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a regressor RAW novel - chapter (28)
나는 회귀자가 아닙니다 28화
Under World (1)
이튿날.
이른 새벽에 일어나 가볍게 수련을 마치고 협회로 향했다.
“그러면 앞으로 발할라 길드와 협력해서 흑성회를 조사하신다는 겁니까?”
탁.
한준만 팀장이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물었다.
“예. 뭐, 그래도 대부분 조사는 발할라 길드 측에서 도맡아 할 예정입니다.”
“하긴… 오진 씨 혼자서 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한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씩 웃었다.
“잘됐네요.”
“그렇죠.”
발할라 길드가 자신과 협력 관계를 맺는다는 건 협회 입장에서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하. 오진 씨 덕분에 요즘 매일 같이 닦달하던 임원진 놈들도 찍소리 못하고 있습니다.”
도망치던 납치범을 잡은 것도 모자라 발할라 길드와 이런 협력 관계까지 맺어버리다니.
고작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성과였다.
“그런 의미에서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얼마든지요.”
“이번에 장비를 좀 맞출 생각입니다.”
“장비요?”
“예. 모두 주문 제작으로요.”
미리 만들어준 장비 요청서를 한 팀장에게 내밀었다.
“창날부터 창대까지 은으로 만들어진 창이 필요합니다. 성유석을 섞어서 경도를 높인 거로요.”
모든 금속 중에서 가장 전기 전도율이 높은 금속.
은을 베이스로 무기를 만든다면 그가 지닌 ‘뇌전’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음… 알겠습니다. 근데 창 말고 이건 또 뭐죠?”
한 팀장이 팔찌처럼 생긴 장비를 가리켰다.
단순한 팔목 보호대라 하기엔 너무 기형적인 형태의 물건이었다.
“뭐…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와이어를 총탄처럼 발사하는 장치입니다.”
“스파이더맨이 쓰는 웹 슈터 같은 겁니까?”
“비슷하죠.”
발사하는 게 거미줄이 아니라 와이어라는 차이만 좀 있을 뿐.
“단, 와이어 전체가 전자석으로 이뤄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류를 흘려보냈을 때 금속에 달라붙게 만들 수 있다.
“아, 물론 이것도 성유석을 섞어 경도를 높여주세요.”
“음… 제작이 어렵지는 않을 것 같네요.”
형태가 좀 독특하달 뿐이지 들어가는 기술 자체는 단순했다.
와이어를 쏘아 보내고, 다시 회수할 수 있는 기능만 있으면 되니까.
“근데 굳이 이런 장비까지 만드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창으로는 거문고자리의 성흔을 활용하는데 한계가 있으니까요.”
자신은 이신혁과 달랐다.
우직하게 창 하나만을 사용해 창술의 극의에 도달할 생각 따윈 없다.
‘뇌전을 활용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해.’
그렇게 고안해낸 것이 바로 이 와이어 슈터.
잘만 활용한다면 입체기동장치처럼 자유롭게 공중을 누빌 수도 있고, 와이어로 적을 묶어둘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 한 번 와이어에 묶이면.’
그걸로 끝.
뇌전을 흘려 넣으면 와이어에 묶인 적을 순식간에 전기 통구이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다루기 존나게 어려울 것 같긴 하지만.’
연습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싶다.
“와이어 슈터라… 그 꼬맹이가 엄청 좋아할 것 같네요.”
한 팀장은 누굴 생각했는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습니다. 장비 제작팀에 요청을 넣어보죠.”
“대금은….”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더럽게 비싸겠지?’
통짜 은으로 만든 창과 와이어 슈터라는 기상천외한 장비.
거기에 성유석까지 섞어 넣어 강화해야 하니 가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끓어오르는 걱정을 불식하듯━
“하하. 장비 대금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준만 팀장이 빙그레 웃었다.
‘설마.’
오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번에 발할라 길드와의 협력 작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상부 쪽에서도 좋게 보고 있으니 장비 제작 비용 정도는 협회가 부담하겠습니다.”
“준만 팀장님….”
아니.
“준만이 혀엉!”
와락!
감동이 복받쳐 올라 한 팀장을 끌어안았다.
“어, 어어?”
고릴라, 아니 한 팀장이 당황스럽다는 표정으로 동그랗게 눈을 떴다.
“오, 오진 씨?”
“우리 사이에 그런 딱딱한 경어는 필요 없잖아!!”
“아니 우리 사이라는 건 또 무슨.”
한 팀장이 삐질삐질 땀을 흘렸다.
“크, 크흠. 일단 진정하십쇼.”
“아, 예.”
흥분을 가라앉히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장비 요청서 아래 있는 마지막 서류를 들어 올린 한준만 팀장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이건 대체 어디 쓰시려고 구하시는 겁니까? 설마 오진 씨가 쓸 건 아닌 것 같고.”
와이어 슈터보다도 뜬금없는 물건에 한 팀장이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쓸 건 아니지만 하나 필요해서요. 이건 꼭 주문 제작을 해주실 필요 없이 느긋하게 구해주셔도 됩니다. 아, 거기 적혀 있듯이 최고급으로요.”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것도 저희 협회 쪽에서….”
“아뇨.”
단호히 고개를 저으며,
“━이건 제 돈으로 사겠습니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진 씨 돈으로요?”
한준만 팀장이 의외라는 듯 물었다.
이제까지 보여준 오진의 수전노 같은 모습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예. 이건… 꼭 제 돈으로 구해야 하는 물건입니다.”
“음, 알겠습니다. 그럼 금액은 나중에 따로 청구하겠습니다.”
장비 요청서를 정리해 서류철에 넣었다.
짝.
서류철을 정리하던 도중,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참, 그러고 보니 전에 주신 성유물 감정 결과가 나왔는데요.”
한준만 팀장이 쓱 태블릿을 내밀었다.
흑성회가 바꿔치기한 푸른 술잔의 사진이 보였다.
“등급은 3성급. 성유물의 효과는 마력 회복을 빠르게 만들어주는 효과더군요.”
“3성급이라고요…?”
오진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고작해야 1~2성급일 줄 알았는데 설마 3성급이었다니.
‘크으, 아낌없이 주는 새끼들!’
흑성회 하나로 대체 얼마를 벌어들인 건지 감이 안 잡힐 정도였다.
“이 성유물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진 씨가 직접 사용하실 건가요?”
“아뇨. 성유석이랑 같이 처분해주세요.”
다른 효과라면 몰라도 마력 회복은 자신에게 있어 아무 쓸모 없는 효과였다.
‘회복이 필요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치니까.’
여기선 돈으로 바꾸는 게 좋겠지.
“예, 알겠습니다.”
“아, 처분하는 김에 이것도 같이요.”
유진에게서 얻은 고급 성유석 두 개도 함께 건넸다.
“와… 이건 또 꽤나 상등품 성유석이로군요.”
“다 처분하면 얼마 정도 나올 것 같습니까?”
“음. 전에 주신 것까지 다 합쳐서 17억? 잘하면 18억까지 받을 수 있겠네요.”
“…….”
세상에 씨발.
‘그러면… 이우혁에게 받은 돈까지 해서 50억 정도 벌어들인 건가?’
꾸욱.
움켜쥔 주먹이 덜덜 떨렸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짜릿한 전율이 등골을 타고 퍼졌다.
지난 몇 년간 모은 돈을 합친다면 원하던 물건을 아슬아슬하게 구해 볼 수 있는 금액이었다.
‘아슬아슬해선 안 되지.’
100억.
확실하게 그 물건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정확히 100억이 필요했다.
‘그리고.’
남은 돈을 어디서 구할지는 이미 정해둔 상황.
“팀장님.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더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한 팀장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역. 그 아래 하수도 지도가 필요합니다.”
“…예?”
한 팀장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오진을 바라봤다.
서울역 하수도 지도라니.
그딴 게 대체 어디에 필요하단 말인가.
“보물찾기 좀 하려고요.”
씨익. 입가를 올리며 답했다.
“…그렇게 말해도 무슨 생각이신지 전혀 모르겠네요.”
“하하하. 그런 게 있습니다.”
후우.
한준만 팀장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란 말이야.’
괴짜도 이런 괴짜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것도 한 번 구해보죠.”
명색이 정부 직속 기관인데 그 정도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예, 그럼 부탁드립니다.”
오진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회 밖으로 나가니 싱그러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앞으로 30억만 더.’
3차 개화를 하며 흘러들어온 이신혁의 기억 속.
살덩어리 괴수의 이마에 박혀 있던 거대한 성유석만 구할 수 있다면.
그토록 갈망하고, 열망했던.
━‘낙원’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 * *
협회에 장비 제작을 요청한 지 일주일.
평소와 같이 이른 새벽에 옥상으로 올라온 오진은 평범한 인간은 감히 따라 해볼 생각조차 못 할 아크로바틱한 동작을 몸소 펼치며 단련에 매진했다.
“후우, 후우!”
거칠어진 숨결.
한쪽 팔로 물구나무선 자세로 두 다리를 넓게 벌렸다.
양쪽 발목에는 각각 30kg 무게의 쇳덩어리가 묶여 있었다.
“흐읍!”
넓게 벌린 두 다리를 모아 꼿꼿이 펴는 것과 동시에 왼팔 하나로 지탱하던 몸을 가볍게 공중에 띄웠다.
그대로 왼팔에서 오른팔로.
쿵!
물구나무를 서던 팔을 옮기니 무게 중심이 살짝 흐트러졌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착!
그렇게 20회. 오른팔과 왼팔을 번갈아 짚으며 물구나무를 선 후 깔끔한 백 텀블링과 함께 몸을 세웠다.
12월의 차가운 공기가 달아오른 몸을 식혔다.
“다음은….”
성흔을 수련하기 위해 창을 쥐었을 때.
-우우우웅!
은색 목걸이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
오진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목에 찬 목걸이를 들어 올렸다.
의문도 잠시.
이 빛무리가 뭘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드디어 돌아오는구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고귀한 여신님이.
-뾰로롱.
목걸이에서 뿜어져 나온 은색 빛무리가 30cm 정도 되는 작은 여인의 형상으로 뭉쳤다.
찬란한 빛을 뿌리는 드레스와 기다란 은발.
황금색 눈이 그를 향했다.
오진의 입가 슬며시 올라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허.]척!
팔짱을 낀 베가가 근엄한 표정으로 오진을 노려보았다.
[말을 편히 하라 하지 않았더냐?]“아.”
그러고 보니 헤어지기 전에 그런 말을 했던가.
그동안 워낙 정신 사나운 일이 많다 보니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하하, 미안.”
가벼운 웃음을 흘리며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베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반가워, 베가.”
[후후훗.]뾰로롱.
가볍게 허공을 날아 손바닥 위에 걸터앉은 베가가 우아하게 다리를 꼬았다.
흐응!
흥분에 찬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등허리를 곧게 펴며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외쳤다.
[본녀가 돌아왔느니라!]3주 만의 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