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here to end this fight RAW novel - Chapter 250
249화. 신규 퀘스트 (3)
동혈 속으로 들어선 유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대로 우뚝 멈춰 섰다.
그러기 무섭게 마치 퇴로를 차단하듯 닫혀 버린 문.
쿵-!
뒤에서 들려온 묵직한 소리에 한 번쯤 돌아볼 법도 한데, 유리는 신경도 안 쓰고 오로지 정면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건 좀 의외네.’
들어오기 전에는 컴컴한 어둠뿐이었으나 막상 문이 닫히니 천장에 발광석이 나타나며 통로를 밝혔다.
이에 유리는 꼼꼼하게 앞을 살폈다.
매끈하고 깔끔하게 다듬어진 바닥과 벽, 천장.
딱히 이상한 점은 없어 보이는 외관.
그러나 유리의 코는 연신 움찔거렸다.
‘이 냄새…….’
별거 아닌 것 같은, 일반 통로처럼 보이는 장소에서 스멀스멀 위험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고 조금 전부터 미약하게 유리의 후각을 건드리는 기름 내음.
집중을 해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미약한 냄새였지만, 근래 들어 가장 많이 맡았던 냄새를 유리가 못 알아차릴 리 없었다.
‘이거, 설마?’
무언가 감을 잡은 듯 눈을 빛낸 그가 천천히 앞을 향해 걸었다.
그렇게 약 열 걸음 정도를 내디뎠을까.
철컥-.
발끝에 전해진 작은 진동과 기괴한 소리.
그리고.
샥-!
유리를 노리고 은빛 섬광이 날아들었다.
이를 본 그는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깨닫고 피식거렸다.
‘역시.’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분위기에 기름 냄새까지 나더라니.
결국 자신의 예상대로 첫 번째 층의 관문은 기관 함정이었다.
석-!
가볍게 은빛 칼날을 피해 낸 유리는 가볍게 입술을 핥았다.
‘지옥의 함정이 얼마나 매콤한지 어디 맛이나 한번 봐 볼까?’
그와 함께 그의 육신이 흐릿하게 변하며 정면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검은 잔상이 되어 움직이는 유리.
그가 나아가는 동선을 따라 통로의 온갖 함정들이 분분히 일어나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슈슈슉-!
눈앞에서 몰려드는 함정은 다양하고 빨랐으며, 너무도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조화신수를 통해 발현된 동술로 인해 남들과는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을 유영하게 된 유리는 여유롭게 함정들을 살폈다.
발동된 함정의 개수와 종류.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함정의 마감 방식과 작동 원리까지 세세하게 관찰하는 유리.
그는 그냥 이대로 지나칠 수도 있음에도 일부러 다른 함정들까지 꼼꼼히 건드리며 나아갔다.
그럼에도 그 속도는 평범한 흑검병이 평지를 달리는 속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콰강- 카가강!
좁은 통로 속에 난무하는 은빛 궤적.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검은 잔상을 건드리지는 못했다.
훙-.
뒤통수로 날아드는 쇠공을 피해 낸 유리는 눈을 빛냈다.
‘어느 정도 매콤한 편이네.’
지옥의 첫 관문인 기관 함정.
이는 1년 차 때 유리가 신기록을 세운 기관 돌파 퀘스트의 적색 동굴, 즉, 7성급 기관 함정의 난이도와 얼추 비슷했다.
많은 요람의 기수들이 죽어 나간 그 악랄한 기관 함정이 지옥 난이도의 첫 번째 관문에 등장한 것이다.
아니, 어찌 보면 7성급보다 더 지독했다.
함정이 설치된 구간의 길이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이거… 언제 끝나냐?’
7성급 난이도의 기관 함정은 그래도 50m만 지나면 충분히 돌파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옥 난이도의 첫 관문은 벌써 100m는 족히 이동한 거 같음에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거, 다른 애들은 애 좀 먹겠네.’
물론 그렇다고 하여도 이 기관 함정은 기록을 측정하는 게 아니니 최대한 조심히 함정을 파훼해 나가면 언젠가는 깰 수 있으리라.
다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물론 유리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얼추 다 본 거 같네.’
대충 이 기관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으니 더는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파측-.
가느다란 뇌전의 실오라기가 유리의 두 다리를 타고 오르고.
팡-!
강한 파공음이 들리며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단숨에 십수 미터를 격하고 나타난 유리.
파측!
다시 뇌전이 번뜩이자 뒤늦게 발동한 함정이 아무도 없는 빈 허공을 허무히 스쳤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이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직선 통로는 물론 구불구불한 통로로 이뤄진 함정 구간.
유리는 순식간에 수백 미터를 돌파해 1층 구역을 내달렸다.
그러다 마침내.
“오?”
그의 앞에 2개의 통로가 나타났다.
더는 기관 함정이 없는 것을 확인한 유리는 그 앞에 멈춰 서서 통로에 세워진 푯말을 확인했다.
‘왼쪽으로 가면 보상을 받고 끝내는 건가 보네.’
출구란 글자를 한 번 본 유리는 다시는 그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러고는 망설임도 없이 2층 진입로로 들어서서 사라졌다.
유리가 떠나고 1초 후.
쿠긍-.
뒤늦게 발동된 함정이 낸 소리가 통로를 타고 도달하여 아무도 없는 빈 허공에 맴돌았다.
그렇게 유리가 지옥 난이도 첫 번째 관문에 발을 들여 2층 진입로로 들어서기까지 걸린 시간.
이는 고작 4분 남짓에 불과했다.
* * *
유리가 2층으로 들어서고 3분 하고도 5초 뒤.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리며 지옥 난이도의 3층에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당연히 2층 관문을 통과하여 3층에 도달한 유리였다.
2층 관문 역시 1층과 마찬가지로 기관 함정의 관문.
당연히 1층보다 더 위험한 함정이 즐비했고 심지어 구간마저 더 길었지만, 유리는 오히려 1층 때보다 시간을 단축했다.
1층은 그래도 뭐가 있는지 구경이라도 했지만, 2층에서는 그런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나마 신중하게 함정을 돌파하였기에 3분 정도가 소요된 것이다.
‘무난하네.’
자신을 노리고 퀘스트를 조정하였다기에 긴장하고 있었건만.
그런데 웬걸?
지옥 난이도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2층까지는 별다른 위험 요소 없이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물론 이것도 유리의 입장에서야 무난한 거지 다른 이들은 조금 상황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가볍게 3층 입구에 도착한 유리는 컴컴한 통로를 보고 피식거렸다.
“아예 불을 껐네?”
앞에서 풍기는 분위기나 익숙한 기름 냄새는 분명히 저 앞에도 기관 함정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함정의 난이도는 2층보다 더 어려울 것이며, 심지어 그걸 어둠 속에서 피해 내야 했다.
“흠…….”
유리는 바로 통로로 나아가지 않고 잠시 턱을 쓸었다.
“아?”
그러다가 무언가 좋은 게 떠오른 것일까.
히죽 웃은 그는 검을 뽑아 들고 마검을 불러일으켰다.
삽시간에 유리의 검에 깃든 황금빛.
이를 어둠 속에 넣어 본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다 아예 공명까지 일으켰다.
우웅-.
찬찬한 황금빛 성검이 어둠 속에서 빛을 발했다.
이를 본 유리는 이내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에이 뭐야, 이건 못 쓰겠네.”
마검과 성검의 빛은 확산되지 않고 그저 검의 주변을 맴돌 뿐이었다.
때문에 아주 지척을 밝히는 것이 아니면 딱히 쓸모가 없어 보였다.
마검과 성검을 횃불 대용으로 쓰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고.
“그렇다면…….”
유리는 성검을 그대로 휘둘러 인근의 벽을 내려쳤다.
쾅-!
베는 것이 아닌, 파괴가 목적.
성검이 그 목적을 달성하니 회색 벽이 산산조각이 나며 수십, 수백 개의 돌조각으로 변해 우드드 떨어졌다.
이를 싹싹 긁어모아 주머니에 쑤셔 넣은 유리.
“가 볼까.”
그는 두려운 기색 없이 어둠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그리고 그 첫발.
쾅-!
강한 충격에 바닥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고, 단 한 번의 도약으로 유리의 육신은 20미터를 훌쩍 뛰어넘는 기염을 토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날고 있던 유리가 사방을 경계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1층과 2층을 벼락처럼 돌파했다면 이번에 그의 움직임은 마치 구름 속을 노니는 듯싶었다.
그러다 속도가 떨어져 바닥에 닿으려는 찰나.
주머니에서 돌멩이를 꺼낸 유리는 이를 가볍게 밟고 다시 허공을 도약해 앞으로 나아갔다.
이는 과거 그가 7성급 기관 함정의 깨지지 않을 신기록을 달성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유리의 움직임을 그때보다 훨씬 더 가벼웠고, 자유로웠다.
경지가 높아진 만큼 운보의 숙련도도 높아진 덕분이었다.
달그락-.
유리가 밟은 돌멩이는 십수 미터 뒤로 날아가 힘없이 떨어졌다.
다행히 그 정도로는 함정이 발동하지 않는지 유리는 별문제 없이 허공을 날아 순식간에 400m를 돌파할 수 있었다.
그가 그렇게 막 다시 돌멩이를 박차고 날아오른 순간.
“……?!”
위험을 감지한 유리가 다급히 허공에서 몸을 틀었다.
사악-.
이마 위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투명한 은사.
감지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목이 떨어져 나갔을 아찔한 상황에 유리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하지만 그의 위험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직-.
다급하게 몸을 튼 탓에 유리는 지면에 떨어져 쭉 미끄러졌다.
그러기 무섭게 천장에 구멍이 열리며 빛이 쏟아졌다.
지금까지 감춰졌던 발광석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어둠에 익숙해졌던 유리가 그로 인해 일시적으로 시각을 상실한 것은 당연지사.
그리고.
사사삭-!
사방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유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이건……?!’
마치 자신이라면 이렇게 날아올 것을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자연스럽게 이어진 함정의 연계.
이에 유리는 그제야 이 기관이 누구의 손을 탄 것인지 깨달았다.
‘아, 이 정신 나간 영감탱이가! 이걸 나한테 쓰고 있냐!’
이 어둠과 빛, 그리고 은사를 이용하는 함정 방식은 그와 세경이 요한을 잡기 위해 고안한 기관 방식이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제안하고 세경이 다듬은 방식.
세경은 그걸 자신을 잡기 위해 고스란히 써 버린 것이다.
유리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
그나마 다행인 건 이 기관의 원작자이고 같이 연구한 사람이기에 그 원리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거였다.
‘내가 이런 거에 당할… 가만?’
그냥 가볍게 자신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 함정을 피하려 했던 유리.
그는 순간 등골이 싸늘해졌다.
대번에 표정이 굳어진 그는 빠르게 검을 휘둘러 전방을 보호했다.
카가가강-.
순식간에 튕겨 나가는 함정.
‘쯧, 역시!’
유리는 함정의 작동 방식이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혀를 찼다.
탕-! 카강-!
한동안 쏟아진 함정을 전부 쳐 낸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시력이 회복되길 기다렸다.
잠시 뒤.
시력이 회복된 유리는 사방에 널브러진 함정의 잔해를 보고 버럭 소리쳤다.
“시발, 내 이럴 줄 알았다, 이 미친 영감탱이!”
자신이 이 함정을 만든 걸 세경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악랄한 영감탱이라면 분명 자신이 방심할 것을 노려 기관을 손봤을 거란 직감이 번뜩 든 유리.
그의 직감은 정확했다.
‘하여간 변태 같은 늙은이!’
속으로 욕을 한 유리는 신중한 얼굴이 되었다.
‘앞선 1층과 2층은 그 영감의 솜씨가 아니야. 하지만…….’
만약 이 3층은 전부 세경이 만들었다면?
‘이거 만만히 봐선 안 되겠네?’
마왕성에 기관을 설치하면서 세경의 기관 제작 솜씨는 크게 늘었다.
특히 기관의 살상력을 높이는 솜씨가 미친 듯이 늘었다.
‘맨날 밥 처먹고 나랑 연구한 게 그거니까! 요한 영감탱이 잡으려고.’
그러나 세경의 기관 제작 솜씨가 늘었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점은, 그가 과거와는 달리 유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다는 거였다.
다시 말해 세경이 유리의 성향과 행동 양식을 파악해서 기관을 설치하였다는 뜻.
유리는 이를 악물었다.
‘한동안 바쁘다고 코빼기도 비치지 않더니만!’
뭘 하나 했더니 여기서 이러고 있었던 거네?
속으로 화를 삭인 유리는 자세를 바로잡으며 눈을 빛냈다.
‘그렇게 나왔다 이거지?’
지난 시간 동안 세경이 자신을 파악했다면, 자신 역시 세경이란 존재를 파악한 건 마찬가지다.
그리고 마왕성에 기관을 설치하며 실력이 는 건 세경뿐만이 아니다.
자신도 마찬가지지 않은가.
“좋아,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
이는 자신과 세경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었다.
유리는 어둠 너머에 세경이 서 있기라도 한 듯 무섭게 노려보다가 빠르게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유리는 어둠 너머에 세경이 서 있기라도 한 듯 무섭게 노려보다가 빠르게 앞을 향해 달려 나갔다.
이후 1, 2층 때와는 달리 3층에서는 끊임없이 함정이 발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쿵! 콰득-! 콰강!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쉼 없이 울리던 함정 발동 소리가 어느 순간 뚝 끊겼고.
“뜨와씨이이이이잉?!”
돌연 복도 어딘가로부터 시작된 당혹성이 메아리쳤으니.
이는 재앙의 징조였다.
그리고 곧이어…….
콰아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터진 직후, 통로의 벽을 타고 열기가 밀려 나오며 탑 전체가 부르르 몸을 떨어 댔다.
* * *
보통 난이도의 1층.
호기롭게 보통 난이도를 선택하여 들어온 예순아홉 명의 50기가 쏟아지는 화살 비에 맞서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물론 그냥 화살 비 수준이었다면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 그들이 흔들리는 십수 미터 높이의 나무 기둥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다는 거였다.
챙-!
“큭!”
50기 중 한 명이 균형을 유지하며 아슬아슬하게 화살을 쳐 냈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쿠구구궁-.
탑 전체가 심하게 흔들리며 나무 기둥이 요동쳤다.
그 여파가 기둥 위에 서 있는 이들에게 미친 건 당연지사.
“으, 으겍!”
“무, 뭐야?!”
“으아아가! 살려 줘어어어!”
예상치 못한 재해로 보통 난이도 1층에 괴성과 비명이 난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