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living as a healer in the fantasy Nord world RAW novel - Chapter 351
351화
거짓말쟁이 레빈이 화염 마법에 능했던 것처럼, 로렐라이도 물 마법에 능했다. 하지만 상대하는 과정에 있어 레빈보다 더 까다로웠다.
로렐라이는 플레이어에게 상태 이상 디버프를 밥 먹듯이 건다. 그뿐만 아니라 수면 아래로도 자주 숨기까지 했다. 그렇게 로렐라이가 물속으로 숨어버리면 플레이어들은 수면 위 그림자를 쫓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더 짜증 나는 건, 수면 아래에 보이는 로렐라이의 그림자를 공격하면 보호 상태라 대미지가 덜 들어간다는 점이다. 이 설정 때문에 적정 레벨 플레이어들의 클리어 시간은 평균보다 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숨는다! 반시계 방향으로 이동 중!”
“공격 콤보 많을수록 나오는 시간 빨라지니까 참고하세요!”
신사의 팁에 아쳐들이 일제히 일반 공격 모드로 바꿨다. 쿨타임이 있는 스킬을 시전하는 것보다 연사 가능한 화살을 쏘는 게 더 콤보를 쌓기엔 유리했다.
물그림자를 따라 쏟아지는 화살 비에도 로렐라이는 유려하게 몸을 움직여 도망 다녔다.
잠시 후 적정 콤보에 이르자, 로렐라이가 젖은 머리카락을 흔들며 나타났다. 그림 같은 아름다움이라 감탄할 법도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테세우스와 스타일리쉬는 눈을 번뜩이며 플레임 버스트와 파이어 에로우를 시전했다. 덩달아 함께 날아간 각종 공격기에 로렐라이의 HP가 쭉쭉 줄어 들어갔다. 그리고 때마침 4분간 이어지던 플레이어들의 스탯 디버프 효과도 풀렸다.
리디안은 로렐라이가 한동안 물 밖에 나와 있을 것을 생각하곤 재빨리 세인트들에게 신호했다. 그 신호를 척 알아들은 메인 힐 팀의 세인트들이 자리를 바꾸는 동안, 리디안이 근거리 딜러들이 모인 곳으로 쪼르르 달려가 여신의 영역을 시전했다.
공교롭게도 그 순간에 로렐라이가 디버프인 물보라를 일으켰는데, 운 좋게도 영역이 더 빨랐다. 덕분에 로렐라이의 디버프는 영역 효과에 상쇄됐다.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말짱 석화에 걸릴 줄 알고 단념했던 딜러들이 기가 막힌 우연에 히죽 웃으며 환호했다. 우연히 얻어걸린 기회를 만들어 낸 리디안만이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귀찮은 추격전에도 예상한 것보다 더 빨리 로렐라이를 처치할 수 있었다. 원거리들의 눈물겨운 콤보 연사 덕분이었다.
[알프하임] [일반 몬스터 : 57 / 999] [네임드 몬스터 : 2 / 9] [보스 몬스터 : 0 / 1] [도시 결계 : 미작동 중]로렐라이 처치에 걸린 시간은 14분 40초. 그 시간 동안 브륀힐드의 검은 70%가량까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를 확인한 간부들이 저마다 고개를 갸웃했다.
“레빈 때랑 비교하면 좀 다른데?”
“아무래도 등급에 따라서 구간도 비례하는 것 같아요.”
모든 네임드 몬스터에 한정적인 시간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닌 듯했다. 결국 등급에 따라 시간이 각자 다르다는 얘긴데. 마제스티는 이걸 무작정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손쉽게 로렐라이를 처리하고 나니 브륀힐드의 피는 70%로 줄어들었다. 소환 패턴이 있기 전 5% 정도를 줄여놓은 덕분이었다.
90과 80. 80과 70의 체감은 확연히 다르기에 여기저기서 흥분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단독으로 상대할 때보다 HP가 더 줄어드니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오딘을 위하여―라고 했던가요? 저건 지속형 버프인가 보네요.”
아퀴나스가 브륀힐드의 등 뒤로 계속 보이는 날개 형상을 보며 말했다. 그 말에 혹시나 시간이 다 되거나 특정 조건에 이르면 해제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던 딜러들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그러지 않아도 브륀힐드가 검기를 날리는 텀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여신의 손길!”
내리 이어진 5연타 검기에 세인트들은 상당히 힘들어했다.
그나마 하이 랭커들은 날아오는 검기를 보며 초를 나눠 사용했지만, 아직 전투 경험이 모자란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MP를 낭비했다. 그러다 보니 슬슬 MP가 부족하다는 세인트들의 호소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여유로운 건 가장 많은 MP를 보유한 리디안뿐이었다.
어차피 전체 회복은 같은 파티에만 해당돼 도움을 줄 순 없었다. 그걸 잘 알고 있기에 리디안은 우는 소리가 가득한 일반 랭커 파티를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괜찮아요. 저쪽에도 잘하시는 분들 계시잖아요.”
그 걱정을 읽은 이모탈이 찡긋 웃어 보였다. 그의 말대로 일반 랭커 파티엔 하이 랭커인 SSR의 에밀리아. 레기온의 듬직한 무니. 보리알의 가르침을 받은 리미티드, 환몽, 오열. ONE 길드의 규호나 ANG 길드의 추장이 골고루 분포해 있었다.
스카디에 비할 바는 아니어도 에밀리아나 리미티드의 회복량은 평균보다 높았고, 그를 보조할 세인트들도 많았다. 그저 엄살떠는 거라는 이모탈의 말에 리디안은 멋쩍게 웃었다.
“멀티 샷.”
핑크푸크의 신스킬 직후, 브륀힐드의 HP가 69%로 변했다. 앞자리가 바뀐 것에 딜러들이 더 환호하며 몰아붙였다. 정보나 공략 하나 없이 이만큼 해낸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눈에 약간의 희망이 걸렸다.
하지만 밝아진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듯, 브륀힐드의 연속 패턴이 시작됐다. 검기와 순간이동을 종잡을 수 없이 사용하던 브륀힐드가 한 시 방향으로 검을 집어 던졌다.
한 시 방향의 무리에 섞여 있던 햄스터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젖혀 회전했다. 스르륵 햄스터를 피해 허공을 가르는 무기에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표 확정 패턴이 아닌 것을 햄스터가 증명한 셈이었다.
햄스터는 자신도 모르게 회피한 모양새에 오, 하며 히죽 웃었다.
[호드라 님이 사망하였습니다.]하나, 그 웃음도 잠시. 대뜸 떠오른 사망 메시지에 햄스터가 바보 같은 탄성을 뱉었다. 마침 햄스터의 뒤에서 움직이고 있던 호드라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브륀힐드의 검에 맞아버린 것이다. 어떻게 봐도 자신이 피해버렸기 때문에 호드라가 맞은 상황이었다.
햄스터는 얼음이 되어 굳었고, 조금 전만 해도 햄스터처럼 감탄하던 사람들은 호드라의 죽음에 크게 당황했다.
“어, 뭐야. 아까 아퀴나스 님이 맞았을 땐 10% 정도 남았잖아?”
“설마 HP 비례 대미지가 아닌 건가?”
들려오는 추측에 리디안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그 말대로라면 플레이어의 개인 방어력에 비례한다는 얘기다. 더불어 아퀴나스의 HP가 10%밖에 남지 않았던 걸 떠올리면 탱커를 제외한 타 직업은 검에 맞아 살아남을 확률이 낮다.
“부활과 재생의 축복!”
캐티스가 서둘러 호드라를 살렸다. 엉거주춤 일어난 호드라는 잠시 멍한 눈으로 바라보다 상황을 파악하곤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곧장 죄송하다는 그의 한마디에 얼어붙어 있던 햄스터가 머뭇머뭇 다가왔다.
“아, 저…….”
목구멍에 목소리가 막힌 건지, 햄스터는 한참을 쭈뼛대며 눈치를 봤다. 왜냐하면 지난날, 신세계 패거리와 함께 호드라를 재미 삼아 조롱했었기 때문이다. 눈치 빠른 호드라는 일부러 밝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님 덕분에 피할 수 있는 패턴인 거 확인됐잖아요. 그럼 다행인 거죠.”
호드라는 보살처럼 웃었다. 떳떳하지 못한 과거에 얼굴을 들 수 없어진 햄스터는 작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 라고 읊조렸다. 그 후 바로 공격에 합류하는 호드라 때문에 제대로 사과할 기회도 없었다.
햄스터는 민망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앞으로는 뒤편의 상황도 봐가면서 움직여야겠다고 말이다. 새삼 단체 파티 전투가 마냥 쉽지 않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첫 번째 사망자의 등장으로 분위기는 다시 진지해졌다. 특히 브륀힐드의 무기 투척은 일반 플레이어들에게 너무나도 위험했다. 햄스터처럼 재량껏 피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말대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신사는 근거리 딜러들이 자꾸 뭉쳐 다니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라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67%! 계속 순간이동 하니까 주의하세요! 어, 소환이다. 대기!”
HP를 조금 더 깎은 시점에서 브륀힐드가 또다시 백 스텝 했다. 자유 길드의 워로드 파프리카를 무자비하게 난도질한 직후였다.
빈번해지는 소환 패턴에도 플레이어들은 기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여기서 소환되는 네임드를 잡으면 브륀힐드의 HP가 단숨에 57%로 내려가리라는 추측 때문이었다.
”알베리히. 제발 알베리히 나와라.”
미확인 네임드 중, 한 개체가 로렐라이로 확인된 시점이었다. 플레이어들은 후보자 중에서 가장 쉬운 난쟁이족 알베리히를 희망했다. 그러나 백색 마법진 위로 나타난 건 검은 망토를 두른 ‘밤의 지배자’였다.
“어… 끝숲 보스다.”
리디안은 낯익은 모습에 알은체했다.
끝없는 숲은 레기온 길드 가입 직후. 간단한 테스트를 위해 이노센트와 행복, 자토, 노네임. 마제스티와 함께 갔던 맵이었다. 밤의 지배자는 그곳의 보스로, 설정상 알프하임에서 추방된 요정이다.
알베리히를 원했던 플레이어들은 이구동성으로 야유했다. 리디안도 밤의 지배자의 특성을 알아 쓰게 웃었다.
밤의 지배자는 우선 이동 속도가 빠르다. 땅벌 하수인처럼 고속으로 이동하진 않지만, 잠시도 멈추지 않고 달려서 근거리 딜러들에겐 골치 아픈 축에 속했다.
더욱이 자신에게 걸린 디버프를 지속해서 해제한다. 그래서 다크 템플러 플레이어들이 수시로 쫓아다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다크 템플러가 싫어할 수밖에 없는 타입인 셈이다. 그 때문에 인드라가 벌써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이런 일에 가장 먼저 짜증 낼 것 같았던 다람은 웬일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난 MP가 너무 딸리니까 못 따라다니겠네! 님들 파이팅!”
다람은 자신의 단점을 내세우며 교묘하게 빠져나왔다. 그에 인드라와 하츠, 블루벨은 씁쓸한 한숨을 뱉으며 체념했다. 다짜고짜 뛰어다녀야만 하는 처지에 놓인 사이는 아직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만 갸웃거렸다.
“아. 그래도 체리보이 님이 제일 건장해 보이네요.”
겉보기에도 저질 체력인 다크 템플러들을 훑어본 마제스티가 안심한 듯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끝이 아니었다.
밤의 지배자는 달리는 내내 그림자를 퍼트려 플레이어들을 전체 공격 한다. 그래서 게임 시절엔 보스를 따라다니는 다크 템플러들은 스스로 HP 회복 물약을 먹으며 버텨왔다. 세인트까지 함께 따라다니기에는 동선상 바람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바뀌었으니, 재수 없으면 세인트들도 달리기에 참여해야 할 판이었다.
“아, 이건 시간 안에 잡기 좀 힘들 것 같은데……?”
다시 붉어지기 시작한 브륀힐드의 검을 보며 삼촌이 난해하게 웃었다.
아닌 게 아니라, 밤의 지배자는 등장하기 무섭게 플레이어들 사이를 정신없게 뛰어다녔다. 지배자의 궤적에선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와 플레이어들을 덮쳤다. 그림자 그 자체가 공격이기에 곳곳에서 HP가 요동쳤다.
세인트들은 조금 더 넓게 퍼져 회복 범위를 늘리는 것으로 긴급 대처했다. 지배자의 이동 범위나 속도 등. 세인트까지 따라다니기엔 불안정한 요소였다. 여신의 영역을 사용해야 하는 리디안은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중간 지점에서 대기했다.
“잠깐만요! 우리 그냥 인원 많으니까, 차라리 인간 띠 둘러서 지배자 이동 범위 좁히는 건 어때요?”
지배자를 쫓느라 정신없을 때. 헛방을 친 단검을 회수한 뚱이가 돌연 제안했다. 몬스터가 플레이어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롯된 아이디어였다.
그에 간부들이 진지하게 고민했다. 낭비되는 인원이 많아지겠지만, 지배자의 행동반경이 좁아지면 광역기 스펠에 타격당할 확률도 높아진다.
레온과 마제스티는 곧 70%에 다다라가는 브륀힐드의 검 색깔을 보곤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전반적으로 큰 결함이 없다면 뭐든 시도해야 했다.
나머지 길드 마스터들까지 동의하자 신사가 바로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1팀 하이 랭커 파티 제외, 나머지 두 파티 주목하세요! 즉시 중앙에서 벗어난 뒤, 다닥다닥 붙어서 테두리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지배자 몰이하듯이 천천히 거리 좁혀 주세요!”
단박에 인간 띠 작전을 알아들은 플레이어들이 눈을 빛냈다. 그러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아이디어도 아이디어지만, 동요나 반박. 의심 없이 곧장 따르는 모습에 리디안은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야간의 초원에서 한동안 바스락거리는 풀 소리가 울렸다. 넓게 퍼져나간 플레이어들은 움직이는 지배자를 주시하며 조금씩 거리를 좁혔다. 120명에 가까운 인원은 몸을 부대끼며, 손을 맞잡고 보스를 포위해 갔다.
이윽고 플레이어 테두리가 완성되자 밤의 지배자는 영락없이 갇힌 꼴이 되고 말았다.
제한 없이 사방을 누비던 밤의 지배자도 테두리가 가까워지니 별수 없었다. 복잡하게 움직이던 동선이 눈에 보일 정도로 단순해졌다.
뚱이가 생각했던 대로였다. 지배자는 바로 앞에 플레이어가 서있자, 그를 비켜 가는 모습을 보였다. 밤의 지배자와 부딪힐까 봐 질끈 눈 감고 있던 헤른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밤의 지배자는 좁은 공간에 갇혀 맥없이 얻어맞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