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49
248화. 신규 퀘스트 (2)
대열의 가장 앞줄.
그것도 딱 정중앙에서 불쑥 손을 들고 있는 유리.
50기는 유리가 던진 질문에 잠시 멍해 있다가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저, 저?!”
“야 이 새꺄!”
불과 십여 초 전.
목숨이 아깝거든 난이도를 신중히 선택하라는 안경남의 경고 따윈 귓등으로 흘린 듯한 질문.
심지어 단 한 번뿐인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 버린 상황이었기에 여기저기서 비명 같은 노성이 터져 나온 건 당연했다.
“야 이 미친놈아! 그딴 걸 질문이라고 하고 있냐!”
“그건 그냥 네가 알아서 찾아보라고!”
“무, 무효! 이번 질문은 무효입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야유와 분노.
그러나 정작 그 비난의 중심에 있는 유리는 대수롭지 않다는 얼굴로 귀를 후비적거릴 뿐이었다.
니들이 떠들면 어쩌겠냐는 듯 태연한 얼굴로 말이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안경남은 피식거렸다.
‘예상은 했다만…….’
유리 홀랜드의 성향과 지난날의 행보를 보았을 때, 그가 지옥 난이도를 선택하리란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렇다 하여도 이렇게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지옥 난이도를 선택할 줄이야.
‘이제는 조심할 필요조차 없다는 거냐.’
사실 그럴 만도 했다.
이미 유리 홀랜드는 일반적인 기수의 수준을 훌쩍 뛰어넘었으니까.
요람을 수료했어도 진즉에 수료했을 실력.
사회에 나가서도 충분히 ‘강자’라 분류될 만한 존재.
그런 이에게 이제 요람은 보물이 숨겨진 놀이 공간이나 다름없으리라.
‘하나 지옥 난이도는… 아무리 그런 너라도 고생 좀 해야 할 거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그가 안경의 코 받침대를 슥- 치켜올렸다.
쨍-.
안경에 햇빛이 반사되어 강하게 반짝였고.
“지옥 난이도 입구는 저쪽으로 가면 된다.”
안경남은 엄지를 뻗어 자신의 등 뒤를 가리켰다.
그걸 본 50기는 더욱 아우성을 내질렀다.
“자, 잠깐! 이건 아닌 거 같습니다!”
“아무리 선착순이라고 해도 저런 질문은 좀……!”
“다… 다른 질문으로 하겠습니다!”
여기저기서 제발 한 번만 봐 달라는 괴성이 난무했지만, 안경남은 피식 웃으며 뒤돌아설 뿐이었다.
“이상으로 설명을 마친다. 무운을 빌지.”
조금의 가능성도 주지 않고 냉정하게 떠나가는 안경남.
이에 50기들이 애처롭게 손을 내뻗었다.
동기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유리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혀를 찼다.
“쯧쯧, 그런다고 떠난 사람이 돌아오냐? 애쓴다, 애써.”
한심하다는 심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음성에 50기는 단체로 유리의 뒤통수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하여간 저 새끼 주둥이가 화근이지!’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었다면 유리는 이미 수십 번도 더 죽었으리라.
“아!”
하지만 그런 분노 가득한 시선도 유리가 뒤돌아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사라졌다.
유리가 동기들을 보며 빵긋 웃었다.
“혹시 나랑 같이 지옥 난이도 갈 새끼들 있냐? 잘해 줄게! 같이 갈 사람?”
“…….”
그러자 행여나 유리와 시선이 마주칠라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기 바쁜 50기.
그런 동기들을 보고 피식 웃은 유리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에라이, 됐다. 없으면 나 먼저 간다. 100일 뒤에 보자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유리는 설렁설렁 걸어 금세 50기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중.
누군가가 무언가를 깨닫고 중얼거렸다.
“가만… 이 퀘스트가 100일 동안 치르는 거고 저 새끼 혼자 지옥 난이도에 들어가는 거면… 우린 저 새낄 100일 동안 안 봐도 된다는 소리잖아?”
“……?!”
누군가가 처음 입 밖으로 내뱉은 깨달음이 50기 전체에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어?!”
“그, 그러네?!”
그리고 이는 곧 우레와 같은 함성이 되었으니.
“시발! 100일간… 휴가다!”
“우린 자유다!”
“이, 이게 행복이지!”
유리에게서 100일 동안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도 기뻐하는 50기.
그들은 다짐했다.
뭐, 애초에 갈 능력도 안 되기는 하지만, 만약 그럴 능력이 있다고 해도 지옥 난이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리라고.
동기들이 외치는 함성을 들으며 아린이 군터를 향해 물었다.
“넌 어디로 갈 거야?”
아린의 질문에 군터는 말없이 유리가 나아간 길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아린의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유리 따라가게?”
“그럴 리가.”
군터는 살짝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내 그릇은 안다. 지옥 난이도는… 내가 도전할 수준이 아닐 거다.”
아무리 자신이 지난 1년 동안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다고 해도 유리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괜히 저 괴물을 따라가서 과분한 것을 담으려고 했다가는 자신의 그릇이 박살 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도…….
‘그릇 밖으로 넘치는 것 정도는 감수해 볼 만하겠지.’
그런 위험조차 감수하지 않으면 유리와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군터는 결정했다.
“난 어려움 난이도로 간다.”
군터의 결정에 아린도 배시시 웃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나도!”
“배고프다!”
곧바로 뽀삐도 활짝 웃으며 양손을 들었다.
자신도 같이 가겠다는 뜻이었다.
그 모습에 어쩐지 기분이 좋아진 군터는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같이 가지.”
“가자, 가자!”
“배고프다!”
그렇게 군터와 아린, 뽀삐까지.
유리와 그 측근들이 싹 빠져나가자 환호성을 내지르던 이들도 하나둘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니, 쟤들은 꼭 맨날 지들이 뭐라도 되는 듯 먼저 움직이더라?”
“야! 우리도 가자!”
앞서간 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투덜거린 이들이 부랴부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잠시 뒤.
한 흑검병이 안경남의 앞으로 다가와 보고했다.
“50기 전원 탑에 입장했습니다.”
“난이도별 입장 인원은?”
“지옥 난이도에 하나, 어려움 서른넷, 보통 예순아홉입니다.”
“…쉬움 난이도에 한 명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예.”
“쉬움에 한 명도 들어가지 않았다라… 거기에 어려움이 서른넷?”
부하의 보고에 안경남은 재밌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여간 어떤 한 새끼 때문에 다른 놈들도 덩달아 간땡이가 부었군.”
그게 아니면 그 어떤 한 새끼처럼 다들 실력에 자신이 생겼든가.
안경남은 탑이 있는 방향을 응시하며 살짝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 * *
지옥 난이도의 입구에 도착한 유리.
그는 눈앞의 광경을 보고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뭐 누가 봐도 지옥 입구네.”
안경남이 알려 준 곳에서 유리를 기다리고 있는 건 흉측하고 거대한 석상이었다.
흉악한 표정으로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악마의 머리.
그리고 그 쩍 벌어진 입에 시커먼 동혈이 뚫려 있었으니.
어둠만이 가득한 입구는 담이 약한 자라면 뒷걸음치게 할 정도로 음산함이 풍겼다.
하지만 유리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지옥 입구로 발을 들여놓았다.
저벅저벅-.
시커먼 어둠으로 잠식된 통로에 유리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비록 어두컴컴했으나 통로는 외길이었기에 유리는 헤매지 않고 걸어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응?”
어둠만이 가득하던 공간의 끝에 빛이 모습을 드러냈다.
안 그래도 지루해지고 있던 유리는 조금 더 속도를 높여 걸었고 마침내 빛이 있는 공간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런 유리를 반겨 준 것은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메케한 내음과…….
“왔니?”
짜증과 반가움이 뒤섞인 목소리였다.
유리는 발광석이 박힌 천장 아래 서 있는 그녀를 보고 인사를 건넸다.
“코코 씨, 오랜만요!”
반가움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메아리치자 코코가 인상을 찡그리며 연기를 내뱉었다.
후욱-.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는 소곤소곤 말해야 한다는 예절도 모르니?”
“밀폐된 공간에서 궐련을 피워 대는 것도 딱히 예의 있는 행동은 아닌 거 같습니다만?”
“난 아까부터 있었고, 넌 방금 왔으니, 네가 나한테 맞추렴.”
“여기 오래 계셨으면 코코 씨가 주인이고 제가 손님이니, 손님 배려 좀 해 주시죠?”
“…한마디를 안 지네?”
“다른 싸움은 져도 말싸움만큼은 절대 지지 말자는 주의인지라?”
진짜로 한마디도 안 지고 나불거리는 유리와 그런 그를 노려보는 코코.
둘의 시선 사이에 노란 전류가 튀었다.
파지직-.
그렇게 한동안 눈싸움하던 코코가 한숨을 내쉬었다.
“잘 들어, 한 번만 설명할 거다.”
“넵, 귀 열어 두었습니다!”
유리가 장난스럽게 귀를 쫑긋거리는 모습을 본 코코는 궐련 연기와 함께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설명이 와다다- 쏟아졌다.
“이 백일탑은 이번에 새롭게 개설되었고, 백일 동안 최대한 많은 층까지 올라가면 되는 퀘스트지만, 중간에 보상을 선택하고 나갈 수도 있단다. 지옥 난이도는 각층마다 두 개의 보상 상자가 주어지는데 해당 층에서 보상을 받으면 거기서 끝.”
“…….”
“하지만 다음 층으로 올라가길 선택한다면 그 보상은 일단 보류. 그러고 나서 다음 층도 통과하면 이전 층 보상까지 같이 얻을 수 있지. 물론 다음 층 도전을 100일 안에 깨지 못하거나 포기한다면 이전에 얻은 보상도 전부 날아가는 거고.”
“그…….”
“그렇게 8층까지 깨면 누적 보상은 총 16개, 하지만 마지막 9층의 보상은 4개니, 9층을 모두 통과하면 총 20개의 상자를 선택할 수 있단다. 아! 참고로 상자 안 내용물은 복불복이다.”
“…….”
“이곳에 백일 동안 갇혀 있긴 하겠지만, 중간중간 간이 상점은 물론 은행, 성적 게시판도 열어 줄 테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렴. 질문은 답할 생각도 받을 생각도 없으니 하지 말고, 이상 설명 끝.”
거의 한 호흡 만에 와르르 쏟아진 설명에 유리의 볼살이 살짝 파르르 떨렸다.
말싸움 좀 했다고 이리 보복하다니, 참으로 치졸하지 않은가.
유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코코가 한 이야기를 머릿속에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았다.
곧 그의 눈이 흥미로 반짝였다.
“그러니까 전무(全無) 아니면 전부(全部)라는 소리네.”
물론 중간에 적당히 보상을 받고 빠지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유리는 애당초 그 방법은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코코는 피식거렸다.
“괜히 욕심부리지 말고 그냥 적당히 보상 상자 몇 개 챙겨서 나가지 그러니?”
“왜요?”
“전부보다는 전무가 될 가능성이 크니까?”
“왜요?”
“아무리 너라고 해도 이 지옥 난이도는 쉽지 않을 테니까?”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보라는 듯한 코코의 도발적인 눈빛에 유리는 팔짱을 꼈다.
“준비를… 꽤 열심히 하셨나 봅니다?”
“했지.”
“제가 이 지옥 난이도에 들어올 거라고도 예상하셨나 봅니다?”
“했지.”
마찬가지로 자신감 넘치는 코코의 답변에 유리는 무언가를 깨닫고 눈을 빛냈다.
‘재밌네. 그러니까 애초에 이 지옥 난이도를 나한테 맞춰서 만들었다는 거네?’
그건 아마도 이번에 처음으로 시행되는 퀘스트이다 보니 난이도 조절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인 듯싶었다.
이에 턱을 쓰다듬던 유리가 코코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말이에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저한테 왜 이러세요?”
대체 자신이 뭘 어쨌다고 이렇게 맞춤형으로 퀘스트 난이도까지 조절하냔 말이다.
순진무구, ‘난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
청렴결백하다는 듯한 그 눈망울을 본 코코의 이마에 작은 혈관이 빠직 튀어나왔다.
“…정말 모르겠니?”
“네, 모르겠는데요?”
“네가 요람에 들어오고 나서…….”
“…나서?”
“우리 일거리가 정확히 3배 늘었단다.”
“제가 뭘 어쨌는데요?”
“정해진 퀘스트 규칙 무시, 퀘스트용 설비 상습적 파손, 대련이랍시고 자꾸 애들 두들겨 패서 치료소에 실려 오는 중환자 5배 증가.”
“이야, 일거리 늘었으니 돈도 많이 버시겠다.”
“월급은 똑같은데 일거리만 늘어난 게 문제지.”
“그럼 그걸 고용주한테 따지셔야죠. 왜 저한테 뭐라고 합니까?”
“우리 고용주가 조금 많이 쎄. 따졌다가는 진짜로 목이 날아갈 거 같으니 그냥 너한테 따지려고.”
“힘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꼬우면 네가 우리 고용주님한테 가서 따져 주겠니?”
“…저도 그분은 좀 무섭습니다만?”
아무리 자신이어도 검주에게 흑검병들 월급 좀 올려 달라고 할 배짱은 없었다.
“아무튼 일 좀 늘어난 걸 이런 식으로 복수하시겠다? 이거 직권 남용 아닌가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뻔뻔도 하시고.”
가볍게 혀를 내두르던 유리가 돌연 눈을 빛내며 코코에게 도발적인 미소를 던졌다.
“내기하실래요?”
“내기?”
“제가 이 퀘스트를 깨나 못 깨나. 100일 안에 9층을 깨나 못 깨나로.”
살짝 치켜든 턱.
자신감 넘치는 거만한 눈동자.
이를 마주한 코코는 후욱, 궐련 연기를 내뿜었다.
“내기라… 내가 또 그거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딱 그래 보이기는 하더라고요.”
“후후, 좋아. 난 네가 100일 안에 이 퀘스트를 못 깰 거라는 데 퀘스트 보상 상자 5개 건다! 너는 뭘 걸겠니?”
“제가 100일 안에 이 퀘스트를 깨지 못한다면… 향후 1년간 퀘스트 규정 준수, 퀘스트 설비 파손 주의, 대련 상대의 무출혈과 무상해를 약속드립니다.”
“…원래 당연히 지켜야 할 걸 참 대단한 것처럼 포장해서 내기 품목으로 올리는 재주가 있구나?”
“그래서 싫으세요? 이 조건 안 받으실 겁니까?”
싫으면 말든가라는 눈으로 히죽거리는 유리를 보고 코코도 덩달아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러고는 말없이 조금 뒤로 물러나 한쪽 벽의 레버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드르르륵-.
레버 옆의 벽이 좌우로 개방되며 어두운 통로가 드러났으니.
코코가 그곳을 턱짓하며 짧게 답했다.
“받아.”
이에 미소를 머금은 유리가 코코의 옆을 지나쳐 새롭게 개방된 통로로 들어섰으니.
“내기 성립.”
그 짤막하고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코코는 다시 레버를 올렸다.
드르르륵- 쿵.
그렇게 유리를 집어삼킨 동혈은 이내 그 입을 닫았고.
지옥 난이도 1일 차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