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08
207화. 결승 (2)
유리는 잠시 서서 주변의 분위기를 살폈다.
우선, 뒤에서 연신 비겁하다느니, 얍삽하다느니, 치사하다느니 등, 야유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물론 유리는 귀를 후비며 태연히 이를 무시했다.
‘뭐, 어쩌라고?’
어차피 이 무룡대전의 규칙이 이기기만 하면 된다잖는가.
비겁이고, 얍삽이고 그런 게 어디 있냐.
‘방심하다 얻어맞은 놈이 병신인 거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 유리도 무시할 수 없는 건 있었으니.
한 20초 정도를 아무것도 않고 주변 분위기를 살피며 서 있던 유리가 씨익 미소 지었다.
“이건… 용인해 줬다고 봐도 되는 거지?”
아무리 권터가 일정 정도는 자신이 처리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지만, 그건 그의 생각일 뿐.
요람의 생각과는 다를 수도 있을 터.
‘나중에 가서 규정대로 안 했다고 시합을 무효 처리 당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하고 넘어가는 게 낫지.’
그런 생각으로 잠시 뜸을 들이며 기다린 거였다.
그런데 문제가 되었다면 즉각 등장했을 흑검병이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 소리가 뭐겠나.
요람도 지금 이 상황을 결승으로 인정했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이제 정말로 망설일 건 없었다.
저벅저벅-.
권터가 날아간 방향으로 걸어가는 유리.
때마침 바닥에 널브러진 괴츠의 옆을 지나치게 된 그는 잠시 발길을 멈췄다.
“크흑.”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된 괴츠를 흘끗 바라본 유리가 작게 혀를 차며 자세를 낮췄다.
“쯧, 그래도 저 새끼 힘 빼는 데 그쪽이 일조했으니…….”
그는 그리 중얼거리고는 괴츠의 뒷덜미를 잡아 한쪽을 향해 집어 던졌다.
훙-.
십수 미터를 조약돌처럼 가볍게 날아간 괴츠가 다시 흙바닥을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렇게 경기장 벽에 부딪힌 그는 다시금 피를 토해 냈다.
던져지는 충격에 아마 내상이 더 깊어진 것이리라.
물론 유리는 이를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차라리 내상이 도진 게 낫지. 괜히 싸움에 휘말려 뒈지는 것보다는.’
그 나름의 선행을 베푼 유리는 다시금 권터를 향해 걸어갔다.
저벅저벅-.
그때까지도 권터는 모락모락 피어오른 먼지구름에 휩싸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 * *
드디어 시작된 두 번째 준결승전.
나름대로 분전을 펼쳤지만, 허무하리만치 무너진 괴츠.
그리고 이어진 유리의 도발과 기습까지.
눈앞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 많은 이들이 아직 어안이 벙벙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유리의 기습을 놓고 여기저기서 다양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무리 무규칙의 무룡대전이라지만, 그래도 절차란 게 있는 법인데!”
“근본 없는 놈이라서 그런지 저리 비겁한 짓거리를 서슴없이 저지르는구나!”
물론, 그중 대다수가 유리를 비난하는 목소리였다.
다만 일부의 사람들은 유리가 권터를 날려 버린 상황을 되짚어 보고 있었다.
“유리 홀랜드의 움직임… 본 사람?”
“어떻게 된 거지?”
대다수가 유리의 기습에 초점을 맞추고 흥분했지만, 돌이켜 보면 그들 모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들이 본 것이라고는 경기장으로 내려선 유리가 한순간 사라졌고.
이내 들려온 폭음과 함께 권터가 날아가 경기장 벽에 처박히는 장면.
마지막으로 희뿌연 먼지구름을 일으키는 모습이었다.
그 사실을 천천히 곱씹어 보면 볼수록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됐으니.
“설마 권터도… 유리 홀랜드의 움직임을 놓친 건가?”
권터 라이더가 왜 얻어맞고 날아갔겠는가.
반응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저 권터 라이더마저 말이다.
‘성검… 분명 성검이었다. 권터가 괴츠의 환영검을 찢어발긴 건!’
‘권터의 경지는 우리가 알던 이전 수준보다 훨씬 진일보했다. 그런데 그런 권터조차 유리 홀랜드의 공격에 반응하지 못하였다라…….’
현 상황을 분석하며 이상함을 깨달은 이들은 유리를 보는 눈빛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이렇게 갑자기 결승을 시작하는 법이 어디 있나!”
화가 난 목소리로 갑자기 뛰어든 누군가.
그는 다름 아닌 무룡대전이 시작되던 날 유리와 멱살잡이를 했던, 승패 예측 도박장의 사장이었다.
헐레벌떡 뛰어온 그가 소리쳤다.
“드디어 올 게 왔습니다! 이번 무룡대전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시합! 결승전 승패 예측의 시간이!”
그의 외침에 누군가가 의문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 저게 결승전이라고요? 이렇게 갑자기 시작한단 말입니까?”
“보면 모릅니까? 흑검병들이 안 나타나고 있잖아요? 이건 요람에서도 인정했다는 겁니다, 저게 결승전이란 걸.”
“아……!”
“자자, 시간이 없습니다! 누가 과연 우승자가 되어 흑룡고에 들어가게 될지… 어서 빨리 결정하고 포인트를 거세요! 고민하는 사이에 시합이 끝나 버릴지도 모릅니다!”
카랑카랑, 재촉하는 사장의 목소리에 다른 기수들의 얼굴에 다급함이 깃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저게 결승전이라면 이미 시합은 시작된 것과 다름없었다.
“접수는 앞으로 단 2분 동안만 받겠습니다!”
이어지는 마감 임박 알림에 사람들이 분분히 일어나 도박장 사장의 앞으로 달려갔다.
자신이 승리하리라 믿는 이에게 포인트를 걸기 위해서.
그중에는 제리 비도 섞여 있었다.
“자자, 차분하게 줄 서서 기다리시면 빠르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이봐, 거기 3년 차! 새치기하지 마라!”
도박장 사장은 엄청난 속도로 일을 처리해 나갔고, 그 앞에 선 줄은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한편 율리아는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누구에게 걸어야 하지?’
원래대로라면 그녀는 유리가 승리하리라 확신하여 망설임 없이 모든 걸 걸었을 거다.
그런데 조금 전 권터가 성검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그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유리가 일전에 권터 라이더를 이기기는 했지만… 그건 운이 좋아서였어.’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지난 몇 달간 그때의 상황을 분석하였기에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비록 패배하기는 했어도 권터의 강함은 안정적이었고.
승리한 유리 홀랜드 쪽이 오히려 불안정했다는 것을.
만약 권터 라이더가 유리에 대해 조금만 더 자세히 알고 있었거나.
혹은 그때의 싸움이 조금 더 길게 이어졌다면 승패의 양상은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그러던 차에 권터 라이더가 더 강한 힘을 손에 넣고 나타났으니 이에 율리아도 유리가 승리하리라 장담하지도 못하게 된 거다.
“흠…….”
율리아는 한참 동안 계속해서 고민했다.
유리 홀랜드와 권터 라이더.
두 사람의 이름을 놓고 고심하며 저울질한 끝에, 그녀는 도박장 접수 마감 직전,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아!”
율리아는 이번 무룡대전이 시작한 이래 승패 예측 도박으로 차곡차곡 모아 온 포인트를 모두 꺼냈다.
물론 그게 큰 액수는 아니었다.
은환의 현가 사람이 이런 도박에 낀다는데, 어느 누가 받아 주겠는가.
하여 딱 1,000포인트로 시작해서 그것으로만 불려 나가겠다 약속하고 겨우 승패 예측 도박판에 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도박판 사장의 우려대로 지금껏 그녀의 승률 예측은 100% 정확했다.
단 한 번도 예측이 틀리지 않은 거다.
그렇게 율리아가 반은 심심풀이 장난으로, 반은 진심으로 지금껏 애지중지 불려 온 포인트를…….
“여기에 전부!”
자신의 승률 예측 100% 신화를 이어 나가게 해 줄 이에게 전부 걸었다.
그녀의 선택에 도박장 사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여기?”
이 선택이 맞냐는 듯한 그 물음에 율리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객석에서 도박판이 벌어진 사이, 먼지구름으로부터 일정 거리 떨어진 곳에 멈춰 선 유리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뭐 해? 안 나오고?”
무려 성검으로 후려갈겼지만, 유리는 권터가 이 정도에 쓰러지지 않았을 거라고 여겼다.
지난번에도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는데 권터는 일어섰지 않은가.
‘뭐, 그래도 타격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괴츠를 상대하느라 어느 정도 기력을 소모했고.
거기다 자신의 공격으로 제법 타격을 입었을 터.
그게 바로 유리가 원하는 게 바였다.
적당히 힘이 빠졌고, 적당히 상처 입은 권터.
그래야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볼 수 있을 테니까.’
유리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고작 조금 거 한 방으로 쓰러지면 오히려 이쪽에서 곤란하다고.’
유리가 가볍게 어깨를 휘휘 돌리며 미소를 머금을 때.
스오오오-.
유리의 기대에 반응하듯 먼지구름을 강하게 뒤흔들며 그 속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치솟았다.
번쩍-.
희뿌연 먼지 속에서 번뜩인 시퍼런 안광.
곧이어 가라앉는 먼지 너머로 검은 신발이 비쭉 튀어나왔다.
저벅저벅-.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권터를 보고 시종일관 여유 있던 유리의 표정이 살짝 경직됐다.
‘저 자식… 왜 저렇게 멀쩡하냐?’
아무리 성검이라고 해도 단 한 번으로 쓰러뜨리지 못할 것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어느 정도 피해는 있어야 했다.
그런데 먼지구름 밖으로 나온 권터의 모습에서는 낭패한 흔적을 조금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조금 먼지가 묻기는 했지만 크게 상하지 않은 의복.
여전히 위압감을 떨치는 기세까지.
그는 조금 전 성검에 직격당한 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멀쩡했다.
저벅-.
유리와 일정 거리를 두고 멈춰 선 권터가 검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고맙군.”
권터의 난데없는 감사 인사에 유리는 눈을 끔뻑였다.
“엉?”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이 처박아 준 덕분에 뜨거웠던 머리를 식힐 수 있었다.”
“…….”
“무려 수개월 간 기다려 온 시간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망칠 수는 없는 법이지. 그러니…….”
스륵-.
권터의 검이 유리를 가리켰다.
“네놈이 망가질 때까지 차분히… 그리고 충분히 이 시간을 즐겨 보겠다.”
그의 섬뜩한 경고에 유리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음… 이건 예상 못 했는데.’
일단 한 방 꽂아 넣고 시작하면 타격을 입는 건 둘째 치고, 화를 내며 길길이 날뛸 줄 알았더니.
오히려 권터는 벽의 잔해에 처박혀 마음을 가라앉힌 모양이었다.
모두가 유리가 의도한 바와는 전혀 다른 상황.
이에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쉽지 않겠는데?’
결승까지 오는 동안 너무 날로 먹었다고 신이 균형을 맞추려는 걸까?
마지막 시합에서 개고생할 자신의 미래가 훤히 눈앞에 그려졌다.
유리가 그리 자신의 미래를 직감한 순간.
스오오-.
턱까지 검은 핏줄이 돋아난 권터의 신형이 사라졌다.
쾅-!
뒤늦은 소리와 함께 유리의 앞에 나타난 권터가 검은 마검을 수직으로 내리쳤다.
이를 가볍게 운보로 피해 낸 유리.
하지만 권터의 공격은 집요했다.
스각-.
수직으로 내려치던 검이 갑작스레 사선으로 방향을 꺾어 유리를 쫓았다.
물리적인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경로 변경이었지만, 이미 이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유리는 태연히 이마저도 피해 냈다.
그리고 이대로 당하기만 하지 않겠다는 듯 그 역시 빈틈을 노리고 검을 찔러 넣었다.
반대로 이번에는 권터가 유리의 검을 쳐 내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스앙-.
검은 마의 기운이 깃든 권터의 검과 아무것도 깃들지 않은 유리의 검.
이대로 그 둘이 충돌한다면 유리의 검이 산산조각이 날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파쾅-.
충돌 직전, 황금빛으로 물든 유리의 마검이 권터의 마검을 쳐 냈다.
그렇게 두 마검이 떨어지고 보니 유리의 검에 깃들었던 마의 기운은 어느새 다시 사라진 상태.
이에 권터의 눈빛이 살짝 굳어졌다.
‘말도 안 되는 발현 속도군.’
마검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분명 마나를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음에도 대다수가 전투 도중 마검을 계속 발현해 두는 이유는 간단했다.
목숨이 오가는 찰나의 순간에 맞춰 마검을 발현하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
한데 그 불가능한 일을 눈앞의 유리 홀랜드는 태연히 해내고 있었다.
그 모든 게 ‘마나 조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발악 덕분이었지만, 이를 모르는 권터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놀라움은 권터에게 강한 만족감을 안겨 주었다.
‘그래, 이거다! 이런 너이기에……!’
권터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걸렸다.
‘…처참히 망가뜨리고 싶은 거다!’
스각-.
권터의 검이 다시금 속도를 높여 유리를 노리고 날아들었고.
쾅-.
유리 또한 이에 맞춰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경기장 안에서 벌어지는 수준 높은 공방에 객석의 말소리가 사라졌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공격과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막아 서는 방어.
간결하게 치닫는 반격과 다시 매끄럽게 이어지는 연계.
본격적으로 시작된 유리와 권터의 시합은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싸움이라기보다는 미리 합을 맞춘 웅장한 검무처럼 느껴졌다.
유리의 지인들은 물론이요.
유리가 비겁하다고 욕하던 이들.
승패 예측 도박을 하겠다며 줄 서 있던 이들까지.
모든 관중이 유리와 권터의 시합에 홀린 듯 빠져들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카쾅- 쾅!
연이어 터지는 굉음과 주홍빛 불똥.
그 속에서 춤추듯 움직이던 유리가 권터의 공격에 반격하는 모습을 보고 50기 중 누군가가 눈을 끔벅거렸으니.
“어… 저거?”
그는 유리가 반격에 사용한 기술을 되돌이켜 보고는 넋 나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