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56
256. 감정이 죽인 것은 나인가, 너인가(3)
물론 제가 할 말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이러한 상황을 예감했으면서도 끝내 그녀를 말리지 못했으니까. 데르니반에게는 감히 그녀를 질책할 자격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라는 것이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잖은가.
변명하자면, 계획을 실행하기 전까지 몇 번이고 말리려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한숨 한 번에 물러서고, 눈물 앞에서 무릎 꿇는 본인을 발견하게 되니, 어쩌겠나.
‘……이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사랑이 되겠지.’
데르니반은 감정에 둔한 것이지, 이론조차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것은 아니었다.
‘살아 움직이는 시체 따위가 감정을 느끼게 하다니.’
오엘 님은 대체….
데르니반은 늑대 출신의 마족이다. 정확하게는 늑대 ‘사체’ 출신.
그는 에드와 마찬가지로 어느 생물체의 사체를 바탕으로 탄생한 마족이지만 궤를 완전히 달리했다.
에드가 사체를 ‘재료’로 다른 것과 섞여 완전히 재구성되어 탄생했다면, 데르니반은 사체에 숨과 힘을 불어넣어 겉모습만 조금 바뀐 채 부패하지 않고 사고하며 돌아다니는 것에 가깝다. 같은 나무지만 종이로 재탄생한 것과 적당히 모양만 깎아 기둥으로 사용한 것의 차이랄까.
“전 아직도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생기 넘치는 오엘의 태도에 영향을 받았음에도, 그의 감정은 그녀를 향한 것에서 그쳤다. 오엘을 사랑하지만 그녀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그녀 외의 것에 감정을 갖지 못한다.
‘…….’
땅에 박힌 화살을 뽑았다. 바닥을 나뒹구는 익숙한 활을 들어 머리 위의 마물을 쏘아 떨어뜨리고 다시 오엘을 두 눈에 담았다.
불명예스러운 죽음이기에 군단장이었음에도 감히 공식적으로 흔적을 수습하지 못하는 이 꼴을 보라. 어느 누가 그녀를 군단장이라 생각할까.
“하지만… 만족하신 것 같았으니 된 것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명을 완수했다는 말에 웃었다. 수고했다고 말했다. 그것도 모자라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그러니 제게 있어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행동이었음에도 그저 받아들이고자 한다.
게다가.
“……보고가 늦었지만, 인간 아기는 저번에 말씀드린 전직 황궁의에게 무사히 전달했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저 자신이니까.
“집 안에 들이는 것까지 확인했으니, 이후는 큰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저도 모르는 새 그녀에게 물들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 사랑이 이렇게나 비합리적인 감정인 것일까. 최근 들어 몇 번이나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손을 뻗어 잔해를 수습하기 시작했다.
한없이 가라앉은 눈동자가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채 하염없이 처참한 잔해만을 담는다. 한때 연인이자 상관이었던 이의 잔해를 수습하고 있음에도 그의 두 눈은 미동도 없이 담담했다.
“말씀하신 대로 5군단장이 되겠습니다.”
눈빛만큼이나 담담한 목소리가 나왔다.
“모아둔 괴상한 물건들도 버리지 않겠습니다.”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던 말대로, 언젠가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인간계에서는 태워서 보내주기도 한다지만, 당신은 그걸 바라지 않겠지. 나중에라도 정말 쓸 일이 생겨 사용하는 쪽을 더 좋아할 것이다.
“당신이 가졌던 감정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모성애’라는 이름만 알 뿐, 그게 무엇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그 감정을 느끼는 동안의 그녀가 눈부시게 빛났다는 것은 안다.
“당신의 그 감정을 존중합니다.”
그러니 어찌 그녀의 선택을 비난하고 깎아내릴 수 있을까. 그 감정이 만들어낸 결과물인데.
이해할 수 없다고, 어리석은 선택이라고 연신 말하면서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이유에는 이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르니반은 수습한 잔해를 품에 안고 일어났다.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며 입술을 조용히 달싹였다. 지나가는 바람이 그의 말을 훔쳐 허공에 흩어 놓았다.
속삭이듯, 혹은 부스러지듯 희미한 목소리가 빈 공터에 맴돌았다.
“사랑합니다.”
사랑하니까.
대상은 이미 떠나고 없는 상황에서 너무 늦게 깨달은 진실이 조용히 나왔다.
앞으로 두 번 다시 언급될 일 없는 진실이었다.
***
오엘이 죽었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상황이기에 당황하지는 않았다.
데온이 좋아하겠네. 태연히 그와 관련된 서류를 처리하며 마왕은 실소를 흘렸다.
……그보다.
“갑자기 날 만나고 싶다 해서 일단 들이긴 했는데…….”
펜을 내려놓았다. 서류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든 마왕의 얼굴은 언제 웃었냐는 듯 서늘한 분위기를 두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또 한 명의 군단장이 죽어 귀찮아진 상황에서 서류 작업과 마물 처리를 병행하며 정신적 피로가 쌓인 상황인데, 죽은 녀석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이의 방문 요청을 반갑게 받아들일 자가 어디 있겠는가. 척 보기에도 귀찮은 일이 늘 것 같은데.
절로 날카로운 목소리가 나갔다.
“무슨 일이지?”
“현재 비어 있는 5군단장의 빈자리가 내정되어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상대의 심기는 신경 쓰지 않는 듯, 건조하고 차분한 음성이 돌아왔다.
아, 무슨 목적인지 알겠군. 마왕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없다면?”
“그 자리에 제가 들어가고 싶습니다.”
“당당하네.”
“…….”
마왕의 의도하에 공기가 압박하듯 조여온다. 서늘한 역안이 상대를 꿰뚫을 듯 응시했다.
보통은 이쯤에서 알아서 꼬리를 내렸을 테지만, 데르니반은 꿋꿋이 서서 마왕의 시선을 마주했다.
침묵 속에서 눈빛이 오가길 한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날카로운 기운을 거두고 물끄러미 그를 보던 마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5군단은 활을 주로 다루지.”
“…….”
“군단과 군단장의 주 무기가 겹치지 않아도 상관없긴 하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군단을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가 군단장이 되는 것이 좋을 테고.”
사용하는 주 무기가 같다면 기본적인 이해는 밑바탕에 깔고 가는 셈이니 더 좋을 것이다.
“에드는 만능이긴 하지만 너에 비하면 무투에 가까운 편이니….”
분위기에서 긍정을 읽은 데르니반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굳이 5군단장을 뽑자면, 그래. 네가 하는 게 좋겠네.”
원래는 뽑을 생각이 없었지만.
이렇게 직접 와서 부탁하는데, 의심받지 않으려면 앉혀줘야지. 안 그래, 데온?
기껏 비어버린 자리가 다시 채워지게 생겼네. 마왕이 싱글싱글 웃었다.
마왕의 표정 변화가 어떻든, 제 목적을 이룬 데르니반은 상관 않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
산국이 수성전에 들어갔다.
무언가 신호가 오간 것이 있는지, 한순간에 썰물이 빠지듯 물러가던 모습에 잠시지만 모두가 당황했더랬지. 10군단장 가이시텔이 재빨리 뒤쫓으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따라잡았다 싶을 때는 이미 성벽 가까이에 도달한 상태라 화살 비가 쏟아져 더는 접근할 수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데온 님?”
“…….”
허리춤에 괴식물을 매단 사내가 무언가 가늠하듯 눈을 가늘게 뜨고 성벽을 보았다.
‘성벽을 넘어 성문을 여는 것 정도는 혼자서도 가능할 것 같은데….’
용사의 육체가 확신을 준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이 전쟁을 넘어 인간계 정복도 어렵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붉은 눈동자가 힐긋 가이시텔을 담았다.
‘……지금 내 목적은 단순히 산국을 무너뜨리고 인간계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니까.’
슬쩍 데온 하르트라는 패를 뒤로 숨기고 입을 열었다.
“일단… 공성탑과 공성추부터 제작해. 내가 오기 전에 한바탕 싸우는 과정에서 죄다 박살 났다며.”
“알겠습니다!”
“뭐, 사실 식량이 떨어지면 알아서 기어 나오지 않을까 싶긴 한데…….”
조금 시간이 지난 기억을 뒤져 2군단장 드벨라니아에게 받았던 정보를 끄집어냈다.
“……지하수를 끌어올려서 안에서 작게나마 농사를 짓고 있댔나.”
과연 적이 코앞까지 왔는데도 왕이 머무르고 있을 만하다. 이곳보다 더 나은 환경을 찾을 수 없었겠지.
이쪽 입장에선 이곳만 뚫으면 끝난다는 이야기다. 배수진을 쳤구나, 국왕.
태연히 허리춤의 괴식물을 만지작거리다가 입을 뗐다.
“가이시텔. 어차피 공성 무기 제작하는 데 시간도 걸릴 테니, 다른 임무도 맡겨 볼까 하는데.”
“맡겨만 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의욕 넘치는 게 보기 좋네.”
시야 가장자리에서 핏물이 일렁인다. 모른 척 말을 이었다.
“지하수 물을 퍼다 사용하는 건 그렇다 쳐도, 단이 확인해본 결과 주변 땅이 촉촉하다더라고. 근처에 물길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지. 네 병력을 데리고 그걸 찾도록 해.”
“찾아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둑을 쌓고, 물길의 방향을 성으로 틀어.”
둑을 터뜨리는 즉시 쏟아져 내린 물이 성을 쓸어버리도록.
고개를 들었다. 높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쨍한 여름 햇살이 눈을 아프게 찔렀다.
“곧 가을이 되고 수확 철이 오겠지.”
“성 내에 물이 밀고 들어오면 수확한 작물이 상하겠군요.”
눈치 빠른 단이 말을 받았다. 데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이나 사람을 쓸어갈 정도로 강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야.”
수확한 작물은 습기를 머금고 있기만 해도 상해버릴 테니. 무릎 언저리까지만 차올라도 성공적일 것이다.
가이시텔이 과장된 감탄사를 뱉었다.
“그렇군요! 역시 데온 님이십니다!”
“……그럼 되는대로 출발해.”
“예! 알겠습니다!”
의욕 가득한 모습을 보이며 돌아선 그가 제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들었지? 데온 님께서 땅 파랍신다! 빨리 가자 노예… 아니, 부하들아!”
“…….”
“…….”
표정이 썩은 무리가 가이시텔을 따라 우르르 사라진다.
가만히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단이 아무것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려 데온을 보았다. 막사로 향하는 걸음을 따라잡으며 태연히 말을 붙였다.
“저래 보여도 고급 인력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저들을 땅 파는데 쓰는 사람은 마스터밖에 없을 겁니다.”
“힘이 남아도는 녀석들이니 금방 끝내겠지.”
“진심은?”
“…….”
어느새 도착한 막사 입구의 천을 치우고 안에 들어간 데온이 단을 돌아보았다.
“체에스 준비해. 조만간 왕을 만나러 갈 거니까.”
“……!”
단의 눈이 커졌다.
착각이 아니라면 그가 말한 ‘왕’은 분명…….
‘……미쳤네.’
무슨 생각인지, 정녕 미친 건 아닌지, 온갖 질문거리가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말을 뱉을 듯 입을 연 단은 붉은 눈동자를 마주하고 멈칫했다. 나오던 말은 다시 들어간 상태였다.
‘아, 이 인간 용사였지.’
저를 가로막을 게 없다는 듯 당당한 눈빛이 참 인상적이다.
그래, 용사가 하고 싶다는데 누가 말릴 수 있겠어. 아마 지금 성벽을 넘지 않는 것도 따로 생각이 있기 때문이겠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넘을 수 있으리라.
쥐가 고양이 걱정을 하고 있었네.
초연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것 말고 뭐 따로 시키실 건 없고요?”
“딱히…? 쓸만한 정보가 있다면 알려주고.”
“쓸만한 정보…….”
……쓸만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정보’라 하니 떠오르는 것은 있다.
조금 전 들어온 따끈따끈한 소식을 떠올리며 계산하듯 눈을 굴리던 단이 슬쩍 운을 뗐다.
“조금 전에 에드로부터 들은 것입니다만, 5군단장이 죽었다더군요.”
“5군단장이면… 오엘?”
“네.”
“9군단장한테 죽은 건가?”
“네. 일이 마스터의 생각대로 진행된 것 같더라고요.”
결국 터진 거구나. 데온이 조소를 지었다.
정강이 위, 무릎 가까이 차오르는 핏물을 물끄러미 보는 그에게 이게 끝이 아니라는 듯 또 다른 정보가 던져졌다.
“그리고 다음 5군단장으로는 부관이었던 데르니반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음, 5군단장?”
“네, 마왕을 직접 찾아가서 하겠다고 말했다던데요.”
“아 그래?”
급격히 흥미가 떨어진 듯한 목소리에 이부자리를 정리하던 단이 힐긋 그를 돌아보았다.
시큰둥한 눈으로 손톱이나 만지작거리는 것이, 흥미 없다는 걸 여실히 보이는 모습. 어차피 더 말할 것도 없어 적당히 말을 정리한 그는 아직도 데온의 허리춤에 감겨 있는 괴식물을 눈에 담았다.
“그보다, 옆구리의 그건… 계속 달고 다니실 겁니까?”
“……아?”
본인도 잊고 있었던 듯 데온이 흠칫 허리춤을 내려다보았다.
“……끠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