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Not That Kind of Talent RAW novel - Chapter 273
273. 용사 사냥(7)
분명 르웨체는 군사력 쪽으로는 특색이 없다고 알고 있건만, 그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이 정도면 거의 전성기 시절의 제국군 수준인데…….’
만만치 않은 강함과 독기, 눈빛에 깃든 자신감이 거의 에도아르도 데세르트가 통치하던 시절의 제국군이다. 8년 전쟁 때 얼핏 보았던,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짓밟으며 진격하던 군대의 기백이 눈앞의 병사들에게서 느껴져 단은 눈살을 찌푸렸다.
‘둘만으로는 힘들 것 같….’
“난 데온 님께 가야 한다! 내 앞길을 막지 마라, 인간놈들아아아!!”
오.
그러고 보니 지금 내 옆에 있는 마족은 주치의가 아니라 광전사였지.
씩씩거리던 벤이 기어이 앞길을 가로막는 놈들을 향해 왕진 가방을 휘두르며 뛰어든다. 그의 가방이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누군가의 목이 꺾이거나 머리가 터졌다. 누군가는 아예 사람 자체가 날아가기도 했다.
그럼에도 잠시 주춤하기만 할 뿐, 다시 눈빛을 단단히 굳히고 무기를 드는 것이 뚫는데 제법 오래 걸릴 것 같긴 하다만…….
‘어찌어찌 가능할 것 같긴 하네.’
얼마나 걸리려나.
어차피 벤은 이미 전장에 뛰어들었다. 이제 와서 다른 방도를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기에, 단은 흐린 한숨을 내쉬고 검을 고쳐 쥔 뒤 벤을 쫓아 혼란의 틈바구니에 뛰어들었다.
***
“지금 몇 시간째죠?”
“대략 3시간째입니다.”
“……괜히 용사가 아니었군요.”
괴물이 따로 없군.
린델이 질린 표정을 했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치명상만 피한 데온 하르트가 제 상처는 무시한 채 달려든다. 휘둘러지는 그의 단검을 피해 영웅들이 황급히 물러나자 마법처럼 무기가 사라진 빈손이 그들의 눈앞에 보였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이젠 안다. 저 멀리, 어디선가 누군가 죽는 소리가 들렸다.
‘정신없는 와중에 원거리 영웅들까지 착실히 죽여나가다니…….’
그 사이 그의 상처는 전부 회복되었다. 기껏 상처를 입혀놓으면 다시 원점이 되는 상황에 인간 측 진영의 모든 이들이 치를 떨었다.
그리고 동시에 확신한다. 로프티 기사단이라는 약점이 있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고전했을 거라고.
‘아마 지금 데온 하르트의 신경은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진 상태겠지.’
거슬리는 것이 너무 많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으리라.
‘그러다 감정이 터져 삐끗하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단순히 근거리 특기의 영웅들만 모아둔 것이 아닌 원거리까지 확실하게 준비된 전력. 그들은 데온 하르트가 자유롭게 날뛸 수 있는 환경을 결코 만들어 주지 않았다.
데온 하르트가 근거리 영웅들을 죽이려 하면 어디선가 화살과 비수가 날아와 그의 행동을 저지했다. 그가 원거리 영웅들을 죽이기 위해 단검을 던지려 하면 근거리 영웅들이 무기를 휘둘러 방해했다.
하다못해 조금만 전투에 신경이 쏠려 로프티 기사단원들로부터 거리가 벌어지기라도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영웅들이 그들을 향해 무기를 겨눴으니.
“대장, 역시 저희가 죽는 편이….”
“닥쳐.”
무력함을 견디지 못한 기사단원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즉시 날카로운 목소리가 말을 끊었다.
카가가강! 쏟아지는 화살 비를 단검으로 쳐낸 데온이 미처 막지 못해 옆구리에 꽂힌 화살을 뽑는다. 그대로 손에 힘을 주자 화살대가 힘없이 부러졌다.
“뚫린 입이라고 지껄이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
“그냥 지금처럼 원거리 공격만 알아서 피해.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너도 가만히 있어.
옆구리에서 꿈틀거리는 화분을 꾹 눌렀다. 마음을 읽은 듯 녀석이 얌전히 매달린다.
느리게 숨을 내뱉으며 감정을 정리한 데온이 다시 무기를 들고 자세를 잡았다. 조금의 지친 기색도 없어 보이는 모습에 영웅들이 맥빠진 숨을 내뱉고. 그 사이에서 생각에 잠긴 채 데온과 살인귀들을 번갈아 보던 린델이 슬쩍 손을 올려 까닥였다.
“……!”
온갖 원거리 무기가 쏟아졌다.
데온 하르트가 아닌, 살인귀 기사단을 향해.
지금까지 기사단원들을 향해 가한 공격 중 유독 본격적인 느낌이라, 데온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뒤쪽에서 장검이 목 옆을 찌르고 지나갔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크게 확장된 붉은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고 있었다.
“너희…!”
“대장! 이쪽은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대장은 대장 일에 집중하십시오!”
“저흰 멀쩡합니다!”
알아서 피하거나, 옆에 있는 놈을 잡아당겨 피하게 돕거나, 혹은 아예 무기를 휘둘러 쳐낸 녀석들이 붕붕 손을 흔든다. 죽거나 중상을 입은 녀석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붉은 눈이 그제야 안정을 되찾았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모든 상황을 지켜본 린델이 턱을 매만졌다.
‘이거, 생각보다…….’
약점의 효과가 강한데?
잘하면 이를 역이용해 죽일 수도 있겠다. 호위를 위해 제 옆으로 빠진 영웅들을 힐긋 돌아보았다.
짧은 신호가 오가고, 뜻을 이해한 그들이 보일 듯 말 듯 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제야 린델은 통신기를 들었다.
“전원.”
순간 이목이 집중되고, 데온 하르트와 눈이 마주쳤다.
온기 한 점 없이 휘어지는 눈매가 불안한 듯, 그가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차 없는 명령이 이어졌다.
“살인귀 기사단부터 죽이십시오.”
“……!”
‘전원’이라고 했다.
원거리 영웅들도, 근거리 영웅들도 살인귀 기사단을 우선적으로 노리라는 의미.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다. 이전까지는 기사단원들을 노리더라도 데온 하르트를 향한 최소한의 공격은 하고 있었는데. 데온의 눈이 크게 떨렸다.
온갖 비수와 화살이 기사단원들을 향해 쏟아지고, 그렇지 않아도 간신히 피하고 있는 그들을 노려 접근한 근거리 영웅들이 무기를 휘두른다.
“안 돼…!”
“끠애액!!”
데온은 다급히 몸을 틀었다. 내내 조용하던 괴식물이 무언가 경고하듯 비명 같은 울음소리를 토해냈으나 다른 곳에 주의가 팔려 듣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푸욱-!
등 뒤에서 날붙이가 배를 뚫고 튀어나왔다.
“대장!!”
“아.”
그제야 그는 놓치고 있던 부분을 깨달았다.
린델 라이너를 호위하는 영웅들이 남아있었지. 내내 전투에 참전하지 않고 있어서 상정 범위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멈칫한 틈을 놓치지 않고 연이어 각종 날붙이가 몸을 꿰뚫는다. 그러나 데온은 돌아서서 그들을 상대하는 대신 앞으로 뛰쳐나가는 것을 택했다. 제법 필사적인 움직임이었다.
‘쟤네들은 안 돼.’
저들은 죽어서는 안 된다. 저들만큼은 안 돼.
앞으로 달려감에 따라 몸을 꿰뚫은 무기가 저마다 뽑히거나 꽂힌 채 딸려 온다. 뒤에서 다시 공격을 시도하는 듯 괴식물이 줄기를 휘적거리며 어떻게든 등을 노리는 무기들을 쳐내려 노력하는 게 느껴졌으나 돌아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쏟아지는 원거리 무기의 범위 안에 남아있는 미친개들부터 중심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만 힘주어 범위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었다. 다음은 단검을 던져 그들을 노리는 근거리 영웅들의 무기를 쳐내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화살과 비수 몇 개가 몸에 더 박혔으나 개의치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
“대장!!”
“끠액!!”
“피하십시오!!”
또 화살이 날아왔다. 막 단검을 던진 탓에 흐트러진 자세를 재정비하던 데온이 바람 소리를 듣고 급히 고개를 돌렸다. 이 정도면 되리라 생각했건만, 그새 습관을 꿰뚫은 듯 화살은 몸을 트는 방향을 계산하여 날아오고 있었다.
차라리 가만히 있었다면 어깨나 맞고 끝났을 텐데. 정면에서 화살촉을 마주한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것은 정확히, 눈을 노리고 있었다.
‘……이건 못 피해.’
손을 들어 막기에도 늦었다. 오히려 쳐내거나 잡으려 시도하는 과정에서 안구의 손상을 키우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이마나 광대까지 크게 찢어질 터.
심지어 아직 미친개들도 전부 위기에서 구하지 못했다. 붉은 눈동자에 어둑한 체념이 실렸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끠애애액!!”
화살이 멈췄다.
‘…….’
세상이 침묵에 잠기고, 허전한 허리가 느껴진다. 화살대를 잡은 녹색 줄기를 발견한 데온이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화분을 깨고 나온 거대한 녹색 괴식물이 미친개들을 안전하게 구출하는 모습이 시야에 선명히 비쳤다.
“……너.”
***
데온 하르트를 따르는 괴식물은 잡식이다.
과거, 정원사가 영양제라며 주었던 것은 사실 지금은 마기에 오염되어버린, 세계가 요정족에게 넘겼던 씨앗이었다.
‘잡식’인 괴식물과 ‘영양제’라는 명목으로 주어진 ‘세계가 준 씨앗’.
이후에 벌어질 일은 뭐겠는가.
[희생할 각오는 되었니?]언젠가 저를 키운 정원사가 물었다.
데온 하르트를 위해서라면야. 괴식물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씨앗이 주어졌다. 그것을 뿌리 밑에 꾸역꾸역 감추는 것까지 지켜본 정원사 히엔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무슨 짓을 해도 꿈쩍하지 않던 씨앗이 미미하게나마 정화되고 생기를 보인 것은 진심을 다한 희생 앞에서였어.]데온 님을 위해 인간계에서 꽃을 살피다가 우연히 꿀벌집을 발견하며 알게 되었더랬다.
말벌을 쫓아내기 위한 꿀벌들의 목숨을 건 공격. 자살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희생 앞에서 언제나 품에 챙기고 다니던 씨앗이 반응했다.
당연히 첫 발견에서 단언한 것은 아니고, 인간계의 벌들로 실험해보기도 하고, 혹 누군가의 목숨이 제물일까 싶어 인간이나 타 마족을 죽여보기도 하고, 자살이 조건인가 싶어 아무나 붙잡아 협박으로 자살을 시켜보기도 하며 여러 실험 끝에 얻은 결론이었다.
[그러니 진심을 다해 희생할 생각이 아니면 당장 그거 돌려줘. 쓸데없이 시간 낭비할 바엔 다른 수를 찾는 게 더 나을 테니까.] [끠액.]이미 뿌리 일부까지 씨앗에 내려놓았다. 진심을 다한 희생정신 앞에서만 반응한다 했으니, 흡수하지 않은 채 품고 다니다가 필요한 순간 희생할 각오로 흡수하면 되겠지.
그렇지 않아도 작은 화분에 성인 남자의 주먹만 한 크기의 씨앗이 들어가니 뿌리가 눌려 불편하고 버겁지만, 그게 데온 하르트를 지키는 것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괴식물은 자신만만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히엔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그렇게 답하니 잘 된 거긴 한데… 이해는 안 되네.] [끩?] [네가 그렇게까지 데온 님을 위할 이유는 없어 보여서.]저번의 그 식물도 그렇고, 인간계의 식물을 기반으로 탄생한 거라 그런지 마계의 호위 식물들과는 결이 다르다.
대상을 지키는 것은 같은데… 얘네는 훈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본능, 진심으로 위하는 것에 가깝달까. 보통의 호위 식물이 본능을 억누르고 대상을 지키는 것을 훈련받는다면, 이 녀석들은 본능을 어떻게 적절히 활용하는지를 훈련받았다.
그 외에는 딱히 가르친 것이 없는데, 그럼에도 이 정도라니.
[끠…끩.] [캐물을 생각은 없으니 됐어. 간단한 의사소통도 아니고, 설명을 듣고 해석하는 데 오래 걸릴 거 아냐. 그것보단, 지금 거기 흙이 불룩 솟아 있는데… 그건 어떻게 안 돼?] [끩…….]이게 최선이라…….
순순히 바뀐 화제에 괴식물은 기다렸다는 듯 장단을 맞췄다. 이후의 일은 흐지부지 흘러갔다.
불룩한 흙에 데온 하르트가 의구심을 표하고, 시간이 흘러도 흡수되지 않는 것에 직접 뿌리를 들춰보려 시도하기도 하고…….
어찌어찌 씨앗을 들키지 않고 사수한 끝에, 지금에 이르러 씨앗을 흡수한 괴식물은 깨달았다.
이건 내가 씨앗을 흡수하는 것이 아닌, 씨앗으로부터 힘을 빌리는 대가로 내가 씨앗에게 흡수당하는 것이라고.
“끠액…!”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가 질색하는 것을 알면서도 악착같이 붙어있기를 잘했노라 자찬한다. 덕분에 지킬 수 있게 되었으니까.
세계의 기대와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인간을.