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12
211화. 흑룡고 (2)
안드레스의 이야기를 들은 유리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원주회?’
언제,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이름이지 않은가.
‘언제였더라?’
유리가 과거의 기억을 탐색하는 사이, 안드레스가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
“다시 정식으로 소개하지, 원주회의 차기 회주로 내정된 안드레스 체이슈다. 유리 홀랜드 너를 원주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왔다.”
그리 말하며 안드레스가 악수를 신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그 순간 유리는 자신이 원주회를 어디서 들었는지 떠올릴 수 있었다.
[파랑새는 원주회와 더불어 요람에서도 꽤 역사와 전통 있는 조직에 속해.]과거 제리에게 파랑새에 관한 정보를 얻으면서 같이 들었던 이야기.
요람에 자리한 로열 클럽을 원주회라 부른다고 했더랬다.
이를 곰곰이 되새긴 유리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런데 원주회라면 분명…….’
자신을 원주회에 가입시키기 위해 왔다는 안드레스.
하지만 유리가 알기로는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유리가 아닌 다른 이가 대신 말해 주었다.
“오로지 역사와 전통이 있는 명문가의 자제만 받겠다고 콧대를 세우던 원주회가 무슨 일인가요?”
퉁명스럽고 비꼼이 가득한 어투와 함께 나타난 여인.
그녀는 다름 아닌 율리아 싱이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율리아는 안드레스를 향해 싱긋 웃어 주고 하던 말을 이었다.
“거기다 제가 알고 있기로 원주회의 전통 있는 가입 조건이 18세 이상의 성인만일 텐데요?”
바로 이것이었다.
유리가 자신을 원주회에 초대하기 위해 왔다는 안드레스의 말에 의문을 품은 이유가.
과거 제리도 분명 원주회의 가입 조건이 18세 이상이라고 했었다.
율리아가 이를 다시금 지적했다.
“유리 홀랜드는 올해 열여섯, 곧 해가 바뀐다고 해도 열일곱이니 그 조건에 맞지 않습니다만?”
웃고는 있지만 상당히 날이 선 듯한 목소리에 안드레스가 유리를 향해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대신 그는 율리아를 향해 똑같이 싱긋 웃어 주었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우리도 그에 맞춰 가려는 것뿐이다. 그러는 너는 여기 무슨 일이지? 율리아 싱?”
“저도 유리 홀랜드에게 볼일이 좀 있어서요.”
“그런가? 그럼 기다려라. 내가 먼저 찾아왔으니.”
서로를 노려보는 안드레스와 율리아.
둘의 시선 사이에서 불꽃이 파바박- 튀었다.
이에 군터와 아린의 드잡이질이 멈춘 것은 물론이거니와 유리도 슬그머니 몸을 빼서 뽀삐의 옆에 섰다.
그가 뽀삐에게 슬며시 손을 내밀었다.
“야, 건량 가진 것 좀 있으면 내놔 봐.”
이런 건 또 뭘 좀 씹으면서 봐야 더 재밌지.
뻔뻔한 유리의 요구에 뽀삐는 늘 상비하고 있는 건량 한 봉지를 꺼내 건넸다.
물론 자기 몫을 꺼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부스럭-.
유리가 봉투를 열자 테레시아와 아린이 그의 옆으로 쪼르르 붙어 건량 봉투로 너도나도 손을 집어넣었다.
오물오물.
우물우물.
아작아작.
그렇게 유리와 친구들이 저마다 열심히 건량을 씹어 대는 사이, 율리아와 안드레스의 신경전은 더욱더 뜨거워졌다.
“그렇게는 못 하겠는데요?”
“예의가 없군. 먼저 온 사람이 우선 용무를 보는 건 기본적인 상식이다.”
“언제부터 요람이 경쟁하는 데 순서를 기다려 주는 친절한 곳이 되었죠?”
“경쟁? 무슨 경쟁 말이지?”
“선배가 원주회의 대표로 유리 홀랜드를 초대하기 위해 왔다면 저 또한 파랑새의 수장으로서 유리 홀랜드를 영입하기 위해 온 거니 경쟁이죠.”
“프리츠 선배가 물러나면서 전권을 위임받은 모양이군.”
“애초에 그 인간은 진즉에 일선에서 물러났고, 지금까지 전권을 휘두른 건 저였어요.”
“그랬던가? 딱히 관심이 없는 일이라서 몰랐군. 아무튼 파랑새에서 유리 홀랜드를 초대하겠다고? 파랑새는 현가의 개인 사조직이나 다름없지 않나?”
“안 될 게 있나요? 그리고 그 말, 정정해 드리죠. 초대라고 하지 않았어요. 영입이라고 했지.”
“어차피 똑같은 말일 텐데?”
“달라요. 그리고 원주회야말로 괜찮겠어요?”
“뭐가 말이지?”
“원주회에는 권터 라이더가 소속되어 있죠. 그가 있는데 유리를 원주회에 들이겠다는 소린가요?”
“안 될 이유라도 있나?”
“권터는 동의했고요?”
“차기 회주는 나다. 그리고 다른 회원들 역시 동의한 사항이고.”
“하! 뻔한 수작질.”
기가 찬다는 듯한 율리아의 눈빛에 안드레스가 눈썹을 찌푸렸다.
“…말이 심하군.”
“심한 건 그쪽들이죠. 보나 마나 유리를 데려다가 권터를 견제하려는 수단으로 쓰려는 거 아닌가요? 쓰다 버릴 패로?”
“…….”
“그러려고 그간 원주회가 고수해 온 원칙마저 무시하고, 명가의 자손도, 하다못해 열여덟도 되지 않은 유리에게 접근한 거겠지.”
처음으로 안드레스의 말문이 막혔다.
또한, 미소 역시 사라진 상태였다.
그가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며 율리아에게 물었다.
“…그러는 파랑새는 무슨 이유로 유리 홀랜드를 데려가려는 거지? 애초에 현가를 위해 운영되는 사조직에 그가 필요한 이유가 없을 텐데?”
“그걸 내가 알려 줄 이유가 있을까요?”
“…….”
“알고 싶으면 직접 알아보시든가.”
안드레스는 입을 다물었다.
이대로 현가의 혈통인 율리아와 말을 섞을수록 불리한 건 자신이란 것을 인지한 그가 결국 화제를 전환했다.
“우리가 이렇게 입 아프게 이야기를 나눠 봤자, 결국 선택은 유리 홀랜드가 할 테니… 당사자에게 물어보는 게 빠르겠군.”
“그러죠, 뭐. 보나 마나 저랑 이야기하고 싶을 테니까.”
서로를 노려보며 합의를 본 두 사람이 유리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런데.
“…응?”
“…에?”
그들에게 답을 줄 유리는 그 공간에 존재하지 않았다.
언제 사라진 것인지 홀연히 자취를 감춘 유리.
“어, 어디 갔어?”
“그는… 어디 갔지?”
두 사람의 질문에 아린이 건량을 꿀떡 삼키며 말했다.
“재미없다고 갔어요.”
“아…….”
“재… 재미?”
얼이 빠진 두 사람을 향해 군터가 추가로 말을 전했다.
“아, 그 녀석이 가기 전에 두 분께 이 말을 전해 달라 했습니다.”
“무슨 말?”
“다음에는 이런 실속 없는 대화 말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았으니, 다음에는 빈손으로 오지 말고 양손 두둑이 무겁게 오라고 했습니다.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자기는 좋다고.”
그 말에 율리아와 안드레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양손 두둑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좋다고?’
그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두 사람은 단번에 눈치를 챘다.
‘하… 그러니까 자길 영입하고 싶으면 조건을 제시하라는 소리군.’
‘유리다운 방식이네.’
안드레스는 살짝 이맛살을 구겼고 오히려 율리아는 피식 웃었다.
‘그래, 오히려 좋아. 그가 뭘 원하는지는… 내가 더 잘 알아낼 수 있을 테니까!’
유리를 꼬실 자신감이 넘쳤기에 율리아의 눈은 반짝 빛났다.
“나중에 양손 두둑이 들고 찾아오겠다고… 유리한테 그리 전해 줘.”
“알겠습니다, 율리아 선배님.”
군터가 고개를 끄덕이자, 율리아는 안드레스를 향해 피식 조소를 날리고는 당찬 걸음으로 떠나갔다.
그 모습을 굳은 얼굴로 바라보던 안드레스.
그가 자신에게 쏠린 주변 시선을 의식하고 이내 표정을 풀었다.
“흠……. 못 볼 꼴을 보였군.”
다시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이번에는 테레시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유리 홀랜드 때문만은 아니다. 너 역시도 나의 방문 목적에 포함되어 있었다.”
“저도 말입니까?”
눈을 끔뻑이는 테레시아를 보고 안드레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원주회에 테레시아, 그대 또한 초대하고자 한다.”
“저 역시 유리 홀랜드와 같은 나이입니다만?”
“유리 홀랜드가 되는데 네가 안 될 이유는 없지. 아니, 오히려 나이를 제외하면 네가 유리 홀랜드보다 더 원주회에 적합한 인재다. 윈체스터 가문 역시 훌륭한 명문이니까.”
“…….”
“들어와라. 원주회에.”
안드레스가 손을 내뻗었고, 이를 바라보는 테레시아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그녀에게서 살짝 냉랭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으니.
“딱히, 내키는 제안은 아니네요. 유리에게 덤으로 딸려 가는 듯한 기분이라.”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리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여, 저도 확실히 말씀드리죠.”
“무얼?”
“이왕 덤 취급을 당할 거라면 확실하게 덤으로 남겠습니다.”
“그게 무슨……?
“유리가 원주회에 들어간다면 저 역시 같이 들어가겠습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유리가 원주회에 들어가지 않겠다면 자신 역시 들어가지 않겠다는 테레시아의 단호한 결정.
이에 안드레스의 눈썹 끝이 미약하게 꿈틀거렸다.
살짝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의 그가 내밀었던 손을 거둬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견… 수용하마. 그럼 유리 홀랜드에게 전해라. 조만간 네가 만족할 만한 선물을 들고 찾아오겠다고.”
“예, 알겠습니다.”
테레시아의 답변에 안드레스가 발길을 돌려 성큼성큼 떠나갔다.
그렇게 소란을 일으킨 사람들이 떠나고.
순식간에 조용해진 장내.
그때, 난데없이 경악성이 터져 나왔으니.
“잠깐, 텟샤 선배!”
아린이 경악한 눈빛으로 테레시아를 바라보았다.
푸른 두 눈동자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라는 속마음을 읽은 테레시아.
그녀는 유리를 핑계로 거절한 자신의 속내가 들켰나 싶어 움찔했다.
그런데.
“선배, 나랑 동갑이었어요?!”
“…….”
아무래도 아린이 놀란 부분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맙소사! 나랑 동갑이었다니! 가만… 어쩐지 유리가 선배를 너무 편하게 대하더라니, 걔는 이미 선배 나이를 알고 있었구나!”
“알고 있던 건 맞는데… 걔는 몰랐을 때도 나를 막 대했어.”
“역시 그랬던 거였어!”
“…내 말 듣고 있니?”
“선배가 나랑 동갑이었다니… 말도 안 돼!”
자꾸 동갑을 강조하며 놀라는 그 모습에 슬쩍 기분이 나빠진 테레시아가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그럼 넌 내가 대체 몇 살인 줄 알았던 건데?”
“뭔가 저보다 어른스럽기에 당연히 많을 줄 알았죠!”
“너보다 어른스러워서 나이가 많은 거면… 너보다 나이 적은 사람이 별로 없지 않을까? 군터만 해도 너보다 나이가 훨씬 많겠네.”
그 말에 아린의 시선이 군터에게 돌아갔다.
그 눈빛을 알아차린 군터가 뚱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너랑 동갑이다.”
“……?!”
두 눈이 충격으로 물든 아린.
그녀의 시선이 이번에는 뽀삐를 향했고.
“배고프다.”
뽀삐가 내뱉은 한마디를 듣고 모두의 시선이 아린에게 향했다.
얼른 통역하라는 눈빛으로 말이다.
이에 아린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하니.
“…남자의 나이는 함부로 묻는 게 아니라는데요?”
테레시아도 어이없다는 눈으로 뽀삐를 바라보았다.
다만 군터는 성의 없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럴 수 있지. 그보다 아린, 아까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해 보자.”
“뭘?”
“우리의 피땀 서린 결정체를 마왕성이라 부른 건에 대하여 깊고 깊은 반성과 토론이 필요할 듯싶으니.”
“…너 진짜 독 기운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난 지극히 정상이다.”
“아닌데, 너 지금 눈깔 살짝 돌았는데? 좌우대칭이 안 맞아.”
“네가 잘못 본 거다.”
“시, 싫어! 오지 마!”
아린과 군터가 다시 뽀삐를 중심에 두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테레시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독 부작용에 뒤끝 있는 성격이 되거나 쪼잔해지는 게 있었나?”
쟤는 처음에는 멀쩡했는데 어째서 점점 더 쫌팽이가 되어 가는 걸까?
덩달아 정신 연령도 낮아지는 거 같고?
테레시아는 그런 한심한 눈빛으로 군터를 바라보았다.
* * *
금방이라도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다시 올 듯싶었던 율리아와 안드레스.
하지만 그들보다 먼저 유리를 찾아온 이가 있었으니.
그건 유리가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의외의 인물과의 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