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262
262화
【분열】
허공을 맴돌던 리디안의 손짓이 우뚝 멈췄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김팔라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러느냐는 물음에 크라이그, 다람, 고독한도 덩달아 리디안을 쳐다봤다. 집중된 시선에 정신 차린 리디안은 머쓱하게 창을 닫았다.
“아, 그게… 파파한테서 메시지가 왔는데 지금 길드 성에서 대장군 님이랑 흑도 님. 두 분이 길드를 탈퇴했다고 하길래요.”
그 소식에 크라이그, 김팔라, 고독한이 조용하게 탄성했다. 상당히 충격적인 소식에도 세 사람이 점잖은 반응을 보이는 한편, 다람은 온갖 난리를 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헐! 대박! 대박, 대박! 장군이가 길드를 탈퇴함? 걔, 태양 창설 멤버 아닌가? 설마 핑푸한테 쫓겨난 거? 아니면 그냥 자진 탈퇴?”
장군이라니. 누가 들으면 친구인 줄 알겠다고, 철없는 다람의 태도에 김팔라가 쯧쯧 혀를 찼다.
“뭐야, 어떻게 된 건데요? 리디안 님. 다른 소식은 없음?”
참을성 없는 다람이 꼬치꼬치 캐물었다. 리디안은 잘 모르겠다며 대꾸했다.
“어, 어! 그럼 지금 길드 성에 가면 라이브로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빨리 우리도 구경 가자!”
신이 난 다람의 표정에도 고독한과 크라이그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예상 못 한 일이라 놀랍긴 한데… 우리가 뭐 하러. 괜히 구경하러 갔다가 눈총만 살 텐데.”
“맞아. 쪽팔리게. 그리고 우리 곧 퀘 하러 가는 거 잊었어?”
“아! 잠깐만 보고 오면 되잖아! 가자, 가자. 제발. 아, 맞다! 나 창고 가야 함! 사냥 가기 전에 아이템 정비해야지! 그러니까 빨리 길드 성 가자!”
여태 한마디 말도 없다가 갑자기 창고라니. 순 억지였다. 리디안과 크라이그는 떼쟁이 다람의 말도 안 되는 투정에 잠시 혀를 내둘렀다. 잘하면 바닥에도 누울 기세였다.
그에 고독한이 험한 말을 하며 눈치를 줄 무렵, 파파에게서 또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파파 : 헐 대박. 지금 길드 새로 만들려나 본데? 길탈 한 애들 다 오고 있다.]리디안도 저도 모르게 와, 하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눈치 빠른 김팔라가 또 뭐 때문에 그러느냐며 은근하게 옆에 붙었다.
부담감에 슬쩍 피한 리디안이 파파의 새 소식을 전달하자, 고독한과 크라이그도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냥 아예 반으로 갈라지려나 보네?”
“그러게요.”
“우와! 대박이다, 이거! 장군이 그럼 출가한 거잖아? 길드 이름 뭐로 할지 궁금하다. 당연히 친목 길드로 만들겠지? 지금 전투 길드 자리 없으니까? 와, 궁금하다. 너넨 안 궁금해? 난 되게 되게 궁금한데?”
촐랑거리는 다람의 투정에 고독한과 크라이그가 잠시 서로를 쳐다봤다.
굳이 가서 보는 것도 좀 없어 보이긴 하나, 소문이 이리 퍼졌으니 벌써 사람이 바글바글할 게 분명했다. 솔직히 궁금한 것도 사실이니, 그 틈에 섞여 잠깐 보고 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길드 구성 살핌 겸 정찰하러 가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람이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크라이그도 허공을 두드리는 걸 보니, 이제 막 소식이 닿은 모양이었다. 마침 리디안도 호기심이 생긴 터라, 페페와 파파에게 길드 성에서 보자며 빠르게 답장했다.
* * *
난데없는 이슈에 즉흥적으로 이동한 길드 성 내부는 제법 소란스러웠다. 광장을 지나 입구 밖에서까지는 몰랐는데, 막상 들어가니 시장판인 양 사람이 북적거렸다.
리디안 일행처럼 다들 대장군을 보러 온 듯했다. 하지만 때가 때인 만큼 대형 전투 길드의 분열에 불안해하는 플레이어도 있었다.
“아 씨. 갑자기 분위기 왜 저래요? 대장군이랑 핑크푸크 싸운 거?”
“어제 태양 애들 지하 도시 레이드 망치고 싸웠다잖아.”
“어, 근데 그럼 침공전은 어쩌고? 어제 레온은 다 같이 도와야 한다며. 저렇게 갈라지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모르지.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막상 일 터지면 그냥 자기들 꼴리는 대로 할 듯.
내부 사정을 모르는 플레이어들로부터 무수한 추측이 불거졌다. 개중에는 전투 길드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인 사람도 있어 리디안은 씁쓸함을 삼켜야 했다.
“진짜 다 길탈 했네.”
김팔라의 작은 목소리에 리디안도 서둘러 시선을 옮겼다.
언젠가 리디안에게 아지트 관리 비용을 요구하던 인형 같은 NPC 앞으로, 대장군과 흑도를 포함한 멤버들이 두루 보였다.
그 외에도 무길드 상태인 일반 랭커 플레이어들이 몇 명 더 있었지만, 하이 랭커 플레이어의 존재감은 단연코 독보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들의 주위로 구경하러 몰린 플레이어들이 둥글게 원을 그린 상태였다.
“켁. 요한, 안개꽃, 소소, 플루, 파프리카, 블루벨, 실버린까지? 소소는 그렇다 쳐도. 대장군이랑 흑도 포함하면 하이 랭커가 총 아홉 명이나 빠지는 건데. 이러면 핑푸네 엄청나게 타격 큰 거 아닌가?”
끽해야 두세 명이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김팔라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더욱이 지금 모인 저 멤버는 평소 대장군과 친분이 깊은 인물들이었다. 저 정도면 핑크푸크와 대장군의 세력이 나뉜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전투 길드는 자리가 없으니까……. 진짜 친목 길드로 만들려나 보네요.”
마찬가지로 그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리디안이 중얼거렸다.
하기야, 전투 길드의 자리가 있어도 저 인원이면 창설이 힘들 거다. 전투 길드는 50레벨 이상인 플레이어가 최소, 30명이 있어야 창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친목 길드는 5레벨 이상에 1인만 있어도 바로 창설이 가능할 정도로 아주 간단했다.
‘결국, 안 좋게 마무리되었나 보네.’
어제 레이드 중에 봤던 두 사람의 모습. 그리고 보리알에게 들은 두 사람의 일화를 떠올린 리디안이 씁쓸하게 웃었다.
남 일이긴 해도 사이좋던 두 사람이 갈라진 건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리디! 리디, 리디!”
그사이 볼일을 마친 파파가 창고에서 쏙 빠져나와 허겁지겁 달려왔다. 제 목소리에 이목이 쏠리자 파파는 잔뜩 움츠러들어 리디안의 뒤로 숨어버렸다.
짧은 적막 이후, 낯선 이들의 관심에서 벗어나자 그제야 파파가 헤헤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참, 못났다는 크라이그의 탄식에도 파파는 모른 척 화제를 돌렸다.
“도훈이 형한테 들었는데, 어젯밤에 태양 애들 긴급회의했대요. 근데 밤새 무슨 일이 있기라도 했는지. 새벽부터 하나씩 탈퇴하더니 오늘 아침엔 대장군이랑 흑도가…….”
“테세우스? 그럼 소소 님이 말해 줬겠네. 자세한 내용은?”
“이번엔 좀 특이하게… 소소 님이 나중에 알려 준다고 그랬나 봐요. 이런 적 처음인 거 보면 내부 분위기가 엄청 심각하긴 한 듯? 근데 이거 우리한테 좋은 신호로 봐도 되는 거죠?”
파파의 눈동자엔 묘한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크라이그는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흘러가는 분위기상으로는 거의 확실하지만, 대놓고 대답하기에는 보는 눈이 많았다. 실제로 음침한 몇몇 플레이어는 이쪽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사이, 길드 담당 NPC 앞에서 몇 번의 떠들썩함이 지나갔다.
[친목 길드, ‘자유’ 길드가 창설되었습니다.]길드 성 내부로 뜬 전체 메시지에 구경꾼들의 목소리와 관심이 더 커졌다.
리디안은 길드 이름을 중얼거리며 반사적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유’라니.
어쩐지 길드명에서부터 앞으로의 방향성이 확고하게 보이는 듯했다.
“오… 길마는 소소 님이네요. 예전 친목 길드 간부 출신이라 그런가.”
“대박. 하이 랭커 아홉 명이 들어간 친목 길드라니. 신기하다, 신기해. 저런 건 초창기 아니면 서버 끝물 때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림인데. 아, 하긴. 이런 상황이면 망한 거나 다름없긴 하지?”
김팔라의 말대로였다.
하나 지금이 서버 멸망 직전의 상황인 걸 감안해도 신기한 광경이긴 했다. 아마 앞으로도 ‘자유’는 ANG 길드와 함께 특수 길드로 유명해질 게 분명했다.
“와. 이러면 핑푸네 진짜 난리 났겠네요?”
“난리뿐이겠냐. 아주 비상사태겠지.”
모두가 핑크푸크의 입장에 관심을 보일 때, 리디안의 요청을 받고 온 페페가 길드 성으로 들어섰다.
반가움에 손을 흔들려던 리디안의 눈이 돌연 휘둥그레 커졌다. 페페의 뒤로 보리알과 먹구름이 함께 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큼 다가온 페페는 바로 앞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들어온 거라며 미소 지었다. 놀라워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 리디안이 먼저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보리 님. 보리 님도 혹시……?”
“없어 보이겠지만… 맞아요. 얘 창고 들르겠다는 거 핑계로 구경하러 왔어요.
보리알은 힐끔 대장군 무리가 있는 곳을 바라보다, 다시 먹구름을 향해 한숨지었다. 마침 리디안 일행 쪽에도 똑같은 변명을 한 사람이 있어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형 같은 사람이 또 있네. 진심으로 형이랑 잘 맞을 듯.”
김팔라가 다람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다람은 윽, 신음하면서도 자신과는 악연인 먹구름을 찌릿 노려봤다.
먹구름도 마찬가지였다. 먹구름 역시 지지 않는 기세로 다람을 아니꼽게 쳐다보고 있었다. 보리알의 등 뒤에 숨어서 말이다.
아마 먹구름이 들으면 싫어하겠지만… 정말 다람과 죽이 잘 맞을 것 같다고 리디안은 몰래 중얼거렸다.
그 신경전 사이에 낀 보리알은 창피하니까 빨리 가는 시늉이라도 하라며 먹구름을 떠밀었다.
고독한도 이때다 싶었는지 다람을 앞으로 밀쳤다. 졸지에 내쫓긴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며 창고로 향하는 사이, 리디안은 혼자 남은 보리알을 보며 눈을 빛냈다.
“보리 님.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시간?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저… 퀘스트 하러 가야 하는데, 힐러가 한 명 더 있었으면 해서요. 아! 바쁘시면 그냥 못 들은 거로 해주시면 돼요.”
조심스러운 요청에 보리알의 시선이 일행을 두루 살폈다. 살짝 긴장한 리디안이 거절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보리알은 흔쾌히 수락했다.
“아~! 그 퀘스트요? 저는 좋아요. 마침 심심하기도 했고. 구름이 때문에 귀찮기도 했고. 덕분에 어제 초손도 배웠으니까요. 아, 구름이는 안 데려가도 되죠?”
보리알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솔직히 데리고 가봐야 다람 님이랑 으르렁거릴 것 같은데. 우리만 피곤하지 않을까요?”
백번 옳은 말이었다. 상상만 해도 피곤한 그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다람도 떼놓고 가고 싶었지만, 다템이 없으면 안 되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럼 파티의 평화를 위해 먹구름 님은 제외. 보리알 님만 동행하는 거로. 그럼 비격은 다 구했네. 이제 딜러랑 탱커만 오면 되는 거죠?”
“응. 아예 이리 오라고 했어.”
“그럼 그동안 저쪽 분위기나 구경하면 되겠네요.”
파파와 크라이그의 대화를 시작으로 한동안 대장군 무리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아무래도 길드 성에 온 최초의 목적인 만큼, 보리알도 그들의 행보에 관심이 많은 눈치였다.
“하이 랭커 말고도 생각보다 많이 탈퇴했네요. 저 중에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고. 게임 때 몇 번 본 사람들도 있고……. 이러다 분위기에 휩쓸려서 탈퇴자가 더 나올 수도 있겠어요.”
보리알의 예상에 대다수가 동감했다.
현재 대장군 주위로는 대여섯 명의 낯선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그들은 오자마자 태양 길드 마크를 차례대로 떼고, 친목 길드인 ‘자유’로 이적하는 중이었다.
“저 사람들은 레이드랑 관련 없는데도 탈퇴하는 거 보면… 진짜 핑푸가 운영 개판으로 하긴 했나 보네요.”
“개판이라기보다는… 핑크푸크는 스펙을 더 중시하는 스타일이라, 전력에 도움 안 되는 채로 계속 남아 있는 것보다 이 기회에 대장군이나 소소 따라가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한 거겠지. 아무래도 핑크푸크보단 그쪽이 더 유해 보이잖아.”
크라이그가 파파의 추측을 정정했다.
리디안은 자연스럽게 언젠가 캐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태양 길드는 특정 무리끼리 어울리는 분위기라는 게, 왠지 그런 뜻인 듯했다.
“어제 신사 님이 대장군 님이랑 얘기한 건, 태양 길드 내에서 협조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달라는 내용이었을 텐데. 하루 사이에 갑자기 이렇게 우르르 탈퇴하는 거 보면… 모종의 대립으로 아예 갈라섰다고 보는 게 맞겠죠?”
페페의 물음에 크라이그가 대답했다.
“그쵸. 태양 길드 창설한 사람이 대장군이고, 대장군, 자기 길드 아끼기로 유명한 사람인데. 저렇게 바로 손절하는 거 보면 그것 말곤 이유가 없죠.”
“어, 근데 이렇게 되면… 태양 길드 쪽에서 앙심을 품고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거 아니에요?”
대립이라는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리디안이 물었다. 파파도 그러게, 하며 맞장구쳤다. 다시 제게 쏠린 시선들에 크라이그는 리디안의 물음을 바로 부정했다.
“저쪽 길마들도 지금 이쪽 세상 굴러가는 분위기 다 알고 있어서, 전처럼 극단적으로 나오진 않을 거예요. 근데 그렇다고 또 우리한테 적극적으로 협조하지도 않을 거라 좀 애매하죠. 왜냐하면…….”
말끝을 흐린 크라이그의 시선이 힐끗 보리알에게 향했다.
“하필 남은 사람들이 가장 감정적인 사람들이고,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라서 모두가 기대하는 그런 그림은 없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