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탱커님들, 힐러님들.”
“딜러분들도 고생하셨어요~”
매너 있는 마무리에 다들 손이 분주해졌다. 썩은 물들답게 곧장 인벤토리를 열어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리디안도 사냥 내내 뭔가 드롭되는 것을 봤기에 바로 인벤토리를 열어 확인했다.
오랜 시간 사냥터에 머무른 탓인지, 인벤토리에는 잡스러운 아이템이 가득했다. 일반 몬스터가 드롭하는 아이템은 거의 상점행이라, 딱히 기분 좋아질 일은 없었다. 그래도 NPC 상점에 팔면 꽤 짭짤한 골드로 돌아오니 다행이었다.
“보조 직업 재료 많이 모였다…….”
재단사의 전용 재료인 ‘누에고치’가 벌써 다섯 묶음이었다. 인벤토리 한 칸당 999개가 최대치인데도 벌써 이만큼이나 모인 것이다.
“어차피 당분간 손도 대지 않을 거 그냥 창고에 다 넣어 놔야겠다.”
중얼거림을 들은 크라이그가 불쑥 다가왔다.
“길드 성 가려고요?”
“아, 네에. 전 일반 인벤토리 확장을 안 해서……. 이 속도로 그냥 하다가는 인벤이 누에고치로 범벅될 거 같아요.”
과금 유도 게임답게 노르드 월드 역시 인벤토리를 쾌적하게 쓰려면 그에 걸맞은 비용을 지급해야 했다. 사냥을 길게 하지 않던 게임 시절에는 기본 인벤토리로도 충분했기에 리디안은 아바타 인벤토리만 확장해 사용 중이었다.
다행히 아이템 분류별로 인벤토리가 나누어져 있어 당장 막막하진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좀 더 여유롭게 사용하려면 정리는 필수였다.
“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 다들 수고하셨어요.”
미드가르드로 이동하자 약속 있는 이들이 먼저 자리를 떠났다. 아이템 정리 목적이 남은 이들은 자연스레 뭉쳐 길드 성으로 향했다.
하이 랭커들의 등장에 길드 성 내부가 소란스러워졌다. 그러나 예전만큼 유난스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요새 하도 레기온과 ONE이 붙어 다녀서 그런지 이제 그러려니 하는 눈치였다.
“저 정도면 그냥 길드 합치는 게 낫지 않나?”
“합치면 백 퍼 싸움 남. 지금이 나음.”
“하긴 그것도 그렇네. 길마 자리 놓고 눈치 싸움 쩔겠네.”
은연중에 별소리도 다 들렸다. 전투 길드가 웬만해서는 일반 플레이어에게 터치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 때문에 다들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길드 마스터들이 듣기에는 좀 거북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나, 마제스티와 레온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오히려 더 친근하게 대화하는 모습에 리디안은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두 사람은 정말 단짝 같았다.
* * *
“아, 리디안 님도 다 정리하셨나 보네요.”
대강 창고 업무를 보고 나오니 같은 시각에 나온 페페가 반갑게 말을 걸어왔다.
“근처에 괜찮은 음료 가게가 생겼다고 버베나 님이 다 같이 가자고 하는 중이에요. 리디안 님도 같이 가요.”
“앗, 좋아요! 근데 크라이그 님은 아직 안 나왔나 보네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찰나, 볼일을 마친 크라이그가 불쑥 나타났다. 나왔다, 하고 방긋 웃는 리디안이었지만, 크라이그는 함께 있는 페페의 모습에 잠시 덜컥거렸다. 그러나 표정을 구길 틈도 없이 리디안이 바짝 다가와 헤실거렸다.
“크라이그 님, 다른 분들이 근처 가게에서 좀 더 얘기하다 가려나 봐요. 우리도 같이 가요.”
“그래요? 따로 사냥하려고 했는데. 그냥 쉬고 같이 가야겠네.”
힐끔 페페를 본 크라이그가 별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미묘한 분위기에 페페가 쓰게 웃는 한편, 리디안은 방금 잘못 들었나 싶어 눈동자를 흔들었다.
“…또 사냥이요? 무섭게 왜 그러세요.”
“아니면 자기 전에 한 타임 더 하는 것도 좋고요.”
“와, 괴물…….”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두 사람의 대화에 페페는 잠시 소외감을 느꼈다. ‘혹시 크라이그가 일부러 더 그러는 건가?’하는 의심이 살짝 들 무렵이었다.
“리, 리디안 님!”
누군가의 목소리에 세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놀란 리디안은 상대를 보자마자 어, 하고 탄성했다. 레기온 길드 가입 전까지 함께 어울렸던, 별님반의 우래귀가 복도 중앙에서 주춤거리고 있었다.
플레이어 정보
이름 : 우래귀 / 길드 : 없음
레벨 : 70 / 직업 : 가디언 / 보조 직업 : 없음
HP : 6880 / MP : 890
“우래귀 님?”
참 반가운 얼굴이었다. 기쁜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갔으나, 그간 연락 한 통 없던 것이 미안하여 리디안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우래귀 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다소 미안한 표정으로 그리 물었지만. 우래귀는 별안간 주르륵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리디안이 왜 그러느냐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세상 서러운 눈빛으로 오물거리는 입술을 떨었다.
“리, 리디안 니임…….”
덩치 큰 사내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기 시작하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한 박자 늦게 우래귀를 알아본 페페도 놀라 뛰어갔다.
일전에 죽어가는 늪에서 그를 한 번 봤음에도, 크라이그는 얼굴도 이름도 흐릿해 갸웃하다 일단 그 뒤를 따랐다.
“뭐야, 무슨 일이야? 리디안 님 아는 분인가?”
창고 업무 뒤, 먼저 나와 떠들던 파티원들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웅성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한 페페가 웃으며 제안했다.
“보는 눈이 많으니 일단 자리를 옮기죠.”
눈치 빠른 판단 덕분에 리디안은 우래귀를 데리고 길드 성 밖으로 빠져나왔다.
일단 정처 없이 분수대가 있는 광장으로 향했지만, 사람이 많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래서 페페가 그들을 조금 구석진 자리로 안내했다.
“우래귀 님, 무슨 일 있어요?”
벤치에 앉아 훌쩍이는 우래귀를 두고 리디안과 페페, 크라이그가 빙 둘러섰다.
조금 진정이 됐는지 우래귀는 본인도 창피한 듯 얼굴을 붉혔다. 그러곤 세 사람을 힐끔거리다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이어진 한숨에는 어쩐지 사연이 많아 보였다.
“아니에요. 제가 요즘 너무 힘들어서… 리디안 님 보자마자 너무 기쁘고 반가워서…….”
그러면서 또다시 우래귀는 또르르 눈물을 흘렸다. 말과 표정이 반대되는 모습에 세 사람의 표정이 가지각색으로 변했다.
애처로운 우래귀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리디안은 그제야 우래귀가 별님반에서 탈퇴한 것을 알아챘다.
“앗, 우래귀 님. 길드 탈퇴하신 거예요?”
“네……. 일주일 됐어요.”
자연스레 이어진 한숨에 리디안은 바로 눈치챘다. 지금 이 서러운 통곡이 길드와 관련 있음을 말이다. 크라이그, 페페도 대강 짐작이 가는 표정이었다.
사적인 질문이지만, 이대로 못 본 척 지나가는 것도 그래서 리디안은 조심스레 우래귀에 옆에 앉아 사정을 물었다. 한참을 망설이던 우래귀는 결국, 하나씩 털어놨다.
“길드 쪽으로 작은 문제가 있었어요. 저는 잘 지내보려고 했는데, 정말 아닌 것 같아서 탈퇴했거든요. 좀 힘들어도 차라리 혼자 돌아다니면서 그때그때 파티 구해서 다니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근데 아시다시피, 길드 끼리끼리가 심하잖아요.”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전부터 길드끼리 움직이고 사냥하는 추세라, 솔직히 무길드 플레이어가 사냥 파티에 합류하는 건 실질적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다른 길드에 가입하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다들 안 받아 주는 거예요. 신청만 하면 자꾸 퇴짜를 놓으니까, 저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나… 하자가 있는 건가, 싶어서 계속 생각했죠.”
말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 힐끔 눈치를 살피는 걸 보니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듯했다. 원래도 자신과 비슷한 과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기에 리디안은 정말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제가. 그래서 캐니 님한테 연락해 볼까 했는데, 거기서도 거절당할까 봐 무서웠어요……. 사실, 오늘 리디안 님한테 말을 걸면서도 속으로는 반가워하지 않으실 거 같아서 걱정했어요.”
“네? 그럴 리가요. 제가 왜…….”
“그때도 잠깐 같이 다닌 것뿐이고, 리디안 님은 이제 유명하시니까……. 저 같은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실 것 같아서……. 근데도 반겨 주셔서…….”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뭐라고…….”
황당한 기색이 역력한 리디안의 대답에 우래귀의 눈에 또다시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다시 끅끅 우는 우래귀를 달래느라 리디안의 혼이 쏙 빠질 지경이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페페가 반사적으로 크라이그를 쳐다봤다.
“크라이그 님, 이거… 혹시.”
“네. 대충 알겠네요.”
크라이그는 별님반 간부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최근 들은 길드 사정도 함께 떠올렸다.
별님반에는 길드 마스터인 제니스를 주축으로 간부 파벌이 있고, 그 파벌을 따르는 소수 일반 무리가 존재했다. 별님반에서는 그들이 왕이자, 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소수의 일반 무리가 레벨이나, 장비, 인기도 등. 전반적으로 기존 간부들보다 높아 신규 파벌이 우후죽순으로 솟아나고 있었다.
그 기존 간부들과 새 파벌이 서로의 입지 싸움을 하느라 어수선하다고, 대강 듣기로는 그런 상태였다.
우래귀는 아마 그 희생자일 터였다.
길드의 입지 싸움에서 빠지지 않는 게 사람 쟁탈전이었다. 기존 간부들이 패거리 인원 늘린다고 닥치는 대로 여기저기 들들 볶았을 거고, 그러다 자신들 마음에 맞지 않는 사람에 대해 여러 압력을 넣었을 게 뻔했다.
그 수법 중에는 탈퇴한 사람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퍼트려 타 길드로의 재가입이 불가능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친목 길드는 희한하게 각 길드 간부들끼리 네트워크가 다져져 있어 정보 공유가 쉬운 특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시작은 전투 길드에게 대항하고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친목 길드만의 커뮤니케이션이었겠지만, 지금은 지령 전달이나 혹은 길드원 이력 공유 등 악질적인 수단으로 기묘하게 변질하였으니 아이러니했다.
정말 유치한 짓이었으나 기존 제니스 패거리가 게임 시절에도 종종 하던 짓이라, 사실 그 아래 간부들이 따라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도 없었다.
“길드원 추천으로 가입되니까 길마한테 요청해요.”
크라이그가 깔끔하게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리디안의 얼굴이 밝아짐과 동시에 우래귀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저, 저 그럴 목적으로 부른 거 아니에요……! 그리고 저 같은 저렙이 어떻게…….”
“그럼 이대로 계속 혼자 지내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