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Michelangelo in my previous life RAW novel - Chapter 120
120
* * * *
신성한 자(IL Divino).
그가 결국에 쟁취해낸 이름을 보아라.
참으로 거룩하다.
···나이 서른에 디비노(Divino), 신과 같은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은 뒤 미켈란젤로의 예술이 점차 발전해감에 따라 그의 별명 역시 그 발자취를 따라갔다.
신성(神聖).
일 디비노(신성한 자, IL Divino).
성스러운 자, 신성한 자, 거룩한 자.
그의 이름 앞에 붙어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살아있는 거장 앞에 붙여진 이름이 그가 걸어온 세월을 증명한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미사어구를 혀에 흐르는 침처럼 내뱉고 삼키곤 했다지만, 감히 그 시대상에 혀 위로 신(神, Divino)을 담는 것이 쉬웠을 리가 있나.
나는 그것이 증명이라 생각한다.
– 양선구의 [조각가와의 수업]에서 내용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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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꺽.
이사벨라는 침을 삼켰다.
목울대가 움직였다.
긴장이 풀리라고 한 것이었지만, 긴장이 더 올라오는 것 같았다. 동시에 자신의 침 넘기는 소리가 앞에 있는 나이 모를 위인에게 닿았을까 신경이 쓰였다.
이사벨라의 눈동자가 눈앞에 있는 인물을 쫓았다.
불이 붙은 돌처럼 타오르는 적갈빛의 눈동자.
눈앞에 앉아있는 것은 강석이었다.
‘정말 이제 겨우 성인이 된 게 맞···나?’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한 달도 안 되었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깊은 눈동자였다. 깊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행동 하나에 군더더기가 없고, 표정은 속을 알 수 없으며 자세는 묘하게 바르다.
진짜 엄청난 동안이라거나···이사벨라가 맞부딪혀오는 눈동자를 피해 고개를 숙였다.
눈동자를 마주함에 있어서 피하는 법이 없고 세상을 모두 내려다보는 것 같은 차분한 오만함.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온 이사벨라는 저런 눈동자를 강석을 제외하곤 단 한 명에게서밖에 발견하지 못했다.
이사벨라, 본인의 할아버지.
이제는 일선에서 물러나신 전대 리날디 가문의 가주이자 살아있는 리날디 가문의 역사이자 실질적 주인.
바오르 프리모 리날디.
리날디의 장자로 태어나 리날디 가(家)를 지금의 리날디로 이끌었다고 평가받는 인물. 몇십년이 지나면 이탈리아 교과서 귀퉁이에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현대 이탈리아 경제하고는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인물이었다.
“(이사벨라.)”
“(네, 넷!)”
“(너무 긴장을 한 것 같은데···우린 서로 긴장을 나눌 사이가 아니오. 그냥 거래를 할 사이지.)”
무심한 적갈색 눈동자에 이사벨라가 다시 또 침을 꿀떡 삼켰다. 그런 이사벨라를 보며 강석이 나직하게 한숨을 삼켰다.
그런 둘을 지켜보던 류정형이 의아하다는 듯 박선우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상하네요.’
‘뭐가요?’
‘리날디 감독이 꼭 대표님께서 회장님을 뵐 때와 같지 않습니까.’
회장님?
산강문화재단 소속 류정형이사가 회장님이라 존칭을 할만한 존재는 하나였다. 산강그룹의 회장. 박선우 본인의 할아버지.
자신의 할아버지를 떠올린 박선우는 편두통이 오는 것 같았다. 그 백두대간의 산호랑이인지 십대강을 넘나드는 교룡인지 모르겠는 인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머리가 아파와서였다.
“류형. 우리 앞으로 사흘간은 할아버지 얘기는 하지 맙시다.”
“···죄송합니다. 어제부로 대표님께 할아버지 알레르기가 생기셨다는 걸 깜빡했습니다.”
“아, 류형!”
류정형이 남몰래 웃음을 꾹 참으며 허리를 다시 폈다.
그런 류정형을 보다가 박선우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같은 웃음을 터트렸다. 소리없는 파안대소였다.
하여튼 나도 류형에게는 약해서 큰일이야.
어릴적부터 보아온 산강장학재단 출신 류정형이 어쩔때는 피를 나눈 가족보다 가깝게 느껴지니···박선우가 곤란하다는 웃음을 지으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나저나 정말 류형 말대로네.’
정말 형님 말대로 이사벨라를 제가 할아버지를 대할 때처럼 강석을 어려워했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장정 셋을 경호원처럼 막 부리던 이사벨라 리날디와 동일인물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조심하는 기색이 있었다.
뭐지.
박선우의 눈초리가 가늘어지는 순간.
“그런데···강작가님이 옛날부터 조각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류정형이 다시 또 말을 걸어왔다.
“음?”
류정형의 말에 박선우, 그리고 옆에 서있던 조동범까지 시선을 돌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는 시선에 류정형의 입이 다물 새도 없이 다시 열렸다.
“이탈리아어만 할 줄 아는 리날디 감독과 아무렇지 않게 의사소통을 하지 않습니까. 이탈리아어가 수준급인 것 같던데···저번에 영어도 그렇고요. 영어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필수 언어니까 넘어가더라도, 이탈리아어는 보통 어렸을 때부터 익히진 않잖습니까. 미술과 병행하긴 더더욱 어려웠을 테고 말입니다.”
류정형이 로사이로 줄이 달린 안경테를 검지로 슬쩍, 밀어올렸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강작가님이 이탈리아어를 저렇게 수준급으로 익히고 있다는 건 어렸을 때부터 조각에 대한 유학을 염두에 두고 이탈리아어를 익혔을 지도 모른다는 뜻이죠.”
“유학······”
“조각 하면 가장 독보적인 나라는 이탈리아니까요.”
바티칸을 떠올린 류정형이 그 웅장함을 조각으로 표현한 풍경을 되새기듯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그런 류정형의 말에 조동범과 박선우가 심각한 얼굴로 강석을 바라봤다.
“물론 저 말투는 아무리 들어도 난해하지만요. 꼭 단테의 신곡 원문에서나 나타날 것 같은 고전적인 말투 같지 않습니까?”
류정형의 뒷말을 한쪽 귀로 듣고 휜쪽 귀로 대충 흘린 박선우와 조동범이 이사벨라와 강석을 응시하는 사이.
이사벨라와 강석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저, 저, 저는 그러니까 진도욱. 블룸 미술관 진도욱 관장 추천으로 한국에 방문했어요. 이번에 열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전에 참가해야하는 한국관 작가 중 한 명이···)”
강석이 계속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사벨라는 용기를 얻은 듯 종알새처럼 조잘거렸다.
“(작가 중 한 명이 불미스러운 일로 물러나게 되었거든요. 솔직히 비엔날레에 참가하는 국가의 총괄감독은 각 국가에서 선출하는 것이 보통이고, 그 총감독이 국제전 참여작가를 정하는 것도 맞아요. 하지만 이번에 한국 쪽에서 보내온 커미셔너 포트폴리오는 리날디에서 후원하는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올리기엔 너무 기준미달이었고, 우리 리날디 가문은 비엔날레 중 가장 격조 높은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그런 사람을 커미셔너로 세워둘 수는 없었어요. 오. 세상에. 그 끔찍한 포트폴리오를 보셨어야 할 거예요.)”
이사벨라는 할아버지한테 고자질을 하는 아이처럼 강석에게 하소연했다. 강석은 무심한 얼굴을 한 채, 고목나무처럼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작은 끄덕거림이 이사벨라에겐 큰 용기가 되었는지 그녀의 이야기는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래서 우리 리날디 가문은 어쩔 수 없이 저를 앉힌 거죠. 제가 이래보여도 리날디 가문에서는 신뢰받고 있는 한 명의 예술가거든요.)”
중간 중간 약간의 과장이 들어가긴 했지만, 들어줄만 했기에 강석은 말을 끊지 않고 그녀의 조잘거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전 정말 잘해볼 생각이었어요. 한국관 감독 자리에 제가 앉게 되었지만, 한국관에 들어갈 참여작가들은 한국에서 정할 수 있도록 했지요. 한국관의 주제도 그들이 정하게 해줬어요.)”
“(국제전이란 그런 거잖아요. 패션쇼. 그들이 잘하는 걸 런칭해보라고 자리를 마련했죠. 근데 한국 예술위원회가 저에게 이런 시련을 안겨줄 줄은 몰랐지 뭐예요. 대리화가라니! 대리화가라뇨! 오, 세상에. 소식을 접하는 게 너무 늦었어요.)”
“(당장 2월이 다가고 있고, 비에날레는 4월에 열리는데 자리에 구멍이 생기다니···전 당황하고 있었어요. 근데 한국예술위원회는 또 사태 수습을 하느라 연락도 잘 안 되고···한국의 유명한 미술관에는 다 연락을 돌린 것 같아요. 그러다 블룸 미술관 진도욱 관장이 말하더군요.)”
이사벨라는 속사포처럼 내뱉던 말을 멈추고 침을 한 번 삼키더니, 환한 미소와 함께 뒷말을 이었다.
“(강석의 작품을 직접 봐보지 않겠냐고요. 직접 보면 다를거라면서 비행기 티켓을 보내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왔더니 오. 세상에···일 디비노가 한국에 있을 줄이야.)”
잠시 감격에 찬 얼굴을 한 이사벨라의 머리카락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듯 떨어졌다.
검은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짙은 흑갈색의 머리카락으로 잠시 시선을 주는데, 이사벨라가 테이블에 열 손가락을 피아노를 치듯 붙여놓고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언제 기뻐했냐는 듯 우수에 차 있었다.
누가 보면 그녀는 일인극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과연 이탈리아인답게 감정이 불과 같이 타오르고, 물에 팍 꺼져대는 모양이었다.
“(···솔직히 비엔날레 본 전시도 아니고 국제전, 그것도 한국관 대표작가도 아니고 참가작가라는 자리는 너무 작다는 거 알아요.)”
“(여태까지 이렇다할 국제전시나 공모전에 나오지도 않은 거 보면 당신은 이런 남이 주는 명예 따위는 관심도 없는 거겠죠.)”
“(들어보니 이 건물도 당신의 것이라고 하더군요. 대단하세요. 이 건물과 엄청 큰 저택에 대한 세금도 해결할 정도로 매일같이 돈이 이곳저곳에서 들어온다고도 들었어요.)”
거기까지 듣던 강석이 슬쩍 눈을 굴려 박선우와 류정형 쪽을 바라보았다. 참 많은 것을 말했군. 그 시선에 박선우가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어보였다.
알만하군. 강석이 대충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울 것 없이 말을 해놓아서 상대를 긴장시키려는 의도였겠지.
그리고 결과도 좋았다. 박선우 대표 특유의 이중 삼중으로 포장을 하는 말기술은 꽤나 이사벨라에게 적통으로 먹힌 모양이었다.
그녀는 강석이 당장 거절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태도로 저자세로 나오고 있었다. 아마 를 처음으로 보여주고, 서울 관광 나들이마냥 강석의 작품을 하나하나 다 보여주면서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떠들어대었겠지. 이사벨라의 태도를 보고 있자니 뻔하게 그려졌다.
“(아마 황금사자상 수상도 어렵고, 판매를 안하신다 하였으니 이후 열리는 전시회 부수익을 노리기도 어려우시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주제에 맞는 작품이 없어서 새로 만드셔야 할 텐데···)”
“(비엔날레는 4월 말에 열리는데다 이탈리아에 작품이 도착하려면 4월에는 보내셔야 하실 거고, 조각상 수송 준비까지 생각하면, 시간이 한 달도 남지 않을 텐데 너무 짧다는 거 알아요. 정말로요.)”
너무 짧다···라, 강석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박선우가 강석의 작품을 자랑하면서 그가 그 작품들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말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뭐 그걸 또 알려줄 필요는 없지.
강석은 굳이 저자세로 나오는 사람을 고쳐 앉혀주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옛말에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
강석의 작품 준비 시간을 조사하지 못한 이사벨라의 잘못도 있었다.
비즈니스란 냉정한 법이니까.
강석은 이사벨라가 구구절절 말함으로써 점점 값이 높아지는 제 몸값을 즐겼다.
“(그래도 참가해주실 수 있을까요?)”
드디어 본론이군.
강석이 이사벨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2만 유로.)”
“(···네에?)”
그게 뭔가요.
이사벨라가 고혹한 생김새에 어울리지 않은 순진무구한 눈을 깜빡거리며 강석을 쳐다봤다.
2만 유로.
한화로 따지자면 약 2,864만원.
대충 반올림하면 2,900만원 되는 돈이었다.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미술전은 두 개요. 하나는 전체 주제를 두고 작가를 초청하여 꾸미는 본 전시,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국가별로 작가들을 뽑아 여는 국제전.)”
“(맞, 맞아요.)”
이사벨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석이 누가 봐도 웃음이라고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무표정에 가까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 한 종류가 더 있지. 참가비를 내고 베네치아 비엔날레 재단의 승인을 받아 열리는 병행전시.)”
병행 전시. 들어봤다. 이사벨라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통 40개 내지, 44개에서 50개 미만의 병행 전시가 열리곤 하는데···그거 하나 여는 참가비가 2만 유료요.)”
지피지기 백전불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흔들리지 않는 말이 있다.
이사벨라의 첫 번째 실수는 강석에 대해서 너무 잘 몰랐다는 거고, 두 번째 실수는 반대로 강석이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대해서 얼마나 아는 지를 상정하지 못했다는 거다.
“(그, 그런데요?)”
“(그걸 시작 단가로 잡는 게 어떻겠소.)”
시작 단가.
이사벨라는 그제야 이해했다.
창립 이래 돈을 주고 누구를 초청한 적 없는 이름 높은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참가비를 역으로 요구하겠다는 소리였다.
이 무거운 몸을 움직이려면 그 정도는 줘야 하지 않겠냐는 당당함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그 사실을 이해함과 동시에 이사벨라의 동공이 망치에 맞은 두더지마냥 흔들렸다.
‘오, 세상에···!’
이사벨라의 당황에도 강석은 속을 알 수 없는 얼굴로 그녀를 응시할 따름이었다.
‘진흙에 가까운 다갈색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꽤 두더지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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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은 전생을 떠올린 이래···단 한 번도 돈에 관련하여 양보를 한 적이 없었다.
천성(天性)이 그랬다.
고결한 이름과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천성이었다.
121. 피에트라산타Pietrasan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