 뿐.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 거지? 무엇으로 차이점을 구분할 수 있는 걸까?’
촉각, 시각, 후각, 청각, 심지어 미각까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동원했지만, 철괴를 구분할 방법은 없었다.
감조차 오지 않았다.
유리는 그대로 눈을 감고 계속해서 생각에 빠져들었다.
5분, 10분, 15분.
그는 생각의 범주를 넓혔다.
단순히 자신이 본 것뿐만이 아닌 다양한 각도에서 주제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에 잠긴 지 30여 분이 흘렀을 무렵.
유리의 뇌리에 작은 화두가 던져졌다.
‘재료를 구분할 수 있는 눈이란 건… 어쩌면 평범한 감각적 기술이 아닌 영적인 영역이 아닐까?’
유리의 사고가 이번엔 그 화두를 물고 늘어졌다.
‘만약 그렇게 열린 영적인 감각으로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무언가를 느끼게 된 거라면? 그것을 가리켜 ‘재료를 분별하는 눈’이라 칭하는 거라면?’
그렇다면 그 감각으로 무얼 느끼는 거란 말인가.
‘영적인 감각으로만 느낄 수 있는… 남들은 알지 못할 특별한 무언가가 과연 뭘까?’
고민은 길었으나, 깨달음은 찰나에 찾아들었다.
‘아! 마나…… 마나구나!’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가 비슷해 보여도 서로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같은 종류의 광물일지라도, 똑같은 광산에서 나온 것일지라도.
제각각 품은 마나의 성질이 미세하게 다른 법이었다.
‘세상 만물에서 그 차이를 일일이 찾아내기는 힘들지 모르나… 수십 년 동안 광물 하나만 파고든다면, 자연스럽게 미세한 마나의 차이를 인지하게 될지도 모르지.’
그리 생각한 유리는 자연스럽게 마류를 펼쳤다.
‘마나에 미세한 차이가 있다면, 그 또한 흐름으로 이어질 거다.’
유리는 철괴가 품고 있는 고유한 마나의 흐름을 느껴보았다.
처음에는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자산이 잘못 짚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괴의 흐름은 똑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럴수록 유리는 더욱더 집중했다.
‘분명 차이가 있을 거다.’
유리는 신중하고 세심하게 흐름을 분석해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찾았다!’
그는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각 철괴로부터 뿜어지는 미세한 흐름의 차이를.
‘흐름의 모양은 같아 보여도 그것이 전달되는 규칙성은 다르다!’
한 철괴의 흐름은 일정한 간격과 속도로 밀려들었다면, 다른 어떤 철괴의 흐름은 간격과 속도가 불규칙했다.
그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고 기뻐하던 유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만, 이거?’
무언가 익숙한 느낌.
그가 철괴로부터 파악한 흐름의 특징은 이미 유리가 일전에 느껴 본 적 있는 거였다.
다름 아닌…….
‘파장이잖아?!’
강검과 연검을 펼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느껴야 하는 검의 파장.
마나의 흐름이 지닌 규칙성과 변화를 그림으로 그린다면, 분명 그런 파장이 될 것이다.
그런 깨달음 뒤에 또 다른 깨달음이 이어졌다.
‘아, 무기에 마나를 불어넣는 게 설마……?!’
강검, 연검 등을 펼치고자 사람들은 자신의 마나를 무기에 불어넣는다.
그게 바로 무기 제작에 쓰인 재료 고유의 마나 파장을 크게 증폭시키는 과정이었으리라.
‘보다 쉽게 파장을 읽을 수 있도록 말이지!’
하지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파장이 변형된다는 거였다.
이는 당연한 결과였다.
‘미세한 파장을 억지로 늘리고 키웠는데, 그게 원본이랑 같다면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겠지.’
그래서 무기의 파장과 마나 핵의 파장을 맞춰 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공명 현상을 일으키는 게 지극히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거였다.
단순히 무기와 마나 핵의 파장을 일치시키는 것뿐이 아닌, 파장의 원본을 찾아내야 했기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난 그럴 필요가 없잖아?’
유리에게는 굳이 마나의 파장을 억지로 키우지 않아도, 변형되지 않은 원본 파장을 느낄 방법이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마류로 철괴의 흐름을 느끼면 되는 거였다.
‘그런 방법을 가지고도 그냥 남들이 하는 걸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니… 나 완전 병신이었네?’
세상에 이런 멍청한 시간 낭비가 또 있을까.
유리가 그리 자조적인 미소를 지은 순간.
츠츠츠츠-!
그의 전신에서 은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툭- 툭- 툭-.
갑작스러운 유리의 자체 발광에 3개의 건량이 사이좋게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테레시아, 아린, 뽀삐 모두 간식을 먹던 자세 그대로 굳어 버렸다.
슥슥- 비비적-.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못 믿겠다는 듯 두 눈을 연신 비빈 아린.
그녀는 여전히 빛에 휩싸인 유리를 보고 홀린 듯 중얼거렸다.
“돈오……?”
반개한 눈꺼풀 속 살짝 풀린 눈동자.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육신.
그건 일전에 그레타가 그러했듯, 깨달음을 얻었을 때 오는 돈오(頓悟) 상태가 확실했다.
“저거… 돈오 맞지? 그치?”
“배고프다.”
아린이 자신이 재차 확인하듯 묻자, 옆에 있던 뽀삐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유리의 갑작스러운 돈오에 놀란 이들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다가 결국 테레시아의 입에서 어이없다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으니.
“…쟤는 목숨 걸고 싸울 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쇳덩이를 핥고서 깨달음을 얻는 거야?”
테레시아의 이야기에 아린과 뽀삐도 동의한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