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이런 때 헤임달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 중얼거림에 신사의 눈빛이 번뜩였다.
신사는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리디안을 불러 이리저리 눈짓, 손짓했다. 그 의미를 깨달은 리디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미미르를 불렀다.
“저, 미미르 님. 혹시 헤임달이라는 분은 어디에 머물고 계시나요?”
리디안은 헤임달이 침묵 중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 그의 상태가 아닌, 거주지를 물었다.
마찬가지로 제 입으로 말했던 것이 기억났는지, 미미르가 의아한 눈으로 되물었다.
“설마 헤임달을 찾아가려고 그러느냐? 하지만 아무 의미 없을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헤임달 역시 노른 세 자매처럼 침묵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 대답에 멀찍이 떨어져 있던 플레이어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아는 척했다. 노른 세 자매라면 익히 아는 데다, 익숙하기까지 한 NPC였다.
그래서 모두가 세계수 위그드라실 맵을 떠올리며 작은 목소리로 속닥였다.
“노른 세 자매도 결국, 여기 사람이었다는 거네요.”
“어디 노른 세 자매뿐이겠어요? 다른 NPC들도 모두…….”
“근데 그럼 헤임달도 노른 방이랑 반응이 똑같을 거라는 건데. 그럼 찾아갈 이유가 있나요? 그보다 애초에 헤임달이라는 존재가 진짜 있긴 있었어요? 게임할 때 NPC로도 못 본 것 같은데요?”
풍월주의 질문에 모두가 입을 뻐끔거렸다.
그러고 보니 게임 내에서 NPC의 대사로 종종 언급만 있었지, 실제로 헤임달을 본 기억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리디안도 NPC로는 생소한지라 갸웃하며 박회장을 쳐다봤다. 게임 세계관에 아는 게 많은 박회장이라면 뭔가 알겠지 싶었으니까.
하지만 박회장도 헤임달이라는 NPC에 대해선 낯선지 어? 하며 눈가를 찌푸렸다. 그의 기억으로도 ‘헤임달’은 노르드 월드 게임 내에 존재하지 않는 NPC였다.
그럼 대체 어디서 헤임달을 찾을 수 있는 거냐는 신사의 물음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생각이 확고하다면 굳이 말리진 않으마. 헤임달을 찾아가고 싶은 거라면 무스펠하임에 있는 황금 산맥을 찾아가거라.”
당황스러운 침묵 속에서 미미르가 넌지시 말했다. 그에 모두가 휘둥그레한 눈으로 미미르를 쳐다봤다.
“헤임달은 경계의 신. 수문장으로서 비프로스트를 지키는 존재지. 아마 파프니르의 계곡에 몸은 그대로 남아 있을 거란다.”
“그, 그럼 혹시. 저희가 그곳에 가면 비프로스트… 무지개 다리를 볼 수 있는 건가요?”
비프로스트. 이방인이 제일 처음 나타났다는 곳이니, 지금으로선 시작과 끝에 가장 가까운 연결고리였다. 눈 반짝이는 리디안의 질문에 미미르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안타깝지만 불가할 거다. 무지개다리는 헤임달의 권능. 헤임달의 의지로 여닫을 수 있단다. 하지만 지금 그 헤임달의 정신이 온전치 못하니.”
잠시나마 기대에 찬 눈빛이 금방 사그라들었다. 무거운 한숨 속에서 조용하던 이트가 자신의 턱을 매만지며 갸웃했다.
“근데 같은 맥락으로, ‘황금 산맥’이라는 맵이… 우리가 하던 게임에 정말 존재했나요? 파프니르 계곡이라는 것도 낯선데.”
“그러게요. 나도 처음 듣는 곳이긴 하네.”
낯설다며 중얼거린 보리알은 사람들을 차례대로 쳐다봤다. 누구 아는 사람 있느냐는 눈빛에 여기저기서 난해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그중 신사가 손을 들어 말했다.
“아마 맵 이름은 맞을 거예요. 황금 산맥이랑 파프니르 계곡.”
“그거 오픈된 콘텐츠 맞아요?”
“아뇨. 개발 팀에서 차후 계획으로 언급만 했어요. 나중에 아스가르드 오픈하고 관련 맵으로 나올 던전인데, 대규모 레이드 전용 던전으로 개편하겠다는 ‘카더라’만 있었지 그 외 정보는 없어요.”
“그럼 결론은 지금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 구역이라는 거고, 우리로선 당장 찾아가지 못한다는 거네요?”
풍월주의 끝맺음에 좌우로 절망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가만히 지켜보던 미미르가 고개를 기울이며 의아해했다. 갑작스레 열 올라 저희끼리 희망에 차 떠들더니. 순식간에 푹 분위기가 식었기 때문이다.
“뭐가 문제인 것이지? 황금 산맥은 ‘경계의 숲’과 바로 이어진 곳이라 찾아가는 건 어렵지 않을 텐데?”
확실히 경계의 숲은 현재 출입이 가능한 맵이다. 하지만 미미르는 현재 이곳의 게임 시스템 구조를 아예 모르고 있었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미미르의 말에 리디안이 찡그려 웃었다.
“아뇨. 그게… 우리 쪽 세계에서는 아직 공개된 곳이 아니라서요. 아마 저희한테는 이동 경로나 진입이 불가할 거예요.”
“어, 잠깐만요.”
급히 나온 마제스티가 손을 들며 모두를 바라봤다.
“여기가 정말 두 개의 세계가 섞인 곳이라면, 뭔가 다르지 않을까요? 실제로 우리가 알던 게임 세계랑 여기랑 규칙이 일부 다르잖아요. 그에 따른 변수도 많아졌고. 그럼, 여기서는 이제 게이트 없이… 갈 수도 있는 곳, 이지 않을까요?”
그 의견에 잠시 고요해졌다. 리디안도 그럴듯한 의견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동요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핑크푸크가 콧잔등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우리 기준으로 경계의 숲은 저레벨 맵이에요. 거길 통해서 다른 곳으로 빠질 수 있었으면 누가 벌써 알아채고 소문냈을 거예요.”
“아… 그것도 그렇네요.”
이해한 마제스티가 고개 숙여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때, 박회장이 당황하며 불쑥 끼어들었다.
“어, 아니. 아니요! 거기 요즘 저렙들 잘 안 가요. 어느 순간부터 디버프 쩔게 걸어서 기피 맵 됐거든요. 그새 또 변수가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
디버프라는 말에 리디안은 과거 헤른, 우래귀, 캐니와 함께 연습하러 갔던 것을 떠올렸다.
그 말대로 ‘봉인의 유령’이라는 몹이 봉인 디버프를 걸어 초반에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했다.
마녀의 무덤을 비롯해 다른 곳에 생긴 변수처럼, 그곳도 마찬가지로 변화한 모양이라고. 리디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장 헤임달부터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여기처럼, 또 새로운 걸 알게 될 수도 있잖아요.”
무너스키가 급히 제안했다. 새로운 존재, 새로운 구역이 언급되자 사람들의 눈동자에 약간의 희망이 떠오르는 듯했다.
잠시 소란스러워진 분위기에 미미르를 의식한 레온이 작게 주의를 시켰다. 그에 움찔한 플레이어들은 다시금 슬그머니 미미르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미미르는 크게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굳이 플레이어들의 대화를 제한할 생각은 없다며 리디안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리디안은 반사적으로 마제스티와 레온을 쳐다봤다.
두 사람 역시 잠시 말문이 막혀 서로의 얼굴을 쳐다만 봤다.
그래도 우선 정리는 하고 가야겠다며 레온이 조심스럽게 모두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럼… 다들, 지금 우리가 있는 이곳이 다른 세계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봐도 되나요? 앞으로 모든 행동을 그에 맞춰 가도 될까요?”
잔혹한 확인 사살이었다. 잠깐 붕 떴던 분위기가 다시금 가라앉았다.
특히, 오전 회합 때까지도 이곳이 그저 게임일 거라 믿고 있던 핑크푸크나 무너스키 등의 상실감은 어마어마해 보였다.
다소 어두워진 표정으로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참으로 우울한 동의였다.
리디안도 쓰게 웃으며 고개를 떨궜다.
또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절망적인 현실에 모두가 의욕을 잃은 듯 보였다.
뭐라 말하지도 못하고 땅바닥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리디안의 마음도 불편해졌다.
무거운 숨을 삼킨 리디안은 다시금 미미르를 바라봤다.
“일단 저희 측 입장은 정리된 것 같아요. 그런데 미미르 님은 저희에게 궁금한 점 없으세요? 아까부터 계속 저희 관점으로만 이야기한 것 같아서요.”
조심스러운 물음에 빤한 시선이 닿았다. 플레이어들도 리디안의 돌발 질문에 고개를 들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러게, 라는 양심 어린 대꾸가 파도처럼 이어졌지만, 미미르는 옅게 웃을 뿐 딱히 무언가 궁금해 보이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에 서로가 의아하게 눈치만 보던 때, 미미르가 갑작스레 오른쪽 손을 들어 보였다.
“나 역시 궁금한 게 많단다. 너희 세계에 대해 알고 싶은 게 참 많아. 하지만 그러기엔 좀 늦은 것 같구나.”
높이 들어 올린 미미르의 팔은 어딘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팔을 꺾어 안으로 돌렸으나 기다란 손가락 마디마디는 뻣뻣하게 굳은 채였다.
그 기묘한 움직임에 모두의 표정이 크게 흔들렸다. 마치 마네킹의 손을 움직이는 듯했다. 미미르는 자신의 팔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곧 침묵할 것 같구나. 방금까지는 괜찮았는데. 너희들을 만나고서부터 몸이 잘 따르지 않는 느낌이 들어.”
마찬가지로 삐거덕 움직이는 고갯짓에 모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미미르는 현재로서 플레이어와 소통을 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존재임과 동시에 이 낯선 세계의 원주민이다.
미미르가 말하는 침묵은 필시 노른 세 자매와 같은 현상일 터. 그리 되면 소통은 불가하고 플레이어들은 겨우 찾은 실낱같은 단서를 놓치게 되는 셈이다.
예고 없이 심각해진 분위기에 플레이어들 모두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뭐야. 설마 우리랑 접촉해서 문제 생긴 건 아니겠지?”
“아니, 문제가 생겼으면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그럼 우리도 핵심적인 내용만 바로 물었을 텐데.”
무너스키가 원망스러운 눈길로 미미르를 슬쩍 쳐다봤다. 겁 없는 그의 발언에 레온이 소스라치게 놀라 움찔했다.
물론 맞는 말이긴 했다. 진작 이상함을 말해 줬더라면 시간 끌 것 없이 좀 더 영양가 있는 질문을 했을 테니까.
하지만 이곳은 미미르의 영역이며, 당연히 미미르가 우위에 있다. 하물며 이 세계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이방인에게 미미르가 하나하나 다 배려하고, 설명하고 보고할 의무도 없었다.
리디안도 내심 서운했으나, 미미르를 존중했기에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행여나 미미르가 무너스키의 투덜거림을 들었을까 봐, 허둥지둥 미미르를 향해 물었다.
“그, 그럼 미미르 님! 혹시 오딘에 대해서 말해 줄 건 없으세요? 침공 이벤트… 아니, 전쟁에 대한 것들이라도요!”
다급한 리디안의 외침에 허둥지둥 당황하던 사람들도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말대로 이곳을 찾아온 이유 중 하나이자 지금으로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당연히 미미르와 오랫동안 이야기할 줄 알았기에 그저 흐름을 기다리며 곧장 화두에 올리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시간이 한정되니 긴박해질 수밖에 없었다. 리디안처럼 사람들의 눈빛도 다급해졌다.
언제 침묵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 플레이어들은 미미르에 대한 공포를 잊고 무작정 앞으로 나섰다.
어느새 물가로 쭉 늘어선 그들은 저마다 자신의 질문을 던졌다.
“맞아요. 그 오딘인지 뭔지가 우리를 쓸어버릴 예정인 모양인데. 우리라고 좋아서 여기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나서서 좋게, 말 좀 해주면 안 됩니까?”
“아니면 당신 같은 사람 또 없나요?”
“그래요! 대화… 대화가 가능한 또 다른 사람이 필요해요!”
“미미르 님! 오딘의 눈이요! 정말 오딘의 눈만 갖고 있으면 되는 건가요? 이 물건으로 오딘과 협상할 수 있는 게 맞나요?”
마찬가지로 이성을 잃은 리디안도 불안함을 담아 목청껏 물었다.
이후로도 여러 질문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으나 미미르가 주목한 건 리디안의 물음뿐이었다.
겨우 손을 내려 자세를 단정히 고친 미미르는 리디안을 향해 빙긋 웃었다.
“걱정하지 말아라. 설마 자신의 눈을 몰라볼까 봐.”
옅은 웃음에 리디안은 작게 안도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확신은 아니었다. 그 불안을 읽은 크라이그가 불쑥 나섰다.
“그냥 당신이 지금 오딘을 부르면 안 되는 건가요?”
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크라이그의 요청에 모두가 합죽이가 됐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게 가장 빠른 지름길이긴 했다.
하지만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처럼, 미미르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불가하다. 재앙 이후 오딘은 군대를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 아스가르드의 문을 닫아버렸으니까. 아마 신들의 세계를 이 오염에서 지키기 위함이었을 테지.”
“그럼… 우리는 침공이 일어날 때까지 오딘이라는 존재를 만날 수 없는 건가요?”
덜덜 떨리는 리디안의 목소리에 미미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딘이 전쟁을 선포한 이상 어쩔 수 없단다. 걀라르호른이 울리기 전까지는 절대. 아스가르드의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