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도망치듯 들어선 길드 성 내부는 그래도 조용했다. 이벤트에 일절 관심 없는 플레이어 몇몇이 개인적 볼일만 볼 뿐. 바깥에서처럼 질문 공세를 받을 일은 없었다.
뭐, 그래도 일부 극성맞은 플레이어가 끝까지 따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밖보다 상대적으로 밀리는 인원수에 섣불리 다가오지는 못했다.
“헐. 뭐야. 완전 대형으로 빌렸네. 이분들, 돈이 엄청 많은가 보네요?”
길드 성 내부의 알림판을 보자마자 백검이 과장되게 소리 질렀다. 광장에서 맞이한 침체한 분위기를 끌어올리고자, 일부러 관심을 끈 것이다.
백검의 노력에 구겨졌던 사람들의 시선이 안내 문구로 향했다. 그리고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놀라워하며 금세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와, 200명? 작정하고 빌렸나 보네.”
태양 연합이 대관한 내빈실은 최대 200인 수용이 가능한 곳이었다. 그 정도면 대관료가 억대 단위라,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그냥 비인기 주점에서 만나도 될걸. 굳이 여기 빌린 걸 보면 나름대로 성의 표시겠죠?”
“그것도 그렇고. 남 보기 쪽팔리니까 숨을 곳이 필요했겠죠.”
박회장의 긍정적 해석에도 풍월주가 시니컬하게 대꾸했다.
“아니, 100명이면 충분하겠구먼. 뭐 하러 200명까지 늘렸대요? 우리 길마님들 기죽게 말이야.”
백검이 또다시 짓궂게 투덜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평소 100인 대관실을 빌리는 것에도 피눈물을 쏟아내던 마제스티와 레온은 살짝 쭈그러진 모습이었다.
백검의 장난기 어린 말투에 눈치 없는 테세우스가 왁왁하며 끼어들었다.
“검 형님! 저거 보나 마나 대장군 뒷주머니에서 나온 돈일 거예요! 200명, 우리도 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한테는 윤재 형이 있……!”
테세우스는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앞으로 반쯤 고꾸라졌다. 조용히 뒤따라가던 크라이그가 어이없어 등짝을 후려쳤기 때문이다.
내 돈이 공공의 돈이냐는 황당한 물음이 떨어지자 테세우스는 멋쩍은 미소를 흘렸다.
“흠. 우리 인원 잡몹 팀까지 다 올 줄 알고 저렇게 빌린 것 같은데. 그러기엔 우리도 생각보다 꽤 많이 빠졌네요.”
흘깃 뒤를 돌아본 신사가 중얼거렸다. 선택권이 주어진 덕분에 ONE, 레기온 연합 쪽에서도 상당수가 불참한 상태였다.
개중엔 정말 지치고 힘들어서 빠진 사람도 있었고, 태양 연합이 정말 싫고 같이 하기 싫어 빠진 사람도 있었다.
레이드 종료 후 상황을 전달받은 잡몹 팀의 사정도 비슷했다. 대다수는 괜히 같이 가봐야 어수선할 거라며 무작정 각자의 길드 아지트로 귀환했다.
신사는 내심 전원 참석을 기대한 눈치라 살짝 아쉬워했다. 그래도 세어 보면 50명이 넘는 인원이라, 내빈실 입구는 떠들썩했다.
[미드가르드 길드 성―내빈실 1호] [맵 내부에서의 이동 마법 및 아이템 사용이 불가합니다.]늘 보던 내빈실 호수에 리디안이 갸웃했다. 단순히 신청 순서대로인지. 규모에 따라 내빈실의 부여 번호가 달라지는 건 아닌 듯했다.
하지만 들어서자마자 보인 풍경에 리디안은 절로 입 벌려 감탄했다.
태양 연합이 빌린 내빈실은 정말 컸다. 200명 기준이라더니, 천장이고 바닥이고 끝없이 높고 넓었다. 그간 마제스티와 레온이 빌린 100명 기준도 참 넓었는데. 여긴 차원이 달랐다.
200명이 이 정도면 300명, 400명, 500명은 대체 어느 정도인 건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공간의 신비함에 두리번거리면서도 리디안은 사뭇 다른 풍경에 눈을 빛냈다.
마제스티와 레온이 빌려 왔던 내빈실이 호텔처럼 화려하고 입체적이었던 반면. 태양 연합이 빌린 내빈실은 어느 기업의 회의실을 연상케 할 정도로 딱딱하고 단조로운 분위기와 구조를 자랑했다. 하물며 그 흔한 화분 하나 없어 삭막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뭔가 수업 들으러 온 기분이네.”
나란히 서서 주변을 둘러본 파파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리디안도 강의실 같은 책상과 의자 인테리어에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아주 잠깐, 애써 잊고 있던 달갑지 않은 과거가 떠오를 뻔했다.
“인테리어 너무 정 없네요. 꾸미는 건 추가로 돈이 더 들어가서 그랬나? 나라면 좀 더 아기자기하게 꾸몄을 텐데. 아, 뭐 이런 상황에서 생각 없이 인테리어 하는 것도 웃기려나.”
내빈실 시스템에 익숙지 않은 호드라도 주변을 슥 훑어보더니 비슷한 감상을 뱉었다. 마침 뒤에 있었기에 리디안도 그러게요, 라며 빵싯 웃었다.
“모임 분위기 맞춰서 옵션가 없이 인테리어 설정 가능해요. 우리 쪽 사람들 의식해서 일부러 이렇게 설정한 모양이에요. 아무래도 공식적인 모임이기도 하고.”
마침 옆을 지나던 버베나가 가볍게 정보를 던지고 갔다.
새로운 정보에 리디안과 호드라가 아, 하며 끄덕였다. 하기야, 핑크푸크나 아퀴나스. 무너스키의 성격. 그리고 이 모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따지면 가장 이 상황에 알맞은 인테리어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주최자인 핑크푸크의 입장 자격 설정 덕분에 ONE, 레기온, 노르드연합, 청풍명월, 대기업, ANG 길드원들이 문제없이 들어섰다.
하지만 우르르 들어오는 인파에도 리디안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잠시 입구에서 머뭇거렸다. 그도 그럴 게, 마치 장례식장과도 같은 분위기라 앉기가 조심스러웠다.
넓은 내부엔 스무 명 정도의 인원이 띄엄띄엄 무표정하게 앉아 있었다. 다들 한군데로 모여 있었으면 덜했을 텐데. 싸우기라도 한 것처럼 멀리 떨어져 있으니 공기도 차가웠다.
“분위기 봐라. 바깥보다 더 우중충하네.”
“태양 애들, 실패하자마자 계속 여기 있어서 아마 지금 밖에 분위기 어떤지 잘 모를걸요?”
별생각 없이 사담을 나누며 입장한 플레이어들도 그 분위기에 놀라 숙연해졌다. 백검이 오두방정을 떨어 애써 부드럽게 바꿔 놓은 분위기가 무색해지고 말았다.
“안녕하세요.”
그래도 사람들의 입장 때문인지, 앉아 있던 사람들이 저마다 일어나 짤막하게 환영했다.
아직 태양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리디안은 혹시나 해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폈다.
‘없네.’
따거와 신세계. 그리고 사이나 갤럭시 등. 요주의 인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들이 이 자리에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긴 하다.
그 외에도 막말의 귀재라 불리는 오디오스는 물론. 꽤 낯이 익은 인물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이 정도면 길드 반 이상이 없다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몰랐다. 차라리 있는 사람을 파악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주억거린 리디안은 자연스럽게 세인트부터 찾았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보리알, 먹구름. 거기서 더 떨어진 곳에 이트가 보였다.
세인트는 그 셋뿐이었다.
외이리나 코헤이 같은 일반 세인트는 그렇다 쳐도. 태양 연합의 메인 힐러에 속하는 하이 랭커 세인트인 에밀리아까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혹시 SSR 길드도 빠진 건가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길드 마스터인 네오와 부길드 마스터인 하얀소라는 자리에 있었다.
“뭔가 인원이 듬성듬성, 퐁당퐁당이네.”
뒤늦게 입장한 이노센트가 갸웃했다. 들어오자마자 보인 음울한 풍경은 물론. 조촐하기 짝이 없는 인원에 누구든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며, 이노센트는 짧게 혀를 차며 지나갔다.
“우린 저쪽으로 가죠.”
캐티스가 리디안처럼 방황하던 세인트 무리를 이끌었다. 그가 향한 곳은 보리알과 먹구름이 앉은 곳이었다.
혹시 길드별로 앉기라도 한 것인지. 멀리 떨어져 혼자 앉은 이트의 모습에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리디안은 서둘러 캐티스의 뒤를 쫓았다.
“오셨어요.”
다가온 세인트들을 향해 보리알이 희미하게 웃었다. 딱 봐도 몹시 기분이 저조해 보이는 표정에 다들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가장 연장자인 캐티스가 먼저 웃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었다.
“안녕하세요, 보리 님. 저희 길마님들한테 대충 얘긴 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으셨던 거예요?”
자신을 중심으로 근처에 차례대로 자리 잡는 세인트들을 보여 보리알이 쓰게 웃었다. 그녀가 내내 한숨만 짓는 사이, 속상한 표정이던 먹구름이 답답함에 먼저 입을 열었다.
“뭐긴 뭐겠어요. 따거 그 병X 새X랑 신세계 쓰레기 새X들 때문이죠. 와, 나 진짜 그 또라이들…….”
흥분한 먹구름은 필터링 없이 욕설을 섞어 가며 그간의 일을 모두 다 폭로했다.
이야기가 길게 이어질수록, 적나라한 그들의 만행에 리디안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세인트들은 씩씩대다 기가 차서 한마디씩 뱉었다.
“…진짜 상상 이상이네.”
“유일한 부재축 힐러를 죽이다니. 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은 걸까요. 진짜 생각이 짧아도 너무 짧네.”
“언제 한 번, 따거랑 베누스랑 붙긴 붙겠다, 했는데. 이렇게 병X같이 붙을 줄은 몰랐지.”
“아휴, 하여튼 눈치 없는 새X들. 내가 진짜 언제 한 번 사고 칠 줄 알았다.”
이모탈, 그레이스, 규호, 환경파괴자가 차례대로 통탄했다. 연이은 쓴소리에 먹구름이 기다렸다는 듯 맞장구치며 달려들었다.
먹구름은 같은 길드가 아니면 꽤 벽을 치는 성격임에도 문제아들에 관한 이야기로 공감대를 형성했다.
“어, 근데 아까 그거 뭐예요? 침공 이벤트라고 막 뜨던데. 그거 뜨고 우리도 다 놀라서 눈 똥그래졌잖아요. 메시지도 갑자기 막 오고. 지금 밖에 분위기 장난 아니라면서요?”
뒤늦게 정신 차린 먹구름이 물었다. 보리알도 그 얘기가 궁금한 눈치였다.
“네, 그거요. 안 그래도 지금 밖에 엄청 소란스러워요. 근데 저희도 그것만 본 거라 자세히는 몰라요. 일단 지하 도시가 급급해서 제대로 얘기도 못 나누고 바로 온 거라서…….”
모두가 새로운 화젯거리에 귀 기울이는 가운데, 리디안은 안쓰러운 눈으로 보리알을 쳐다봤다.
물론, 보리알이 불쾌해할 수도 있어 빤히 바라보진 않았다. 하지만 보리알 혼자 억울하고 어이없게 죽었을 그 상황이 자연스레 떠올라 조금 마음이 아팠다. 그러잖아도 죽사막 때부터 따거와 마찰이 있었다고 들었다.
리디안은 지난번 미로를 떠올렸다.
그에 작은 동질감을 느꼈으나, 보리알에 비하면 일전에 자신이 따거로 인해 받았던 스트레스는 애교일지도 모른다.
세인트의 입장에서 딜러의 폭주는 정말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지 않은가.
모르긴 몰라도, 그간 보리알은 따거로 인해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감내하고 있었을 것이다.
“뭐, 아무튼 그래요. 내가 진짜… 다시는 레이드 쳐다보기도 싫었는데. 그래도 캐티스 님네랑 같이한다니까 이번엔 성공하겠다 싶어서 왔어요.”
겨우 감정이 정리된 보리알이 한숨 쉬며 말했다. 평소 같았으면 말 많은 규호나 드림드림, 앵두군 등이 농담 섞인 가벼운 말을 던졌을 텐데. 도저히 그럴 분위기가 아니라 다들 되도록 말을 아꼈다.
“정말 고생 많으셨네요.”
그것 말고는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캐티스의 쓴웃음 뒤로 한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한 사람은 예외였다.
“미치겠다! 진짜요?! 와, 어떻게 거기서 그런 병X짓을 할 수가 있지? 근데 님들도 답답하다. 병X들은 바로 처단하면 되고. 또 죽마저 있고, 사람 다 있는데 그걸 수습 못 해서 전멸했어요? 우리는 소환 X 같아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솔직히 흑도 님네는 너무 어이없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다람의 목소리였다. 다람은 태양의 내부 사정을 알게 되자 거리낌 없이 배를 잡고 깔깔 웃어 댔다.
그 눈치 없는 폭소에 일부 태양 연합 플레이어들에게서 싸늘한 시선이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