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3
22화. 삼절 (1)
자신을 향한 당찬 선포에 무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거렸다.
“아… 그…….”
그 모습을 본 유리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말려 올라갔다.
그러기 무섭게 그의 신형이 빠르게 앞으로 쏘아졌다.
탓-.
단 몇 걸음에 6m의 거리가 압축됐고.
샤악-.
은빛 예기가 무치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 기습.
무치의 옆에는 랄프도 있었지만, 손자의 위기에도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조금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유리를 바라볼 뿐.
그건 자신이 가르친 손자를 믿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믿음에 보답하듯 무치는 유리의 공격에 당연하다는 듯이 반응했다.
“자, 잠깐!”
당황한 외침과 달리, 무치는 반사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나무창을 휘둘렀다.
물론 유리는 콧방귀를 꼈다.
“잠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무치의 목을 향해 나아가고 있던 칼날이 중간에서 방향을 선회했다.
순식간에 이뤄진 방향 전환.
스걱-.
나무창이 쉽게 잘려 나가고 유리는 빠른 속도로 물러나 검을 갈무리했다.
마치 애초부터 노린 게 나무창이었다는 태도.
그는 이제 어쩔 거냐는 듯한 눈빛으로 무치를 바라보았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랄프가 피식 웃으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대장간의 문이 박살 나며 무언가가 랄프의 손으로 날아들었다.
콰즉-.
랄프의 손에 휘감기듯 들린 것은 은은한 붉은빛이 감도는 거대한 미늘창이었다.
족히 4m는 될 듯한 길이.
삐죽 솟은 창날만 아니면 작두를 가져다 붙인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기괴한 창.
바로 랄프와 함께 숱한 전장을 함께한 그의 애병 할시온이었다.
랄프는 이를 손자의 앞으로 집어 던졌다.
팟!
무치의 앞에 틀어박힌 할시온.
“할아버지?”
손자의 부름에도 랄프는 별다른 답이 없이 어그적어그적 요한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넓은 공터에 무치와 단둘이 마주하게 된 유리가 검을 까딱거렸다.
“뭐 해, 안 들고? 빈손으로 싸울래?”
“왜…….”
무치로서는 유리가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의문은 유리에게까지 전해졌다.
이에 유리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궁금해? 내가 왜 이러는지?”
끄덕-.
“알려 줄까?”
끄덕끄덕-.
무치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자 유리는 얄밉게 눈웃음을 지으며 소리쳤다.
“싫어, 안 알려 줄 거다!”
너무도 유치한 놀림에 무치가 벙쪄 있는 사이, 유리는 빠르게 몸을 날렸다.
다시 시작된 돌진.
이번에는 처음보다 훨씬 움직임이 빨랐다.
순식간에 들이닥친 유리를 보며 무치는 갈등했다.
눈앞의 할시온을 잡을지 말지.
하지만 그러한 고민은 사치일 뿐이었다.
“정신 안 차리냐!”
무치의 갈등을 눈치챈 듯 유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칼을 휘둘렀다.
기세등등, 살기를 머금고 날아드는 칼날.
찰나의 순간 무치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이 사람… 진심이다!’
자신을 향한 유리의 살기는 진심이었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무치의 생존 본능이 움직였다.
그리고 마침내.
턱-.
무치가 할시온을 집어 들었다.
캉-.
할시온의 창대가 채찍처럼 잔상을 남기며 유리의 검을 튕겨 냈다.
그러고는 곧장 유리의 상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에 튕겨 나갔던 유리의 검이 그 힘을 그대로 이용하여 원을 그리며 되돌아왔다.
캉-.
이번에는 유리의 검이 무치의 창을 빗겨 냈고.
훙-.
강풍을 만들어 내며 머리 위를 스친 창대에 유리가 신나 소리쳤다.
“뭐야? 하면 잘하잖아?”
유리의 외침에 무치는 이를 악물고 거리를 벌리려 했다.
하지만 유리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에헤이, 어딜 가려고?”
4m의 미늘창.
1.2m의 검.
무치와 가깝게 붙은 지금이 유리에게는 최고로 유리한 간격이었다.
이 이점을 넘겨줄 생각은 없었다.
유리는 환히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스캉!- 탕-.
날카로운 금속성 소리가 연이어 들리고.
두 개의 무기 사이에 불똥이 튀며 공방이 오갔다.
캉- 타앙!
놀라운 속도로 떨어졌다 붙기를 반복하는 유리와 무치.
반년 전, 유리가 일수에 나가떨어졌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혹독한 수련에 맞춰 성장한 유리의 근골이 빚어 낸 결과였다.
물론 그래 봤자 6개월이었다.
랄프의 신체 능력을 물려받아 근 10년 가까이 기초를 다져 온 무치에 비할 수는 없는 법.
그런 수련 시간의 공백을 메꿔 준 건…….
“…어마어마한 전투 감각이군.”
유리의 타고난 전투 감각이었다.
아슬아슬할 정도로 움직임을 최소화한 회피 동작.
자로 잰 듯 유지하는 간격.
상대의 다음 수를 읽고 한발 앞서는 행동.
그건 검을 잡은 지 고작 6개월 된 이의 것이 아니었다.
랄프는 놀란 눈으로 유리를 바라보았다.
‘이건 뭐, 완전히 다른 사람이군.’
첫 대련 당시, 무치가 공격하지 못할 거라고 오판하여 무작정 뛰어들었다가 나가떨어졌던 유리였다.
과연 저 녀석이 그때의 녀석과 동일 인물이란 말인가?
‘그때는 주어진 재능을 제대로 사용할 줄 몰랐던 거였던가.’
그건 다시 말해 단 6개월 만에 이 정도까지 감각을 끌어올렸다는 소리였다.
‘무치보다… 아니, 이건 비교할 것도 못 되는군. 압도적이야.’
아무리 손자를 예뻐하고 싸고돌아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
유리의 전투 감각, 그리고 전투 학습 능력이 무치를 압도적으로 웃돈다는 것을.
하지만 그런 감탄도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야야! 고작 이거냐! 아침밥 안 먹었어? 왜 이렇게 비실거려? 힘 좀 더 써 봐!”
계속 공격을 이어 나가면서 유리의 입도 쉼 없이 움직였다.
이에 랄프가 한숨을 내쉬며 옆을 향해 물었다.
“…저런 것도 가르친 겁니까?”
“뭘?”
“싸우면서 주둥이로 도발하는 거 말입니다. 하는 짓이 딱 선배 판박입니다, 그려.”
“이 새끼가… 저건 그냥 저놈 천성이다! 가르치긴 뭘 가르쳐!”
요한이 성난 표정으로 눈을 부라렸다.
이를 가뿐히 무시한 랄프는 묘한 눈으로 유리를 바라보았다.
‘나쁘지 않군.’
갑작스럽게 시작된 진검 대련이었지만, 랄프는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유리에게 고마웠다.
‘무치 녀석도 진검 대련은 처음이지.’
그간 진검으로 수련은 해 왔으나 마땅히 진검 대련을 할 사람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또래인 유리와의 진검 대련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랄프는 손자의 성정이 걱정이었다.
‘대련조차 꺼리는 녀석이 진검을 들고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유리에게 어떻게 대응할 거냐?’
더욱이 지난 반년간 성장한 유리는 과거처럼 ‘제압’이란 것이 가능한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무치는 어떤 식으로 나올까?
그것이 궁금했기에 랄프는 직접 할시온까지 꺼내 유리의 장단에 맞춰 준 것이다.
‘보아하니 유리라는 녀석도 무언가 생각이 있어 보이고.’
유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궁금했기에 랄프는 조금은 진중한 얼굴로 두 사람의 진검 대련을 바라보았다.
캉- 츠컹-.
그 뒤로도 계속 유리와 무치 사이에서 무기끼리 부딪치며 불똥이 튀었다.
5분, 10분, 15분, 20분.
둘의 격전은 지칠 줄 모르고 이어졌다.
투둑- 툭툭-.
그사이 어둑해진 하늘에서 작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캉- 탕-!
투툭- 투두두둑-.
날카로운 금속성.
지붕을 두드리는 가랑비 소리.
빠르게 날아드는 날카로운 살기.
거머리처럼 계속해서 달라붙는 유리.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은 다급함.
그 모든 것이 무치의 심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왜… 어째서……?’
나는 그냥 잘 지내 보고 싶었을 뿐인데.
다른 사람과 싸우고 싶지 않은데.
누구를 다치게 하면… 날 또 괴물이라고 부르겠지?
그건 정말 싫은데.
왜… 유리 형은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냥 친하게 지내면 안 되는 거야?
온갖 생각이 무치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점점 무언가로 차오르는 가슴.
결국 참다못해 무치가 답답한 응어리를 토해 냈다.
“으아악, 그만해!”
거대한 외침과 함께 무치의 전신에서 붉은 마나의 빛이 터져 나왔다.
‘……?!’
순간적인 위기를 감지한 유리는 그대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대련이 벌어지고 난 이후 처음으로 무치와 간격을 벌린 것이다.
그사이 넘실거리는 붉은빛이 무치의 팔뚝을 타고 흘렀고, 긴 창대가 낭창낭창 휘었다.
왼쪽, 오른쪽.
넘실.
위, 아래.
출렁.
거대한 미늘창이 물리법칙을 벗어난 듯 채찍처럼 휘둘러졌고, 그때마다 붉은 선이 그어졌다.
슈넬 도끼 창술.
광란(狂亂).
랄프 슈넬에게 도살자라는 별명을 만들어 준 절기 중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오싹-.
요사한 붉은빛에 유리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하나, 둘, 셋, 넷.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점점 주변을 장악해 나아가는 붉은 기운 하나하나에는 놀라운 파괴력이 담겨 있었다.
이를 깨달은 순간 요한의 말이 유리의 뇌리를 스쳤다.
[사람들은 랄프 놈 생긴 걸 보고 녀석이 단순 무식하게 힘으로 찍어 누르는 창술을 사용할 거라고 착각하지. 물론 무식하게 힘이 좋은 건 맞으나… 정작 그 자식이 추구하는 방향은 화려한 기교 중심의 창술이다.]그때는 단순히 머리로만 이해했던 요한의 조언.
하지만 무치가 만들어 내는 붉은 선의 향연을 보자니 ‘화려한 기교 중심의 창술’이라는 대목이 여실히 체감됐다.
슈스슥-.
무치의 마나와 창날이 만들어 낸 궤적에는 힘은 물론이거니와 완벽한 계산이 담겨 있었다.
‘막무가내로 휘둘러지는 듯한 저 창날의 궤적마저… 실은 철저하게 의도된 함정이라 이거지?’
힘이라는 바탕 위에 그려진 화려한 기교의 수(數).
바로 오늘날 랄프가 도끼 창의 명인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무치에게 고스란히 전수되었으리라.
유리는 겹겹이 쌓여 그물처럼 쳐진 붉은빛에 피식거렸다.
‘다가오지 말라는 거냐?’
일정 영역을 완전히 장악한 무치의 마나.
그건 마치 자신에게 하는 경고 같았다.
더는 다가오지 마.
더는 괴롭히지 말라고!
이를 여실히 느낀 유리는 조소를 머금었다.
‘벌써? 이제 시작인데?’
다만 문제는 저걸 어떻게 뚫냐는 거였다.
“흠…….”
어지럽게 얽힌 붉은 궤적은 쉽사리 건드릴 수 없었을뿐더러, 혹여 건드린다 쳐도 어떻게 변화할지 몰랐다.
힘에서 밀리고, 수를 읽고 대처하기는 난해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모조리 피해서 뚫는다.’
유리의 눈이 번뜩였다.
그는 믿었다.
요한이 해 준 이야기를.
[랄프가 만들어 낸 도끼창술은 분명 뛰어난 마체술이다. 힘이면 힘, 기술이면 기술,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는 극상의 마체술이지. 하지만 그런 녀석이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사람이 있다. 누구냐고? 누구겠냐! 당연히 이 몸이시지!]그리고 자신이 쏟은 노력을!
[아, 물론 이 몸이 그 근육 돼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천재인 게 가장 큰 이유이지만… 내가 녀석에게 한 번도 지지 않을 수 있던 건 상성 때문이다.]지난 반년.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같이 다리가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산을 뛰어다녔다.
날이 맑든 흐리든.
비가 와도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고 구르고, 찢기고 피가 나도 매일 달렸다.
[녀석의 무기는 중병기, 거기다 극한으로 파괴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마체술이다 보니 동작 하나하나가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단점을 갈고닦은 기교로 상쇄한다고는 하나… 그딴 굼벵이 같은 공격에 맞아 줄 만큼 레드너 가문의 마체술이 느리지는 않거든.]자신이 매일매일 속에 든 것을 게워 내며, 딱- 죽기 직전까지 달린 이유는 간단했다.
[영광으로 알아라. 세상에서 가장 빠르고, 자유로운 마체술을 익히게 된 것을.]그래야지…….
“언젠간 구름을 밟을 수 있을 테니까.”
탁-.
유리의 발이 힘차게 대지를 내디딘 순간.
레드너가(家) 비전 마체술.
운보(雲步).
우웅-.
그의 마나핵이 약동하며 육신에 새겨진 마나 로드를 향해 힘차게 마나를 뿜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