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29%!”
시간이 지날수록 보스의 HP가 더 낮아졌다. 점점 끝이 보이는 모습에 모두의 눈이 빛났다.
그러나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는 건지. 보스 타락의 사제는 돌연 ‘보호’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다들 별거 아닌 줄 알았다. 그저 이번 보호가 마지막 패턴이겠거니, 여겼다. 하지만 사제는 HP 게이지가 25% 아래로 떨어지자, 또 한 번 ‘보호’를 사용했다.
어이없는 야유 속에서 지켜보던 신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 분위기라면 이후로도 보호를 수시로 사용할 게 뻔했다.
그리고 그건 현실이 되었다.
“아! 또 보호 쓰네. 장난하냐, 진짜!”
막힘없던 공격에 방해물이 계속 생기니 여기저기서 짜증이 터져 나왔다.
“저번에 늑대도 죽기 직전에 도망 다니더니. 얘도 생존 본능인가?”
열심히 돌아다니던 추장도 답답한 듯 중얼거렸다.
세인트라곤 해도 추장은 솔직히 딜러 성향에 더 맞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보스의 HP가 덜컥 멈춰질 때마다 딜러들처럼 크게 탄식하곤 했다.
“근데 그래도 이 속도면 한 시간 안에 끝나겠는데요? 지금 40분째죠?”
후열에 있던 앵두군의 눈이 은근한 기대로 빛났다.
여태 시간 감각 없던 리디안도 생각보다 얼마 안 된 시간에 놀라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정말 이대로라면 한 시간 안에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듯했다.
“보호 끝! 바로 고레벨 스펠, 스킬 위주로 때려 박으세요!”
굳이 신사의 지시가 아니더라도 딜러들은 그간 계속 벼르고 있었다.
보호 패턴 내내 스펠과 스킬의 쿨타임을 축적해 둔 딜러들은 막이 사라지자마자 무자비하게 달려들었다. 곧장 나이트의 80레벨 스킬부터 시작해서 짧은 시간 동안 고레벨 공격기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그것도 모자라 크라이그는 급한 마음에 공격 패턴에 더블 샷까지 추가했다. 플레이어가 아닌 몬스터를 상대로는 그다지 효과 없는 컨트롤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1이라도 대미지를 더 보태려는 딜러들이 크라이그를 따라 너도나도 더블 샷을 사용했다. 공교롭게도 하필 보스 몹이 인간형인 탓에 몇 명은 은근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아, 나 솔직히 더블 샷 서툴러서 연습 더 해야 하는데. 근데 이제 PK 할 일 없으니까 연습할 일도 없으려나?”
“왜요. 혹시 알아요? 한쪽에서 또 누가 뒤통수치면 바로 싸움 날지도.”
불온한 잡담에 신사가 따끔한 눈초리를 쏘아 보냈다. 그에 곧바로 죄송하다며 큼큼거리는 헛기침이 새어 나왔다.
멀리서 살짝 듣고 있던 마제스티는 저도 모르게 진땀을 뺐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태양 연합 쪽에 그 비슷한 일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단은 직접 만나 얘기를 더 해봐야 알겠지만, 어쩐지 또 한 번의 파란이 예상됐다.
마제스티는 자동으로 그려지는 지옥도에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뱉었다.
* * *
“좀 더 힘내세요! 19%입니다!”
대망의 10% 대에 진입한 순간이었다.
숫자가 더 낮아지니 설정이 따로 적용되는 건지. 간신히 줄어들었던 메테오의 공격력이 거짓말처럼 증폭됐다.
“아파! 아프다고! 메테오 멈춰! 하지 마!”
방어력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인 다람이 제일 먼저 절규했다. 비단 다람만이 아니었다. 모든 직업을 통틀어 가장 방어력이 출중한 팔라딘과 가디언들도 메테오를 맞고 갸웃할 정도였다.
“저, 저 성결 쓰면 안 돼요?”
지능 세팅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방어력이 낮아진 규호가 핼쑥한 얼굴로 물어왔다.
리디안을 제외한 세인트들은 동시에 안 된다고 못 박았다. 시답잖은 농담에 서로 웃었지만, 솔직히 고통은 참을 수 없어 저마다 끙끙 신음했다.
“막판! 패턴 공격력 강화로 예상됩니다! 딜러분들 조금만 더 힘내 주세요!”
딜러들이 다시 총력을 기울이는 것처럼, 리디안도 막바지에 다다른 보스의 HP를 바라보며 잔여 MP를 계산했다.
그간 2천 아래로는 안 떨어지게 조절했으나 이제는 아끼지 않아도 될 듯했다.
다른 세인트들도 다 끝나가는 판국이라며 MP를 아끼지 않았다. 거기에 리디안의 힐까지 두세 번 더 들어가니 파티원들의 HP가 60% 아래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리디안 님. 힐은 우리가 더 넣을 테니, 쿨타임 차는 대로 영역 계속 써주세요.”
메인 힐러들의 MP 잔량을 확인한 이모탈이 눈을 찡긋했다. 그에 환히 웃은 리디안이 성큼 앞으로 나섰다.
“여신의 영역!”
은은하게 퍼지는 초록빛 마법진에 반가운 함성이 울려 퍼졌다. 리디안이 등 뒤 든든한 세인트들을 믿고 영역 시전에 더 신경 쓰니, 딜러들의 만족감도 높아졌다.
“슬슬 준비하시죠.”
눈에 띄게 쇠약해진 보스 덕분에 서모너들도 얼굴이 밝았다.
비로소 컨트롤에 여유가 생긴 버베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방글거리며 도도와 독재를 불렀다.
이제 겨우 5% 남짓 남은 보스. 그리고 서서히 움직이는 서모너들의 모습에 곳곳에서 기대감 섞인 환호를 질렀다.
그러나 서모너들은 보스의 HP 게이지를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쓰기엔 좀 모호한데. 80 딜러들! 딜 좀 팍팍 넣어 봐요!”
이리저리 각을 재던 버베나가 빽 소리 질렀다.
여기서 멋지게 군주를 위한 희생을 쓰고도 HP가 남으면 민망하니 당연했다.
마침 잡몹을 모두 처리한 5파티, 6파티도 슬슬 다가와 손을 거들었다. 더불어 버베나의 주문을 받은 80레벨 딜러들도 서둘러 움직였다.
“참격난무.”
“비스트 피스트!”
“썬더 스톰!”
마침 쿨타임이 돌아온 레온, 마제스티, 테세우스가 합창했다. 타락의 사제 몸 위로 그려지는 강렬한 이펙트에 흥분 가득한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낙루가 딜러들에게 잽싸게 넣은 ‘여신의 세례’ 덕분에 대미지는 아주 잘 나왔다.
순식간에 4, 3%로 떨어지는 게이지에 대기하고 있던 서모너들이 후다닥 달려 나갔다.
“군주를 위한 희생!”
늘 그래왔듯, 이번 레이드에서도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건 엘레멘탈 서모너였다.
타락의 사제 곁에서 펑펑 터지는 소환수의 폭발에 비로소 0%로 변한 하얀 게이지가 나타났다.
슬로우 모션처럼 뒤로 넘어가는 사제의 움직임에 기다렸다는 듯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깼다! 마지막 레이드!”
“아이템! 아이템을 달라!”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들떠 왁자지껄한 와중에도 대다수가 매의 눈으로 허공을 주시했다. 조건부가 붙은 마지막 레이드니 결과를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곧 모두가 고대하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리디안은 허공으로 주르륵 생겨나는 메시지 창에 절로 입을 벌렸다.
[타락의 사제 가 사망했습니다.] [난나의 뿌리 를 입수했습니다.] [죽음의 아홉 걸음 을 입수했습니다.] [악신에게 바치는 제물 : 반지 를 입수했습니다.] [인첸트 스톤 을 입수했습니다.] [단죄의 단도 를 입수했습니다.] [경험치가 193,000 올랐습니다.] [676,500 골드를 입수했습니다.] [요정의 눈물이 담긴 정제수를 입수했습니다.] [퀘스트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대장장이 레긴을 찾아가세요.] [이벤트 스테이지 해금 조건, 두 번째 항목을 완료하였습니다.] [조건 보상으로 이벤트 보스 몬스터의 기운이 일부 약화됩니다.] [몬스터 침공전, 사전 이벤트의 모든 조건을 완료하였습니다.] [몬스터 침공전, ‘심판의 라그나로크’ 가 12월 24일에 시작됩니다.] [몬스터 침공 포인트 : 알프하임, 바나헤임, 요툰하임, 무스펠하임, 헬하임, 니플헤임] [몬스터 침공 기간 : 12월 24일 09:00~12월 31일 09:00] [정해진 기간 내에 각 도시에 침투한 몬스터를 모두 소탕해야 합니다.] [침공 저지 성공 시 보상이 주어지며, 실패 시 모든 플레이어에게 패널티가 부여됩니다.] [모든 플레이어는 침공에 대비해 주시길 바랍니다.]* * *
ONE, 레기온 연합이 도전한 붉은 태양의 신전 레이드 공략이 완료된 순간. 미드가르드 전역으로 같은 메시지가 떠올랐다.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갇힌 지, 장장 4개월이 지나서야 나타난 관련 공지였다.
길게 이어진 침공전 내용에 도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헤른 : 헐! 누나! 누나! 방금 뭐예요? 신전 클리어 한 거예요? 그래서 지금 메시지 뜬 거?] [자살토끼 : 리디! 클리어했어? 지금 메시지 뜬 거 레이드 깨서 뜬 거 맞지?]멍하게 넋 놓고 있던 리디안은 재차 울리는 메시지 알림 음에 화들짝 놀랐다. 헤른과 자토, 두 사람의 반응대로라면 저 공지 내용이 모든 사람에게 뜬 건 확실했다.
“뭐여, 방금 공지. 어, 잠깐. 헐? 와, 메시지 폭주네.”
“나도. 별로 안 친했던 사람들까지 죄다 연락 온다.”
근처 플레이어의 상황도 비슷했다. 갑작스레 떠오른 메시지 때문인지. 도시에 상주 중인 플레이어들이 온갖 인맥을 동원해 전투 길드에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그 결과, 전투 길드원들은 때아닌 메시지 대란을 겪어야 했다.
모두가 정신없이 허공을 두드리던 때, 그사이 유심히 시스템 메시지를 읽은 플레이어들은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시X. 공지 또 X나 불친절하네. 자꾸 이따구로 내보내면 어쩌라는 거야, 진짜.”
“내 말이. 그래서 공성이야, 수성이야?”
“아마 수성이겠죠?”
“24일부터라고? 그럼 시간적 여유는 생긴 셈이네.”
“미친 건가. 모든 도시가 침공 포인트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해도 도시 하나에 몹 X나 쩔을 텐데. 저걸 다 어떻게 소탕하라는 거야?”
“무슨 난이도 정보도 없냐.”
“골 때리네. 지극히 정상적으로 생각해도 보스가 도시마다 평균 한 마리씩 상주할 건데. 보스 몹 정보는 아무것도 없어? 인간적으로 우리도 보스가 한 마린지, 열 마린지 알아야 뭘 어떻게 하지…….”
“기간 일주일씩이나 되는 것도 헬인데. 실패 패널티는 또 뭐야? 성공하면 집에 보내 주기는 하는 건가?”
“안 보내 줄 것 같은디…….”
오묘한 공지에 플레이어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내심 고대하던 퀘스트가 완료되었음에도, 리디안 역시 불친절한 공지에 잠시 머리가 멍해져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꼼꼼히 읽었지만, 소용없었다. 정말 하나하나 따져 봐도 온통 막연한 것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리디안은 레기온 가입 후 이뤄진 첫 정모에서 크라이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도시에 침투한 몬스터가 선공할 확률이 높고. 자칫하면 대학살 시나리오로 진행될 수 있다고 했었지? 보통은 공성이 정석이지만, 도시별로 포인트 잡고 수성 형태로 진행할 수 있다고도 했고. 도시마다 레벨 상한이 정해질 수도 있다고도…….”
그리고 거기서 재수 없으면 길드 대항전이 될 수 있는 말도 떠올랐다.
리디안은 설마, 하며 찡그렸다.
방금 저 공지 내용이 사실이라면 전 도시가 침투 포인트라는 건데. 그렇다면 인원이 상당하게 필요할 것이다.
불안 요소는 있지만, 그래도 지금은 임시나마 모든 전투 길드가 동맹 중이니 괜찮을 듯싶었다.
‘기간제라는 거랑 난이도 정보가 없는 게 좀 걸리는데. 그래도 이 정도 연합 규모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