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파이트 홀에 대기하고 있던 레기온 길드원들은, 마제스티에게 상황을 전달받자마자 장외 포인트 근처로 철수했다.
출전이 확정된 세자, 이터널리스트, 백검이 남아 길드 마스터의 옆으로 향했고, 장외였던 또치와 삼촌도 급히 중앙으로 달려왔다.
레온은 초반에 테세우스가 했던 것처럼 시작 카운트를 알리기 위해 자리에 남았다.
“아, 진짜 자괴감 든다. 저런 새끼들 급에 맞춰서 어울려줘야 한다니…….”
한숨 쉬는 백검의 투덜거림에 마제스티도 한숨을 담아 대꾸했다.
“어쩌겠냐. 저 정신병자들이 기어코 우리랑 놀고 싶다고 찾아와서 도발하는데. 그리고 원래 잡초는 가끔 짓밟아줘야 하는 법이야.”
저 멀리서 키득거리는 베누스를 한 번 노려본 마제스티는 휙 고개 돌렸다. 그러곤 일찌감치 탈락해 손가락만 빨고 있던 삼촌을 향해 경고했다.
“야, 오주현. 너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해라?”
몹시도 살벌한 음성에 겁먹은 삼촌이 펄쩍 뛰었다.
“아, 형! 적 길드가 상대면 얘기가 완전 달라지지!”
그럼 아까는 대충했다는 뜻인가? 이터널리스트의 중얼거림에 모두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못난 삼촌이 모두에게 두들겨 맞는 사이, 크라이그가 리디안과 파파를 데리고 나타났다.
“리디안 님?” 동시에 외친 레기온 길드원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든든한 아군의 등장에 곧 손뼉 치며 환호했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베누스는 파파를 보자마자 엥? 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못마땅한 시선을 의식한 파파는 일부러 생긋 웃으며 대꾸했다.
“바드는 어차피 버프 차이도 없잖아요? 내가 신스펠을 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기가 종결인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우리 길드 아쳐 일반 랭커니까 대신 내가 투입된 거라고 보시면 될 듯?”
할 말을 잃은 베누스 대신 쿠렉이 그러네? 하고 반응했다. 그 멍청함에 햄스터가 뒤통수를 세게 쳤다. 눈치 없는 쿠렉 때문에 태클을 걸지 못한 신세계가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 때, 리디안은 캐티스가 대여해 준 무기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브라만의 증표 (+9)
착용 조건 : 73 LV / 등급 : 유니크 / 단계 : 특상급
공격력 : 20 ~ 25 / 정신력 : 21 / 지능 : 7 / 체력 : 13
HP : 280 / MP : 350
세인트의 모든 순간 회복 스펠 치유력 60% 고정
~추가 옵션 : 감시자의 눈 9% : 재설정 시 안드바리의 망치 필요~
~추가 옵션 : MP 300 증가 : 재설정 시 안드바리의 망치 필요~
캐티스의 제안이 끝나기가 무섭게 너도, 나도 제 무기를 빌려주겠다는 세인트들의 다툼 끝에 최종 발탁된 무기였다.
리디안은 은색 십자가 모양의 봉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높은 강화 수치도 무서운데, 말로만 듣던 감시자의 눈 옵션까지 붙어 있었다.
캐티스는 수치가 낮아 잘 안 보일 거라고 했지만, 옵션 하나만 해도 은신 섀도우 헌터를 감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건 분명했다. 리디안은 보란 듯이 현금을 두른 무기를 최대한 조심스럽게 쥐며 긴장했다.
“야, 뭐야. 쟤는 뭔데 장비가 만렙이야?”
레기온을 힐끗 바라보던 햄스터가 베누스의 등을 급히 두들겼다.
“아, 뭐. 누구?”
플레이어 정보
이름 : 리디안 / 길드 : 레기온
레벨 : 73 / 직업 : 세인트 / 보조 직업 : 재단사
HP : 3180 / MP : 4600
무심결에 정보 창을 확인한 베누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뭐지, 저 미친 수치와 미친 장비는? 기억하기로는 장비가 그리 화려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그새 업그레이드했나? 아마 빌렸을 거라는 햄스터의 추측에 베누스가 잠시 고민했다.
저것도 태클을 걸어야 하나? 하지만 세인트야 초반에 미리 처리하면 그만이라, 베누스는 상관없다며 관심을 끊어버렸다.
모두 준비가 끝난 후, 두 길드는 중앙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거리를 뒀다.
“그럼… 레기온에서는 레인져 세자 님, 나이트 크라이그 님, 파이터 이터널리스트 님, 아쳐 또치 님, 팔라딘 백검 님, 세인트 리디안 님, 바드 파파 님, 섀헌 삼촌 님.”
레기온의 출전 명단을 읊은 레온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신세계를 바라봤다.
“신세계는 레인져 베누스 님, 나이트 햄스터 님, 파이터 교감 님, 아쳐 백사부 님, 팔라딘 쿠앤크 님, 세인트 나쵸 님, 바드 신의아들 님, 섀헌 쿠렉 님.”
각자 자리 잡고 준비하라는 덧붙임에 파이트 홀이 어수선해졌다. 위층에서는 레기온을 향한 응원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에 비해 아무 말 없는 주변 분위기에 리디안이 슬쩍 사람들을 쳐다봤다. “작전 같은 건 전혀 없는 건가요?” 조심스러운 물음에 크라이그가 시원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충격받은 리디안이 눈동자를 뒤흔드는 사이, 백검이 상큼하게 웃어 보였다.
“다템 없으니까, 디버프 걱정하지 말고, 제 뒤에서 힐이랑 버프만 평소 하던 대로 하시면 돼요. 나머진 애들이 알아서 할 거예요.”
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 걸까? 어리둥절했지만, 일단은 알겠다고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크라이그가 딜러들을 향해 눈짓했다. 손가락으로 뭔가를 표시하는 걸 보니, 자기들만 아는 신호 같았다. 아주 계획이 없는 건 아니었구나. 리디안은 다행이라며 안도했다.
“그럼 카운트 할게요. 3, 2, 1……. 시작!”
커다란 외침이 떨어지고 레온이 물러나기가 무섭게 리디안은 급히 버프부터 외웠다.
제일 먼저 방어력 증가인 신의 수호, HP 증가인 성스러운 은총, 보호막인 보호의 빛까지 빠르게 시전했다. 주력 버프를 완료하자마자, 리디안은 정신없이 줄어들기 시작한 HP를 바라보며 전체 힐을 외웠다.
그리고 딜러들에게 순차적으로 이동 속도 증가인 성령의 축복, 스탯 증가인 여신의 세례를 사용했다.
팔라딘인 백검은 리디안을 후방에 두고, 그 자리를 지키며 자체 버프를 시전했다. 체력과 방어력이 증가하는 ‘성전사의 깃발’이 꽂힘과 동시에 주변 반경으로 하얀 빛이 퍼졌다.
가운데로 뭉쳐서 달려오는 신세계 딜러들과는 달리, 레기온은 좌우로 갈라져 돌진했다.
선두로 달려오던 팔라딘 쿠앤크는 원거리, 근거리로 나뉜 방향을 바라보며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자신의 목표는 크라이그라, 망설임 없이 오른쪽으로 돌진했다.
그 뒤를 따르던 베누스는 레기온의 수작이 뻔히 보인다며 코웃음 쳤다.
보아하니 왼쪽으로 간 원거리들이 세인트 나쵸부터 치고, 오른쪽 근거리들이 자기부터 칠 것 같았다. 그렇다면 팔라딘 뒤에 붙어서 레기온의 근거리를 유인해, 한 명이라도 잡히면 그놈부터 다굴하면 그만이었다.
베누스는 점점 가까워져 오는 크라이그, 이터널리스트, 삼촌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하지만 코앞에 가까워진 세 명은 바로 방향을 꺾어 좌우로 유유히 빠져나갔다. 제게 뛰어들 줄 알고 신의 사슬을 준비하던 쿠앤크의 눈이 물음표로 물들었다.
놀란 베누스도 어? 하며 반사적으로 그 뒤를 향해 ‘살기의 질풍’ 스킬을 사용했다. 붉은 빛을 두른 다량의 차크람이 맨 뒤에 있던 크라이그에게 날아갔다. 무방비하게 등을 맞은 크라이그가 잠시 비틀거렸지만, 곧장 이어지는 ‘여신의 손길’로 인해 큰 타격은 줄 수 없었다.
이후로도 두어 번 더 스킬을 날렸으나 마찬가지였다. 쿠앤크가 잽싸게 발길을 돌려 어그로를 끌었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당황한 나머지 쿠앤크는 자리에 서서 바보처럼 눈만 끔뻑였다.
베누스와 쿠앤크를 그대로 무시한 크라이그, 이터널리스트, 삼촌은 그들 뒤에 서있던 바드 신의아들에게 달라붙어 일점사했다.
뒤늦게 정신 차린 쿠앤크가 방어하러 다가갈 틈도 없었다. 집중 사격에 당황한 신의아들이 주춤거리는 사이, 나쵸가 서둘러 힐을 외워 그의 HP를 관리했다.
하지만 또치, 세자가 나쵸 근처에 근접한 상태였다. 적당한 거리에 멈춰 활을 겨누는 또치의 모습에 나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크라이그의 뒤를 쫓던 햄스터와 교감이 서둘러 방향을 틀었다. 이대로 힐러를 잃을 순 없었다.
그에 레기온 원거리들을 견제하기 위해 뛰어간 순간, 또치와 세자는 나쵸를 지나쳐 멀리 떨어져 있는 신의아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삼촌의 은신 채찍질, 이터널리스트의 발차기 스킬은 물론, 또치와 세자의 큼지막한 스킬들이 동시에 날아갔다.
근접해 있던 크라이그도 사용 가능한 고레벨 검기류 스킬을 모두 때려 박았다. 바뀐 무기 때문에 대미지는 낮았지만, 그것만 해도 큰 보탬이었다.
무작위로 난도질하는 크라이그의 공격 덕분에 3천 남짓한 바드의 HP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의아들 님이 탈락하셨습니다.]아주 잠깐의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멍청하게 바라볼 여유가 없었다. 베누스는 욕을 씹어 삼키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빨리 한 놈이라도 잡아!” 포악한 외침에 쿠앤크가 급히 달려들었다.
다른 딜러들의 움직임도 다급해졌다. 신의아들을 잡자마자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레기온의 모습에 베누스는 헛웃음을 삼켰다.
홧김에 잠시 나쵸를 노려봤지만 나쵸가 욕을 먹을 이유는 없었다. 좀 어벙한 표정이긴 해도, 나쵸도 나름대로 버프와 힐을 모자람 없이 잘하고 있었다.
‘아, 근데 이상한데? 뭔데 저렇게 느려 보이지? 왜 쟤가 더 빨라 보이지?’
베누스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갸웃했다. 잔뜩 당황한 나쵸와는 달리, 리디안은 비교적 침착해 보였다.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에 베누스는 내심 당황했다.
너무 얕잡아 봤나 싶어, 리디안부터 잡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그 앞을 지키고 서있는 백검이 문제였다. 아니, 저 새끼는 왜 후방에서 말뚝을 박고 지X이야? 베누스는 짜증스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리디안은 가운데서 우왕좌왕 당황하는 신세계 길드원들을 보며 안도했다. 분명 시작하자마자 베누스나 백사부, 쿠렉이 자신부터 칠 거라고. 그리 예상했는데……. 장승처럼 서있는 백검 때문인지, 다들 다가오기를 꺼리고 있었다.
리디안은 근처를 기웃거리는 불투명한 움직임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은신한 쿠렉이 분명했다.
수치가 9%밖에 되지 않아 잘 안 보일 거라는 캐티스의 말과는 달리, 충분히 의식하고 피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앞을 지키는 든든한 탱커의 존재와 은신에 대한 대처 능력이 생겨서 그런지 리디안은 약간의 긴장감, 그리고 재미와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즐겁게 만끽할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았다. 어느새 공격 범위에 이른 백사부가 리디안을 향해 화살을 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고레벨 아쳐가 흔히 쓰는 아이스 에로우와 파이어 에로우가 제일 먼저 박혀 왔다. 이름만 그렇지, 속성 공격은 없어 일반 공격과 비슷했다. 그러나 백사부가 민첩 스탯에 주력한 플레이어라 어깨와 다리에 박히자마자 높은 대미지를 자랑했다.
문득 고목나무 전쟁 때의 핑크푸크가 생각날 만큼, 백사부의 스킬도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그러나 그때처럼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리디안은 괴자가 하던 것처럼 침착하게 모두의 HP를 주시했다. 그리고 백사부로 인해 빠르게 떨어지는 자신의 HP는, 단일 회복 스펠인 자애의 손길을 적절히 섞어 커버했다.
따로 전체 힐 범위를 생각해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고맙게도 레기온 길드원들이 자신의 범위에 맞춰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잡았다! 여기부터!”
우연히 이터널리스트의 발목을 잡은 쿠앤크가 신나 외쳤다. 방심했던 이터널리스트는 낭패한 얼굴로 제 발목을 감은 하얀 사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눈을 빛낸 베누스가 이터널리스트부터 잡자며 모두에게 신호했다. 백사부와 쿠렉 역시, 그 신호에 맞춰 후퇴했다.
리디안이 곧 다굴당할 이터널리스트를 위해 준비하는 순간, 마나 배터리를 잃고 새파랗게 질린 나쵸를 또 지나친 세자와 또치가 백사부를 향해 스킬을 날리기 시작했다. 타깃을 찾아 근처를 날쌔게 돌아다니던 삼촌 역시 그에 합류했다.
아직 리디안의 여신의 세례 효과가 이어지고 있어, 도적 계열 3인방의 민첩 스탯이 크게 상향된 상태였다.
속사포로 날아오는 공격에 리디안을 향해 활을 쏘던 백사부의 움직임이 덜컥거렸다. 백사부는 다소 겁에 질려 자신의 HP를 힐끔댔다. 미친 듯이 터지는 크리티컬에 나쵸의 힐이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운 좋게 또치의 스킬 공격에 크리티컬 최대치가 떴다.
[백사부 님이 탈락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